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6/77)

35

뜻밖의 방문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키이스는 유난히 창백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남자가 여길 왜 온 거지? 나는 무심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없이 내 얼굴을 내려다보던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네?”

다짜고짜 묻는 말에 나는 또다시 의아해졌다. 그저 눈만 깜박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던 키이스가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피곤한 듯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왜 전화 안 받았어?”

“전화요?”

바보처럼 계속 그의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키이스는 나의 이런 반응에 짜증이 났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누구…….”

무슨 일인지 궁금해 현관으로 나왔던 엠마가 깜짝 놀라 어머나, 하고 탄성을 질렀다. 키이스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 위를 지나쳐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뒤늦게 나는 그가 얼굴을 찌푸린 이유를 깨달았다.

잠시 난처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 각자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엠마가 제일 먼저 말을 꺼냈다.

“피트먼 씨가 여길 왜…….”

갑자기 그녀가 아, 하고 뭔가를 깨달았다. 그것이 뭔지 나 역시 뒤이어 눈치챘다. 벨이 울리기 직전 엠마가 했던 질문의 답을 그녀 스스로 알아낸 것이다.

혹시나 그것을 입 밖에 낼까 봐 나는 조마조마했다. 물론 나는 즉시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의심하지 않을 만한 연기력이 필요했다. 과연 내가 태연하게 고개를 가로저을 수 있을지 스스로도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엠마는 그것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슬며시 나와 키이스를 번갈아 본 게 전부였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도 역시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음, 전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연우, 아까 하던 얘기는 다음에 다시 해요. 일단 알았어요, 오빠한테 물어볼게요.”

“아, 고마워요. 엠마. 잠깐만요, 바래다줄…….”

말을 하다 키이스의 존재를 눈치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비켜 그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키이스는 잠자코 걸음을 옮겼다.

“잠시 배웅해 주고 오겠습니다.”

키이스의 등에 대고 말했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문을 닫고 엠마와 함께 건물을 내려갔다.

도로에는 낯익은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길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휘태커를 보고 멈칫했다.

“……차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 물음에 엠마는 말없이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잠자코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차 앞까지 가서야 비로소 엠마가 입을 열었다.

“피트먼 씨와 그런 관계가 된 줄은 몰랐어요. ……그건, 피트먼 씨가 맞죠?”

굳이 명확하게 짚지 않아도 ‘그것’이 뭔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나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엠마는 씁쓸해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차의 문을 연 그녀가 운전석에 앉기 전 나를 돌아보았다.

“이 일은 연우가 직접 얘기하기 전까지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줄 알고 고백한 겁니다. 엠마를 믿으니까.”

그러자 엠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 물어본 건 내가 그에게 물어보고 따로 알려 줄게요. 쉬는 날이 언제인지 확인해 봐야 하니까 당장은 말해 주기가 어려워요.”

“그래요, 고마워요.”

“뭘요.”

그녀는 사이를 두고 말했다.

“친구인걸요.”

엠마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었다. 인사로 가볍게 포옹을 하자 그녀 또한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요.”

“네, 연우도.”

그녀는 선뜻 운전석에 앉아 문을 닫았다. 능숙하게 차를 출발시키는 그녀를 나는 잠자코 지켜보았다. 엠마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길을 건너 내 집으로 향했다. 뒤늦게 나를 알아본 휘태커가 어, 하며 손을 들어 보였지만 나는 간단히 눈인사를 한 게 전부였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점차 마음이 무거워졌다. 대체 키이스가 왜 온 걸까? 전화는 왜 했지?

뭔가 일이 생겼나?

퇴근 후 집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그런 것치고는 휘태커를 비롯한 경호원들이 너무 태평해 보였다. 그들이 모르는 뭔가가 터진 건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현관문을 열었다.

키이스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엠마와 내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걸어가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찻잔과 디저트를 치웠다.

“……뭐라도 마실 걸 드릴까요?”

입에 발린 권유를 하자 키이스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의 맞은편에 섰다.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급하게 찾아오실 정도면 뭔가 큰일이 생긴 게…….”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뜸을 들이며 그는 말했다.

“왜 여기로 왔어?”

또다시 되물을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덕분에 나는 한 박자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제 집이니까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키이스가 허벅지 위에 놓인 손을 꽉 쥐었다 천천히 폈다. 손가락이 또다시 희미한 소리를 내며 그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내 집으로 갔었잖아.”

“네, 차를 가지러.”

손가락의 속도가 빨라졌다.

“엠마는 여기 왜 온 거야?”

“제가 초대했습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

문득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제가 왜 그런 걸 일일이 얘기해야 합니까? 제 사생활인데요.”

모데라토에서 알레그로로 변형된 박자가 갑자기 딱, 멈췄다. 키이스가 멈칫하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는 냉정하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신 이유는 뭡니까?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뭐라고?”

이번에는 키이스가 되물었다. 그가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나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여기까지 올 정도면 큰일이 생긴 거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런 시간에.”

말을 하고 나서 반응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키이스는 말이 없었다. 어째서인지 뜸을 들이다 그는 입을 열었다.

“……계산이 틀렸어.”

나는 뜻밖의 말에 눈을 깜박였다.

“네? 무슨 계산이요?”

“관객 수, 2주 동안 합계가 틀렸다고.”

잠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게 지금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로 급한 얘깁니까?”

키이스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또다시 허벅지를 두드렸다. 이젠 아예 시작부터 알레그로였다.

“어쨌든.”

갑자기 키이스가 손가락을 딱 멈추고 화제를 돌렸다.

“준비해, 내 집으로 갈 거니까.”

“제가 왜요?”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내가 원하니까.”

나는 뚫어져라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키이스의 밑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싫다면요?”

키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내가 이미 그가 예상했던 대답을 내놓았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키이스가 벌떡 일어섰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움칠거리며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좁은 집 안에는 달아날 곳이라고는 없었다. 이내 등이 벽에 닿고, 나는 퇴로가 막혀 버렸다. 여유 있게 나를 향해 걸어온 남자가 멈춰 섰다. 고작 두어 걸음을 남기고 선 남자에게서는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숨이 막힐 듯한 단내를 느꼈다. 파블로프의 개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이 남자를 보기만 해도 발정하고 이 향기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연우.”

나는 흐려진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키이스는 조용히 말했다.

“준비해.”

그가 손을 들었다. 뺨에 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나는 움칠했다. 굳어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키이스가 가만히 뺨을 쓰다듬었다.

“같이 가자.”

“…….”

“연우.”

그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이 남자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부드럽게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내가 한없이 약해지고 만다는 걸 이미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아 버렸다. 이 남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네.”

* * *

차 안에서 그와 나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의미 없이 스쳐 가는 밤 배경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키이스는 또다시 손가락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아주 느리게.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신 그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긴 모양이었다. 아예 끊은 건지 어쩐 건지 희미한 잔향조차도 나지 않았다. 그가 페로몬마저 없애 버리자 더 이상 키이스에게서는 어떤 향도 맡을 수 없었다. 그가 사용하는 산뜻한 스킨 향 외에는.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차 안에는 아직 희미한 페로몬 향이 배어 있었지만 이것 또한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기억이 희미해지듯이 그렇게.

“병원은 가 봤어?”

키이스의 물음에 나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뇨.”

“예약을 해 줄 테니까 가 봐. ……그 남자는, 정리했나?”

잠깐 사이를 두고 그가 다시 물었다. 나는 흘긋 시선만을 움직여 그의 쪽을 쳐다봤다. 키이스는 나와 마찬가지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뇨.”

내 대답에 그제야 키이스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다시 차창 밖으로 시선을 향하며 말을 이었다.

“아직 생각 중입니다.”

“뭘?”

“어느 쪽을 정리할까 하는 걸요.”

키이스는 잠시 반응이 없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그가 황당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건방진 말을 지껄이는 나는 그의 계산 안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키이스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피트먼 씨도 아직 표식을 새긴 오메가를 찾지 못했잖아요? 그다음에 얘기하죠, 내가 정리를 할지 안 할지.”

키이스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나와 그 자식을 저울질하고 있는 거야?”

황당해하는 게 당연했다. 감히 저 남자를 상대로 이런 도박을 할 사람이 또 있을까?

나만큼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지.

나는 시니컬하게 웃어 버렸다.

“당신하고 했던 섹스가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런데 내가 굳이 그 남자를 먼저 정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키이스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창밖을 보며 무심히 말을 이었다.

“당신도 표식을 새긴 그 오메가가 나타나면 마음이 변할지 모르니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서로 향을 맡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난 발정 난 고양이니 다른 알파의 향을 맡으면 어떤 반응을 할지 알 수 없고, 당신도 당신 오메가의 향을 맡으면…….”

“관계없어.”

키이스가 불쑥 내 말을 가로질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키이스는 냉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페로몬 향 같은 거 관계없다고. 네 향을 맡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어차피 네가 향을 없앴을 때도 난 너한테 끌렸었어.”

뜻밖에도 그는 냉정하게 그 사실을 인정했다. 설마 그가 자신의 입으로 그걸 말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나는 놀라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키이스는 오히려 그런 내 반응이 우습다는 듯이 입가를 비뚤어뜨렸다.

“말했잖아? 여자였다면 진작 잤을 거라고.”

아무 말 하지 않는 내게 키이스가 손을 뻗었다. 천천히 내 뺨을 만지는 손길에 나는 묵묵히 있었다. 키이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남자라도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했다면 시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침묵이 흘렀다. 키이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돌리는 법도 없었다. 다만 그 진심이라는 것이 뚜렷이 자신만의 관점이라서 남과 다를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착각했듯이.

거짓말쟁이는 나지.

나는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많은 거짓말을 할 것이다. 이 남자를 상대로.

우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침묵이 무거운 건 아니었다. 키이스의 손이 내 뺨을 감싸더니 엄지손가락이 느슨하게 내 아랫입술을 쓰다듬었다. 나는 슬며시 입술을 열었다. 키이스의 손가락이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이에 걸린 단단한 엄지손가락을 나는 지그시 깨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키이스에게 향해 있었다. 우리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서로를 응시했다. 그의 손가락을 이 사이에 아프지 않게 걸고 은근히 혀를 올렸다. 혀끝으로 살며시 쓰다듬자 키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천천히 그의 손가락 끝을 혀로 애무했다. 키이스는 그대로 내버려 뒀다.

희미하게 페로몬 향기가 느껴졌다. 그가 흥분한 것이다. 억제하지 못한 향이 흘러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혀로 손가락을 감고 입술로 빨아들였다. 그의 페니스를 애무하듯.

그도 그것을 눈치챘다. 바지 앞섶이 발기하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슬며시 그의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키이스가 손을 내 머리 뒤로 돌려 끌어당겼다. 나는 버티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끌려갔다.

하, 키이스가 깊이 탄식했다. 그가 눈을 감았다. 키스를 하려는 것이다. 입술이 닿기 직전 나는 속삭였다.

“오메가부터 찾아요.”

키이스가 눈을 떴다. 곧바로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똑바로 그를 바라보며 엷게 웃었다.

“그전까지는 당신하곤 안 잘 겁니다.”

서서히 차가 속도를 줄여 갔다. 나를 잡고 있던 키이스의 손에서 힘이 사라졌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키이스에게 고정한 채 피하지 않았다. 키이스의 얼굴은 열이 사라져 그저 무표정하기만 했다. 나는 그 얼굴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 * *

“넉 달째군요. 병원 진단은 처음입니까?”

의사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나는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아뇨. 다른 병원에서 받았는데, 저, 혹시, 오진이 아닐까 하고…….”

“임신 맞습니다.”

의사는 여전히 그저 사무적인 태도로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이런저런 검사 결과와 현재 상태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듣고 있는데, 의사의 마지막 말이 귀에 들어왔다.

“첫 임신이라고 해도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혹시 먹고 있는 약이라도 있습니까?”

바로 대답하는 것은 어려웠다. 나는 심호흡을 사이에 두고 대답했다.

“억제제를…… 좀 오래 먹었습니다, 정량보다 많이.”

“저런.”

의사는 곧 알겠다는 듯이 감탄사와 함께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나 오래, 양은 어느 정도였는지 세세하게 묻고 난 뒤 그는 볼펜 끝으로 뺨을 긁었다.

“약은 모두 끊으세요. 이대로라면 아이의 생명까지 위험합니다. 임신했는데 굳이 억제제를 먹을 이유가 있나요? 혹시 파트너가 없습니까?”

정해진 배우자 없이 혼자 아이를 낳는 오메가들은 많았다. 흘긋 표식이 있는지 확인하며 지레짐작하는 시선에 나는 슬쩍 얼버무렸다.

“아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당장 가서 얘기를 하세요. 표식을 새기면 훨씬 안정이 될 겁니다. 만약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임시로 다른 약을 처방해 주겠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니까 지속적으로 먹을 수는 없어요. 또 처방 외에는 먹지 말고…….”

이것저것 당부의 말을 한 그가 덧붙였다.

“그 외에 불편한 건 없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가 입을 열었다.

“잠을 자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몸이 더 안 좋은 것 같기도…….”

“첫 임신이면 더 그럴 겁니다. 수면제를 처방해 드리죠.”

처방을 넣는 그를 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약이 좀 안 듣는 타입이라서…… 혹시 좀 강한 약은 없습니까?”

의사는 음, 하고 턱을 쓰다듬었다.

“임신한 상태라 약을 함부로 쓰기는 힘들고…… 불면증이 아주 심할 때만 먹는 걸로 하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술은 안 되지만 특히 이 약을 먹을 때는 절대 금지입니다. 술과 함께 먹으면 보통 사람도 그냥 넘어가서 꼬박 사흘까지도 깨어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그 외 심각한 부작용은 없다고 하지만요. 기본적으로 아이한테도 안 좋으니 수술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술은 절대 마시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네.”

나는 약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

약국에 들러 약을 타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병원이 모여 있는 일대에는 제법 유명한 공원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푸딩이 먹고 싶어져 근처의 가게에 들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냉장고에 든 푸딩을 종류별로 다 꺼낸 후였다.

녹을 텐데.

나는 고민했지만 그중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전부 다 사서 가게를 나왔다. 점원이 신기한 듯이 내 얼굴을 흘긋 봤지만 무시했다.

빈 벤치에 앉아 하나를 꺼낸 나는 포장을 뜯고 스푼으로 귀퉁이를 조심스럽게 떠올렸다. 차갑고 말캉한 푸딩이 입 안에서 뭉개졌다. 천천히 한 입씩 먹으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함은 표식을 새길 때 맛보았던 달콤한 피 맛과 닮았다. 그때의 흥분이 되살아나 오싹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하나를 다 먹고 또 하나를 꺼냈다. 평소 단걸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은 너무 먹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식사가 끝나면 꼭 단 음식을 디저트로 찾았다. 그것만이 아니라 이제는 벤치에 앉아서 푸딩을 까먹고 있다니 정말 이상했다.

아이 때문일까?

나는 무심코 배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이 안에 아이가 들어 있다는 건 확실했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혹시 낳을 생각이 없다면 빨리 결정해야 할 겁니다. 저는 낙태 수술은 안 하니까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아서 예약을 서두르세요.>

의사의 경고를 떠올리며 나는 푸딩을 떠먹었다. 툭, 푸딩 조각이 다리에 떨어졌지만 그냥 앉아 있었다. 물렁한 덩어리가 내 다리를 적시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것은 갑자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괜찮습니까? 어디 안 좋아요?”

불쑥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다. 멍한 눈을 깜박이는 내게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 기절한 건 아니었군요. 다행입니다. 혹시 몸이 안 좋은 겁니까? 911을 부를까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말을 하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지?

그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한 듯 미소를 지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났던가요?”

“글쎄요…….”

멍하니 중얼거렸던 나는 뒤늦게 그의 귀를 감싸고 있는 이어폰을 발견했다. 아, 하고 놀란 내가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경호원이라고 하셨던…… 조슈어, 조쉬 맞습니까?”

“아!”

그도 역시 나를 기억해 냈다. 어두운 밤 보았던 그의 상큼한 얼굴이 밝은 햇살 아래서 환하게 빛났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연우. 잘 지냈습니까?”

선뜻 내미는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 조쉬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아 말을 꺼냈다.

“이런 데서 뭘 하고 있습니까? 근무 시간 아닙니까?”

“오늘은 병원에 볼일이 있어서…… 당신은 여기 무슨 일입니까?”

“아, 근처 병원에 저도 볼일이 있어서요.”

대수롭지 않은 말에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려는데, 불쑥 아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대디, 대디.”

“오.”

뒤뚱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니던 아이가 지루한 듯 조쉬에게 보채며 칭얼거렸다. 남자는 이내 아이에게 주의를 돌리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그를 닮은 듯하면서도 어딘지 달랐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마도 다른 쪽 부모를 닮은 거겠지, 생각했다.

……어디서 봤던가?

나는 문득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처음 봤을 게 분명한 아이의 얼굴이 신기하게도 낯이 익었다.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조쉬는 아이를 능숙하게 들어 올리더니 한 손 위에 발을 얹어 놓고 허공으로 쓱 올려놓았다. 아이는 겁이 나는 듯하면서도 흥분으로 두 눈을 빛내며 어렵게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엇차.”

“꺄아하하.”

아이가 흔들거리기 무섭게 남자는 낚아챘다. 품 안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와 미소 짓는 남자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내 마음은 더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 무심코 배를 쓰다듬는데, 조쉬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 녀석은 피트, 내 보물이죠. 자, 피트. 인사해야지.”

“우웅…….”

아이는 엄지손가락을 빨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 피트? 난 연우라고 해.”

아이는 여전히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꺄르륵 웃으며 조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 녀석, 부끄러워하네.”

조쉬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조쉬 품 안의 아이가 흘긋 나를 훔쳐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또다시 웃더니 얼굴을 감춰 버렸다.

순간 나는 기억해 냈다, 그 얼굴을.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자 조쉬가 의아해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놀란 눈을 깜박이는 그의 반응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내 머릿속으로 남자에 대해 들었던 말들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갔다.

“아, 저…… 혹시, 여동생이 있지 않습니까……? 엠마라고 하는.”

그 말에 지금까지 미소 짓고 있던 얼굴이 돌변했다. 싸늘하게 식어서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누구시죠?”

당연한 물음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 남자가 오메가였다니. 그제야 이렇게 잘생긴 외모가 이해가 갔지만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남자도 약을 먹기 때문일까?

뒤이어 시선은 남자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로 향했다.

혼자 아이를 낳은 오메가.

나는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참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엠마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요…….”

나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엠마가 말하길, 당신도 아이를 낳았다고…….”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도, 라면……?”

나는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털어놓았다.

“저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막힌 숨과 함께 내뱉은 고백에 그는 놀란 듯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깨문 내게 남자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30분 정도 더 시간을 낼 순 있겠군요.”

그리고 그는 선뜻 말을 이었다.

“얘기를 들어 드리는 정도라면 하겠습니다. 저라도 괜찮다면.”

물론 괜찮았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엠마에게 얘기를 듣고 혹시 만날 수 있는지 물어봤었습니다. 주변에 얘기를 나눌 만한 상대가 없어서…… 하지만 당신이 엠마의 오빠인 줄은…….”

알고 나서 보니 닮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엠마 쪽이 훨씬 더 선이 부드러워서 미처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아, 하고 조쉬가 뭔가를 기억해 낸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 쉬냐고 메시지를 보냈더군요. 이런 일인 줄은 몰랐는데……. 뭐 어쨌든 결과가 같으면 된 거죠.”

조쉬는 편하게 피트를 안아 들고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럼 얘기를 해 보시죠, 왜 저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부터.”

나는 떨리는 입술을 달싹여 간신히 말을 꺼냈다. 그는 내가 말을 하는 동안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럼 지금 진찰을 받고 오는 길입니까?”

대충 얘기를 들은 조쉬가 물었다. 나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이의 예방 접종 때문에 근처의 소아과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그저 어쩌다 상사와 잤는데 임신해 버렸다고만 털어놓았다.

“그에겐 말하지 않을 겁니까? 아니면 그 알파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상대는 알파겠죠?”

현실적인 지적에 나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그는 몰라요. 저도 계속 오진일 거라고 생각해서…….”

“말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조쉬가 농담처럼 물었다. 나는 순간 신경질적으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조쉬의 품에서 어느새 꼬박꼬박 졸고 있는 피트를 내려다본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글쎄요, 그건 연우의 선택이니까.”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피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물었다.

“……무섭지 않았습니까?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고 들었는데.”

조쉬는 흘긋 피트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벌써 푹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쉬는 피트의 양쪽 귀를 커다란 손으로 막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알았을 때는 이미 수술을 하기엔 늦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낳았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낳고 나니까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수술을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죠.”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낳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더더욱 현실감이 없었다.

“결정은 빨리 하는 게 좋아요. 시간이 흐르면 돌이킬 수 없게 되니까.”

조쉬가 냉정하게 지적했다. 나는 어렵게 네, 하고만 말했다. 조쉬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오메가들을 많이 경험해 본 의사 쪽이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안심이 될 겁니다. 아이를 낳는 쪽이든 그러지 않는 쪽이든.”

일부러 그는 말을 순화해서 하는 듯했다. 피트는 물론이고 내 배 안에 있는 아이가 혹시나 듣고 상처를 받을까 염려가 되는 듯이.

존재조차도 아직 확신이 가지 않는데.

머릿속이 복잡해 할 말을 잃은 내게 조쉬가 틈을 봐서 물었다.

“……엠마와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고 했죠?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조쉬의 말에 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든지요. 비밀 조항만 아니라면…….”

“사무실에 남자가 몇 명입니까?”

“네?”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쉬는 자못 심각하게 다시 물었다.

“그, 비서실에 근무한다고 하던데. 거기 직원은 몇 명이죠? 남자는 몇이나 됩니까?”

왜 이런 걸 묻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비서실에 근무하는 남자는 팀장인 저뿐입니다. 나머지는 엠마를 포함해서 모두 여자예요. 세 명이고요.”

“……뭐야?”

조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불쑥 거친 말을 내뱉었다. 나는 놀라 눈을 깜박였다. 왜 저러지? 뭐가 잘못됐나? 다음 말을 하기를 기다렸지만 조쉬는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여전히 찌푸린 표정으로 한참을 내 얼굴만 바라봤다.

“……하아. 엠마, 엠마.”

급기야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가로젓는 그를 보자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왜…… 엠마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돕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자 조쉬는 흘긋 곁눈으로 나를 보더니 불쑥 물었다.

“당신, 엠마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난데없는 질문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소중한 친구죠. 항상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하아아…….”

조쉬가 유난히 긴 한숨을 뱉어 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딘지 허망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에 나는 당황했다. 잠시 그대로 말이 없던 조쉬가 휴대 전화를 꺼냈다. 의아해하는 내게 그는 입을 열었다.

“번호.”

“네?”

갑작스러운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묻자 조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귀찮다는 듯 말했다.

“번호 말해 봐요, 내가 갔던 병원을 소개해 줄 테니까. 내 이름을 대면 알 겁니다. 중절 수술도 한다니까 그쪽에서 상담을 받아 봐요, 단 너무 늦진 않게.”

“아……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보겠…….”

돌변한 태도에 왠지 내키지 않아 거절하려고 하니 갑자기 그가 찌푸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의 압력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나는 번호를 불러 주었다. 조쉬는 묵묵히 번호를 저장한 후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단조로운 수신음이 들리고 나자 조쉬가 말했다.

“내 번호 저장해 놓고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해요. 오늘 일은 비밀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고맙습니다.”

그는 한 번 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전 이제 곧 돌아가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바래다주지 않아도?”

조쉬가 곧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네,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조쉬는 다시금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결국 어깨를 으쓱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가볍게 인사를 한 남자가 푹 잠이 든 피트를 한 팔로 안아 들고 일어섰다. 짧은 인사를 남기고 가는 조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다시 휴대 전화를 내려다보았다. 검게 꺼진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어딘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나는 눈을 깜박이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호를 확인해 보니 키이스였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전화가 끊기더니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는 한숨을 내쉰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피곤한 음성으로 대답하자 곧바로 키이스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디야? 진료는 끝났다고 하던데.]

나는 기가 막혔다.

“병원에 확인해 본 겁니까?”

내 물음에 키이스는 잠깐 사이를 뒀다가 다시 물었다.

[어디야?]

나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

“병원 근처 공원 벤치요.”

[지금 갈게.]

곧바로 전화가 끊겼다. 나는 물끄러미 화면이 사라진 휴대 전화를 내려다보았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