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4장. 遇(망상의 그림자)
二.
27대 백룡왕 오강은 얼굴 가득 노기를 품은 채 보좌관에게 되물었다.
" 그것이 사실인가?"
" 그렇습니다. 백룡왕님. 저 역시 보고를 받자마자 그곳에 직접 가보
았습니다. 그리고 제 두 눈으로 확인한 사실입니다."
오강은 신경질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러자 새하얀 순백의 실처럼 그의 어깨에 내려앉아 있던 머리카락은
분주하게 위에서 아래로 낙하했다.
"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을
것 아닌가. 하계에 내려가 있는 용족들이 대체 몇 인데 이제껏 그 사실
을 알아낸 자가 없었지?"
보좌관은 오강의 노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나 그의 화
는 쉽게 가라앉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 용족들은 원래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
까? 그 때문에 그들이 전쟁을 한다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습니
다. 힘을 쓴다면 막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들의 일이지 우리
와는 상관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일을 오랜 시
일이 지나도록 알아채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습니다."
오강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얼굴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의 전례에 따른다면 분명 자신은 오대 용왕의 회합을 요청해야 옳다.
비록 자신의 일족 내에서 이번 일의 원인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교룡에
관한 일은 용족 전체의 일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 분명 이 일을 처음 발견한 것은 기린족의 황자라고 하지 않았던
가?"
오강이 진중하게 표정을 바꾸고 묻자 보좌관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
다.
" 그렇습니다. 아직 하계에 남아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움
직임을 감시한다고 말했다 합니다."
오강은 지금 자신을 흥분하게 만든 소식을 알려준 존재가 기린족이라
는 사실 때문에 조금이지만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
고 그 덕분에 잔뜩 부풀어 있던 화가 풀렸다.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 몰라도 옆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던 보좌
관에게는 오강의 변화가 현저하게 느껴졌다.
기린족은 일족에게 닥친 거대한 위기가 아니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다. 그런 기린족이 하계에서, 그것도 교룡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는
사실은 오강을 놀라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실이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기린족이 그나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혼인에
의한 움직임이 필요할 때뿐이었다. 전대 흑룡왕비가 그랬듯이.
' 하필 백룡의 교룡이라니.....'
오강은 마음 속으로 불만을 내뱉으면서도 결코 얼굴에는 그 기색을 드
러내지 않았다.
교룡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자신이 일족의 총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기 때문에 오강으로서는 당연히 기분
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교룡이 태어난 것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불과 몇 번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시일 동안
태어났던 교룡도 천년도 더 된 과거에 흑룡족인 훼이의 피를 받았던
존재였다. 그러나 다른 교룡들과 달리 그 교룡은 아버지가 가진 지위와
힘 덕분에 일족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의
교룡이 백룡족의 피가 섞인 자라니. 그것도 왕인 자신조차 누가 부모인
지도 알 수 없는 자라니. 오강은 금방이라도 크게 소리를 치고 싶은 심
정이었다. 그 만큼 그가 느끼는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나 백룡왕이라는 지위에 있는 자신이 그런 기분을 드러낸다는 것
또한 우스운 일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교룡을 낳은 자를 밝혀내어 처벌하고 싶지만 아무리 자
신이 왕이라 해도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밝
히지 않는다면 자신으로서도 사실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 우습게 되어 가는군.'
오강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 * *
투명하고 잔잔한 물결의 흐름을 두 눈에 담은 채 리린은 움직이지 않
고 있었다.
수천궁의 입구에서 별궁을 잇는 긴 다리 아래를 흐르는 물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커다란 물결도 일으키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었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이 작은 일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그
것은 극히 미약한 움직임에 지나지 않았다.
" 전하."
판유는 한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다가 너무 시간을 지체하
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집무실에 들어선
후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신이 들어선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창 밖을
내다보는 리린을 판유 또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 아. 내가 너무 몰두했었나 보군..."
리린은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 생각하실 것이 많았던 모양이군요."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짙은 푸른색의 치파오는 부드러운 굴곡을 이
루며 곧게 뻗어 있었다.
판유는 천천히 그녀의 몸에서 시선을 떼고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오
랫동안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왕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지난번 그 일은 어찌 되었지. 혹시 결과가 나왔나?"
" 아니요. 그것은 아직 다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판유는 손에 들고 있던 얇은 두루마리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것은 종이 위에 엷은 금색이 칠해져 있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
다.
" 이것은......"
리린은 말을 멈추며 빠른 손놀림으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한동안 리린
은 두루마기에 적힌 내용을 살피느라 표정만을 바꿀 뿐 그 이상은 아
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판유가 차분하게 답하자 리린은 여전히 시선을 두루마기에서 떼지 않
은 채 고개만을 끄덕여 보였다.
" 그래도 조금은 의외야. 사실로 확인되었다고는 하지만...."
대체 두루마기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길래 그녀가 놀람의 빛을 얼굴 가
득 떠올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오직 판유와
리린 뿐이기에.
" 아직 성급하게 행동하기에는 이를테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
보기로 하지. 독단적으로 행동하기에는 무리가 따를지도 모르니."
" 그렇습니다. 현명한 생각이십니다."
판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 나는 이상하게도 과거에서부터 계속 이상한 인연과 만나게 되는
군..."
리린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리며 두루마기를 처음 모양대로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판유에게 내밀었다.
" 이것은 그대가 보관해주게."
" 알겠습니다."
판유는 공손히 그것을 받아들며 바닥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리린의 얼
굴을 향해 들어올렸다. 그리고 우연처럼 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의문과 놀라움에 휩싸여 있던 리린의 검은 눈동자는 어
느새 보통때와 별반 다름이 없는 고요한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 그러면 하계와 환계, 천상계에 나가 있던 일족들로부터 전달된 일
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꺼내고 싶지만 결코 입밖에 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말을 애써 머릿속에
서 지워버리며 판유는 그가 가진 지위. 보좌관으로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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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목은 교룡 카이엔이구요. 표지는 음... 1부보다 마
음에 안들지만... ^^;
책이 나온 관계로 1권 분량인 아마도...38편 이던가... 12장까지는 5월 1일 경에
지우도록 하겠습니다.(아앗..마감이 얼마 안남았다. 큰일이야. 큰일!)
오늘 앙고라 토끼를 샀습니다. 너무너무 귀여워요 T^T
지난번에 키우던 토끼는 집토끼라서 왕만하게 자랐었는데 앙고라 토끼는 안자
라는 토끼라서 마음에 듭니다. ^-^
[번 호] 7990 / 7995 [등록일] 2000년 04월 28일 01:49 Page : 1 / 10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20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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