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방 안은 고요했다. 그저 헐떡거리는 내 숨소리만이 침묵 속을 떠돌았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황망한 시선만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키이스는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나는 너무 당황해 머릿속이 아예 텅 비어 버렸다. 간신히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어…… 언제부터.”
간신히 쥐어짜듯이 묻자 키이스는 글쎄, 하고 고개를 짧게 까딱했다.
“네 손가락이 구멍에 들어갔을 때부터?”
“…….”
신이여, 제발 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 주세요.
진심으로 죽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보, 멍청이! 어떻게 감히 네가 이런 짓을! 어떻게 이렇게 파렴치할 수 있어!
자신을 미친 듯이 비난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솟아나는 눈물을 간신히 누르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간신히 속삭이자 키이스가 문에서 몸을 뗐다. 언제나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나는 뒤늦게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대로 있어.”
뜻밖의 제지에 멈칫했다. 키이스는 똑바로 나를 바라보며 침대로 다가왔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뒤늦게 내가 무슨 꼴을 하고 누워 있는지 깨달았다. 셔츠는 밀려 올라가 유두가 드러나 있고, 바지는 속옷과 함께 한쪽 발목에 걸쳐져 다른 쪽 다리는 아예 벗고 있었다. 거기다 방금 전까지 스스로 그곳에 손가락을 넣고 있기까지 했다.
순간 달아나고 싶어졌다. 다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이내 커다란 창이 시야에 들어왔다.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을 때, 침대 한쪽이 기울었다. 키이스가 침댓가에 앉는 것이 보였다. 그가 손을 뻗더니 곧바로 내 발목을 붙잡았다.
“아!”
갑자기 쑥 잡아당겨서 나는 놀란 비명과 함께 끌려갔다. 키이스는 볼품없이 걸려 있던 바지를 간단히 벗겨 버렸다. 문득 바지와 함께 매달린 속옷을 보더니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둘을 한꺼번에 바닥에 던져 버린 키이스가 나를 돌아봤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는데, 그가 평소처럼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다시 해 봐.”
“네?”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놀란 눈을 깜박이는 내게 키이스가 전혀 아무렇지 않은 음성으로 말했다.
“다시 해 보라고, 처음부터.”
나는 당황해 눈만 크게 떴다.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나를 창피 주려고?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주인도 없는 방에서 이렇게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으니. 나는 울상이 되어 말을 더듬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이런 짓은…….”
“내가 사과하라고 했어?”
키이스가 내 말을 가로질렀다. 그는 급하게 말을 멈춘 내게 여전히 무심하게 명령했다.
“닥치고 다시 시작해, 지금 바로.”
나는 할 말을 잊고 입만 벙긋거렸다. 믿을 수 없었지만 키이스는 진심이었다. 이건 나를 괴롭히는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혹시 내게 벌을 주려는 건가?
키이스는 계속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 것 같았다.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떨리는 손을 내렸다.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너무나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온몸이 타 버릴 것처럼 화끈거렸다. 떨리는 손이 내 페니스에 닿았을 때, 그만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키이스는 재촉하듯 붙잡고 있던 내 발목을 짧게, 그러면서도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나는 숨을 삼키며 다른 손을 아래로 내렸다. 키이스에게 잡힌 발목이 자꾸만 달아올랐다. 그와 내가 접촉하고 있는 부위는 그게 전부였다. 정말이지 수치스럽게도, 나는 오직 그 접촉만으로도 흥분했다.
손안에 잡힌 페니스가 조금씩 굳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남은 손을 움직였다. 주춤거리던 손가락이 차갑게 식은 구멍에 닿았다. 순간 부르르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지만 끝낼 수가 없었다. 여전히 키이스는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도망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는 듯이. 궁지에 몰린 것 같은 절박감이 내 안에서 올라왔다.
나는 울고 싶은 걸 참고 눈을 꼭 감았다. 덜덜 떨리는 손이 주름을 더듬거렸다. 조금이나마 기운을 냈던 페니스가 내 손안에서 힘없이 오그라들었다.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흐으…….”
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질끈 감고 있는 눈꺼풀 사이로 더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후우, 불현듯 키이스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온몸이 굳어졌을 때, 그가 내뱉었다.
“미치겠어, 너 때문에.”
평소처럼 조용한 음성이었지만 묘하게 호흡이 흐트러져 있었다. 뜻밖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그가 내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아래가 흥건히 젖어 들면서 나 역시 호흡이 가빠졌다. 키이스가 내 무릎을 붙잡고 그대로 다리를 크게 벌렸다. 그의 성기가 내 아래에 닿았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를.
“……아!”
아무런 전희도 없이 발기한 그것이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왔다. 믿을 수 없게도 내 몸은 굶주린 듯 허겁지겁 그의 성기를 받아들였다. 나는 시트를 움켜쥐고 거친 숨을 헐떡이며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이 그곳에 집중된 것 같았다. 내 안에서 쿵쾅거리며 뛰는 키이스의 맥박이 그대로 전해졌다. 내 맥박이 그와 하나가 되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절로 배 속이 부르르 떨리며 그를 자극했다. 하아, 하고 키이스가 짧게 탄식했다. 그리고 그가 본격적으로 내 안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 하아, 아, 아아, 아, 아!”
거친 신음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나는 온몸을 뒤흔들리며 소리를 질렀다. 키이스는 전혀 봐주지 않고 난폭하게 처박았다. 그는 정말로 너무나 급했다. 내가 숨을 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키이스는 안을 드나들면서 한쪽 무릎 아래에 팔을 넣어 위로 걸치며 그대로 밀어 넣었다. 크게 벌어진 구멍을 그의 페니스가 뿌리까지 한 번에 쑤시고 들어왔다. 나는 그만 숨이 턱 막혀 버렸다.
잠깐 멈춘 것 같던 키이스가 팔에 걸쳤던 내 다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이스가 아래를 쳐 댈 때마다 거칠게 살이 부딪쳐 반동으로 몸이 위로 올라가는가 싶었지만 곧바로 끌려 내려왔다. 한쪽 다리는 그에게 깔리고 다른 쪽 다리는 붙잡혀서, 나는 달아나지도 못한 채 그저 그의 움직임에 따라 급하게 오르내렸다. 사실은 그저 들썩거린 게 전부였지만 온몸이 진동을 하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후.”
한숨과 함께 갑자기 키이스가 멈췄다. 나는 간신히 숨을 되돌리며 눈을 떴다. 초점이 맞지 않아 몇 차례 눈꺼풀을 들썩거렸다. 나만큼이나 거친 숨을 몰아쉬는 키이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키스하고 싶어요.”
자그맣게 사그라드는 음성에 키이스가 웃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한 미소였다. 거기다 더해서 그는 내 말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입술이 맞닿았을 때, 나는 그만 눈을 크게 떠 버렸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너무나 달콤하고 부드러운 혀가 내 입술을 핥고 입 안을 열었다.
나는 시트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덜덜 떨리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그 증거로 키이스의 살갗에 닿는 내 팔이 은밀하게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꽉 물려 있는 아래에서 쾅쾅 울리는 맥박이 느껴졌다. 닿았다 떨어지며 다시 내려오는 입술은 너무나 부드러운데 맞물린 곳은 요란하기 그지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키스는 수줍은 듯 조심스러우면서도 아래로는 망설임 없이 조여 대며 그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됐어?”
키이스가 입술을 떼고 물었다. 그래 봤자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서 내가 조금만 고개를 비틀면 바로 키스가 이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대신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입술이 스치듯 문질러져 내 생각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키이스가 미간을 일그러뜨렸지만 불쾌해하는 건 아니었다. 그 증거로 그는 멈칫하면서 긴장하더니 곧 하아, 하고 탄식 같은 한숨을 내뱉으며 사정했다. 뒤늦게 나는 그가 좀 더 버티려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잘못해서 그를 재촉해 버린 걸까?
나는 그의 찌푸린 얼굴에 긴장해 조심스럽게 키스를 하며 일부러 아래를 꽉 조였다. 조금이라도 키이스가 더 내 몸을 즐겼으면 좋겠다. 혹시나 이 남자가 내게 질릴까 봐 무서웠다. 하루라도 더 오래 이 남자를 소유하고 싶다. 한 번이라도 더 이렇게 안고 싶다.
제발 단 1초라도 더.
키이스가 미간을 더욱 깊게 일그러뜨리며 거친 신음을 내뱉었다. 내가 너무 매달린 걸까? 내가 지겨워졌을까? 당황해 멈칫하자 키이스가 갈라진 음성으로 말했다.
“계속해.”
내 입술에 거칠게 입술을 문지르며 키이스가 명령했다.
“더 하라고, 여기.”
난폭하게 아래를 치는 바람에 나는 헉, 숨을 삼켰다. 놀란 눈을 크게 떴지만 키이스는 진심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초조하게 내 뺨에 키스하고 아래를 지분거리는 감각에 나는 안심하는 한편 조금씩 은밀한 기쁨이 올라왔다.
내 몸을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될까.
터무니없는 자만심이라고 스스로를 비웃으면서도 자꾸만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아래를 끌어당기며 맞물린 곳을 문지르자 키이스가 다시 신음했다. 내 위에 엎드려 온몸을 마주한 채로 그는 내 움직임을 즐기고 있었다. 뜨거운 한숨이 연거푸 귀로 쏟아지고, 키이스가 내 귀를 입술로 머금었다.
순간 그가 내게 표식을 남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은 달콤한 바람이었지만 그저 망상에 불과했다. 키이스는 내 안에서 마음껏 즐기면서도 정작 표식을 남기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저 귀를 빨아들이고 핥는 게 전부였다. 장난처럼 이를 세우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수없이 많은 상대에게 표식을 남길 수 있는 알파이면서도 굳이 내겐 남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이 남자의 섹스 상대일 뿐이니까.
비참한 기분이 들기 전에 나는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주지시켰다.
알고 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그저 내 몸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라는 걸.
하지만 그래도 계속 나를 안고 있잖아.
내 온몸에 느껴지는 이 남자의 무게와 체온은 지극히 현실이었다. 감히 키스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날들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감사한가.
나한테 질리기 전까지는 이 남자는 내 것이다.
나는 더욱더 필사적으로 키이스를 끌어안고 오로지 그를 흥분시키는 데만 집중했다. 키이스가 내 귓가에서 깊이, 연거푸 신음했다. 진심으로 달아오른 숨소리였다. 나 때문에 이 남자가 이렇게나 흥분하다니. 내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어쩌면 나는 이 남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음탕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런 짓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
키이스가 아래를 움직이려 잠시 상체를 들었을 때, 나는 그의 어깨를 밀어뜨렸다. 방심하던 그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위치가 바뀌었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뭐야, 이건?”
키이스는 물었지만 불쾌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물었다.
“섹스죠, 당연히.”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며 그의 위에 엎드린 채 느리게 몸을 움직였다.
“아…….”
아직 연결되어 있던 곳이 느슨하게 풀어졌다가 다시 꽉 조여들었다. 지금까지 키이스가 리드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를 유혹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긴 오메가가 된 후의 섹스는 모든 게 다 처음이지.
나는 내심 자조적으로 생각하며 아래쪽에 집중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키이스의 웅건한 페니스가 깊숙이 찌르고 들어왔다 다시 묵직하게 빠져나갔다. 슬그머니 허리를 들자 부드러운 회음부에 까칠하고 짙은 체모가 여실히 느껴졌다. 억세고 풍성한 음모가 문질러지는 감각은 정말 기묘하면서도 가슴 설레게 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회음을 그의 치골에 문질렀다.
키이스가 손을 내려 내 엉덩이를 붙잡았다. 손가락 끝에 지그시 힘을 줘 누른 그가 나를 더 깊이 끌어 내렸다.
“아!”
곧바로 빳빳하게 굳어진 성기가 깊숙이 들어왔다. 키이스가 거친 숨결 사이로 명령했다.
“일어나 앉아.”
나는 시키는 대로 주춤거리며 허리를 완전히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손을 옮겨 내 골반을 잡고 그대로 눌러 버렸다.
“……!”
순간 생각지 못한 깊이에 나는 숨을 삼켰다. 지금까지 삼켰던 것과는 달랐다. 단단하게 일어선 성기가 처음 닿는 곳을 문질렀다. 그 상태로 키이스가 내 몸을 짧게 흔들었다.
“아아!”
나는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몸 안에서 그의 페니스가 난폭하게 요동치며 내벽을 문질렀다. 화끈거리는 속살이 아우성을 쳤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는 잠시 그대로 멈췄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됐을 때, 불쑥 키이스가 물었다.
“이 자세는 별로 안 해 봤어?”
역시나 놀아 본 남자답게 그는 바로 눈치를 챘다. 화들짝 놀랐으나 당황할 때가 아니었다. 속으로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나는 입을 열었다.
“아무도 이렇게 도중에 날 방해하지 않았거든요.”
“방해했다고? 내가?”
“물론이죠.”
뻔뻔하게 대답하자 그는 뜻밖에도 웃음을 지었다.
“그럼 네가 내 위에서 다람쥐처럼 꼼지락거리는 동안 내 손은 뭘 해야 하는데?”
“기다려야죠, 제가 끝낼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맙소사, 넌 대체 어떤 남자들하고 잤던 거야?”
갑자기 키이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제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남자들하고죠, 물론.”
“그래서, 두 손이 멀쩡한데 그냥 너를 내버려 뒀다고?”
그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황급히 말을 지어냈다.
“그럴 수밖에요. 묶어 놓고 올라탔으니까.”
그 말에 키이스는 처음으로 멈칫했다. 조금은 안심했다.
“묶는다고?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가 물었다. 나는 대담하게 되물었다.
“안 됩니까?”
혹시 화를 내지는 않을까, 잠시 불안해졌으나 키이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갑자기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으로 유쾌하게, 정말로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연결된 곳이 찌르르 울려 올 정도였다. 순간 당황한 내게 그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해 봐, 재밌겠군.”
자, 하고 그가 두 손목을 붙여 내밀었지만 정작 나는 패닉에 빠졌다. 이 남자가 정말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어, 어떡하지. 나는 급하게 발을 뺐다.
“다음 기회에 하죠, 준비가 필요하니까.”
“준비?”
“그때가 되면 알 겁니다.”
내심 심장을 두근거리며 눈치를 봤다. 이 남자가 속아 넘어가지 않으면 어떡하지? 키이스의 대답이 늦어질수록 나는 조급해졌다. 고작 몇 초도 참지 못하고 나는 아래를 과감하게 조였다. 키이스의 미간이 순간 일그러졌다.
“아프잖아.”
찰싹, 경고하듯이 내 엉덩이를 가볍게 때린 키이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그때는 언제 오는 거지?”
“준비가 되는 대로요.”
나는 재빨리 말을 받았다.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기대가 되는데.”
나는 대담하게 웃어 보였다.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웃는 것 외에는. 대답을 얼버무렸지만 키이스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머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곧이어 입술이 맞닿았다. 혀가 뒤엉키면서 타액이 흘렀다.
거듭 키스를 나누며 그가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가 느슨하게 놓아주고 다시 움켜쥐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물고 있던 구멍이 되풀이해서 벌어졌다 움츠러들면서 저절로 그의 성기를 조였다 풀었다. 나는 잊지 않고 엉덩이를 움직여 회음을 그의 치골에 문질렀다. 까슬한 음모가 비벼질 때마다 안쪽이 달아올라 애액이 흘러넘쳤다.
“하아…….”
키이스가 길게 숨을 토해 내며 내 안에 사정했다. 나는 그가 사정을 끝낼 때까지 몇 번이고 내 안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배 속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감각은 눈가가 시릴 정도로 달콤했다.
더 바라면 안 돼.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부드러운 키스는 깊게 맞물려 다정하게 이어졌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키스에 답하며 생각했다.
난 이걸로 충분해, 하고.
* * *
눈을 뜬 나는 어둠 속에서 잠시 멍하니 눈꺼풀을 들었다 놓았다. 무심코 몸을 뒤척이자 곧바로 아래쪽에 뭔가가 부딪쳤다. 이내 나는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확 얼굴이 달아올랐을 때, 느슨하게 허리에 감겨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가 즉시 끌어당겨졌다.
흡, 하고 내 목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켠 키이스가 천천히 내쉬었다.
“깼어?”
“아…… 네. 죄송합니다, 지금 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말하려다 그만 멈추고 말았다. 키이스가 내 허리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줘 그만 숨을 쉴 수가 없었던 탓이다. 순간적으로 호흡이 멈춰 버린 내 머리 위에서 그가 잇새로 내뱉듯이 말했다.
“말했잖아, 주말 내내 박을 거라고.”
당연한 듯이 뇌까린 말에 나는 당황했다. 키이스가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장면을 들켜 버린 건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 뒤로 몇 번이나 했다. 원래 내일 오후에나 돌아올 예정이었으니 앞당겨 했다고 생각하면 할 만큼 한 게 아닌가……?
“왜 그래?”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듯 키이스가 물었다. 오랜만에 듣는 날이 선 음성이었다. 침대에서 저런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라 나는 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저…… 그러니까, 충분하지 않았나 해서……. 원래는 내일, 아니, 오늘 오후에나 돌아오실 예정이었으니까요…….”
말을 하던 도중에 나는 깨달았다.
“아, 오늘 일정이 있으셨군요. 주말이라 제가 잘 몰랐…….”
“이봐.”
불쑥 그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깨 뒤로 보이는 키이스의 얼굴이 불쾌해 보였다.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거야, 아니면 이제 와서 영어를 못한다는 거야? 내가 지금 스페인어라도 했나?”
“아, 아뇨.”
나는 당황해 황급히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라…… 충분히 하지 않았나 해서…….”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
“……아닙니까?”
망설이다 묻자 키이스는 이를 갈았다.
“도중에 네가 자 버렸잖아.”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잠시 어둠 속에서 눈만 깜박이자 키이스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다른 분들하고는 이 정도로 안 하셨던 것 같은데요, 하고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켰다. 어쨌든 이 남자가 나를 원한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배 속이 아직 불편하다고 해도, 설사 내일 눈을 뜨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키이스를 거절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어렵게 사과를 하자 키이스는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게 다냐는 듯이. 나는 망설이다 물었다.
“제게 원하시는 게 뭐든 있다면…….”
“뭐든?”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움칠하고 눈치를 봤다. 키이스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내 허리를 안고 있던 팔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대로 뒤쪽에서 다리를 잡고 밀어 올리는 바람에 무릎이 꺾어져 그의 팔에 걸쳐졌다. 몸이 저절로 앞으로 기울었다. 키이스는 뒤에서 내 몸을 덮치다시피 한 채 아래쪽을 비비기 시작했다.
숨이 저절로 가빠져 눈을 감았다. 키이스가 주름을 마찰할 때마다 안에서 흐르는 체액이 젖은 소리를 냈다.
“아!”
키이스가 내 목을 세게 깨물더니 이어서 강하게 빨아들였다. 나는 아파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헉!”
불시에 안으로 들어오는 페니스에 방심하고 있던 나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키이스는 여전히 내 목을 문 채 아래를 쳐 대기 시작했다. 밑구멍을 거칠게 드나드는 뜨거운 성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아,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이토록 흥분할 수 있을까.
“으, 으응, 으, 아, 하아, 아.”
나는 숨소리와 함께 신음을 뱉어 내며 정신없이 온몸을 들썩였다. 아래가 빠지고 들어올 때마다 몸속이 가득 찼다 비워졌다.
키이스는 사정을 하면서도 박아 댔다. 나는 꽉 막힌 신음 소리를 내며 아래를 한계까지 벌렸다. 배 속이, 아랫도리가, 구멍이 욱신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더 난폭하게 쑤셔 줬으면. 더 빨리, 더 깊이, 더 크게 날 벌려 줬으면.
아래가 찢어질 것 같은데 욱신거리는 흥분은 더욱더 거세지기만 했다. 마침내 키이스가 아래를 빈틈없이 맞물린 채 깊게 신음했을 때, 나는 밑을 힘껏 조이고 그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 *
“아야…….”
화끈거리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실컷 물고 빨아들인 목덜미를 느긋하게 핥아 올리던 키이스가 멈칫했다. 나는 망설이다 그를 돌아보았다.
“아파?”
당연한 질문을 하는 그에게 나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목이 어떤 상태일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키이스는 터무니없게도 쪽, 하고 귀여운 소리를 내며 입술에 키스했다. 순간 당황한 내게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몸을 뺐다. 갑자기 연결되어 있던 곳이 훅 빠져나가 나는 배 속이 텅 비어 버렸다. 채 다물어지지 않는 구멍에서 숨을 쉴 때마다 체액이 굵게 흘러나와 아래를 흠뻑 적셨다.
불시에 혼자 남겨지자 허전함과 당혹스러움이 일시에 밀려왔다. 갑자기 낯선 거리에 혼자 남겨진 아이의 기분을 느끼며 황망히 눈만 깜박이는데, 익숙한 단내가 느껴졌다. 키이스가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후우, 무심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어렵게 몸을 돌려 바라보자 이내 그가 말했다.
“열어 봐.”
툭, 던져진 작은 상자를 나는 그저 보기만 했다. 맥없이 눈만 깜박이고 있는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침대로 올라온 키이스는 짧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상자를 집어 든 그가 뚜껑을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건 시계였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올려다보자 키이스는 직접 그것을 꺼내더니 내 손목을 잡아 들었다. 차가운 금속이 살갗에 닿으니 반사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모르게 뺄 뻔했던 손을 꽉 잡아 제지한 키이스가 시계를 채워 주었다. 나는 묵묵히 쳐다만 봤다.
작업이 끝난 후 키이스는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생소한 기분으로 손목을 가져와 시계를 들여다봤다. 화려한 보석이 박혀 있는 시계는 내 처지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물건이었다. 키이스의 상대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제법 보석을 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부하는 터라 이게 내 연봉보다 더 비쌀 거라는 사실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묘하게 심장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그를 올려다봤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마음에 들어?”
키이스는 뭔가 기대하듯이 나를 바라봤다. 선물을 했으니 당연히 감상이 궁금하겠지. 나는 사이를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름다워요. 그런데 왜…….”
주저하며 묻자 키이스는 선뜻 내 옆에 누워 허리를 안아 끌어당겼다. 당연한 듯이 내 머리칼에 코를 묻고 체취를 확인한 그가 편안한 한숨을 내쉬었다.
“엔젤의 집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면 안 되거든.”
키이스는 기분이 좋은지 나른하게 말을 이었다.
“항상 보석을 사 가는데, 목걸이나 반지는 금물이야. 전에 그걸 삼키고 죽으려고 한 적이 있어서. 삼킬 수 없을 정도의 크기라면 괜찮겠지만, 뭐, 그런 건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
귀찮다는 듯이 그는 대충 말을 맺었다. 하지만 나는 키이스의 말에서 생각지 못한 점을 발견했다.
“저, 직접 사셨습니까?”
내게 지시하지 않았으니 엠마에게 지시한 걸까? 그를 낳은 오메가에게 선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그동안 키이스는 엔젤에게 방문을 할 때는 항상 보석을 산 모양이었다. 이 남자에 대해 몰랐던 일면을 알게 된 것 같아 나는 당황했다. 그러고 보면 키이스의 가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엔젤에게 주는 선물은 직접 골라야 한다는 게 룰이야. 어이없지, 달아났다 잡혀 올 때마다 보석을 선물해야 하다니. 광대놀음이 따로 없어. 그걸로 무슨 짓들을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
키이스는 투덜거리며 더 바짝 나를 끌어안았다. 맨살이 찰싹 달라붙어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는 더욱 그의 품에 파고들며 과감하게 등으로 팔을 둘렀다. 키이스가 했듯이 나도 그의 페로몬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뇌를 녹여 버릴 듯한 단내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아래가 젖어 들었다.
흥분한 탓인지 내 향 역시 짙어졌다. 키이스의 아래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쪽 다리를 열어 그의 허리에 걸쳤다. 키이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으…… 윽.”
안은 충분히 젖어 있었지만 들어올 때의 압박감은 여전했다. 나는 무심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키이스는 내 얼굴에 키스하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하아, 하고 들뜬 숨이 흘러나왔다.
“제 것도, 직접 고른 겁니까……?”
나는 더운 숨결 사이로 물었다. 키이스는 웃으며 입술에 키스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나는 가슴이 벅차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아는 한 이 남자가 섹스를 하는 상대에게 줄 선물을 직접 고른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
키스를 되돌리려다 실패했다. 키이스가 슬쩍 아래를 뺐다가 쑥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만 그의 턱에 입술이 부딪치고 만 것이다.
“아!”
짧게 비명을 지르자 키이스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뭐 하는 거야?”
그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그때의 키이스가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내게 미소 짓던 그, 다정하게 몸을 만지던 손, 말 위에 올라 웃는 그의 뒤로 쏟아지던 햇살과 그날의 풀 냄새, 거기에 섞여 든 키이스의 달콤한 페로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왜 그래?”
키이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입을 열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 안이 꽉 메어 거친 숨을 간신히 내쉬었던 나는 문득 눈가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키이스가 나를 보며 웃고 키스하다니.
난폭하게 나를 밀어내고 욕설을 퍼붓던 과거의 그와 눈앞의 키이스가 겹쳐져 나는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다.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어. 가슴 한구석이 저며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저 바라만 봤는데.
키이스가 나한테.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눈앞의 그가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좋아해요……!”
키이스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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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아,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