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3 1화 (62/77)

키스 미, 젠틀맨(Kiss Me, Gentleman)

아침부터 저택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오늘은 드디어 스펜서가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안 돼, 스펜스. 오늘은 샤키를 두고 가자.”

스펜서는 평소 중요한 날에는 꼭 입고 싶어 하는 세일러복에 반바지를 입고 보터를 썼다. 연우는 이날을 위해 구입한 정장을 입히고 싶었으나 아이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 하지만 인형까지 허락할 수는 없었다.

꼭 끌어안고 있는 상어 인형을 가리키자 이내 스펜서의 얼굴이 충격으로 하얗게 변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그만 연우는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럼 스펜스, 면담을 하는 동안엔 샤키는 휘태커 씨에게 맡겨 놓자. 괜찮지?”

한발 물러서 타협안을 내놓자 스펜서는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이번엔 키이스를 올려다봤다. 한껏 간절한 얼굴로 쳐다보면 키이스는 언제나 그의 말을 들어주곤 했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아이에게 한없이 물러터진 그의 성향을 익히 아는 연우로서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인형을 들고 원장실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그때까지 똑바로 서서 그들을 지켜보던 키이스가 조용히 팔짱을 끼더니 입을 열었다.

“대디 말이 맞아. 인형을 가져가되 면담을 하는 동안엔 휘태커에게 맡기자고, 알겠지?”

믿었던 파파로부터 배신당한 스펜서의 얼굴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아이가 조만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그만 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알았다고 허락할 뻔했다. 하지만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키이스가 아이를 번쩍 안아 들더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스펜스, 파파가 뭐라고 했지? 새로운 친구를 사귀러 가는 거라고 했지?”

“응.”

아이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키이스는 놀랄 만큼 다정한 음성으로 그를 달랬다.

“그런데 샤키하고만 있으면 다른 친구가 스펜스하고 친해지고 싶어 해도 어렵지 않을까? 봐, 이렇게 인형을 쥐고 있으니까 악수를 할 수가 없잖아?”

“어…….”

그 말에 스펜서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친구들하고 만나서 인사를 할 동안만이야. 잠깐만 샤키랑 떨어져 있으면 돼. 할 수 있지? 스펜스는 용감한 아이니까.”

“……응.”

그제야 아이는 마음이 풀어졌는지 급히 팔로 눈물을 문질러 닦았다.

“잠깐이면 괜찮아.”

“그래. 휘태커가 문밖에서 샤키와 함께 기다릴 거야, 알았지?”

키이스가 슬쩍 시선을 향하자 휘태커는 눈치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확인한 스펜서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더니 인형을 꼭 쥐었다.

“난 할 수 있어.”

“그래, 스펜스.”

키이스가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뺨에 키스했다. 덩달아 파파의 뺨에 키스한 아이가 금세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해적이 샤키를 잡으러 오면 어떡해?”

“휘태커가 지켜 주지.”

키이스가 대답과 함께 슬쩍 눈짓을 하자 휘태커는 눈치 빠르게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그렇구나.”

스펜서는 안심이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샤키는 아저씨가 지켜 주고, 나는 세실을 지켜?”

“……그게 무슨 소리야, 스펜스?”

키이스의 반응이 조금 늦었다. 여전히 웃는 얼굴을 보며 아이는 해맑게 대답했다.

“나는 남자니까 여자애를 지켜 줘야지.”

그 말에 키이스가 미소를 지은 채 연우를 돌아보았다.

“또 베일리의 아이들을 만났어?”

잠깐 주저한 연우 대신 스펜서가 덧붙였다.

“조가 푸딩을 만들어 줬는데, 내가 세실한테 양보했어. 여자아이한테는 친절해야 하니까.”

“……훌륭하구나.”

잠시 사이를 뒀다 말했던 키이스는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연우를 내려다봤다.

“그 빌어먹을 애새끼가 또 내 아들한테 개수작질을 했어.”

“키이스.”

연우가 당황해 그의 이름을 부르자 흘긋 아이를 봤던 키이스가 정정했다.

“연우, 베일리에게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씹어 먹고 싶은 둘째 아들이 실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냐고 정중하게 물어봐 주겠어?”

“…….”

연우는 작게 한숨만 내쉬었다. 하지만 키이스가 이를 갈며 낮은 소리로 뭔가 중얼거리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확한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좋은 말은 결코 아닐 것이다. 연우는 잠자코 모른 체하며 먼저 차에 올랐다. 아이들이 자라면 다 해결될 것이다. 혹시 조쉬의 둘째가 커서도 여장을 좋아한다면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펜스를 잘 가르치면 되니까.

키이스가 너무 예민한 거야, 연우는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끼리 짓궂은 장난을 하거나 작은 거짓말을 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인데 말이지.

키이스가 아이를 안은 채 뒤따라 타고, 곧 차는 저택을 떠났다. 스펜서를 안고 있는 동안 그의 표정은 다소 풀어졌으나 페로몬만은 언짢은 심기를 대변하듯 다소 진하게 주변을 떠돌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