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저택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키이스는 계속해서 스튜어드와 나눴던 대화를 곱씹었다. 생각할수록 머릿속은 정리되긴커녕 오히려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더 이상 연우가 나를 놀라게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키이스는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문질렀다.
변이라니.
<몰랐습니까?>
스튜어드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걸 몰랐을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는 듯이.
키이스도 믿기 어렵지만 불행히도 사실이었다. 그는 사이를 두었다가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았어, 내게는.>
키이스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변이라니, 베타였다는 말인가? 오메가로 발현한 게 아니라 후천적인 거였다고?
<저런.>
스튜어드는 오늘 몇 번이나 내뱉은 감탄사를 또다시 반복했다. 동정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키이스는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넌 어쩌다 알게 된 거냐고.>
<왜냐면 전 의사거든요. 상담이 가능한.>
이유를 먼저 알려 준 스튜어드가 말을 이었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하러 왔을 때 이것저것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죠. 처음엔 계속 페로몬 수치가 불규칙해서 애를 먹다가, 원인을 알아내려고 질문을 하다 보니…….>
스튜어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심으로 피트먼 씨가 모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죠.>
키이스 역시 생각 못 했다. 연우가 아직도 자신에게 숨기는 게 있었을 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너무 마음 쓰지 마시죠.>
제법 위로랍시고 한 말이었지만 소용없었다. 키이스는 미간을 일그러뜨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변이를 하려면 어떤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 잘 알 텐데?>
<그렇죠. 연우도 페로몬을 뒤집어썼다고 하더군요.>
쾅, 하고 키이스는 소파의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쳐 버렸다. 두꺼운 원목이 쩍 갈라지는 것을 흘긋 본 스튜어드는 다음 달 진료비에 추가로 청구를 하겠다고 내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깊은 얘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다만 누군가의 페로몬 때문에 변이했고, 원래는 베타였다는 것이죠.>
여기까지 말한 스튜어드는 짐짓 가벼운 말투로 덧붙였다.
<하지만 옛날 얘기고, 지금 결혼한 건 피트먼 씨지 않습니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죠. 웃어요, 최후의 승자인 셈이니까.>
“개소리.”
키이스는 낮은 음성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스튜어드는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그는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변이를 할 정도라면 엄청난 페로몬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많은 페로몬을 뒤집어쓰는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남자하고 잔 건 당신이 처음이야.>
섹스는 하지 않았다니 더 이상하다. 차라리 원 나이트가 나았다. 섹스를 하지 않았는데도 변이할 정도라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얘긴데.
나와 자기 전까지 몇 년이나 섹스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꽉 막힌 녀석을 대체 누가.
일부러 폄훼를 해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키이스는 깊은 신음 소리를 내며 얼굴을 문질렀다.
인정해, 알고 있잖아. 저 녀석을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도 있다는 걸. 그게 나지, 이런 망할!
화가 치밀었지만 자신이 화를 낸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그게 언제 적 얘기인가. 상대와 깊은 사이였다고 해도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지금은 나와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잖아.
……하지만 모두 잊어버렸지.
거기다 변이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페로몬을 뒤집어쓰는 것만이 아니라 강렬한 뭔가가 더 있었을 것이다. 섹스가 아닌, 섹스와 버금가는 뭔가.
<사랑해.>
연우의 속삭임이 귓가에 되살아나고, 지금껏 믿고 있던 모든 게 부옇게 흐려졌다.
내가 남긴 표식은 사라지고 없어.
냉혹한 현실이 그를 일깨웠다.
만약에, 스튜어드의 이론이 맞는다면.
그는 천천히 하나하나 단어를 되새기듯 생각을 곱씹었다.
연우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지도 몰라.
그 순간 누군가 심장을 세게 움켜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 * *
“오셨습니까, 피트먼 씨.”
현관에 나와 있던 찰스는 키이스가 차에서 내리자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키이스는 빠른 걸음으로 그를 스쳐 걸어가며 물었다.
“스펜스는?”
“저녁을 먹고 잠들었습니다.”
바로 2층의 스펜서 방으로 향하는 키이스를 따라 걸으며 찰스가 물었다.
“식사를 준비할까요? 아니면 바로 쉬시겠습니까?”
“씻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거야.”
키이스는 던지듯 말한 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스펜서가 없었다면 그는 연우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아이의 자는 얼굴을 보고 뺨에 키스를 한 뒤 방으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시차를 확인한 후 그는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난 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세요. 연흰데요.]
연우의 동생이 잔뜩 긴장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잘 지내지?”
건성으로 안부를 묻자 그녀는 네, 하고 말했다.
[모두 잘 있죠? 거기도. 오빠는 요즘 전화를 안 받던데, 바쁜가요?]
“연우는.”
키이스는 한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지금 몸이 좀 안 좋아. 그래서 말인데, 묻고 싶은 게 있어.]
“아파요? 어디가, 어떻게요?”
다급하게 묻는 목소리에 키이스는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다.
“걱정할 정도는 아냐, 지켜보고 있는 중이니까 당장 어떻게 되진 않아.”
[음, 저기, 그럼 심각한 상황은 아닌 거죠?]
“아냐. 심각해할 만한 일도 없고.”
강하게 부정하자 그제야 그녀는 안심한 듯 음성이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오빠는 몸이 약해서 걱정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키이스는 시간을 끌지 않고 물었다.
“연우가 변이를 했다는 게 사실이야?”
[네?]
깜짝 놀랐던 연희가 잠시 시간을 뒀다가 대답했다.
[네…… 맞는데요. 왜 그러시죠?]
키이스는 신음을 삼키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낮게 흘러나온 음성에 연희는 기억을 더듬듯 그러니까, 하고 뜸을 들였다.
[대학 다닐 때였는데…… 그것 때문에 휴학까지 했었거든요. 그 전까진 여자 친구도 있었고 제법 인기가 많았는데 엄마는 이제 어떻게 하냐면서 걱정했어요. 남자인 오메가들은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도 결국은 잘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횡설수설하다 그녀는 말을 맺었다. 키이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분위기를 살피듯 침묵하던 연희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 뒤에 몸이 약해진 거 같다고 엄마는 생각하더라고요. 최근엔 특히 많이 아프니까.]
그건 다른 이유야, 하고 키이스는 생각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잠시 사이를 둔 그가 입을 열었다.
“변이를 한 이유에 대해서는, 들었나?”
이유야 뻔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말을 듣고 싶었다. 연희가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어느 알파한테 페로몬을 뒤집어썼겠죠. 그래서 엄마가 더 패닉이었던 건데…….]
거기까지 말했던 그녀는 재빨리 덧붙였다.
[예전 일이라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오빠한테 직접 물어보시면 어때요?]
키이스는 대답 대신 질문을 되돌렸다.
“전혀 몰라? 상대가 누군지?”
[그게…….]
연희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정말로 잘 몰라요. 그냥 폴로 선수라는 얘기만 들었어요.]
순간 연우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폴로를 좋아하나?>
내 질문에 연우가 뭐라고 대답했지?
<네…… 아마도?>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피하던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럼, 그건.
누구지?
키이스는 깨달았다. 연우는 단순히 폴로 경기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연우가 좋아한 건 폴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폴로 선수였던 누군가.
그럼.
키이스는 창백하게 굳어 생각을 떠올렸다.
연우가 지금 사랑하는 건 누구인가.
* * *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엠마는 난데없이 울린 전화벨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황급히 번호를 확인한 그녀의 입에서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네, 피트먼 씨.”
딱딱하게 굳어진 말투로 전화를 받자 건너편에서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알아봐야 할 게 있어, 급한 일이야.]
물론 그러시겠죠.
직장생활의 더러움을 새삼 실감하며 엠마는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아둔 볼펜을 들어 적을 준비를 했다.
“네, 말씀하세요.”
다음에 나온 키이스의 명령은 전혀 짐작조차 못 했던 것이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엠마는 다시 물었다.
“연우에 대해서 알아 오라고요?”
[그래.]
즉시 대답이 돌아왔다. 난데없는 상황에 엠마는 잠이 확 달아났다. 내가 아직 꿈을 꾸나? 어리둥절한 채 눈을 깜박였던 그녀는 전화를 끊기 전에 서둘러 다시 확인을 했다.
“피트먼 씨, 연우의 뒷조사를 하라고 지시하신 게 맞습니까?”
[맞아.]
키이스는 한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엠마가 뭔가 더 질문을 꺼내기 전에 먼저 그는 덧붙였다.
[연우가 다니던 대학, 주변 친구들, 주로 했던 활동,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뭘 했는지, 쉬는 날엔 뭘 했는지 전부 다 알아 오라고. 알아들었겠지?]
“……그러니까, 연우가 대학에 다닐 때 있었던 일 전부를 조사해 오라는 거 아닙니까? 인간관계도 포함해서.”
[그래, 1주일 내로.]
엠마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간신히 음성을 가라앉혀 물은 말에 키이스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시키는 대로 해.”
전화가 끊기고, 엠마는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휴대 전화를 내려다봤다.
“뭐야, 도대체……?”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연우에게 사고가 났던 건 알고 있다. 대외비이지만 기억 상실이라는 얘기도 전해 들었고, 따라서 키이스가 연말까지 긴 휴가를 낸 탓에 비서실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연우의 뒷조사를 하라니, 무슨 일일까.
엠마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사고가 난 날 실렸던 기사가 즉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날 바로 연우는 사고가 나 기억을 잃어버렸다. 혹시 이 두 가지와 관련이 있는 걸까?
“설마…….”
망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제대로 된 관계라면 상대의 뒷조사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히 뭔가 있어. 그게 뭘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봤자 나오는 답은 없었다.
“다른 커플의 일 따위 내가 알 게 뭐야.”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한 그녀는 침대에 털썩 누워서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자려고 노력할수록 정신은 점점 더 맑아지고, 급기야 다시 일어나고 말았다.
도대체.
그녀는 이를 갈며 침대에서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찬장에서 이럴 때 마시려고 사 둔 독한 위스키를 꺼내 얼음을 넣은 글라스에 콸콸 부어 넣었다. 단숨에 절반을 비운 그녀는 난폭하게 손등으로 입을 훔치고 소리 내어 불평을 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 * *
일찍부터 병원은 방문객으로 북적거렸다. 정확하게는 한 명이 몰고 온 인원이 너무 많은 것이다. 복도를 가득 채운 경호원들을 보며 스튜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피트먼 씨는 정말 과보호가 심하군요.”
“죄송합니다.”
이 상황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연우는 무안해져 바로 사과하고 말았다. 스튜어드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만큼 당신을 아낀다는 거겠죠.”
“네…….”
자신감 없는 연우의 대답에 스튜어드가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직도 믿기 어렵습니까? 피트먼 씨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연우는 흘긋 그의 뒤를 보고 키이스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대답했다.
“네.”
이번에는 좀 더 명확한 대답이 나왔다. 스튜어드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데? 당신은 정말 욕심이 많군요, 아니면 불신이 심하든가.”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해 얼굴을 붉힌 연우는 부정했다가 곧 수그러들었다.
“……아니, 둘 다일지도요.”
“저런. 어쩌다 이렇게 연우를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피트먼 씨는.”
놀리는 건지 씁쓸해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말투로 그는 혼잣말을 했다. 딱히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연우의 귀에는 확실히 들릴 만큼 큰 소리였기 때문에 그는 다시 무안해졌다.
“제가 욕심이 많은 건 맞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피트먼 씨가 저를 사랑한다니…….”
그리고 연우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혹시 제가 그의 약점을 잡고 협박했다든가 하는 건 아니겠죠?”
잔뜩 불안해진 음성에 스튜어드는 놀란 눈을 떴다.
“설마. 납치당해서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는 들어 봤어도 협박당하고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그 말에 연우는 안심하긴커녕 더더욱 사색이 됐다.
“혹시 제가 피트먼 씨를 납치…….”
“연우.”
갑자기 끼어든 음성에 연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열린 문 너머에 키이스가 찌푸린 얼굴로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한 연우에게 키이스는 여전히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
“망상을 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 네가 날 납치한다는 게 말이 돼?”
성큼성큼 걸어와 침대 옆에 선 키이스가 연우를 내려다보았다.
“응?”
커다란 그림자가 연우 위로 드리워졌다. 앉아서 올려다보니 더더욱 거대한 키이스의 체격에 연우는 무심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뇨.”
“알았으면 됐어.”
키이스는 선뜻 허리를 펴고 이번엔 스튜어트를 향해 물었다.
“끝났어? 이제 퇴원해도 되나?”
“검사 결과만 확인하면 그래도 됩니다.”
선뜻 말한 스튜어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쯤 나왔으려나. 잠깐 앉아 계시죠. 가 보고 오겠습니다.”
스튜어드는 친절하게도 병실 문까지 닫아 주고 사라졌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키이스는 스튜어드가 앉았던 보조 의자에 앉더니 입을 열었다.
“스펜스가 많이 보고 싶어 해.”
“어제 봤는데요.”
농담 삼아 말하자 키이스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오늘은 안 봤잖아.”
“…….”
“눈을 뜨자마자 너부터 찾는데, 없으니까 울었어. ……달래느라 늦었는데.”
거기까지 말한 키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연우가 움칠하자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대체 네가 날 납치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해야 나올 수 있는 발상이야?”
연우는 즉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너 자신을 제대로 보라고.”
한 차례 연우를 훑어본 키이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다리가 내 팔보다 얇잖아.”
연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피트…….”
“섬.”
꿀꺽 소리 나게 침을 삼킨 후 연우가 항변했다.
“……당신이 보기엔 제가 많이 약해 보이겠지만.”
“넌 약해.”
키이스는 가차 없이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연우가 입을 열었으나 항의할 틈은 없었다. 곧바로 키이스가 말을 이었다.
“차에서 확인해 봤잖아? 네가 있는 힘껏 밀어 봤자 나가떨어지는 건 너라고, 내가 아니라.”
“그건.”
연우의 얼굴이 수치심에 더더욱 붉어졌다. 당신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하고 말하려는 찰나 뒤에서 스튜어드가 문을 열었다.
“마침 서류를 가져오던 직원과 복도에서 마주쳤지 뭡니까. 오면서 봤는데 결과는 좋습니다. 이대로 퇴원해도 되겠어요.”
낭보를 전한 그는 흘긋 연우를 보더니 물었다.
“휠체어를 준비할까요?”
“아니, 됐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키이스가 벌떡 일어서더니 연우를 안아 들었다.
“앗……!”
연우는 놀라 비명을 삼키며 자신도 모르게 키이스의 셔츠를 붙잡았다. 흘긋 아래를 본 키이스가 엷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연우는 꼼짝없이 그에게 매달려 차까지 옮겨졌다.
건물 밖으로 보이자 휘태커가 차 문을 열고 비켜섰다. 곧장 연우를 좌석에 내려놓은 키이스가 짧게 웃음을 지었다.
“이래도 네가 날 납치할 수 있다고 말할 거야?”
연우는 할 말이 없어져 아뇨, 하고 고개를 숙였다. 기가 죽은 모습 또한 사랑스러웠지만 키이스는 그에게 키스하는 대신 허리를 세웠다. 일부러 그를 외면하고 뒤를 돌아보자 따라 나온 스튜어드가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은 괜찮은 상태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혹시나 상태가 나빠지면 바로 연락을 주십시오.”
거기까지 말한 그는 아, 하고 뒤늦게 생각난 듯 덧붙였다.
“히트사이클이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가능하면 흥분하지 않게 하시고…… 무슨 얘긴지 아시겠죠?”
야릇한 미소를 덧붙인 그에게 키이스가 기가 막힌 듯 말했다.
“내가 지금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잊었어?”
“아, 맞다. 그랬죠.”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시치미를 떼는 게 가증스러웠다. 키이스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휘태커가 차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스튜어드가 입을 열었다.
“왜냐면.”
잠깐 멈칫한 사이 그는 말을 이었다.
“이번 히트는 예정에 없이 온 거라서 주기에 맞춰 또다시 히트사이클이 올 수 있거든요. 그때는 약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연우는 약을 과하게 쓰면 안 되는 상태라…….”
“그럼 어떻게 하라는 얘기야?”
키이스의 말투가 저절로 짜증스럽게 튀어나왔다. 스튜어드는 글쎄요,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가라앉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죠?”
키이스는 그에게 욕설을 뱉을 뻔했으나 일단 참았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스튜어드의 말이 정답일 것이다. 그 외에 찾아갈 의사도 딱히 없었다.
“……닫아.”
키이스의 명령에 휘태커는 바로 차 문을 닫았다. 즉시 그가 조수석으로 옮겨 가고, 이어서 차가 출발했다. 줄을 지어 병원을 떠나는 차들을 지켜보며 스튜어드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지막 차가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그가 휙,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정말 귀찮은 놈들이라니까, 극알파들은.”
* * *
“대디!”
찰스 옆에 붙어 서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던 스펜서는 차가 보이자 그만 앞으로 뛰어나오려 했다. 재빨리 그의 뒷덜미를 잡은 찰스가 그대로 안아 올렸고, 스펜서는 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안달복달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마침내 속도를 줄인 차가 그들의 앞에 멈추고, 먼저 조수석에서 내린 휘태커가 문을 열었다. 그제야 찰스는 안고 있던 스펜서를 내려주었다.
“대디, 대디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달려온 스펜서는 먼저 내린 키이스가 그에게 미소를 지은 뒤 다시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의아해져 멈춰 섰다. 스펜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키이스는 상체를 숙여 연우를 안으려 했다.
“걸을 수 있습니다.”
연우가 말했지만 키이스는 가볍게 비웃었다.
“못 걷게 해 줄까?”
“…….”
연우는 잠자코 팔을 뻗어 그의 목을 안을 준비를 했다. 선뜻 연우를 안아 든 키이스가 허리를 펴자 아래에서 스펜서가 우아, 하고 소리쳤다.
“파파, 나도! 나도 올라갈래! 나도!”
“스펜스.”
“태워.”
찰스가 아이를 대신 안아 주려 하는데, 키이스가 무심하게 명령했다.
“발밑에서 얼쩡거리면 위험하니까 태우라고.”
“알겠습니다. 자, 스펜스.”
찰스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 없이 스펜서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스펜서는 신이 나 까르르 웃으며 키이스의 어깨 위로 올라가 목말을 탔다. 그 모습을 본 연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그냥 절 내려놓으시면…….”
“연우.”
“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좋지 않은 결과가 있었던 걸 기억하며 연우는 흠칫 긴장했다. 키이스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물었다.
“내가 너와 스펜스를 한 번에 안아 들고 침실까지 간 게 몇 번일 거 같아?”
물어보는 건가?
“어…… 세 번…… 요?”
나름으로는 최대한 많은 숫자를 불렀지만 돌아온 건 기가 막혀 하는 키이스의 얼굴뿐이었다. 그제야 연우는 그가 자신에게 질문을 한 게 아니라 그저 비꼰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연우, 그냥 사과할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
“…….”
또다시 사과를 하지 않을 정도의 눈치는 가지고 있었다. 연우가 입을 다물자 키이스는 다시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계단을 걸어올라 현관으로 향했다.
불현듯 연우는 자신이 계단 앞에서 머뭇거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으나 키이스는 그토록 연우가 두려워하던 장애물을 성큼성큼 주저 없이 지나쳤다. 키이스에게는 세상의 어떤 것도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이건 그는 비웃고 지나가겠지, 바로 지금처럼. 연우는 문득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곤란할 때마다 항상 이렇게 나를 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줬을까.
마침 홀에 도착해 연우는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키이스에게 안겨 있기 때문일까?
바닥에 깔린 거대한 카펫에서 시작해 벽을 장식한 화려한 미술품과 그림들, 온통 눈이 부시게 빛나는 샹들리에, 거기다 곳곳에 세워져 있는 조각품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연우에게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어서 와, 집에.”
집.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내 집인가? 정말로, 내가 살던 집일까? 키이스와, 스펜스와.
모두 함께.
“아!”
키이스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연우는 무심코 탄성을 뱉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흘긋 키이스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조심스러운 연우의 시선이 그의 눈과 마주쳤다.
아.
키이스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넋을 잃은 연우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비슷한 장면이 스쳐 갔다.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을 향해 웃음을 짓던 키이스. 자신은 그때 흠뻑 취해 있었다. 왜 그랬지? 멍하니 키이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연우는 의아해졌다. 어째서 난 키이스 없이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을 때, 키이스가 멈춰 섰다.
“왜 그래?”
조용한 음성이었지만 어딘지 초조해 보였다. 연우는 왠지 그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째서인지 전보다 그의 감정이 확실히 느껴졌다. 나의 착각일까? 연우는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그 순간 갑자기 스펜서의 얼굴이 연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는 잔뜩 울상이 되어 키이스에게 몸을 꼭 붙이고 있었다.
“왜 그래, 스펜스? 어디가 안 좋으니?”
연우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향해 물었다. 키이스 또한 스펜서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목말을 태우고 있어서 불가능했다.
“스펜스?”
키이스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건, 대디가 여기서, 떨어졌잖아.”
그 말에 키이스가 멈칫하고, 연우가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스펜서는 울상이 되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저 계단에서, 빙글 했어. 스펜스랑 꼭 안고 저기서 데굴데굴했어.”
스펜서가 작은 손가락을 들어 저기, 하고 가리켰다. 지금 막 키이스가 전부 올라온 계단이 거기에 있었다. 복도에 멈춰 선 키이스에게 안긴 채 연우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봤다. 겹겹이 쌓인 계단을 보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여기서……?
잠시 굳어 있던 연우가 입을 열었다.
“그 사고 때문입니까? 제가, 기억을 잃은 건.”
“……그래.”
키이스는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다는 듯이 바로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계단을 보며 연우는 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방에 다다르자 뒤따라오던 찰스가 그들을 앞질러 문을 열어 주었다.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간 키이스가 연우를 침대 위에 내려 주자 뒤따라 키이스의 어깨를 타고 내려온 스펜서가 연우에게 달라붙었다.
“으, 우에.”
이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고 당시를 떠올린 게 분명했다. 오, 하고 연우는 안타까워하며 스펜서를 꼭 끌어안았다.
“대디.”
“그래, 스펜스. 걱정 마, 이제 괜찮아.”
훌쩍이며 연우에게 코를 박는 아이를 보자 연우는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아, 아기 냄새.
무심코 스펜서의 머리에 키스를 한 연우는 아이 특유의 단내에 미소를 지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탓인지 묘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자신에게 파고드는 아이를 꼭 끌어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그때까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키이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가고 싶은 데라거나.”
“아뇨…… 별로.”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하고 키이스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럼 내일, 함께 나갈까?”
“스펜스도!”
곧바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키이스는 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더니 부드럽게 타일렀다.
“스펜스는 다음에 같이.”
“이잉…….”
아이는 실망한 듯이 울상을 지었으나 키이스가 다음 말을 하자 이내 화색이 됐다.
“스펜스는 내일 피트와 세실이랑 함께 놀 거야. 괜찮지?”
“피트하고 세실?”
와아, 하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고 키이스가 연우에게 설명했다.
“네 친구의 아이들이야.”
“제 친구요?”
“그래. ……기억을 할지 모르겠지만, 조슈어 베일리라고. 넌 조쉬라고 불렀던가?”
연우는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저었다. 키이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럼 난 잠시 회사에 다녀와야 하니까 쉬어.”
말을 한 그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뺨에 키스했다. 연우에게는 그저 다녀오겠다는 말뿐이었다.
……아.
문이 닫히고, 키이스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연우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허전해…….
옆에서 스펜서가 연우의 팔을 잡아당겼다. 놀아 달라는 표시에 그는 엉거주춤 일어났지만 마음에 생긴 커다란 구멍은 웬만해서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 * *
“하반기 결산 보고는 이쪽입니다.”
한 뭉치의 서류 더미를 가리키며 엠마가 말했다.
“내년에 제작 예정인 작품은 이쪽이고요.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건 이쪽입니다. 제작이 시급하니 서둘러 달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슬쩍 덧붙인 말에 키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느리게 책상 위를 두드릴 뿐이었다.
“……지시한 건 어떻게 됐어?”
엠마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철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결제를 마치고 난 후에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는 말과 함께. 하지만 키이스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는 본 척도 하지 않고 엠마가 내려놓은 서류철로 손을 가져갔다.
역시나 예상대로지.
엠마는 생각했지만 키이스를 제지할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연우라면 가능할까? 문득 떠올렸을 때,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이게 전부야?”
“네.”
엠마는 대답했다.
“주신 기간이 너무나 짧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시겠지만 10시간 25분이 전부였거든요, 피트먼 씨.”
부드러운 음성으로 지적했지만 내심 그 안에는 ‘네가 오늘 새벽에 전화해서 지시하는 바람에 이나마도 한계였다, 이 망할 놈아!’라는 말이 숨겨져 있었다. 엠마의 그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이스는 달랑 한 장짜리 보고서를 찡그린 얼굴로 내려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렇겠지.”
순순히 수긍하다니 그답지 않았다. 엠마는 자신도 모르게 흘긋 창밖을 쳐다보았다. 설마 지구가 망하려는 건 아니겠지? 평소처럼 화창한 하늘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키이스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심각한 얼굴로 서류를 노려보던 키이스가 입을 열었다.
“연우가 대학에서 한 활동에 대해서만으로 범위를 좁혀서 알아봐. 그럼 24시간이면 충분하겠지?”
“대학요? 24시간 내에요?”
“그래.”
잠시 사이를 뒀다가 키이스가 말했다.
“확인할 게 있어.”
* * *
저택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선 키이스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정적에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실내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연우는 스펜스와 놀아 주다 함께 잠들어 버렸습니다.”
찰스가 항상 현관 앞에서 자신을 맞이하던 둘의 모습을 무의식중에 찾는 키이스를 눈치챈 것이다. 키이스는 별다른 말 없이 스펜서의 방으로 향했다.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열자 카펫 위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아이와 연우의 모습이 보였다. 둘 다 실컷 놀았는지 장난감이 가득히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철로에서 탈선한 열차를 지나쳐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키이스는 무심코 웃음을 지었다. 스펜서는 열차의 한 칸을 꼭 쥔 채 잠들었고, 연우의 손에는 기관장이 들려 있었다.
대체 뭘 하다 이렇게 된 거지.
키이스는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먼저 아이를 들어 침대로 옮겼다. 천천히 손가락을 펴 꼭 쥐고 있던 기차를 빼낸 그는 바닥에 그것을 내려놓은 뒤 아이의 이마에 키스를 한 후 물러났다. 스펜서는 잠에 푹 빠져 전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돌아선 키이스는 이번엔 연우를 안아 들었다. 방에서 나와 침실로 향한 그는 스펜서와 마찬가지로 연우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다른 점은 어른은 아이보다 쉽게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이었다. 연우는 으응, 하고 작게 잠꼬대를 했다. 키이스가 멈칫하자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가 입을 열었다.
“……키이스?”
나른하게 잠긴 음성에 키이스가 그래, 하고 대답했다. 연우는 살포시 미소를 짓더니 팔을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기다렸어…….”
잠에 흠뻑 취한 목소리가 그를 멈추게 만들었다. 가만히 내려다보자 연우는 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내 알파.”
갑자기 키이스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이건 기쁨일까, 슬픔일까, 아니면 또 다른 감정인 걸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무너지는 이 감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래.”
키이스는 한참 만에 대답했다.
“다녀왔어, 연우.”
미소를 지은 연우가 다시 잠으로 빠져들었다. 키이스는 사라지는 자취를 붙잡으려는 듯 힘껏 그를 끌어안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연우의 페로몬 향기가 가득히 그의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키이스에게 욕망 대신 다른 것을 일깨웠다. 그것의 이름이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키이스는 처음 알게 됐다.
돌아와.
키이스는 간절히 기원했다.
돌아와, 제발.
……다시 나를.
사랑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