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4/77)

23

조각 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잠시 고민했다. 또다시 키이스를 피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찰스에게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출근을 하려면 얼굴을 봐야 한다. 이르나 늦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약을 먹고 잔 덕분인지 몸의 상태는 잠들기 전보다는 좋아졌다. 나는 한 번 더 진통제를 챙겨 먹으며 억제제 또한 잊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약을 한꺼번에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을 테니 간격을 두고 먹으려는 생각이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식당에 내려가자 키이스는 먼저 내려와 앉아 있었다. 불미스럽게도 실내의 분위기는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에게서 풍기는 페로몬 향을 굳이 분석하려 애쓸 필요 없이 그의 찌푸린 얼굴로 충분했으니까. 나는 이유를 몰라 흘긋 찰스를 돌아보았다. 찰스는 짧게 어깨만 으쓱했다. 자신도 모른다는 듯이.

“안녕하세요, 피트먼 씨.”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자 키이스가 흘긋 시선을 향했다.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별로 없는데.

나는 내심 조마조마해하며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키이스의 눈치를 살피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허리가 삐끗하고 말았다. 그만 아, 하고 순간적으로 짧은 비명을 지른 나는 황급히 그를 훔쳐보았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불쾌한 표정 그대로였다.

간신히 자리에 앉고 나자 기다리던 찰스가 아침 식사에 대해 물어본 후 자리를 떴다. 그리고 드디어 키이스와 나는 단둘만이 남았다. 두렵게도.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까?

문득 떠오른 생각을 나는 즉시 지워 버렸다.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키이스는 또다시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를 비난할 것이다. 나는 각오를 하고 그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왜 갔어?”

“네?”

불쑥 들려온 음성에 긴장하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고개를 들자 키이스는 여전히 험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고 시치미를 뗄 수는 없었다. 나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섹스 후에는 혼자 주무시니까…… 당연히, 제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리자 키이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딘지 기가 막혀 하는 듯한 느낌은 내 착각일까? 그는 예상대로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지만 비난의 이유가 예상과 달랐다.

마침 찰스가 식당으로 돌아왔다. 내 앞에 식사를 놓아주고 커피와 주스를 각기 따라 준 후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동안 말이 없던 키이스가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식사를 하는 모습이 평소와는 좀 다른 듯했다. 화가 난 게 분명했다.

끼익.

거친 소리를 내며 의자가 뒤로 물러났다. 키이스는 내 쪽을 보지도 않고 식당을 나가 버렸다. 식탁 위의 접시는 물론이고 커피 잔까지 모두 비어 있었다.

식사를 마쳤으니 나가는 게 당연하지, 하고 나는 일부러 내게 주입시키듯 의식적으로 생각했다.

*

*

오전 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나는 폭풍 전야의 긴장감을 느끼며 바쁘게 일을 처리했다. 키이스에게도 할 일이 잔뜩 쌓여 있었다. 1주일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당연한 대가였다. 미뤄진 약속들이 끝도 없었고, 가야 할 장소들이 산적했다.

키이스가 사무실에서 나올 때까지 나는 줄곧 자리에 앉아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스케줄만 정리하다가 끝날 것 같았다. 급하게 보고를 해야 할 것도 답변을 줘야 하는 곳도 너무 많았다. 미칠 듯이 바빴지만 전날 밤 하려던 일을 미처 마무리 짓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일을 하는 대신 뭘 했었는지는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나가십니까?”

무심코 물었던 나는 곧 입을 다물었다. 키이스는 흘긋 나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뒤늦게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오늘 키이스는 중요한 점심 약속이 있었다. 아차, 하고 나는 서둘러 사무실의 문을 열고 그를 쫓아 나갔다.

“피트먼 씨, 오후의 일정은…….”

급히 말을 하자 키이스가 흘긋 뒤를 보더니 말했다.

“3시에 회의, 알고 있어.”

짧게 내가 할 말을 대신한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큰 보폭으로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키이스를 나는 잠시 당혹해하며 바라보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후로는 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만 했다. 한 시간여가 지나 키이스가 돌아왔을 때, 나는 반도 먹지 못한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든 채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전화를 끊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선 내게 그때까지 팔짱을 낀 채 내 책상 건너편에 서서 나를 지켜보던 키이스가 물었다. 그의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져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일이 많아서요. 미팅 상대와 만나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입에 발린 소리를 했지만 키이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의 시선이 내가 내려놓은 샌드위치로 향했다.

“아, 찰스가 준비해 줬습니다.”

나는 굳이 그가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면서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키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시선을 들어 내 얼굴을 봤을 뿐이다. 나는 그가 말을 하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키이스는 곧 고개를 돌리더니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남은 나는 잠시 눈을 깜박이다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샌드위치는 절반 가까이 남았지만 더 이상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그냥 휴지통에 버려 버렸다.

*

*

시간을 보니 회의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보고를 할 시간은 충분했다. 나는 정리한 내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전에 제출한 서류는 아마 검토가 끝났을 것이다. 결과를 듣고 키이스가 이걸 보는 동안 전달을 해야지.

나는 급히 머릿속으로 시간을 배분하며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잠깐 사이를 두었다 문을 열자 곧 키이스의 페로몬 향기와 뒤섞인 담배 냄새가 났다. 키이스가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입에 문 채 고개를 들었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오늘 중으로 확인하실 서류입니다.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지금 읽어봐 주십시오. 회의가 끝난 후 연락을 돌리겠습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서류 뭉치를 키이스는 대수롭지 않게 뒤적였다. 누가 봐도 흥미라고는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한쪽에 쌓여 있는 서류 뭉치로 흘긋 시선을 향했다. 검토가 끝났으면 가져가겠다고 말을 하려는데,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난 지금부터 너와 섹스할 거야.”

순간 내 귀가 잘못되었나 생각했다. 서류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져 그를 바라보자 키이스가 말을 이었다.

“그게 싫으면 당장 여기서 나가.”

서류를 검토하셔야 하는데요, 곧 회의 시간이라 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갑자기 사무실에서 섹스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정신 차리세요 저 서연우입니다 당신이 재미없다고 비웃었던 그 비서라고요, 등등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너무 많았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그에 필적할 만큼 넘쳐났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키이스가 몸을 일으켰다. 나는 뒷걸음질 쳐 뒤로 물러났다. 키이스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그가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춤거리며 두어 걸음 물러났다. 한 걸음씩 책상을 돌아 나오면서도 키이스의 시선은 줄곧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대로 있으면 결과는 뻔했다. 지금이라도 나는 움직여야 했다. 이곳을 나가서 단단히 문을 닫고 이 일을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

등 뒤에 문이 닿았다. 나는 손을 돌려 더듬거리며 손잡이를 잡았다. 아, 하고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리고 또 새로운 상대를 찾아야겠지, 키이스와 밤을 보낼.

철컥, 무거우면서도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쪽에서 문을 잠그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흔들리는 시선을 향하자 키이스는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가 희미하게 기울어졌다.

키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내민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어렵게 발을 내디뎠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끝이 맞닿았을 때,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뱉어 내고 말았다. 키이스가 상체를 내밀어 내 팔을 잡아 곧바로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입술이 맞물렸을 때,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

*

하아, 하아. 아, 하아.

거친 숨을 헐떡이며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셔츠는 구겨져 허리께에서 뭉쳐져 있고, 바지는 끌어 내려져 발목에 걸친 데다 속옷은 무릎 위쪽에 간신히 걸려 있었다. 키이스는 한 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다른 손으로는 내 엉덩이를 느긋하게 주물렀다.

천천히 주름을 쓰다듬던 긴 손가락이 슬며시 구멍을 눌렀다. 흠뻑 젖어 있던 곳이 부드럽게 열렸다. 하지만 키이스는 애태우듯 주름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쓰다듬을 뿐이었다. 미끈한 애액이 연신 방울져 흐르는 그곳을 감상하듯 바라보며.

나는 열에 들떠 책상 위에 납작하게 상체를 붙인 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무심코 허리를 흔들었지만 키이스는 좀처럼 내게 넣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준비가 충분한데도 그는 그저 나를 애태우기만 했다. 키이스가 연기를 후, 뱉어 냈다.

“책상 잡아.”

나는 시키는 대로 손을 내려 허리께에서 책상을 붙잡았다. 그가 나를 때릴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철썩, 날카로운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나는 숨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다시 엉덩이를 얻어맞았다. 또 한 대, 또 한 대. 내리칠 때마다 화끈거리는 통증과 함께 살덩이가 얼얼해졌다. 나는 울음이 나오려는 걸 입술을 깨물고 참았지만 눈물이 차오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흐으…….”

눈을 꼭 감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키이스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철썩, 엉덩이를 맞았을 때 불현듯 키이스가 나를 때리면서 내 안에 사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시에 철썩, 하고 소리가 울려왔다.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면서 청량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 내 페로몬 향기였다. 뒤늦게 나는 내가 사정했다는 걸 깨달았다. 발기했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했었다. 키이스는 알고 있었을까? 멍하니 숨만 몰아쉬고 있는데, 키이스가 때리던 것을 멈췄다. 흐릿한 시야에 그가 웃는 것이 보였다. 깊이 빨아들였던 연기를 남자는 후, 하고 짧게 뱉어 냈다.

“이제 놔도 돼.”

후들거리는 손에서 힘을 빼자 무릎이 꺾여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아랫도리를 흥건히 적신 채 책상에 머리를 기대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키이스가 담배를 입에 물고 바지로 손을 가져갔다. 지익, 지퍼를 내리는 그의 손가락이 유난히 우아하게 움직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발기한 성기를 밖으로 꺼냈을 뿐이다. 키이스가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반쯤 섰다. 나는 무릎으로 기어 그의 가랑이 사이로 자진해 머리를 넣었다.

“……으응.”

비음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에게서 흐르는 달큼한 향에 현기증을 느꼈다. 문득 그가 내게 두 손을 내밀었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그는 손가락 사이마다 손가락을 얽어 빠져나갈 수 없도록 거머쥐더니 책상 모서리에 내려놓았다. 졸지에 나는 그의 손에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책상을 붙잡은 형상이 되어 버렸다.

“계속해.”

키이스가 내 머리 위에서 명령했다. 입술에 여전히 담배를 물고 있는 탓에 발음이 살짝 어눌했다.

눈앞에 놓인 페니스는 아직 물렁하게 늘어져 있었다. 아직 발기하기 전인데도 감탄할 만큼의 크기와 두께에 나는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다시 그를 올려다봤지만 키이스는 손가락에 더욱 힘을 줘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통증을 느끼면서도 책상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마른침을 삼킨 나는 어쩔 수 없이 혀를 내밀어서 무거운 페니스의 끝을 들어 올려 입으로 붙잡았다. 간신히 입술을 움직여 귀두를 입 안에 머금자 그가 슬며시 손가락의 힘을 뺐다. 칭찬 혹은 격려처럼 느껴졌다. 나는 조금 용기를 얻어 그것을 고정한 채 천천히 혀를 굴려 귀두를 핥았다.

얼마 안 가 미끈거리는 체액이 입 안에서 느껴졌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애무하자 키이스가 머리 위에서 길게 휘파람 섞인 숨소리를 냈다. 그가 나를 놓아줬지만 나는 여전히 두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잡은 채 혀와 입술만을 움직여 키이스의 성기를 핥고 빨아들였다.

후, 그가 내 위에서 담배 연기를 뱉더니 손을 내 머리에 얹었다. 키이스는 한 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듯이.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입을 움직였다. 입술에 힘을 줘 기둥을 빨아들이면서 동시에 선단을 혀로 눌렀다가 둥글게 핥았다.

문득 미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혀를 선단에 고정하고 입술에 힘을 줘 기둥을 애무했다. 달싹거리며 빠르게 오물거리는 행위에 그가 갑자기 머리칼을 세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키이스는 이내 만족의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를 다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마음껏 그의 페니스를 핥고 맛보았다. 입 안을 적시는 쿠퍼액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심호흡을 했다. 최대한 입을 벌려 그 굵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깊이 삼키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너무 길고 두꺼웠다. 나는 고작 반도 넘기지 못한 채 다시 그것을 놓아야 했다. 팽팽히 일어선 페니스가 내 뺨을 때렸다. 나는 자책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키이스의 얼굴이 희미하게 붉었다.

“어디로 먹고 싶어?”

잠시 나는 고민했다. 아래쪽이 욱신거리는 것만큼이나 목구멍도 애가 탔다. 선택하지 못하는 나 대신 키이스가 결정을 내려 줬다. 그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눌러 자신의 페니스로 가져갔다. 입술에 부딪친 그것을 입을 열어 받아들였다. 천천히 숨을 나누어 쉬며 입 안에 넣었지만 아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만 멈춰 버렸을 때,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에 힘이 들어가 그대로 나를 내리눌렀다. 나는 갑작스러운 압력에 밀려 반사적으로 입을 힘껏 벌리고 목구멍을 열었다.

“……하아.”

목 안 깊숙이 페니스를 밀어 넣은 키이스가 깊은 신음 소리를 냈다. 잠시 그는 그대로 있었다. 내 입 안을 음미하듯이.

“목구멍도 좁고, 아랫구멍도 좁고.”

키이스는 흐트러진 숨결 사이로 중얼거렸다.

“아주 마음에 들어.”

휴식은 길지 않았다. 곧이어 키이스가 내 머리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자꾸 손이 미끄러져 나는 급하게 그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굵은 페니스가 입 안을 마구 드나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입을 벌리고만 있을 뿐.

목 안을 넘나드는 성기는 너무나 폭력적이고 무자비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또다시 흥분했다. 내 입 안을 범하는 뜨거운 페니스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애원했을 것이다. 더 깊이, 더 난폭하게 나를 범해 달라고.

아, 제발.

목구멍 깊숙이 쏟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그것은 내게서 나가 버렸다. 흐릿한 시야에 내 타액으로 흠뻑 젖은 페니스가 들어왔다. 키이스는 여전히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잡고 있었다. 그가 담배를 입에 문 채 남은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쭉 훑었다.

후두둑 얼굴로 쏟아지는 체액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얼굴에 정액이 뿌려질 때마다 정신이 멀어질 정도로 단 향이 주변에 가득 찼다. 나는 정말로 의식이 날아가 버렸다.

키이스가 내 팔을 잡아 훌쩍 일으켰다. 정확하게는 내가 그의 가슴에 그대로 뛰어들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사라질 뻔했던 의식이 되돌아왔을 때, 나는 책상 위에 누워 있었다. 넓게 벌어진 가랑이 사이에 선 키이스가 보였다. 간신히 걸려 있던 바지와 속옷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휑한 아랫도리에 뒤늦은 수치심을 느끼고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런 나를 보는 키이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그저 연기를 한 차례 빨아들이더니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키이스의 태도만 봐서는 너무나 여상해서 지금 하는 짓이 도저히 현실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내 무릎 아래에 손을 넣어 밀어 올리며 흠뻑 젖은 내 구멍에 곧바로 삽입하는 순간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아아!”

나는 신음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비어 있던 아래가 꽉꽉 맞물리며 들어찼다. 키이스가 몸을 쳐 댈 때마다 나는 위로 밀려 올라갔다. 곧바로 그가 내 허리를 잡아당기는 동시에 아래를 쳤다. 나는 헐떡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 버림받았던 것에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아랫구멍은 탐욕스럽게 키이스의 페니스를 빨아들이고 마구 조여들었다. 키이스의 숨결이 나만큼이나 거칠었다. 마치 내 안에 박고 싶어서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격렬하게 허리 짓을 했다.

“하, 아으, 흐.”

신음인지 뭔지 모를 소리가 입가로 흘러넘쳤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키이스는 내 얼굴에 키스하고 입술을 문지르고 아래를 쳐올렸다. 나는 그냥 그가 하는 대로 휩쓸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 거기, 아, 그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키이스는 이미 알고 있는 내 안쪽을 사정없이 짓누르며 문질러 댔다. 눈앞이 까맣게 되어 마구 소리를 질러 대는 내게 그가 거친 음성으로 물었다.

“정말? 그만하고 싶어? 진심이야?”

키이스가 소리 없이 웃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거짓말하지 마.”

슬쩍 물러났던 성기가 다시 내 안을 난폭하게 밀고 들어왔다. 나는 날카롭게 숨을 삼키며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아, 조, 좋아……. 아, 그만, 그만.”

“그만하라는 거야, 더 하라는 거야?”

그는 비웃듯이 내 허리를 세게 잡아 끌어당기며 아래를 박아 댔다. 너무 아픈데 미칠 것처럼 좋았다. 나는 그만해 달라고 빌면서 좋다고 울었다. 나만큼 숨이 거칠어진 키이스가 밑구멍을 꽉꽉 채우며 드나들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땀에 젖은 손이 미끄러져 키이스의 탄탄한 팔을 쓰다듬으며 내려왔다. 충동적으로 엉덩이를 들고 바짝 달라붙으며 의도적으로 가늘게 떨었다. 순간 키이스가 내 안에 성기를 깊숙이 쑤셔 넣었다.

“……하아.”

그는 깊은숨을 내쉬며 움직임을 멈췄다. 배 속에 묵직하게 정액이 차올랐다. 나는 희미하게 전율했다. 몸 안쪽에서부터 번져 오는 페로몬 향이 내 뇌를 녹여 버렸다. 아무것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키이스가 사정을 하는 동안에도 내 안쪽은 계속해서 수축하며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 해 달라고 조르듯이.

키이스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나는 책상 위에 누운 채 멍하니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키이스의 시선이 그의 정액을 뒤집어쓴 내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드러난 가슴에서 배, 그 밑으로 내려간 시선이 한동안 거기서 머물렀다. 문득 키이스가 피식 웃었다. 마치 작다고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피곤한 와중에도 무안해졌다.

♪♪♬♬♬♩♩♩♪…….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을 때, 갑자기 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저하다 눈꺼풀을 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훔쳐보니 키이스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것으로 가득 찬 내 배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적막 속에서 오직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만이 공기 속을 불안정하게 떠돌았다.

하아.

짧게 한숨을 내쉰 것 같던 키이스가 몸을 움직였다. 곧바로 연결된 곳이 벌어져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키이스는 내 안에 깊이 넣은 채로 책상 위에 손을 뻗어 휴대 전화를 들었다. 내 시선 언저리를 헤매는 그의 손을 잡아 키스하고 싶은 것을 참느라 나는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슬쩍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조심스레 눈을 뜨며 손가락을 내리자 키이스가 휴대 전화의 화면을 확인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번호를 본 키이스가 전화를 받으며 곧바로 용건을 물었다.

“아!”

동시에 아래를 쳐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키이스는 바르르 떠는 진동을 즐기듯 눈을 감고 잠시 말이 없었다. 천천히 내 배를 어루만지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은밀한 부위에 손가락이 닿자 나는 움칠했다. 치골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다리가 부러졌습니까? 하아…… 정말이지, 그러니까 왜 자꾸 달아나려고 하는 겁니까?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이제쯤은 알 때도 됐을 텐데.”

신경질적인 물음에 상대는 뭔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누구와 통화하는 걸까?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키이스는 사이를 두었다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포기를 하시죠. 평생을 그렇게 사시고도……. 아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당신들 사이에 끼어드는 건 싫습니다. ……당신이 나를 낳은 게 무슨 상관입니까.”

뜻밖의 말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동시에 그가 단단한 손바닥으로 내 치골을 지그시 눌렀다. 나는 앓듯이 신음을 뱉으며 연결된 곳을 조이고 깊숙이 빨아들였다. 후우, 하고 만족의 한숨을 내쉬었던 키이스가 이내 이를 갈듯이 내뱉었다.

“당신이 낳은 게 나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자식에게 연락을 해 보시죠. 끊겠습니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린 키이스는 짜증스러운 듯 미간을 문질렀다. 나는 멍하니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왔던 이름을 떠올렸다.

클레이튼.

바로 키이스의 부친이었다. 본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내심 궁금해하는데, 잠시 그대로 머물러 있던 키이스가 천천히 손을 움직여 옅은 치모를 어루만졌다. 순간 당황해 눈이 커졌다. 그곳을 남이 만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물고 있던 곳을 움칠거렸다. 키이스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거웃 위를 덧그리듯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를 말하려 했을 때,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움칠 놀라 아래쪽을 꽉 물었지만 이번에는 키이스 또한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는 무시하려는 듯 내 허리를 붙잡았지만 끊어졌던 벨 소리는 또다시 이어졌다. 거칠게 욕설을 뱉은 키이스가 휴대 전화를 들었다. 곧바로 그는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키이스입니다. 압니다, 엔젤의 다리를 부러뜨리셨다고요?”

“아!”

말을 하면서 키이스가 허리를 쳤다. 나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키이스는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저한테 전화를 해서 알았습니다.”

상대는 그의 부친인 모양이었다. 대화의 내용을 엿듣게 된 것에 대한 거리낌 따위는 가질 필요도 없었다. 한 손에 휴대 전화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내 허리를 붙잡은 채 키이스가 규칙적으로 안을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소리가 새지 않게 하려고 이를 악물었다. 으, 으으, 하고 앓듯이 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키이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허리를 밀어 올렸다.

“아, 하아!”

퍽, 치고 들어온 성기가 능숙하게 내 약한 곳을 찔렀다. 나는 그만 입술을 놓고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키이스는 얕게 안쪽을 드나들며 그곳을 집중적으로 문질렀다. 이내 빳빳하게 곤두선 내 페니스가 끝을 적시고 정액이 맺혀 들었다. 키이스는 조금씩 방울져 흘리는 하얀 체액이 성기를 따라 흘러 음모를 적시는 것을 가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했든 해리슨이 했든 또 다른 누가 했든 저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적당히 해 주십시오. 전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

하아, 하아. 아, 하아, 아.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훑으려 했다. 하지만 동시에 키이스가 쑥 물러났다가 세게 박아 버리는 바람에 놀라 손을 빼고 말았다.

“……거긴 참석할 겁니다. 더 이상 절 귀찮게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조롱하듯이 덧붙인 키이스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휴대 전화를 내려놓은 키이스는 두 손으로 내 허리를 잡고 끌어당기며 동시에 밀어 넣었다. 아, 하고 온몸을 전율하며 고개를 젖혔다.

“망할, 다 같이 죽어 버릴 것이지.”

깊숙이 내 안을 드나들며 키이스가 내뱉었다. 그의 숨결 역시 거칠게 흩어졌다. 나는 몽롱하게 흔들리며 허리를 쥐고 있는 키이스의 손을 더듬었다. 어느새 그는 완만하게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키이스의 움직임이 나와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들뜬 숨을 뱉어 내며 눈을 감고 몸 안의 감각에 몰입했다.

갑자기 키이스가 내 허리를 안아 들었다. 불시에 나는 책상에서 일으켜져 그의 품에 덥석 안겨 버렸다.

“아!”

그와 함께 굵은 페니스가 쑥 밀려들어 왔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 다급하게 그의 허리를 다리로 휘감았다. 그 상태로 키이스는 책상을 짚고 허리를 움직였다. 키이스가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내 허리는 들썩거리며 올라갔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그저 매달려 있을 뿐인데 몸은 멋대로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키이스의 성기를 머금었다 밀어내고 다시 삼켰다가 내보내기를 반복했다.

“……후우.”

깊은 탄식과 함께 키이스가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뒤늦게 아래로 내려오며 뿌리 끝까지 그를 머금었다. 훤히 열린 입구 밑으로 키이스의 거친 체모와 음낭이 느껴졌다. 조금 망설였다가 용기를 내어 물고 있는 곳을 조심스럽게 조였다. 키이스가 멈칫하는 것 같더니 이내 내 엉덩이를 잡아 바짝 끌어당겼다.

그는 길게 사정했다. 넘치는 정액이 내 배 속에 끓어올랐다가 아래로 방울져 떨어졌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를 꼭 안고 있었다. 사정을 하는 동안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배 속이 내 온몸을 떨게 만들었다. 그 진동에 키이스는 자극을 받고, 다시 사정이 이어져 그것은 끝도 없이 계속되는 듯했다.

마침내 내 안에 전부 쏟아 내고서도 키이스는 한동안 그대로 머물렀다. 나 역시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이를 세워 물었던 어깨를 입술로 가만히 문질렀다. 이 단정한 와이셔츠 안에 내가 새긴 흔적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슬며시 아래를 조이자 머리 위에서 키이스가 웃었다.

“아직도 모자라? 어쩌면 좋을까, 이렇게 음탕한 고양이를.”

그가 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맥없이 뒤로 넘어갔다. 키이스가 내 뒤통수를 손으로 잡아 주지 않았다면 뇌진탕을 일으켰을 것이다.

완전히 늘어져 버린 내게 키스를 한 키이스가 뒤로 물러났다. 마침내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빠져나갔을 때, 내 가랑이 사이는 그의 정액과 내 체액이 마구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키이스는 느긋하게 바지를 정리하며 그것을 감상했다.

집요한 시선이 민망하게도 그곳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아래를 감출 기운도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배에 쌓인 정액이 둥글게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키이스가 깊은숨을 내쉬더니 어딘지 짜증스러운 듯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는 그의 행동에 나는 간신히 회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이스가 회사에서 섹스를 한 적이 있던가?

멍하니 떠올려 봤지만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순간적으로 의식이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쾌감에 눈이 멀어 잠시 동안 영혼이 빠져나갔던 건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힘없이 웃었을 때,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나는 책상에 누운 채 의미 없이 눈만 깜박였다. 키이스는 몸을 돌려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반쯤 앉았다. 그가 내 몸 위로 팔을 뻗었다. 문득 내 얼굴 위를 가로지르는 단단한 근육질의 팔을 보고 나는 충동적으로 고개를 들어 입을 맞췄다.

순간 키이스가 멈칫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키이스는 쓴웃음을 짓더니 손가락을 튕겨 내 이마를 가볍게 때렸다. 맞은 곳을 문지르는 사이 그가 다시 몸을 숙여 담배 케이스를 가져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첫 연기를 들이마시는 키이스의 모습을 나는 누운 채로 바라보았다.

“회의는 무시해, 기록은 엠마가 하면 되니까.”

연기를 뱉어 내며 키이스가 말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내게 그는 말을 이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대로 있어. 문은 밖에서 잠글 테니까 나가지 못할 거야.”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가늘게 뜬 눈이 어딘지 즐거워 보였다. 내가 달아나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인데.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자 키이스가 손을 뻗었다. 그때까지 그저 멍하기만 하던 나는 그의 손가락이 내 치모에 닿자 움칠 놀랐다. 내가 흘린 정액과 그가 뿌린 정액이 옅은 음모 위로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키이스의 손가락이 천천히 그것을 쓰다듬었다.

“약은, 계속 먹고 있나?”

느릿하게 치골 위를 덧그리는 은근한 손가락과는 달리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평온했다. 나는 그만 신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대답했다.

“네…… 아뇨, 오늘은…… 가방에, 있으니까…….”

곧 먹겠습니다, 하고 말하려 했지만 자꾸만 신경은 키이스의 손가락에 머물러 단어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렴풋이 나는 왜 오늘은 먹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먹으려다 잊어버렸다는 것이 합리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일부러 잊어버린 게 아닌지 의심이 생겼다. 약을 챙겼으면서도 먹지 않은 건 혹시 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목적을 달성한 건가?

마음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들켜 버린 것 같아 오싹해졌을 때. 키이스가 손가락 끝으로 내 치골에서 페니스로 이어지는 살을 슬며시 문지르더니 입을 열었다.

“됐어.”

나는 열에 들떠 그를 올려다보았다. 키이스는 다시 담배 연기를 머금었다가 뱉으며 말했다.

“이제 먹지 않아도 되니까 남은 약은 모두 정리해.”

그리고 그는 불시에 가늘게 떠는 내 페니스를 손가락으로 슥 훑었다. 나는 순간 사색이 되어 비명처럼 숨을 삼키고 말았다. 키이스는 짧게 웃더니 내가 가지고 왔던 서류를 집어 들었다. 간단히 내용을 훑어본 그는 이내 책상에서 몸을 뗐다.

곧바로 사무실을 나가 버리는 그를 나는 붙잡지 못했다. 덩그러니 책상 위에 남겨진 내 귀에 밖에서 문이 걸어 잠기는 둔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회의가 끝난 후 키이스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간신히 아래를 씻고 바지를 입으려던 참이었다. 그런 나를 보자마자 키이스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다시 그것을 벗겨 버렸다.

“이런 건 입지 마.”

간단히 내 브리프를 휴지통에 던져 버리는 그를 보고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남의 속옷을 멋대로 버리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도대체 뭘 입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브리프가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얘긴 전부터도 들었는데 설마 트렁크를 입으라는 건가? 아니, 지금 나한테 속옷 없이 집까지 가라고?

하지만 미처 묻기도 전에 키이스가 나를 소파에 쓰러뜨리고, 이번엔 뒤에서 삽입했다. 나는 그대로 당해 버렸다.

“아, 하아, 아, 아윽, 아!”

“도대체가, 말을 들어 먹지를 않는군.”

키이스는 욕설을 뱉어 내며 난폭하게 쑤셔 박았다. 나는 연거푸 비명을 질렀다. 내 두 팔을 뒤에서 잡고 아래를 막무가내로 벌리며 그가 거친 숨결 사이로 내뱉었다.

“벗고 기다리라는 말, 못 들었어? 앞으로는, 묶고서 감금해 줄까? 그럼 내 말을, 잘 듣겠지.”

“아, 아으, 자, 잘못…….”

다급하게 사과하자 키이스는 세게 아래를 처박았다. 나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키이스는 나를 개처럼 엎드리게 하고 어깨를 누른 채 뒤에서 마구 박아 댔다. 나는 가죽 시트에 얼굴을 묻고 온몸을 들썩이며 그의 페니스를 받아들였다.

난폭하게 아래를 쳐 대면서 키이스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전신을 뒤흔들리며 몸이 뒤집혔다.

“아아!”

물고 있던 구멍이 크게 벌어지는 바람에 저절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곧바로 키이스가 나를 끌어당겨 아래를 쳐올렸다. 충격에 밀려 올라갔다가 이내 끌어당겨져 다시 처박혔다. 그만 놀라 아래를 꽉 조여 버렸다. 키이스는 길게 탄식하며 만족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동안 그는 그렇게 내 안을 즐겼다. 키이스가 한 손으로 천천히 허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러웠다. 무심코 방심했을 때, 또다시 그가 내 엉덩이를 때렸다.

철썩, 하고 거친 마찰음이 울린 순간 나는 숨을 삼키며 아래를 바짝 조였다. 아까 맞은 자리가 아직도 화끈거리는데 그는 봐주는 법이라고는 없었다. 철썩, 철썩, 연달아 울리는 소리에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다.

“그, 그만…… 그만, 아파요!”

키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만하고 싶어?”

나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가득 고인 나를 보고 그가 짧게 웃었다.

“싫은 거 맞아? 사정했잖아.”

그 말을 듣고 간신히 눈을 떠 보니 내 가랑이 사이가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아직 사정 전이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나의 정액이었다.

“아…….”

만지지도 않았는데.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고개를 기울이며 키이스가 속삭였다.

“좀 더 솔직해지는 게 어때? 이제 나도 너에 대해 알 만큼 아는데.”

아직 가라앉지 않은 숨을 몰아쉬며 그를 바라보자 키이스는 피식 웃었다.

“아닌 척 내숭 떠는 게 취향이면 그렇게 해. 다만 난 네가 처음이건 아니건 그다지 감동받지 않아.”

“…….”

“그러니 이왕이면 가지고 있는 테크닉은 전부 써 보는 게 어때?”

그는 의미심장하게 내 허리를 쓰다듬었다.

“네 몸은 이대로도 아주 마음에 들지만…… 서로 즐거운 게 좋잖아?”

키이스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가 기대하는 대로 어마어마한 테크닉 같은 게 있었다면 난 진작 이 남자를 덮쳤을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억울해해야 하는 건지 감사해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왜, 제가 경험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시죠?”

떨리는 음성에 내 목에 키스하던 키이스가 멈칫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갑자기 키이스가 내 허리를 안아 바짝 끌어당겼다. 연결된 부분이 확 벌어져 나는 순간 숨을 삼키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꽉 물자 키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불쾌해하기는커녕 만족스러워하는 반응이었다. 그는 허리를 애무하던 손을 내려 연결된 곳의 주름을 쓰다듬었다. 흠칫 놀라 몸을 떨자 키이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경험이 없을 리가 없잖아.”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냥 입을 다물었다. 거기다 그는 쐐기를 박았다.

“아마 숨겨 둔 남자가 한 다스는 있을 거야, 안 그래?”

“……있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자포자기해서 묻자 키이스는 대답 대신 곧바로 키스를 했다. 그리고 다시 아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의 행위를 쫓아가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페니스를 연결한 채로 빼지 않고 몇 번이나 자세를 바꾸는 바람에 그때마다 앓듯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어서 빨리 사정하고 끝내 주길 바랐지만 그는 막상 절정이 올 것 같으면 내 안에서 잠시 멈추고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그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그야말로 죽을 것 같았다.

마침내 마주 안고 그가 사정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키이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을 정도였다.

가쁜 숨소리가 어느 정도 잦아들 즈음,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토요일은 엔젤의 저택에 가야 해.”

그의 손이 나의 벗은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나는 오싹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있었다. 키이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스케줄은 모두 취소해. 다녀오면 주말 내내 너한테 박을 거야.”

너무나 태연히 천박한 말을 하는 바람에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키이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목에 코를 박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내 오메가 향을 맡는 것이다.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래를 움칠거리자 아직 연결되어 있던 몸이 즉시 반응했다. 하아, 하고 키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남자들도 전부 정리하고.”

“…….”

“아무리 너라도 이 정도로 해 대면서 다른 남자들과 놀아날 순 없겠지만.”

그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뒤이어 키스를 하며 키이스가 다시 나를 소파에 쓰러뜨렸다. 밑구멍은 슬며시 자신이 물고 있던 묵직한 줄기를 탐욕스럽게 안으로 빨아들였다.

* * *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키이스가 나를 놓아주자마자 나는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는 내 옆에서 키이스는 베개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이 언제나처럼 내 목을 천천히 쓰다듬고, 이어서 어깨와 등을 어루만졌다.

아마 키이스는 담배를 피울 것이다. 그 증거로 달각거리며 담배 케이스를 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다른 손은 여전히 내 몸을 애무하고 있었다. 나는 은근한 쾌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대로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무방비해진 내 입이 저절로 열렸다.

“꼭…… 가야 합니까……?”

정신이 든 것은 몇 초의 공백이 흐른 뒤였다. 슬며시 다가오던 잠이 확 달아났다. 황급히 수습하려 입을 여는데, 뜻밖에도 키이스는 내 물음에 답을 했다.

“나를 낳은 오메가가 도망갔다가 잡혀 왔어.”

나는 그가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의 내용 중 어느 쪽이 더 놀라운지 미처 가늠할 수 없었다.

“……도망요?”

조심스러운 되물음에 키이스는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그래, 평생을 그러고 살았지. 그는 달아나고 그들은 쫓아가고.”

키이스는 우습지도 않다는 듯이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나는 일부나마 알게 된 키이스의 사생활을 머릿속에서 열심히 꿰맞췄다. 지난번 통화에서 말했었지, 그가 낳은 건 키이스만이 아니라고. 키이스에게 그럼 형제가 있는 걸까?

“그분은, 극오메가겠죠……?”

극오메가나 극알파를 낳는 것은 극오메가만이 가능하다. 평범한 오메가도 낳을 수는 있지만 아주 희귀한 경우라고 들었다. 눈앞의 남자를 보며 묻자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짧게 숨을 들이켰다. 후, 하고 연기를 뱉은 키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답은 뻔했다.

극오메가는 가장 수가 적은 데다 약 없이도 페로몬을 완벽히 감출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었다. 따라서 극오메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었다.

그는 달아나고 그들은 쫓아가고.

키이스가 말한 심상치 않은 표현에 문득 언젠가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극오메가 한 명을 몇 명의 극알파가 공동으로 소유하기도 한다는.

도시 전설에 가까운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남의 가정사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문득 키이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목에 사슬이라도 채워서 가둬 두면 될 텐데.”

너무나 여상한 음성에 나는 순간 그것이 당연한 대안인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뒤늦게 당황하고 말았지만.

“……그런 경우가 많습니까?”

주저하며 묻자 키이스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잡아 와서 혼을 내고 그걸 보살펴 주는 게 해리슨의 취미니까 자유롭게 놔두는 거겠지.”

다리가 부러졌다던 말을 떠올리면 그저 혼을 내는 게 취미라는 말에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곧 나는 이해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어차피 나는 그들의 세계 따위는 평생 알지 못할 것이다. 처음으로 그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키이스의 손이 내 턱으로 올라왔다. 부드럽게 뺨과 턱을 감싸며 그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기꺼이 그와 키스했다. 씁쓸한 담배 맛을 남기고 키이스가 입술을 뗐다.

“갖고 싶은 건 없어?”

“갖고 싶은 거요?”

나는 바보처럼 그의 말을 되풀이했다. 키이스는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홀린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 원하는 거. 뭐든 사다 주지.”

‘원하는 건 당신뿐이에요.’

나는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나는 건조하게 말했다.

“갖고 싶은 건 딱히 없어요. ……감사합니다.”

키이스는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봤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는 듯이.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윽고 담배 연기를 한 차례 머금었다 뱉은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넌 욕심이 너무 없어.”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웃음소리를 낼 뻔했다. 고작해야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걸로 그것을 대신한 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잘못 보신 겁니다.”

일부러 시선을 내려 어수선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면서 나는 표정을 감췄다. 잠시 그는 말이 없었다. 떠도는 담배 향과 페로몬이 뒤섞여 정신이 몽롱해졌다. 담배를 끈 후 키이스가 내 어깨를 잡아 똑바로 눕혔다. 미처 잠든 척하는 것을 실패해 버린 나는 곧바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키이스가 내 위로 몸을 겹치고, 깊게 입술을 맞물렸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작은 구멍이 생긴 듯했다.

* * *

오랜만에 저택은 고요했다. 나는 티룸에 앉아 미지근해진 홍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달각, 찻잔이 잔 받침에 부딪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소음은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조차도 집 안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렇게 주변이 조용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근은 절대 아니었다.

키이스가 일정대로 저택을 떠난 것은 오전의 일이었다. 오늘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차피 주말을 비워 놨으니 내일 밤에 온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단지 나의 기다림이 길어질 뿐이다.

진심이 아닐지도 몰라.

나는 여전히 키이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수시로 그가 내 다리를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그가 나를 그토록 원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섹스를 할 때마다 나오는 키이스의 말이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내가 경험이 많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수시로 내 몸이 아주 마음에 든다느니, 얼마나 굴렸기에 이런 몸이 됐냐느니 멋대로 떠들어 대기 일쑤였다. 급기야 한번은 나한테 한꺼번에 몇 명과 놀아났냐고까지 물어봤다. 나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피트먼 씨가 제게 캐물을 말은 아닌데요.>

그는 질문을 멈췄고, 벌이라도 주는 듯이 아주 혹독하게 나를 안았다. 어찌나 격하게 해 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키이스는 나를 끌어안고 목을 빨아들이고 유두를 물어뜯고 아래를 쑤셔 박았다. 마침내 행위가 끝날 즈음에는 다리를 넓게 벌린 채 앉아 키이스와 마주 안고 배 속을 들썩이며 정액을 받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밤새 내 안에 넣은 채 잠이 들었다. 정작 나는 배 속이 무겁고 불편해 거의 자지 못했던 탓에 다음 날 사소한 몇 가지 실수를 저질러 유감없이 빈정거리는 말들을 들어야 했다.

그날 밤 키이스는 다정하게 나를 안았다. 쓸데없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몸에 대한 오해는 여전했다. 나는 굳이 그것을 정정하려 하지 않았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

나는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그 뒤 상대를 찾으라는 말도 없었고 계속 나와 자는 걸 보면 내가 잠자리 상대로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는 재빨리 생각을 차단해 버렸다.

이건 그저 욕망에 불과하다. 섣부른 기대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살면서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가 키이스라면 더더욱.

다만 저렇게 닳고 닳은 남자가 저런 말을 하는 건 내가 정말 저 남자와 잘 맞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너무 못한다는 말을 반대로 비꼬아 말하는 걸까, 그것만은 궁금했다.

설마 후자는 아니겠지. 그럼 나와 굳이 잘 이유가 없을 테니까.

내심 생각했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내가 잘할 리는 절대 없는데.

“차를 더 드시겠습니까?”

찰스의 음성에 정신이 들었다. 창밖을 보니 밖은 벌써 캄캄했다. 나는 당황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찰스는 곧바로 테이블을 정리했다. 그대로 티룸을 나가려던 나는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을 느낀 찰스가 똑바로 허리를 들고 나를 마주 보았다. 나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저, 피트먼 씨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습니까? 전 못 받았는데, 혹시나 해서요.”

황급히 덧붙이자 찰스는 글쎄요, 하며 말을 이었다.

“내일 오실 겁니다. 엔젤 씨의 저택에 갈 때는 언제나 하루 정도 머물고 오십니다. 당일로 다녀오시긴 아무래도 무리죠.”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의미 없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복도는 고요하기만 했다. 복도만이 아니었다. 집 안 전부가 죽은 듯이 가라앉아 있었다. 모두 키이스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저택에 없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나 공허할 줄은 몰랐다. 나는 종일 주중에 못다 한 일을 하고 책을 읽고 한국에 전화까지 하며 바쁘게 지냈지만 이젠 한계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일부러 홍차까지 부탁해 마시고 나자 더는 할 일이 없었다. 나는 그만 초조해졌다.

책을 더 읽을까?

그다지 끌리는 발상은 아니었다. 오전에 골랐던 책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키이스의 서재는 거대하고 장서들이 빼곡하게 차 있으니 그중에서 볼만한 책을 고르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뭔가를 읽겠다는 생각보다 무료한 시간을 때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결심을 하고 내 방을 지나쳐 곧바로 서재로 향했다.

하지만 정작 서재 앞에 멈춰 섰을 때 내 시선이 향한 곳은 그보다 더 멀리 있는 키이스의 방이었다. 나는 그대로 서서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페로몬 향기가 갑자기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겨 키이스의 방으로 향했다. 달큼한 향이 점점 더 진해졌다.

마침내 문을 연 순간 나는 가득히 풍겨 오는 향기에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배 속이 끓어오르고 아래가 젖어 들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키이스의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하아, 하아.

시트에는 키이스의 향기가 가득했다. 나는 코를 박고 정신없이 향기를 빨아들였다.

보고 싶어.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애타는 그리움에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전엔 그를 볼 수 없는 주말에 뭘 했을까? 혼자 잠들어야 하는 밤엔 대체 어떻게 했을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키이스가 없던 삶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은 오로지 그 남자로 가득했다. 단지 섹스 몇 번으로 이렇게 인생을 걸어 버리다니 어리석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금단의 과일을 먹어 버렸다. 에덴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이미 알아 버린 쾌락은 놓칠 수 없는 것이다.

하아, 하아. 다급한 숨소리가 내 귀에도 절박하게 울려 퍼졌다. 똑바로 누워 마음껏 공기 중에 떠도는 키이스의 향기를 들이켰던 나는 다시 엎드렸다. 시트에는 그의 향기가 아직도 잔뜩 남아 있었다. 어느새 헤엄치듯 침대 위를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급기야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천장을 보며 누웠다.

아래로 손을 가져가 더듬거리며 바지를 벗었다. 저택에 들어와 지내기 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때는 키이스의 향기에 취해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 자위를 하던 나날을 보냈었지. 저택에 왔던 첫날도 그렇게 파렴치한 죄책감을 안고 그 짓을 했던 걸 떠올리자 그만 실없이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감히 키이스의 침대에 누워 자위라니.

어마어마한 죄책감과 함께 어두운 쾌감이 끓어올랐다. 나는 아래가 욱신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끌어 내렸다. 한쪽 다리는 빠져나왔지만 다른 다리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런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키이스…….”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것만으로도 엉덩이가 찌르르 울려왔다. 그의 말이 맞다. 내 몸은 음탕해서 키이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흠뻑 젖어 버린다. 지금도 이렇게 그의 잔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깊이 숨을 들이켜며 더 뜨겁게 몸을 가열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실제로 나는 몸 안쪽이 화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그에게 안긴 것처럼 똑바로 누워 가랑이를 넓게 벌렸다. 전에는 페니스를 격렬하게 훑었지만 이제 그걸로는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뒤로 느끼는 감각을 알고 난 후부터 그곳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도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을 그보다 아래로 뻗었다. 손가락이 밑을 더듬으며 내려가 음낭 아래쪽에 자리한 구멍을 찾았다.

“아…….”

나는 막힌 신음을 토해 내며 고개를 젖혔다. 목 안쪽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키이스의 향기만으로도 아래는 이미 완전히 젖어 있었다. 만약 키이스가 있었다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대로 넣어도 좋을 정도였다. 나는 미끈거리며 흘러나오는 애액을 주름에 바르고 문지르며 구멍을 애무했다. 애액에 미끄러진 손가락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거친 숨을 들이켰다.

하아, 하아.

숨결이 가빠졌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던 키이스의 향에 머릿속이 점차 둔해졌다. 나는 눈을 감고 떨리는 신음을 뱉어 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키이스가 했을 때와는 달랐다. 나는 더더욱 넓게 허벅지를 열고 손가락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물론 그 정도 굵기와 깊이로 만족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둥글려 입구를 자극했다.

하아, 하아.

밭은 숨을 몰아쉬며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처음보다 조금은 나아졌다. 나는 계속해서 아래를 급하게 문질렀다. 이미 허벅지는 벌어질 대로 벌어져 아예 한쪽은 눕다시피 하고 다른 쪽은 몸이 흔들릴 때마다 무릎을 너풀거리고 있었다. 더 깊이 넣고 싶은데, 더 두꺼운 게 안을 문질러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했다. 나는 애가 타 최대한 깊숙이 여러 개의 손가락을 집어넣고 난폭하게 안을 휘저었다.

“아아……!”

깊은 신음을 내지르며 간신히 사정했다. 나는 잠시 동안 키이스가 그렇게 하듯이 손가락을 그 자리에 넣어 두고 숨을 헐떡였다. 사정 후의 탈력감으로 머릿속은 멍했다.

후우.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문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키이스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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