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112화 (112/130)

<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3장. 鐄(울림)

七.

" 역시 그랬군..."

갑작스레 울려 퍼진 싸늘한 음성.

카이엔과 리시엔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쪽에 비켜선 채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각 지대에 서 있

던 적수 역시 또 다른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알아채고 시선을 던졌다.

" 누가....."

리시엔이 작게 말을 꺼내자 대답은  카이엔이 아닌 상대방에게서 들려

왔다.

" 교룡과 용족이라...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로군."

누가 들어도 그 말에 담긴 가시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그 음성에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 ....천오..."

카이엔은 간신히 작게 말을 토해냈다.

자신이 그를 알고 나서 그가  한번도 다른 곳에 간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 우습군. 너희 둘은 결코 이어지지 못할텐데...."

작게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카이엔과 리시엔은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

다.

" 전 결코 카이엔을 떠나지 않아요!"

리시엔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천오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천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대처럼 어린 용족이 무엇을 알겠나. 보아하니 아직  이백년도 채

살지 못한 듯 한데...."

" 나이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지 말아요."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린족의 황자가 자신들을 두고 말을 꺼내더

니 이제는 불길한 느낌을 가진  남자가 등장한 것이다. 처음부터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둘의 사이를 방해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 훗......"

천오의 웃음은 작은 것이었음에도  온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 정도로

차가웠다.

" 교룡을 받아들이는 것은 명계 뿐이라고  말했지. 카이엔...... 그리고

설사 저 용족이 널 따라 명계에 온다고 해도 독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

을 것이다. 요희가 왜 네게 피를 주었는지 아는가?"

카이엔은 굳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곁에  있던 리시엔

역시 자신이 알지 못하던 사실이 천오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말없이 그

의 입술을 주시했다.

" 명계는 죽은 자들의  땅이다. 그런데 아무리  교룡이라해도... 아니,

교룡이기에 더더욱 넌 명계의 공기에 견디지 못하지. 하지만 요희의 피

는 널 죽은 자들의 그것처럼 만들어 준다. 죽은 자들이  토해낸 숨결로

가득 찬 명계에서 산 자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지."

" 진정....진정으로 그것이 이유입니까?"

카이엔은 토해내듯이 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 자신을  굴복시키기

위해 그들이 주었던 고통도 지금의 마음과 비교하면 극히 미약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 의심하는 건가?"

" 당신이 말하는 진실은 진정한 무언가를 빼놓고 있습니다."

카이엔은 한자한자 힘주어 말을 내뱉었다.

" 그래?"

천오의 입가에 맺힌 비릿한 냉소를 카이엔은 흔들림 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이제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완벽한 진실은 오직 요희... 그녀만이 알고 있지만  나도 어느 정도

는 알고 있지. 명계에 사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피를 마신 자는 없다.

네가 처음이지."

카이엔은 잠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체

천오가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이  처음이라니. 대체 무슨 이유

로 그녀는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 그녀의 피가 네게 준 것은 강인한 힘과 그녀와  같은 체질이다. 너

는 이제 결코 명계 이외의  어떤 곳에서도 오랜 시간을  머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지. 요희 그녀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명계만을 위해 존재하는 자다. 그런  그녀의 피가 어떤 효력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지?"

들은 적은 있다. 요희 그녀는  명계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단  한 시진

이상을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죽음을 겪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한 고통

을 겪게 된다는 것도.

" 다른 계에 사는 존재들이 명계의 공기를 독이라 여기는 것과 마찬

가지다. 너 역시 다른  곳의 공기를 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넌

이제 교룡도 아니고 완벽한 명계인도 아닌 존재가 된 것이다."

카이엔이 놀란 것과 마찬가지로 리시엔 역시 크게 놀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카이엔이 교룡이라는 사실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 그가 몸을 담고 있는 것이 명계이며, 자신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카이엔을 경악하게 만든 어떤 일인가가 그의 몸에 벌어졌다

는 것을 지금 들은 것이다.

" 그랬군........"

카이엔은 어딘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린 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담긴 것은 의미 없는 망연함.

" 네 힘을 안다면 내 말을 듣는 것이 좋아. 카이엔...."

천오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카이엔은 쓰디쓰게 웃으며 고개

를 돌렸다.

" 명령을 듣지 않으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너다. 그리고  이 용족

여인 역시 그렇게 되겠지. 함께 있길 원한다면 말이야."

천오가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의도는 무엇일까. 바로 얼마 전에도 자신의

힘을 시험하겠다며 가차없이 공격을 가하지 않았던가.

넓은 명계 안에서 오직 자신만이 그의 관심을 끄는 존재인  것일까. 그

렇지 않으면 천오 이외에 존재하는 유일한 교룡이기 때문일까.

카이엔은 극도의 혼란에 빠진 채 굳어져 있었다.

적수는 과연 지금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험악해 보이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 그들이 충돌

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지 망설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는 조금 전에

들었던 리시엔의 말이 깊게 새겨진 채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종족이나 피. 그 어떤 것도 상관없다는 말. 오직 상대방이 존재하고 있

었기에 이끌렸을 뿐이라는 말.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인 것 같았지

만 그녀의 말을 통해 적수는 그동안 자신이 무언가에 얽매여 있었다는

것을. 비록 지금은 며칠 간의 자유를 누리며 통쾌해하고 있었지만 결국

자신은 그 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짧은  순간의 쾌락

을 즐기며 자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은 결코 정해진  범위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적당히 그 울타리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용족과 교룡의 대화를  통해

서.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는 와중에도 적수의 시선은 카이엔에

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카이엔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또 다른 존재에게로. 카이엔과 마찬가지로  창백

해 보이는 안색과 땅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을 그대로 풀어둔 채

서 있는 마른 몸을 가진  남자. 적수는 한눈에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리시엔의 몸에서는 용족의  짙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기에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았지만 카이엔은 얼마전에  얼굴을 맞대고

싸우지 않았다면 기운만으로 알아낸다는 것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

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길을  끌고 있는 남자또한 무척이나  모호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적수는 남자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외모만을 봐서는 카이엔보

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정도로 보이지만 조금전의 말을 빌면 분명 명

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했기에 정확한  나이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아니, 분명 자신이 상상했던 것 보다 몇배나 더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명계에 사는 존재는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존재이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형벌로써 채워가는 자들이기에.

[ 개문(開門) 풍(風)! ]

적수가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며 몸을 숨긴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리시엔이 카이엔의  앞을 가로막으며 공격주문을  외쳤

다.

아직 나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지니고  있는 마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필사의 힘을 내뿜은 것인지 주위에 거대한 여파를 안겨

줄 정도로 강한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상황에도 불구하

고 긴 머리카락의 남자는  싸늘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리시엔은 몇번의 공격주문을 더 펼쳤지만  그때마다 남자는 얼굴에 싸

늘함을 더해갈 뿐 어떤 공격주문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적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었다. 주문을 외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긴 머리를 가진 남자

의 몸에서 기이하게 일렁이는 푸른 기운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 리시엔의 뒤에서 몸을 지탱하며 서 있던 카이엔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눈부신 흰 빛을 불러냈다.

카이엔이 무어라 외치는 것 같았지만 뒤섞인 주문의 여파 때문에 적수

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

집에오니 12시가 다 되었더군요. 눈은 감기고...

대체 쉴 날은 언제인가.... 폭주를 하려해도 이젠  시간이 없군요. 항상 시간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필살 짬짬이 글쓰기로 열심히 쓰렵니다.

[번  호] 7759 / 7995      [등록일] 2000년 04월 21일 22:48      Page : 1 / 11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94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45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