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114화 (114/130)

<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4장. 遇(망상의 그림자)

그대를 사로잡은 헛된 망상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입니까

그대의 눈동자를 가득 채운

그림자를 거둘 수 있는 자는

제가 아닌 것입니까

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고, 너무나 많은 것에 익숙해져있는 현실.

과거의 자신은 혼자 있기를 원했지만 한 곳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천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일에 매달려 살고 있다. 가끔씩 숲을 방문하는 것 이외에는  어느 곳에

도 가지 않고 있었기에 갑자기 그  사실을 깨달은 훼이는 쓴웃음을 지

었다.

시간은 진정 많은 것을 변모시킨 것이다.

' 하계에 가본지도 상당히 오래되었군....'

훼이는 엷게 미소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언제나 변함 없이 푸르른 대지

와 다섯 가지 기운이 충만한 땅.

언제고 돌아와야 할 장소로 각인되어 두 번의 천년을 지내면서도 결코

떠나지 못했던 장소. 자신이 태어났으며  또 자랐고 여러 가지의  기쁘

고, 슬픈 기억들을 안겨준 장소.

이곳 천계의 땅은 그를  낳아주고 길러준 땅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 점점 사라져 가는군.'

훼이는 작게 웃으며 생각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존재는 점점  커져가지만 그와 반대로 자신이

기억하는 자들의 존재는 사라져 간다. 언젠가는 분명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벌써 그렇게 자신은 두 번의 천년을 보내오지 않았던가.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또 하나의 생명으로, 그와 더불어 자신의 가슴에

묻힌 많은 이들의 추억으로 자신은 그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 정말 오랜만이야...."

훼이는 작게 중얼거리며 공간을 열었다.

자신이 흑룡왕의 후계자이던 시절. 그리고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시절에

는 이 공간을 여는 주문을 수도 없이 사용했었다. 천계에서 하계로, 하

계에서 명계로, 그리고 천상계로. 그렇게나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자신

이 지금 이처럼 조용히 수백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은 정말 스스로

도 믿을 수 없는 진실이었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이유가  되어 자신에

게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깨달은 후에도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여

운의 정체는 무엇인지. 결코 시간의 무게는 그것을 거둘 수  없는 것인

지 알고 싶었다.

' 기나긴 시간도 소용이 없어....'

훼이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돌리자  공간

의 문이 열린 주변의 풍경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고요하게 잠겨 있었다.

그 어떤 위화감도 공간이  움직이는 여파도 주위에  퍼트리지 않은 채

훼이는 공간을 열고 그 사이로 발을 들이밀었다.

이제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을 과거의 장소. 수만 번의 계절이 흘렀고

모든 것이 변해버린 하계로 훼이는 마음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

다.

*            *            *

' 나는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마음의 한 구석이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두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은 분명 어제와 다름없는 풍경임에도 그것은 너무

나도 낯설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져도 단 하나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 분명 얼마전까지의 행복감과 따스함은  온

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은 경악과 쓸쓸함,  그리고 슬픔으로

물든 마음이라는 점이었다.

카이엔에게 받은 유일한 선물은 그의 손으로 만들어낸 조각  뿐이었다.

몇 개는 자신이 주운 것이지만 카이엔에게서  받은 것은 오직 그의 어

머니를 조각한 상(像) 뿐이다. 계속 손에 쥐고 만진다고 해서 카이엔의

온기가 느껴질리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리시엔은 손에서  그 조각상을

놓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너무나도 많았기

에 단 하나도 제대로 잡아낼 수  없는 물방울처럼 리시엔의 마음은 수

천 수만갈래로 나뉘어져 끊임없이 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아직도 선명히 눈에 새겨진 영상들. 카이엔의 괴로운 표정과 그의 힘에

의해 바뀌어가는 세상.

그때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망연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만 있었다. 카이엔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못한채 그가  광기에

휩싸인 존재들 속으로 들어서는 광경을 방관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금

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듯이 슬프게  미소짓는 카이엔을 리시엔은 붙잡

지 못했다. 그가 어둡고도 어두운 명계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

보고만 있었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자신은

아직 너무 어리고 미약하다고 위안해 보았지만 마음은 더욱 잘게 부서

져 내릴 뿐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 내가 당신에게 무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한가지

는 이야기하고 싶군요."

리시엔은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보통때라면 이

정도의 일로 몸을 떨지는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작은 소리하나

에도 리시엔은 민감해져 있었다.

" 제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면 말을 해주십시오. 조용히 이곳에서 떠나

도록 하지요."

적수는 비록 앞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그녀가  겪은 모든 일을

보았기에 진정으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그녀가

교룡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 보인  그녀의 마음이 크고  진실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적수는 이토록 정중하게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그

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그녀가 용족이라해도 기린족의  황자인 자신이

이렇게 숙이고 나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비록 기린족이 지극히 평화를

추구하며 예의바른 일족이라고 하더라도.

" 말씀을...... 듣겠습니다."

결코 입을 열지 않을 것 처럼 조용히 한 곳을 응시하고 있던 리시엔의

입술이 움직였다. 비록 본래 그녀가 가지고 있던 밝은 음성은 아니었지

만 적수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아직은 그녀의 마음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당신의 마음이 흐르는 것을 제가 무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도 자신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는데  그것에 대해 타인이 무어라 말하

고, 바꿀 것을 강요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우둔한 자일 것입니다. 세상

에서 가장 움직이기 힘든 것이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테니

까요."

리시엔은 비록 그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귀를 기울였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그녀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기

에.

"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절대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일이라 하더라

도 본인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라면 그것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무척 의외의 말이었다. 더욱이 그는 카이엔이 한 일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의 목숨을 가져가겠다고 외치며 모습을  드러

내지 않았던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리시엔에게 있어 지금 적수의 말

은 너무나도 의외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 그처럼 중요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또 다

른 하나의 일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라  해도 다른 이들에게는 반드시 없

애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가진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적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리시엔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들려온 하나의 작은 목소리.

"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잘..."

흐느낌과도 닮은 작고 작은 목소리. 리시엔에게서 흘러나온 그  음성에

는 그녀의 작게 부서진 마음이 가득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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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바보 컴을 달래서 글을 씁니다. T^T

지금 너무 졸려요. 더 들어갈 내용이 많은데 졸려서 못 쓰겠습니다.

요즘은 또 왜 글이 안 써지는지... 슬럼프인지 아니면 단순한 게으름인지. 그것

도 아니면 피곤해서 인지...

엘야시온이 다시 돌아와서 기쁩니다.

뮤2000 출판 기념회 정말로 갱장했어요. 부럽습니다. @[email protected]

[번  호] 7960 / 7995      [등록일] 2000년 04월 27일 00:48      Page : 1 / 10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73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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