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116화 (116/130)

<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4장. 遇(망상의 그림자)

三.

" 적수님!"

얼마나 하계를 뒤지고 다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적수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기에 초조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

었다. 그러던 와중에 겨우 적수의 행방을 찾은 것이다. 혹시나 하고 돌

아온 장소에서.

"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그 동안 한번도  이런 모습을 보이

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가신은 불과 수일에 지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항상 함께 하던 적

수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겉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혼란까지 경

험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태도가  익히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왔던

가신에게 있어 그러한 혼란은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어느 기린족

보다 더 기린족답다는 평가를 듣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 미안하게 되었어."

가신은 잠시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이 무엇인지 되새기며 생각에 잠겨야

했다.

" 적수님...?"

그리고 의아함을 담은 시선이 닿은 곳에는  보통 때와 확연히 다른 진

지함을 떠올린 적수의 얼굴이 있었다. 그가 이와 같은 표정을  짓는 것

은 가신조차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수의 얼

굴에 떠오른 표정은 깊은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마치 적수의 아버지인

현 기린족의 장 기륭이 일족들을 대할 때 떠올리는 표정처럼.

" 내 나이 값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군..."

적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피식거리며 웃었다.

며칠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자신은 그동안 수십 년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살고 있었나를  알았다.

한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안일한  생각을 품고 하계로 나온 자

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좋을 만큼 세상

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도.

"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스스로 잘못을 깊이 깨닫고 있으니까."

적수는 그렇게 말하며 가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스스로의  신분

을 망각하고 마음대로 행동한 자신에 대한 반성임과 동시에 항상 자신

의 곁에서 애쓰는 가신에 대한 사죄였다.

" 적수님. 갑자기 왜..."

가신은 적수의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안절부절했다.  평

소의 자신이라면 얼굴 표정하나 바꾸지  않았을 테지만 황자라는 신분

을 가진 적수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자 평소의  태도를 잊을 정도로

당황한 것이다.

"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적수는 또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번의 것은  가신에게 하

는 말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들려주는 말이라고 하는 편

이 옳았다.

그때 자신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

았다. 명계의 오래된 존재들이 등장했을 때에는 기회를 살핀다는  말로

스스로를 숨기며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기린족의 황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자신이 그토록 비겁하게 행동한

것에 대해 적수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에  비해

한참이나 어렸던 그 백룡족 여인은 힘이  미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

서도 그들과 당당하게 맞서지 않았던가. 그런 그녀에게 자신은 어떤 태

도를 보였던가.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한없이 슬픈  감정에 휩싸여 절망하고 있는 그

녀에게 자신은 여느 일족과 다르지 않은 말을 했다. 스스로  그것을 지

키고 있다고 자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을 듣고  나서 여

인은 힘없이 웃으며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돌아섰다.

강대한 힘을 지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가진 것

도 아닌데 그녀는 적수보다 훨씬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

를 통해 그것을 깨닫고 나자 적수는 자신이 너무나도 비겁하고 옹졸했

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가진 거창한 이름만을 생각하며 주위를 둘

러보지 않았던 것을.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무수한 이들은 나름대로의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목표한

무언가를 지켜나가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한다는  것을. 그것은 인간도,

저주받은 존재인 교룡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직  자신

만이 깨닫지 못했을 뿐.

" 함께 하계를 둘러보도록 하지."

적수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여전히 자신에게  시선을 향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가신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놀람의  표정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적수는 이제 그런 가신을 보며

소리 죽여 웃을 기분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다.

*            *            *

여느 때처럼 장난스럽게 웃으며 집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시

령은 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가  익숙한 얼굴이 아닌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 흑룡왕비께 인사드립니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시령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넨 것은 보좌관

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지금까지는 보좌관으로서의 일보다 보통의 일

족들과 마찬가지로 하계의 시찰에 많은 시간을 보내던 자였다.

" 훼이님이 이곳에 계시지 않았나?"

시령은 순간적으로 얼굴에 떠올라있던 표정을 바꾸고는 조용한 음성으

로 물었다.

" 며칠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기에 제가 대신 업무를 맡게 되

었습니다."

' 그럴 리가.......'

시령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우실 분이 아닌데, 어찌된 일인

지 알고 있나?"

시령은 유안조차 훼이의 부재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에 지금 훼이가 자리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예상하

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 실은 하계에 있던 제게 훼이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자리를 비

울 일이 생겼으니 제게 업무를 맡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좌관의 대답에 시령은 더욱 더 깊은 의문에 사로잡혔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보좌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다른 용족들과 달리 흑룡 일

족에게는 보좌관이라는 자리가 필요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좌

관이 선출된 것은 아무리 훼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지

켜온 전통을 깨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름뿐인

보좌관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훼이를 보좌관으로 앉힐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가 가지고 있는 너무나도 거대한 이름에는 어떤

다른 말도 붙일 수가 없었다.

' 갑자기 무슨 일일까?'

시령은 생각에 잠겼다. 훼이가  언제까지고 이곳 흑룡왕의  집무실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렇게 되자 시령은 그저 망연함만을 느꼈다.

긴 시간동안 항상 그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더욱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유안 역시 흑룡왕으로서의  업무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역시 훼이의 덕이라는 사실

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늘 시령에게 말했었다.

자신이 흑룡왕의 후계자가 된  후 처음으로 백부인  훼이를 만났을 때

어린 마음에 당돌하게도 그에게 곁에 머물러 줄 것을 요구했다고, 자신

의 아버지이자 훼이의  동생이었던 라이엔의 수백년에  걸친 바램조차

그는 들어주지 않았었는데도 자신은 당당하게 훼이에게 그것을 요구했

었노라고. 그리고 지금 흑룡왕이 된 자신이 과거의 바램이 이루어진 덕

에 이런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지금에 와서도 믿겨지지 않는 일이

라고 유안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훼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신이었지만 시령 역시

훼이에 대한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우가  주는 담

담한 정과 같이 훼이는 주위의 모든  것을 친숙하게 바꾸어 주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 훼이. 빨리 돌아와요.'

시령은 자신 혼자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그가 아닌 다른이가 앉

아있는 왕의 책상을 바라보며 되뇌었다.

==============================================================

오늘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모든 파일을 날려먹은 후 다시 몇시간 동안 앉아

서 다시 썼지만 처음에 썼던 이야기는 결국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고, 기가 막혀서 분하지도 않습니다.

정말 머피의 법칙이란 게 이럴  때 적용되다니 가뜩이나 마감 때문에  안달이

나 있었는데 파일까지 날려먹고 정말 죽을 맛입니다.

앞으로의 일정은 다음주 초까지 2권 다 넘기고 5월 초부터 은의 왕국 1부 리

메이크. 그리고 2부 연재입니다. 원래 이번주부터 연재에 들어가려 했는데  마

감이 겹치는 바람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여하튼 될 때까지 잘 해보렵니다. T^T

[번  호] 7991 / 7995      [등록일] 2000년 04월 28일 01:50      Page : 1 / 8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14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49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