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3장. 鐄(울림)
八.
선명한 통증이 어깨를 따라 온 몸에 퍼져가고 있었다. 태어나서 과연
이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있었던가.
비록 어린 나이지만 자신은 용족으로 태어나 강함이 무엇인가를 알고
자랐다. 왕족들이 가진 것처럼 다른 이들이 감히 넘볼 수 없게 만드는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지키고 한 명의 용족으로서 맡겨진 일
을 해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리시엔은 자신의 그런 생각은 모두 망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가져간. 그
리고 겨우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여겼던 카이엔이 결코 자신은 닿
을 수 없는 곳에 속해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었다.
차라리 인간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가장 금기시 되는 땅 명계에 살고 있는 존재라고 하지 않
는가. 할 수만 있다면 아니, 갈 수만 있다면 함께 명계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에 살아있는 자가 발을 들였을 때 결국 얻는 것은 죽음뿐
이라는 사실을 리시엔은 알고 있었다.
" 리시엔........!"
카이엔은 리시엔이 부상당한 것을 알고 그녀에게 다가서려 했지만 천
오가 그것을 막았다.
"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교룡은 영원히 명계의 바닥에서 살
아가야 한다. 어떤 것에도 안주할 수 없어."
리시엔은 카이엔이 그 말로 인해 받을 상처를 알고 있었다. 사정에 대
해 전혀 알지 못하는 자신조차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당사자인 카이엔
은 어떠할 것인가.
" 카이엔. 전 괜찮아요........"
리시엔은 애써 미소지었다. 그러나 가라앉은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는
카이엔은 암담한 미소만을 드리운 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모든 것이 드러나 버린 지금. 과연 어떤 얼굴로
리시엔을 대해야 할지.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
었다.
" 전 결코...... 떠나지 않아요."
리시엔은 비록 명계의 존재에게 상처를 입었지만, 그리고 카이엔이 어
느 곳에 속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원한다면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천오의 얼굴에 떠오른 경멸의 빛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린 채 리시
엔은 몸을 일으켰다.
카이엔은 리시엔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손을 내밀어 그
녀를 부축하고 싶었으나 카이엔 역시 아직 몸이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
은데다 천오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리시엔은
몸을 일으키고 나서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발을 떼어 카이엔의 곁으
로 다가섰다.
천오가 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리시엔은 카이엔의 얼굴에 시
선을 고정한 채 발걸음만을 움직였다.
그리고 리시엔은 천오의 곁을 지나쳐 카이엔에게 이르렀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며칠씩 걸려야 지나칠 수 있는 긴 길을
지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 .....카이엔...."
리시엔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카이엔을 불렀다.
" 리시엔......."
그리고 카이엔 역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적수는 멀리에 몸을 숨긴 채 기색을 감추고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명계에서 온 또 다른 존재의 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
한 것이었다.
자신이 리시엔 대신 그를 상대했다고 해도 그녀처럼 상처를 입지 않으
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을 만큼 그는 강했다.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하던 사이 부상당한 리시엔은
힘겹게 몸을 움직여 카이엔의 곁으로 다가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
도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의아함과 불신 이외의 시선으로는 바라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둘
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 진실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 하지만 묵과할 수는 없지........'
적수는 생각했다. 아무리 그들이 진실된 감정으로 서로를 위한다고 해
도 자신은 그들을 옹호해 줄 수 없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
가. 교룡의 광기를, 카이엔이 인간들을 잔혹하게 학살하던 모습을.
그리고 그가 속한 세상을 가만히 놓아둔 다는 것은 영수족에 속한 일
원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일이었다.
' ..........?'
그렇게 적수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갑자기 주위의 공기가 크게 요
동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 공간이 열릴 때의 파동. 그러
나 보통 자신들이 공간을 열 때는 이처럼 큰 여파가 생겨나지 않는다.
' 아니, 뭔가가 이상한데........ 이 불길한 느낌은 뭐지...?'
적수는 온 몸에서 긴장을 풀지 않은 채 공간이 머지 않아 열리게 될
장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공간이 열린 순간 적수는 온 몸을 감싸는 전율에 몸을 떨어야
했다.
멀리서도 선명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짙은 푸른색 머리카락의 여인. 극
도로 화려한 옷차림을 한 그녀는 공간의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주위의 모든 것들이 순간적으로 굳
어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적수 자신조차도 그 느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 * *
" 모두 죽여라.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아. 네가 어떤 존재인지 무엇
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카이엔은 귓가에 울려 퍼지는 요희의 음성을 들으며 눈을 감아버렸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요희 그녀가 직접 하계에 모습을 드러
내고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명계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것은 그녀이므로 지금까지 자신이 움직였던 것 역시 모
두 그녀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표면에 나선 적이
없었기에 카이엔은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녀의 두 눈
에 가득 들어찬 광기보다 더 지독한 감정의 흐름을 보았을 때 카이엔
은 더 이상 자신은 그녀의 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하찮은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도 좋아. 그리고 스스로를 위대
하다고 여기는 용족들 또한.... 모두 사라지게 만들 테니까."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기에 카이엔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지만 지
금 순간은 결코 예전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없었다. 리시엔이 바로 자신
을 응시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교룡이 가지고 있는 그 본성을 보여
야 한다는 사실은 뼈를 깎는 고통보다 더한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 네가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어 눈앞의 것들을 없애 버려라.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주는 것이 좋을 거야."
요희가 자신들을 데리고 온 곳은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수백 필의 말이 등에 창을 든 사람들을 태운
채 먼지를 피워 올리며 질주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치 장대비
가 내리듯이 화살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
었다.
그리고 서로를 위협하기 위해 내지르는 함성들이 평원에 가득 메아리
쳤다.
" 단 한 명도 남겨서는 안 된다. 만약 작은 숨 하나라도 붙어있는 자
가 있다면 네게 죽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을 안겨주겠다. 그리고 저 용
족의 어린 아가씨에게도."
그렇게 말하며 미소짓는 요희의 얼굴은 세상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요희는 진정으로 가슴 가득 차 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이런 통쾌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과연 얼마만의 일인가. 지난 오백년
간 명계에 묻혀 지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때 쌓인 울분이
다 풀어질 듯한 느낌. 자신은 비록 오랜 시간동안 명계를 떠날 수 없지
만 단 한 시진에 불과하다고 해도 자신의 눈앞에서 붉은 색의 바람이
부는 광경을 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점점 짙어짐과 동시에 시선을 돌리자 카
이엔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고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더 이상은 물
러날 길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기에.
카이엔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리시엔에게 힘없이 웃어보
이고는 숨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제부터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로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자신은 그것을 바꿀 힘이 없다. 그리고 지금
의 현실을 벗어날 힘도 없다.
[ 풍천(風天) 회륜(回輪)! ]
카이엔은 큰 소리로 외치며 두 손을 내뻗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치기 위해 움직이는 것 처럼.
격렬한 바람의 움직임이 주위의 모든 소리를 묻어버렸다. 리시엔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카이엔의 힘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자 마음
가득 긴장감이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비록 부상을 당한 몸이라고는 해도 카이엔이 자신보다 강한 힘을 지녔
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리시엔을 긴장시키는 것
은 아니었다.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지만 카이엔에게 나지
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던 붉은 눈을 가진 소름끼치는 여인이 무언가 불
길한 일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예감. 그 예감이 무섭도록 예리하게 리
시엔의 감각을 찔러대고 있는 것이다.
' 부디........'
리시엔은 마음속으로 바랬다. 그러나 그 바램의 여운이 마음속에 채 흩
뿌려지기도 전에 리시엔은 코를 찌르는 비릿한 혈향을 느껴야 했다. 그
리고 그 이후로 리시엔의 시야를 뒤 덮은 것은 오직 붉은 색으로 가득
찬 바람의 파도 뿐이었다.
==============================================================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데 남은 결과는 없고.... 슬프다...슬퍼...T^T
요즘은 구박덩어리로 지내는 나날입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절 구박
하지요. 글은 또 안써지지요. 사장 언니한테도 혼나지요. 동아리 일 안한다고
다들 구박하지요. 집에 왔더니 또 어머니께서 구박을 합니다.
졸려서 눈은 감기고.... 시간은 나날이 빨리 지나가고... 아아...슬프다...
[번 호] 7941 / 7995 [등록일] 2000년 04월 26일 00:49 Page : 1 / 9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81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