<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3장. 鐄(울림)
눈물을 흘리지는 마세요.
투명한 물방울 속에 담긴
지난날의 기억과
사랑과
부서진 조각으로 가득찬
시간의 잔영은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보석입니다.
一.
" 이건......"
리시엔은 카이엔의 손에서 건네받은 작은 목각인형을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왔던 정교하지만 소름끼치는 기이한 형상
들의 동물이 아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인형은 그가 조각한 어느
것중 어느 것에 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세심하게 깎여있었다.
가느다란 윤곽선을 가진 여인의 얼굴, 호리호리한 몸체와 나무 조각임
에도 부드러운 옷의 선이 느껴지는 몸. 그리고 머리카락에 꽂은 작은
용잠까지 세심하게 조각된 여인의 상(像)이었다.
" 나의 어머니지. 오랜 과거에 헤어진...."
리시엔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엔의 모습을 보고 카이엔을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김새가 보통의 인간들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생
각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조각상을 통해 카이엔의 어머니를 접하자 리
시엔은 놀라움을 느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상함
이 배어나오는 조각상.
과연 카이엔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비록 조각이었기에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었
지만 여인의 조각상에서는 익숙함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것은 카이엔의 모습을 자신이 두 눈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 어머니를 닮았군요. 전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더 닮았다고들 해
요."
그렇게 말하며 지긋이 웃는 리시엔의 얼굴에서 카이엔은 그녀가 어머
니에게 품고 있는 애정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천계를 떠나와 자
신의 곁에 머물고 있다 하여도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항상 어머니라는
이름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 그럼 그대는 어머니를 닮기를 바랬겠군...."
카이엔이 묻자 리시엔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지금은 그다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외모야 어떻게
되었던 간에 제게 어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요.
어머니는 그다지 활동적이거나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정말 좋
은분이에요."
리시엔은 카이엔에게서 건네받은 조각상을 내려다 보며 미소지었다. 분
명 카이엔의 어머니 역시 자신의 어머니처럼 따스한 분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닮지 않았다면 자신이 카이엔을 만났어도 이끌리지 않았을 테
니까.
자식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는 것은 바로 부모이므로.
" 그렇군......"
카이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용족으로 태어나 천계에서 자라난 리시엔은 알지 못할 것이다. 교룡으
로 태어난 자신의 감정 따위는. 지금 이렇게 그녀와 마주 대하며 이야
기하고 있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는 것을. 언제 그
녀가 사실을 알게되어 자신에 대한 태도를 바꿀 것인지. 그리고 과연
그때가 왔을때 자신은 그것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 어머니가 떠났을때
에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의 흔들림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지금. 카이엔
은 자신이 어떻게 달라질 지 알 수 없었다.
" 뭐라도 먹을래요? 저쪽에 과일 나무가 있는 것을 봤는데."
리시엔은 카이엔에게 한손을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들어서 알고 있는. 그리고 몇번 보았던 용족과는 완전히 다른
그녀의 모습. 마치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랜 과거에 자신
이 알고 지내던 친우의 부인처럼 아니 그보다 더 자유분방하게 그녀는
웃고 있었다.
* * *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카이엔은 손에 들고 있던 나무를 탁자 위
에 올려놓았다. 아직 윤곽밖에 깎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 듣자하니 요즘 하계에 자주 나가는 모양이던데. 보통때는 일이 있
을때가 아니면 절대로 방에서 움직이지 않던 그대가 아니었나?"
처음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에게 찾아와 기분나쁜 말을 잔뜩 늘어
놓던 천오가 찾아온 것은 일에 관한 것을 전할때를 제외하고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 이곳이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카이엔은 천오의 얼굴에서 시선을 창쪽으로 옮기며 답했다. 하계에서
바라볼 때의 푸르고 푸른 하늘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계에 머물
다가 명계로 돌아오면 모든 기분이 달라진다. 기쁜일이 있더라도 금새
가라앉아 어두운 표정만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일어나는 변화였다. 아마도 명계의 암울한 공기가 그렇게 만드는 것
인지도 몰랐다.
" 하.... 답답하다라...?"
천오는 또 무엇이 불만인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 교룡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가 아닌가.... 이곳은.."
카이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째서 천오는 항상 세상을 증오하는 것처
럼 모든 것에 적의를 가진 것일까. 카이엔은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
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져 내릴 것 처럼 잔뜩 치푸린 하늘. 그러나
이 어두운 회색빛은 명계의 품기가 품고 있는 색이었다. 처음부터 명계
에는 환하고 온유한 빛깔은 존재하지 않았다. 독버섯이 품고 있는 현란
한 빛깔과 같은 지나치게 강한 색과 어둡게 가라앉은 안개의 빛깔. 그
것이 명계의 전부였다.
" 요희님이 부르고 계신다."
한참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던 카이엔에게 천오는 본래의 냉정
한 그것으로 되돌아온 음성을 건넸다.
" 어째서....."
" 네겐 그것을 물을 자격이 없다. 이곳에 몸을 담고 있는 자라면 어
느 누구도 그녀의 말에 거스를 수도 이유를 물어서도 안된다."
카이엔은 희미하게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보인 적이 없는 분이니 영광으로 여기는 게
좋아. 어서 가자."
카이엔은 천오의 등을 응시하며 먼지가 쌓인 회색의 바닥에 한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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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세상이 너무 바빠서(실은 제가 바쁜거겠죠 ^^;) 글도 제때에 못 쓰고
못 올리고 있으니 글 쓰는 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말이죠.
다음번에 폭탄을 한번 때릴 것을 다짐하며 ^^
[번 호] 7631 / 7686 [등록일] 2000년 04월 13일 22:54 Page : 1 / 13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52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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