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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의 숲-109화 (109/130)

<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3장. 鐄(울림)

四.

온몸의 피가 완전히 빠져나가고 음습한 무언가가 대신 그 자리를 메우

고 있는 기분이었다.

카이엔은 며칠동안의 악몽에서 간신히  깨어나 하계로 나왔다.  그러나

지금의 하계는 그가 항상 느끼고 바라봐 오던 포근하고 온유한 느낌의

장소가 아니었다. 마음 한구석을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기운이 가득 담

겨있는 것 같았다.

카이엔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결코 바라지 않았음에도 지금의  자

신은 점점 명계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더욱 빨라지게 만든

요인은 분명 요희의 피일 것이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자신의 피를 계속해서 카이엔에

게 주었다. 명계에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을

정도로 카이엔은 우둔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자신이 스스로의 존재를 자신하지 못하게 되어 가는  현실. 명

계의 암담한 공기가 주는 절망과 자신의 몸을 채워 가는 요희의 피. 카

이엔은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주

지 않았고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은 밝은 세상에 설 수

없음을.

' 하지만.......'

카이엔은 한기를 느끼고 있는 몸을 작게 움츠렸다. 육체의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 보다 더 살아있는 존재를 망가트리고  다시는 되살

아 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마음의 고통이다. 그러하기에 몇 천년을 살

아왔는지 알 수 없는  천오가 그토록 이나  괴팍하고 감정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아직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어조

하나하나에 묻어 나오는 고통의 잔재는  이미 지나간지 오래된 과거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몰아가고 있었다.

" 리시엔."

카이엔은 작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괴로울 때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된 그녀. 오랜

시간동안 서로를 알아 온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처음 만나던 순간

부터 카이엔은 그녀에게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자신에게  생기

를 빼앗긴 어린 용족들만 해도 미약하긴 했지만 용족 특유의 기운으로

인해 자신의 신경을 거슬렀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르다. 처음부터 둘의

인연은 이어져 있던 것일까. 그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일까. 아직  모든 것을 밝힌 것도 아니고  그리 많은

말을 나눈 것도 아니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 위안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카이엔은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늘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던 장소.  가장

처음 둘이 서로에게 말을 걸었던 그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계절

의 순환이나 시간의 흐름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지만 그래

도 한 순간만은 가슴 깊이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모든 것의 시

발점이 되었던 그 때.  짙푸른 신록이 모든 것을  감싸던 그때. 강렬한

태양의 빛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리던, 나뭇잎을 흔들던  초여름의 바

람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없다. 아무 것도 없었다. 항상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존재하던 나무처럼

그녀 역시 그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지금은 하늘을 향해 높이

가지를 뻗어 올린 수십 그루의 나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

의 몸을 감싸고 있던 새하얀 옷도.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에  머물던 기

쁨의 미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이엔은 엄습하는 희미한  실망감에 자신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나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언제까지고 그녀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리라

고 여겼다니. 자신은 단 한번의  연락도 없이 수일간 모습을  감추었지

않은가. 비록 이유가 있었기에 그렇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아

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자신에게  큰 이끌림을 느낀다해도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존재는 자신이 태어나고 속한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에.암담한 명계의  바닥에서 살아가는 자신과  달리

리시엔은 밝고 높은 곳에 자리한 천계에 속한 인물이다. 처음부터 그녀

가 자신에게 왔던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이다.

' 역시 돌아가야겠군. 이제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로.... 내가

있어야할 곳으로....'

스스로를 위안해 보았지만 마음을 채우는 것은  조금 전 보다 더 짙게

변한 씁쓸함뿐. 비어버린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단 한번의 인연으로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맛보고 자신이 처한

상황 마저도 잊을 만큼 몰두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

이다. 바로 그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지금에도.

' 처음부터 혼자였으니 아무렇지 않아......'

평범했던 어린 시절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과거의  행복했

던, 그리고 고요함으로 감싸여 있던 생활은 추억의 바닥에 잠겨있을 뿐

이다. 그때의 감정은 아주 희미하게 퇴색되어 과연 무엇을  느꼈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또 바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 돌아가자.....'

카이엔은 다시한번 되뇌었다.

그녀를 만날 목적이 아니라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타의적인 일을

해야할 때가 아니라면 하계로 나올 일은  없었는데 이제 그 이유 하나

가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 원래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카이엔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명계로 통하는  입구를 열기 위해 입술을

움직였다.

" 후....."

명계에 발을 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무겁고 음습한 공기. 그러나 이제는

그 공기가 익숙한 편안함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카이엔은 천천히 발을 움직여 자신이 머무는 허물어져 가는 집으로 향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차갑고 강력한 기운이 자신의 몸을 감쌌다. 푸른색의  안개와

도 같은 형상. 그러나 안개보다 더한 습윤함을 품고 있는 공기. 카이엔

은 이 푸른 안개가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뿜어내는 힘인지 알고 있었

다.

" 천...오?"

" 네 실력을 시험하겠다.  제대로 반격하지 않으면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카이엔은 갑작스런 천오의 말과  태도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다가선 적도 말을 건 적도 없었기에.

" 그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에게 견디

지 못한다면 넌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

천오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담긴 것은 언젠가 요희의 얼굴에서

보았던 이유 모를 광기였기에 카이엔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 아무리 요희가 널  위해 자신의 피를  주었다고 해도 강하지 못한

자에게는 애착을 가지지 않아. 하지만 어차피 진다고 해도 상관이 없겠

지. 완벽한 명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뿐이니.  육체의 고통 따위는

잠깐이니까 말이다."

땅에 닿을 것처럼 길게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미친 듯이 바람에 휘말려 사방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먹구

름을 몰고 오는 광풍이 금방이라도 나무가 뽑혀 날아갈 것처럼 휘두르

는 광경과도 흡사한 모습이었다.

" 무슨 생각입니까!"

" 잊었나? 너에게 물을 권리 따위는 없다는 것을?"

그 말 한마디를 끝으로 천오의  몸에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한 빛이  아님에도 불구

하고 순간적으로 카이엔은 천오의 힘에 휘말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

도가 되었다.

" 똑바로 대적해라. 생각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싸늘하게 말을 내뱉으면서도 천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

려 더욱 강해졌다.

파앗-!

거대한 물살이 바닥에 내리꽃히는 소리가  들리며 카이엔의 주위를 감

싸고 있던 푸른 안개는 순간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카이엔은 방어를 위

해 준비를 하면서도 조금이지만 마음을 풀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

아 카이엔은 자신의 안일한 생각을 후회하게 되었다.

팟.

바닥에 내려앉았던 푸른 안개가 어느 순간 진짜 물로 화하여 소용돌이

치며 카이엔의 주위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물의 장막에  둘러

싸인 카이엔은 정신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공격주문을 외쳤다.

[ 개문(開門) 풍(風)! ]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감히 반항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주문이 천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펴낸

주문을 더욱 강하게 만든 것 처럼 푸른 물살은 카이엔을 잡아 먹을 것

처럼 거세게 밀려들었다.

" 네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보여주지!"

또 다시 들려오는 천오의 음성이  지금 자신에게 짖쳐들어오는 주문의

여파보다 더 소름끼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 카이엔의 착각

은 아닐 것이다.

스팟.

소용돌이치던 물살이 일순 살아있는 의지를 가진 생물체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 가라."

그리고 천오의 말이 떨어지자 그것은  순식간에 수십개의 길쭉한 형상

으로 변화해 카이엔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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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폭주 시작-!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두둥... -_-

회사에서 저녁으로 떡라면을 먹었더니 바로 체했어요. 우 속아퍼. T^T

[번  호] 7562 / 7995      [등록일] 2000년 04월 16일 00:03      Page : 1 / 10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116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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