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119화 (119/130)

< 흑룡의 숲 2부 >

연(緣)...

제 15장. 舛(어긋난 시간)

웃음이 눈물보다

슬프다는 사실을

깨닫던 그 날

울지 못하는 마음을 채워줄

빗방울조차

나를 비껴 지났다.

一.

비릿한 내음은 한치의 틈도 없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더 이상

은 그 냄새를 맡고싶지 않았지만 카이엔은 이미 자신의 몸을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다면 몸 속에 피를 채운 의미가 없지 않나?"

카이엔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

의 귀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아무

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 명계는 다른 곳과 달리 세세한 규칙이 없다. 그러나  단 하나의 절

대적인 명령만은 따라야 한다. 그것은 바로 명계의 주인인 요희의 말에

는 무조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그 기본적인 사실조차 잊고 있어."

죽음이라는 단어가 피를 말릴 정도로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 되어서까지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 한마디 대답만 하면 돼. 그러면 편안해질 테니..."

요희는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싸늘한  시선을 보내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녀가 지닌 것은 지배자로서의 오만한 태도. 카이엔이 자신을  거스르

는 행동을 한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때문

에 그녀의 표정은 보통 때 보다 더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 왜 인정하려하지 않지?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

이번에는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자식에 대한 따스한 정을 가득

담은 어머니와 같은 음성으로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입술에서는  부드

러운 목소리가 나왔지만  얼굴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더 차가워진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이 피는......"

요희는 속삭이듯 작게 말하며 카이엔의 곁으로 다가섰다. 자신이  마력

을 끌어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었던  인간들처럼 카이엔

역시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 명심해라. 이 피는  네 것이 아니야. 그러므로  네 생명도 네 것이

아니지. 네가 삶을 경외시 한다면  상관은 없지만 그로 인해  괴로워할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입을 다물 수 없다는 것을 알텐데......"

카이엔은 힘없이 떨구고 있던  고개를 비스듬하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 당신 역시........ 허황된 욕심으로 가득 찬 인간들의 왕과 다를 바가

없어......"

카이엔은 스스로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틈에 섞여 살아

가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의 자신 역시 교룡이라는 한곳에 속

할 수 없는 이름 때문에 고뇌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역시  그랬다. 그때

는 나이를 먹지 않는 외모와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얻어진 특출

한 경험과 능력으로 인해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잴 수 없는 무언가를 괴물이라 부른다. 그래서 카이엔  역시 괴

물을 대하듯이 인간들에게서 두려움과 경멸의 시선을 받았었다.

" 욕심...? 그걸 욕심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은 없어."

요희는 그녀만이 가진 입술 끝을 비틀어 올리는 오만하고도 싸늘한 비

웃음을 떠올렸다.

" 나는 오직 내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만 움직인다. 먼 옛날에는

이곳에서 그저 조용히 지낸 적도 있었지. 하지만......"

요희는 말끝을 흐리며 카이엔의 목에  날카롭고 뾰족한 자신의 손톱을

가져다 댔다. 보통의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운 그녀의 손톱은  카이엔의

목에 닿자마자 피를 원하는지 길게 상처를 냈다.

"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나? 세

상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데  그 오랜 시간동안 조용히 지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지루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사는 게  가장 편

하고 좋은 일이란 건 어린 아이도 알고 있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요희는 갑자기  소리 높여 웃었다. 귀를  거북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울림이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와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미친 듯이 이어지던 웃음을 멈추고 난 후 요희는 다시 싸늘

한 얼굴로 되돌아와 말을 이었다.

" 어쩌면 너도 머지않아 그것을 알게 될지 모르지. "

카이엔은 그녀의 소름끼치는 붉은 눈동자에서  시선을 돌려 자신의 몸

에서 나온 피로 인해 붉게 물든 바닥을 응시했다.

천오와의 일방적인 싸움, 그리고 요희의 명령으로 하계에서  힘을 끌어

내 싸운 이후로 카이엔은 잠조차 자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게다

가 끌려오다시피 해서 다시 돌아온 명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

은 강요하는 말이었다.

하계에서 머물던 시절에도 그랬었다. 원하지 않았던 필연에 의하여, 자

신과 이어졌던 하나의 인연 때문에 카이엔은 계속 한자리에 머물러 있

었다. 그리고 있으되 없는 존재. 그러나  두려움을 자아내는 존재가 되

어야했다.

' 또 다시 그림자가 되라고.....?'

카이엔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항상 요희의 주위에서 맴도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

들. 명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는 천오 조차 함부

로 대하지 못하는 그들.

요희는 카이엔에게 그 그림자가 되라고 이야기했다. 죽음조차 맞이하지

않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 만큼 요희 자신이 카이엔을 마

음에 들어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그들은 인형에 불과하다고 카이엔은 생각했다. 차라리 어떤  괴

로운 일을 겪더라도 더  이상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리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습니다."

카이엔이 아무런 망설임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자 요희와 천오

는 의외라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 우스운 말을 하는군?"

요희를 대신해 천오가 말을 이었다.

" 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죽음이라는 말과는 깊게  연관되어 있

으면서도 먼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더군다나 네 몸에 흐르고 있

는 피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고 있겠지?"

천오의 말을 들은 순간 카이엔은 다시  한번 현실의 거대한 벽을 실감

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았던가. 명계에서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다

른 의미로 통한다는 것을. 명계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죽음이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죽음이라는 것은 단지  육체의

죽음만을 나타내는 말일뿐, 명계에 사는 모든 존재에게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기나긴 시간의 길을 걸어야 하는 형벌이 주어져 있다.  비록 카

이엔은 그들처럼 벌을 받아 이곳에 오게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자신도

지워지지 않을 큰 무게의 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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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눈이 천근만근입니다. -_-

이놈의 회사는 이벤트가 왜 이리 많아서..원.. 한달의 마지막을 또 이벤트로 장

식하다니. 오늘은 폭탄을 한번 때려볼까 했었는데 역시 다음으로 미뤄야 겠군

요. 내일 새벽같이 일을 나가야 하는 관계로 잠을 좀 자야겠어요.

나도 쉬고 싶어....

[번  호] 7851 / 8063      [등록일] 2000년 05월 01일 21:57      Page : 1 / 9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97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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