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토요일 아침이었다. 진찰 온 의사에게 퇴원하고 싶다고 알리니, 바로 허락해주었다. 그때까지도 도지윤은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냐고 물어보니, 맹하게 웃으며.
“대리님을 좋아하니까요. 옆에 있고 싶어서요.”
라는 소리나 해서 나를 속 터지게 만들었다.
퇴원하는 나를 도지윤은 사택까지 데려다주었다. 손을 잡아도 되냐고 물어오는 걸 단칼에 안 된다고 하자 시무룩해졌지만 그래도 나를 쫓아오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도지윤이 집 안까지 들어오려 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생각 외로 그는 나를 데려다주고 바로 가버렸다. 병원에서 푹 쉰 덕분에 컨디션은 최상이었고, 한가한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 일요일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도지윤과 평화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다음 주부터는 편안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얇게 감싸 안던 잠기운을 누군가 발로 뻥 차버듯 정신이 갑자기 맑아졌다. 한밤중에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이게 무슨 상황인가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찝찝한 기분을 애써 떨쳐내며 가이딩 패드를 집어 들었다. 또 괴수 출현인가 싶어 확인해본 패드에는, 아무런 알림도 없었다.
“뭐야….”
괴수 출현이 아님에 살짝 안도하며, 그 옆에 있는 핸드폰을 확인하자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재하야. 오랜만이야. 잘 지내?]
전 남친이었다.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핸드폰이 폭탄이라도 되어 터지기라도 할 듯, 있던 자리에 조심해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핸드폰을 자극시키지 않으려 천천히 침대 위로 올라가, 핸드폰에게서 떨어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조용히 이동했다.
탁자 위에 조용히 올라가 있는 핸드폰을 노려보며, 초조함에 입술을 손톱으로 뜯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잠긴 나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끌어 모아 몸을 웅크렸다. 무릎을 감싸 안고 몸이 굳은지도 모른 채, 눈을 떼면 핸드폰이 날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아 시선을 계속 탁자 위로 고정시켜야 했다. 그 상태로 밤을 새 버렸다.
잠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은 볼까지 내려왔고 잡아 뜯은 입술에서 나오는 피가 딱지 져 얼굴이 엉망이었다. 커튼 밖으로 들어오는 빛이 내 정신을 깨우기까지 나는 증오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것에 잠식당해 있었다.
내 감정에 익사를 하기 직전 그 순간에 드는 생각은 어이없게도 ‘출근’이었다.
그렇다. 날이 밝았으니, 직장인이라면 무릇 출근을 해야 했다.
‘출근’이란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내 몸은 착실하게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조차 안 하고 습관처럼 움직이는 몸뚱이가 준비를 다 마쳤을 때는, 평소 출근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서둘러서 숙소를 나섰다. 역시 사무실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자마자 손이 자연스레 입술을 잡아 뜯었다. 딱지를 잡아 뜯자 손가락에 묻어 나오는 피가 보였다.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밤새 고민했던 상념들이 나를 따라 직장까지 같이 흘러 들어왔다.
답장을 해야 하나? 씹어야 하나?
답장을 하면 뭐라 하지?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잘 지내냐고 해야 하나? 결혼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
쟤가 갑자기 나한테 문자를 왜 했지?
역시 내가 그리웠나? 일반인 여자랑 살아보니까 그래도 가이드가 낫다고 생각했나? 다시 돌아온다고 하면 어쩌지? 이혼하고 나한테 돌아온다 하면 어쩌지?
이 병신 같은 이재하. 그럴 리가 있나.
내 머릿속은 엉망진창으로 얽히고설켜 끝없는 가정들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말은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꾸 핸드폰으로 가려는 손을 온 자제심을 모아 잡아 내렸다.
이재하. 참아. 너 문자 보내면 좆 된다. 참아. 참아.
시간이 흘러 가이드들이 한두 명씩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인사하던 그들이 내 얼굴을 보며 흠칫 놀랐다.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봐도 놀랄 정도이다. 평소에 유지하던 무표정이 제대로 씌워져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김 주임은 출근하자마자 내 얼굴을 보더니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나에게 지난주의 안부를 물었다.
“대리님. 지난주에 미친개가 역가이딩 했다면서요.”
“아….”
전 남친의 타격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기억조차도 안 났다.
“괜찮습니다. 푹 쉬고 왔어요.”
“아니. 얼굴이 이렇게 말이 아닌데….”
김 주임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미친개 또라이 새끼라 중얼거리며 욕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오해를 풀어줄 의지도 없었다. 초조하게 자리를 앉아있다 9시가 거의 다 됐을 무렵, 나는 김 주임에게 힘없이 웃으며 먼저 일하러 가겠다고 했다.
김 주임이 뒤에서 너무 힘들면 그냥 쉬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이딩 패드와 핸드폰을 챙겨 바로 정원으로 나갔다. 어느새 정원에는 해바라기는 다 뽑아버리고 코스모스가 심어져 있었다. 평소라면 그 모습을 천천히 감상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 따위 없었다.
벤치에 앉아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을 하고, 심호흡을 한 후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바로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요. 재하. 웬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야. 배정화. 너 지금 주변에 사람 많냐?”
[어… 좀 있긴 한데. 왜?]
“사람 없는 데로 나와 봐. 빨리.”
내 목소리가 심각하게 들렸는지, 평소라면 귀찮다고 중얼댈 정화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잠시간 기다리자 다시 정화가 말을 했다.
[어. 왜? 무슨 일인데? 지금 주위에 아무도 없어.]
보안이 확인되자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야. 김강민한테서 어제 새벽에 문자 왔어.”
[…헐. 진짜? 미친놈 아니야. 뭐라고 왔는데?]
“잘 지내냐고 왔더라. 딸랑 한 줄. 이 새끼 뭐야. 무슨 일 있어?”
[아… 일이야 있긴 있는데….]
“뭔데 결혼까지 한 새끼가 나한테 문자질이야.”
죄지은 놈한테 내지 못할 화를 애꿎은 정화한테 내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모든 것을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지금 분노하는 것인지, 혹은 오랜만에 온 전 남친의 문자에 기대감으로 흥분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아마 나는 마음 한구석으로 그가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 따위를 품고 있었나 보다.
[아. 아씨. 너한테 말하기 싫었는데….]
내가 흥분해서 정화를 몰아붙이는데도, 정화는 답지 않게 망설이고 있었다. 불안한 예감이 허리에서부터 싸하게 올라왔다.
“왜왜. 뭐라 안 할게. 무슨 일인데.”
다급히 내뱉은 내 말은 누가 들어도 ‘가만 안 둘 거야’로 들렸다.
잠시 아씨. 아. 등등 의미 없는 말을 지껄이던 정화가 숨을 고르더니 말을 꺼냈다.
[김강민 와이프. 임신 6개월이래.]
하지만 상기된 가슴의 떨림이 짧고 굵게 내뱉은 정화의 말에 잠시 동작을 멈췄다.
내가 센터에 온 것은 지금 2개월이 조금 넘었다. 그렇다는 말은 김강민과 헤어진 지 3개월 정도 됐다는 거다. 그런데 임신 6개월?
“시발. 내가 계산 똑바로 한 거 맞냐?”
순간 내가 바보 천치가 되어서 단순한 사칙연산도 까먹은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맞을걸.]
“와. 이 씨발 새끼.”
이 씨발 새끼. 좆같은 새끼. 거지 같은 새끼. 삼대가 망할 씨발 좆같은 거지 같은 새끼.
[야야. 흥분하지 마. 그 새끼 쓰레기인 거 이제 알았냐.]
“쓰레기여도 이 정도로 쓰레기인지 몰랐지….”
도대체 3년간 내가 사귀었던 사람은 얼마만큼의 쓰레기였던 것인가.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던 나의 과거 3년이 단숨에 재활용도 되지 못할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 충격과 후회와 자괴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정신적 타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정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간 임신은 6개월이고, 가이딩은 매칭률 최고 높은 가이드가 50퍼센트여서 걔한테 열심히 받고 있어. 혹시나 하는 건데 김강민한테 연락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절대 안 할 거야. 개 쓰레기 새끼.”
[어어. 개 쓰레기 새끼니까 문자 보내지 마. 혹시라도 걔 와이프가 보고 오해하면 너만 머리채 잡힌다.]
“시발. 내가 뭘 했다고.”
[네가 뭘 해서 지금 4구역에 가 있냐. 좆같은 새끼가 지 와이프한테 뭐라고 할지 누가 알아. 그러니까 그냥 씹어.]
“알았어.”
[나 일단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이따 다시 얘기해. 알았지?]
“어어.”
힘없이 대답하는 목소리에, 정화가 다급히 덧붙인다.
[야야. 이재하. 울지 말고. 알았어? 쓰레기 새끼 때문에 울면 안 돼!]
“안 울어.”
[아 젠장. 나 진짜 회의 들어간다. 회의 끝나고 바로 연락할게. 미안!]
정화는 회의 때문에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맹세코 울 생각이 없었다.
정화가 울지 말라고 했을 때도 ‘무슨 이런 일로 울어. 나는 괜찮아. 나는 상관없어. 시발.’ 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화가 전화를 끊고 침묵이 내려앉은 그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
의식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가 왜 울고 있지.
방울지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순간, 순간 심장이 너무 아팠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숨을 쉬는 대신 반대로 손을 들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끅끅거리는 소리가 내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왜 울고 있지. 난 괜찮은데. 내가 왜 울고 있는 걸까….
가슴이 너무 아픈 내 몸뚱어리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머리가 충돌하는 듯했다.
몇 분을 울다 심호흡을 서너 번 크게 하자, 점점 몸이 진정이 되었고 눈물도 멈추었다. 손을 들어 눈물을 슥슥 닦으며 마음속으로 전 남친 욕을 왕창 했다. 그러다가 그 전 남친을 사랑했던 과거의 이재하에 대해서도 욕을 했다.
이 머저리 새끼.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다가 이곳이 직장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급하게 화장실로 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거울을 비쳐 보인 나는 엉망이었다.
잠을 못 자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입술은 피딱지가 내려앉아 보기 흉했다. 거기에 울어서 퉁퉁 붓고 빨개진 눈까지. 최악이었다.
이대로 휴가를 쓰고 숙소로 가버릴까 잠깐 고민했지만, 나는 프로 직장인이었다. 이만한 일로 내 연차를 소진하기엔, 내 연차는 너무 소중했다.
좆같은 감정을 애써 꾹꾹 눌러 담고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가이딩 패드를 살펴보자 여지없이 그린코드를 띄운 도지윤이 있었다. 도지윤을 지금 보기에는 좀 껄끄러워 다른 에스퍼 가이딩을 먼저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도지윤에게 가이드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 약간의 망설임 끝에 도지윤의 가이딩을 수락했다.
오늘은 도지윤에게 가이딩으로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쓰러지듯 잠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 그냥 역가이딩을 해달라고 할까. 하루 이틀 정도는 의식도 없이 푹 잠들 수 있을 텐데.
드글드글 끓는 속과 뜨거운 눈가를 애써 꾹꾹 누르며 쓸데없는 생각들을 했다. 이제 가이딩 전용실은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여서 갈 수 있었다. 뻑뻑한 눈가에 힘들어하며 가이딩 전용실의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도지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괜히 심호흡을 하고, 긴장감에 습관처럼 볼 안쪽을 씹어댔다. 얼마나 많이 씹어댔는지 이빨이 살짝 닿자마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가이딩 전용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지윤은 언제나처럼 맹한 미소와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에게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 괜히 가이딩 패드를 조작하는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대리님. 어디 아파요?”
들어와서 시선도 마주하지 않고 가이딩 패드를 조작하자 그가 느릿느릿 물어보았다.
“아니요. 크흠. 잠을 좀 못 자서 그렇습니다.”
빠르게 부정의 답을 내놓으려 했지만, 목소리가 약간 잠겼던지라 목을 가다듬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손 주십시오. 가이딩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시선을 가이딩 패드에 고정하고, 내 왼손을 그에게 뻗었다. 평소라면 마주 잡았을 도지윤이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고집스레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도지윤은 내 손을 잡아주지도, 무슨 말도 하지도 않았다. 그 무언의 신경전에 진 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어 도지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평소 달고 있는 웃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지윤은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엉망이 되었을 얼굴을 애써 뻔뻔하게 들었다. 도지윤의 잘난 낯짝은 단 1mm의 변화도 없이 내 얼굴을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아는 척하지 말아라,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그냥 넘어가라. 하고 외치고 있었지만 도지윤이 정신계 에스퍼도 아니고 내 머릿속을 알 리가 없었다.
우리는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이 너무 장시간 이어진다고 생각했던 그때, 도지윤이 눈을 감았다. 동시에 나도 눈을 다시 가이딩 패드로 내리깔았다.
불편하고 어색한 그 분위기 속에서 도지윤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또 무슨 개소리를 할까 순간 걱정이 되었지만, 도지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순간 흠칫하긴 했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만히 있었다.
도지윤은 가이딩 할 때마다 언제나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오늘도 다르지 않는 평범한 하루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얼른 가이딩이나 해주고 벗어나고 싶었다.
내 옆에 앉은 도지윤은 곧바로 두 손으로 내 머리를 잡아왔다. 순간 키스라도 하려는 건가 싶어 짜증이 팍 솟구쳤다.
지난 가이딩 동안 신사처럼 굴던 그는 사라지고, 병원에서 서로의 속내를 얘기했더니 이제 몸부터 들이대는 건가 하는 꼬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지윤은 내 머리를 더, 더 내려서 본인의 무릎 위로 얹었다. 균형을 잃은 몸뚱어리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해 소파에 철퍼덕 하고 엎어졌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로 상체만 그의 무릎 위에 누운 요상한 꼴이 되었다.
이 상황이 이해 가지 않아 눈만 끔뻑거리고 있자, 도지윤이 한 손으로 내 양쪽 눈을 덮었다.
“…도지윤 에스퍼. 이게 뭡니까.”
이 또라이가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리님이 아파 보여서요.”
“안 아픕니다. 손 치우세요.”
“그럼 대리님이 피곤해 보여서요.”
도지윤은 내 질문에 평소와 똑같이 느릿느릿하게 대답을 해주면서, 다른 한 손으로 내 가슴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저번 주에 내가 병원에서 알려준 것처럼 가만가만, 깃털이 내려앉는 것 같은 손놀림이었다.
난 도지윤이 말한 것과 달리 아프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아니, 아프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척 연기하고 있었지만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다.
난 지금 너무 아프고 너무 피곤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누군가가 나에게 죽으라고 칼을 들이미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나에게 손가락질하던 그 모습. 이따금씩 한가해지거나 멍해질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던 전 남친과의 기억. 사내 정치의 승리자라 믿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엔 버려지던 나.
보고 싶진 않지만 머릿속을 떠다니는 모습들이 내 앞에 TV를 틀어놓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자극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환상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도지윤이 내 눈을 가리며 어둠을 만들어준 순간, 어이없게도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해로운 기억들은 떠오를 새도 없이, 도지윤이 도닥이는 그 손길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갑작스레 서러움이 몰려들어 눈물이 나왔다. 화들짝 놀라 입술을 깨물며 참아보려 했지만, 이미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물만 조금 흘러내리던 것이, 결국에 다시 나는 끅끅거리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으며 진정해보려 애썼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도지윤이 내 가슴을 토닥이는 것이 자꾸 울음을 토해내라고 다독여 주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내가 울어도 당황하지 않고, 도지윤은 일정한 박자로 내 가슴을 토닥였다.
“저. 우는 거. 아니에요.”
“네. 알아요.”
내 눈을, 도지윤의 손을 넘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슨 자존심이 있다고 코 먹은 소리를 내면서 우는 것이 아니라고 우겼다. 그리고 도지윤은 맞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웃긴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자 진정이 되었고 울음이 멈추었다. 거칠어진 숨소리와 작게 나오는 딸꾹질이 부끄러웠다. 차마 손을 걷어내고 도지윤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저. 조금만 잘래요.”
약간 쉰 목소리로 속삭이듯 작게 말을 꺼냈지만 청력이 좋은 도지윤은 다 듣고 대답해준다.
“대리님은 지금 잠들어 있는 거예요. 전 잠든 사람 잠꼬대에 대꾸해주고 있는 거고요.”
도지윤은 여상한 목소리로 개소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개소리였다.
도지윤은 끊임없이 내 가슴을 토닥여 주었다. 점점 수면에 빠져들면서 그 토닥임이 내 몸을 토닥이는 건지, 내 감정을 토닥여 주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도지윤은 개 또라이지만 약속은 잘 지키는 것 같았다. 내 에스퍼는 슬픔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
내가 눈을 뜬 것은 가이딩 전용실의 침대 위에서였다. 방 안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불빛으로 사물의 윤곽만 겨우 구별될 정도로 어두웠다.
도지윤은 내 뒤에서 날 끌어안고 있었고, 나는 편하게 누워 잘 잔 것 같다. 내가 일어나 쓰린 눈을 끔뻑거리고 있자, 도지윤은 어느새 물을 가져와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받자,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도지윤이 준 500mL 생수통을 단숨에 거의 다 비웠다.
울고 나서 퉁퉁 부어버린 눈을 보고도 도지윤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평소처럼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오히려 그런 도지윤의 시선을 피한 건 나였다.
모두가 퇴근을 한 시간이기에 우리도 얼른 일어섰다. 일단 팀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끄고 갈 생각이었는데, 도지윤이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도지윤이 손을 잡아도 되냐고 물어봐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내 손을 살그머니 잡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로 가이드팀에 들러서 내 컴퓨터를 끄고, 손을 잡은 채로 내 숙소 앞까지 같이 걸어왔다.
도지윤에게 오늘 일은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어서 먼저 말을 꺼냈다.
“도지윤 에스퍼.”
“네.”
도지윤이 맹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오늘 일은 죄송했습니다.”
도지윤이 갸웃거린다.
“뭐가요?”
“가이딩 전용실에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도지윤이 대신 말을 해준다.
“우리가 같이 잔 거요?”
“…그게 맞긴 한데, 어감이 좀 이상하네요.”
“우리 같이 한 침대에서 잤잖아요.”
“…그렇죠. 그렇긴 한데….”
오묘한 내 표정에 도지윤의 의아해한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해주기로 했다.
“그… 우리가 한 침대에서 같이 잔 거 말고 다른 거요.”
“그거 말고 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도지윤이 맹하게 물어온다.
“오늘, 우리가 같이 잤다는 거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대리님. 아. 대리님이 평소보다 조금 더 피곤해하셨던 거?”
도지윤의 그 느릿느릿한 말에 나는 처음으로 도지윤에게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얼마나 놀랍도록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감성을 가진 도지윤인가. 이 미친개에도 동정심이란 게 있었구나.
동정심이랑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이구나, 하는 것을 도지윤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
감동의 여운을 진하게 느끼기도 전에 도지윤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잘 자요, 대리님. 도지윤이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오늘의 고마움으로 이 정도 스킨십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도지윤은 그렇게 내 숙소 앞까지 날 데려다주고 훌쩍 떠나버렸다. 바른 자세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나도 집으로 들어왔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정화와 김 주임으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김 주임에게 피곤해서 의무실에서 자고 있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정화에게도 개새끼 따위 잊었다고 말도 꺼내지 말라 하고 핸드폰을 멀리 던졌다.
그리고 엉망진창이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자려던 순간,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전 남친이었다.
[재하야. 잘 지내지? 걱정돼서 문자 넣어봤어]
이 씨발 새끼가.
씹는 게 옳은 방법인 줄은 알고 있지만, 도저히 열받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누웠던 몸을 일으켜 장문의 문자를 썼다.
분노에 차 온갖 욕과 저주를 섞어 썼던 장문의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내가 뭐 하나 싶은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 새끼와 나는 끝이다. 더 이상 한 톨의 감정 따위도 남기고 싶진 않았다.
좋았던 3년의 기억마저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금, 3년의 추억이 농락당했다는 걸 깨달은 지금.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분노처럼 부정적인 감정일지라도, 그 아무것도 그를 향해 불태우고 싶지 않았다.
내용을 싹 다 지우고 간결하게 보냈다.
[불편합니다. 앞으로 안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타인이 봤을 때, 내가 철벽 치고 있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듯이 문자를 보냈다. 증거는 소중한 것이다.
문자를 보내고 진짜 잘 준비를 했다. 내일은 도지윤의 가이딩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다.
도지윤을 생각하자 그가 토닥여주었던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괜히 그가 토닥였던 곳을 손으로 살살 문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온갖 인상을 쓰며 문자를 확인했다.
[이렇게 문자 보내서 미안해요. 그냥 사과하고 싶었어요. 나한테 예쁜 사랑,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었어요.]
쓰레기가 개소리를 써서 보냈다. 쓰레기가 내는 개소리는 보기에도 구역질이 났다. 도지윤이 내는 개소리는 귀여웠는데. 잠이나 자야겠다.
***
그다음 날. 도지윤의 가이딩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던 나의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출근해서 도지윤의 그린라이트부터 처리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이딩 리스트에 그린라이트는 없었다.
오전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다른 에스퍼의 가이딩을 먼저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가이딩 리스트를 확인했지만 그린라이트는 없었다. 매일 봤던 그린라이트가 없어 기분이 묘했다.
도지윤에게 먼저 연락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는 S급 에스퍼였다. 나와는 달리 긴급한 일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수요일에도 그린라이트는 올라오지 않았다. 가이딩 패드를 쳐다보는 내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그의 근태를 찾아보자 ‘출장’으로 잡혔다.
아. 그래서 그린라이트가 없었구나.
그래도 출장이면 출장이라고 미리 말을 해주지.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오전에 한 건의 가이딩을, 오후에는 세 건의 가이딩을 했다. 마지막 가이딩을 하려 가이딩 전용실을 들어갔다.
B급 에스퍼. 이진식.
간단한 인적 사항을 확인하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이딩 패드로 가볍게 서류작업을 하고, 바로 그의 가이딩을 시작했다.
“손 주십시오. 가이딩 시작하겠습니다.”
약간 까무잡잡해 건강미 넘치는 이진식은 바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보통 에스퍼들의 손은 곱디고운데, 이진식은 독특하게 손이 매우 거칠고 굳은살이 많이 박혀있었다.
천천히 에너지를 흘려보내며 그의 에너지를 확인했다.
“그렇게 많이 풀 건 없네요.”
담담히 상태를 진단하며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대충 15분에서 20분 정도면 가이딩이 완료될 듯했다.
1구역에서라면 이런 기나긴 가이딩 시간에 적절한 대화를 하며 사교성을 뽐냈겠지만, 그림자로 조용히 살아가는 4구역에서는 이런 침묵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꿋꿋이 버텨야 했다.
시선을 구석 어딘가에 애써 고정시키며 그의 에너지에만 집중했다. 그러자 의외로 이진식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 도지윤 에스퍼 가이드 맞으시죠?”
“임시 전담 가이드입니다.”
썩 마음에 드는 대화 주제는 아니지만, 이 어색한 침묵을 깰 수 있다면 괜찮았다. 그의 말을 정정해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소문’을 그렇게 피했는데, 결국 내 이름에 ‘도지윤 가이드’라는 꼬리표가 붙고 말았구나.
“저번에 훈련실에서 한 번 뵈었었죠?”
눈알을 굴려 잠시 고민을 했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렇게 눈알을 굴린다고 기억이 떠오를 일은 없지만, 그래도 떠올리려는 척이라도 하는 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덜 준다.
“아….”
그리고 말을 흐리면 대부분 상대방은 알아서 저 좋을 대로 생각한다.
“그 훈련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4구역 센터의 훈련실을 간 것은 저번에 도지윤과 유정환 에스퍼가 훈련했을 때 딱 한 번이다. 그때 관람실에 있었던 에스퍼들 중 한 명인가 보다.
“참 오래 살고 볼일이에요. 그 미친… 아니 도지윤 에스퍼에게도 드디어 가이드가 생기다니요. 하하.”
“…일단 임시라서요. 도지윤 에스퍼에게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이고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죠. 조용히 중얼거리는 말에 이진식이 하하 웃는다.
“그래도 도지윤 에스퍼도 대리님이 마음에 든 것 같습니다. 훈련 때 생각보다 많이 봐주더라고요.”
“아. 제가 에스퍼들 훈련을 자주 본 건 아니라서요. 그게 많이 봐준 건가요? 그 상대 에스퍼 피도 흘리고…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요.”
“에스퍼들 훈련 중에 그 정도야 흔한 편입니다. 치유계 에스퍼가 치료하면 금방 나아요.”
“…그래도 안 아픈 건 아니잖아요.”
“그건 뭐 어쩔 수 없죠.”
이 미친 에스퍼 놈들. 아무리 치유계 에스퍼가 몸을 평소처럼 고쳐놓는다고 해도, 고통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회복되면서 발생하는 고통도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에너지를 펑펑 써대고 있을 치유계 에스퍼들과 그의 가이드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런데 이 대리님. 여기 계셔도 되는 겁니까?”
“네?”
“도지윤 에스퍼 출장 갔잖아요.”
“아.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의 질문에 내가 선선히 대답을 하자, 이진석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대리님은 도지윤 에스퍼 가이드인데 출장 안 따라가요?”
“……?”
그러고 보니 나는 그의 가이드였다. ‘임시 전담 가이드’이긴 하지만 그의 ‘가이드’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이 크게 뜨였다.
한 번도 누군가의 전담 가이드가 된 적이 없어서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출장이라면 그냥 지원팀에서 ‘가라’라고 해서 가는 경우가 다였기 때문이다.
맙소사. 도지윤이 출장을 갔는데 말은 안 해줬다고 서운해할 게 아니라, 나를 안 데려간 것에 목을 짤짤 흔들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아. 하지만.
“…출장이 이능을 쓰는 게 아니라… 단순 출장 업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도지윤 에스퍼 12구역으로 원정 갔는데요?”
이진석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씨발.
“…도지윤 에스퍼 스케줄을 잘 알고 계시네요.”
“유명한 에스퍼에 팬도 많아서 여기저기 떠드는 소리가 많아요.”
이걸 어떻게 모르실 수가 있죠? 대리님은 어디 산속에 혼자 사시나요? 들릴 리 없는 그의 속마음이 귓가를 때리는 것 같았다.
아, 망했다.
“…도지윤 에스퍼가 말도 없이 출장을 가버렸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컨트롤 안 되는 거.”
어쩔 수 없이 도지윤을 비난하며 내 이미지를 챙기기로 했다. 약삭빠른 행동이었지만 내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릴 순 없었다.
내 변명에 이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줬다.
“도지윤 에스퍼가 누구 말을 들을 사람은 아니죠. 그래도 우리끼리는 대리님이 도지윤 에스퍼 목줄을 쥐었다고 생각했어요.”
이진석이 하하하 시원하게 웃으며 ‘개 목줄이요.’라고 덧붙였다.
왜 남의 에스퍼를 개새끼에 비유하는 거야. 지는 말라비틀어진 망고같이 생긴 게.
“개 목줄이라뇨. 도지윤 에스퍼를 개에 비유하시는 건가요.”
정색하며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이진석에게 따져 물었다. 이진석은 눈을 꿈뻑이다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도지윤이잖아요. 대리님. 미친개 도지윤.”
“도지윤 에스퍼가 뭐요. 왜요. 왜 미친개예요.”
내 말에 이진석이 허. 참. 하. 이런 한탄만 몇 번 내뱉었다.
“아니. 미친개를 미친개라 하지 왜 미친개냐 물으시면….”
그 또라이가 한 짓이 있는데… 이진석이 중얼거린다. 나는 이진석의 가이딩이 다 된 것을 확인하며 손을 떼었다.
“이진석 에스퍼. 세상에 나쁜 개는 없어요.”
말문이 막힌 이진석을 보며 도지윤을 떠올렸다. 맹한 웃음의 그 에스퍼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
또다시 잠을 자다 느닷없이 눈을 떴다. 방 안은 깜깜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에 눈이 갑자기 떠진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수면 속에 잠긴 나를 억지로 끄집어 올렸던 일전의 사건들은 괴수과의 전투라든가, 혹은 전남친의 개소리 가득한 문자였었다.
갑작스레 떠진 눈, 갑작스레 선명해진 정신 상태. 애써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누르며 먼저 가이딩 패드를 확인했다.
아무런 경고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다음 확인한 것은 핸드폰이었다. 다행히 아무런 문자도 오지 않았다.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에 털썩 내리 누웠다. 손을 들어 괜히 심장께를 문질렀다. 불안했다. 무엇이 불안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방 안을 울리는 듯 선명했다.
이대로 다시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아 몸을 일으켜 방문을 나섰다. 물이라도 한잔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가는 순간, 어둠을 가르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나는 움직이던 발걸음을 뚝 멈췄고 귀를 기울였다. 내가 들었던 소리는 너무 작고, 스치듯 지나가는 소리였지만 분명 인위적인 소리였다.
그때, 다시 소리가 들렸다.
똑똑.
그 소리는 현관문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발끝을 세워 소리가 안 나도록 조심하며, 현관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에 불이 들어오자 사위가 구별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문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똑똑.
내가 문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밖에 있는 것은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는 절대 내 방에서 들리지 않을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잠이 깨었을까.
다시 한번 불안감에 괜히 심장 위를 손으로 문질렀다.
에스퍼 놈들은 또라이가 많다. 가끔 가이드의 숙소에 쳐들어오는 미친놈들도 존재한다. 지금 이 문밖에도 그런 미친놈이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바로 관리 직원에게 신고를 해야 한다. 그것이 매뉴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에스퍼라면….
이런 내 갈등을 눈치챈 듯이 문밖에서 다시 한번 똑똑 문을 두드렸다. 고작 문을 두드리는 소리일 뿐이지만 그 소리가 다정함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미친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는 사이 센서등이 꺼졌다.
그래. 미친 에스퍼라면 문을 두드릴 게 아니라 문을 부수고 들어왔겠지.
“누구세요?”
잠겨있는 목에서 억지로 목소리를 끄집어내었다. 적막한 새벽, 내 목소리가 안 들릴 리 없건만 상대방은 대답이 없었다.
“누구십니까. 장난치지 마십시오.”
내가 목소리를 내자, 상대방은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린다.
씨발, 이 또라이는 뭐야.
슬슬 에스퍼고 나발이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어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설마 진짜 미친 에스퍼일까 무서워, 안전 고리를 채우고 손바닥만 하게 열었다. 얼른 닫을 수 있게.
작게 열린 문틈으로 검은 장승 같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누군가 서 있으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실제로 그것을 확인하니 긴장감에 명치가 조여 왔다. 애써 침착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시 한번 그림자를 향해 말을 했다.
“누구십니까. 밤이 늦었으니 돌아가십시오.”
힐끗 튼튼하게 걸려있는 안전 고리를 확인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물론 진짜 에스퍼라면 이런 안전 고리 따위 한 손가락으로 박살 내겠지만, 그런 미친 에스퍼라면 애초에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리님.”
순간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꺼질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못 들었을 소리였지만, 침묵밖에 존재하지 않는 어둠 속에서는 생생한 소리였다.
“도지윤 에스퍼?”
마음 한구석에 예측했던 상대가 서 있자, 오히려 긴장감이 풀리며 편안해졌다. 다른 또라이 에스퍼들보다야 차라리 도지윤이 서 있는 것이 심적 부담감이 덜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도지윤 에스퍼?”
분명 12구역으로 출장을 갔다고 들었는데, 방금 돌아왔나? 그럼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대리님… 들어가도 돼요?”
도지윤의 상태가 평소와는 달랐다.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할 수 없지만, 어둠 속에서 행동하는 그의 상태가 불안정했다. 내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하는 불안함이 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낯선 모습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문을 닫아 안전 고리를 풀고 활짝 열어 그를 맞아들였다.
“들어오세요.”
한 발자국 물러나자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 등의 불이 켜졌다. 동시에 도지윤이 현관문을 넘어 들어와 나를 껴안았다.
“도, 도지윤 에스퍼?”
마주 안지도, 떼어내지도 못하고 손만 허공에 든 채, 나는 쨍하고 굳어버렸다. 도지윤은 나를 꼭 껴안더니 내 목에 개처럼 고개를 부벼대고 있었다.
“도지윤 에스퍼. 괜찮아요?”
그의 비정상적인 모습에 일단 그의 고개를 잡아 떼어내어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눈에 갈무리하지 못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고, 홍채의 색이 변해있었다.
일전 도지윤이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일반적인 에스퍼들이 에너지 상태가 불안정할 때에 눈 색깔이 변하는 것에 비해, 자신은 폭주 직전에야 눈 색깔이 변한다던 그 말.
재빨리 에너지를 흘려보내 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곧바로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손으로 재빨리 입을 막았다. 그리고 그사이 도지윤은 다시 내 목에 고개를 처박고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폭주 직전이었다. 시발.
“대리님. 가이딩 해주세요.”
도지윤은 가이딩을 해달라고 속삭이며, 내 티셔츠 속으로 손을 밀어 넣어 등허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맨살에 닿는 도지윤의 손이 너무 뜨거워서 불에 덴 것 같았다.
“도지윤 에스퍼. 일단.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해서든 진정을 시키려고 했지만 도지윤은 말을 들어 처먹질 않았다. 내 목에서부터 귀까지 길게 핥아 올리며 점점 나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어느새 센서 등은 다시 꺼져버렸다.
“윽.”
어둠 속에서 그가 내 귓바퀴를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어댈 때는 난 신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다시 두 손으로 그의 고개를 떼어냈다.
“아니. 도지윤 에스퍼. 전에 폭주 직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요. 도대체 이성은 어느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 겁니까.”
도지윤은 본인의 고개를 잡고 있던 내 손 하나를 떼어내어, 손목에 입술을 대더니 핥아 올리며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땐, 가이딩이 좆같을 때였고. 지금은 대리님이 있잖아요.”
그 노골적이고 솔직한 발언에 나는 순간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지윤은 다시 고개를 내려 이번엔 내 뺨을 핥았다. 자기가 진짜 개새끼라도 되는 듯 자꾸 내 몸 여기저기를 핥으려고 드는 통에 고개가 자꾸 뒤로 젖혀졌다.
“아니, 잠깐, 잠깐, 잠깐.”
세 번째로 도지윤의 행동을 멈추자, 도지윤이 긴 한숨을 쉬었다. 짜증 섞인 한숨이 반항기를 품고 내 뺨을 간질였다.
“대리님….”
하지만 그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곧 꺼져버릴 촛불처럼 가냘프게 떨리며 내 마음속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가이딩을 원하는 에스퍼의 애원에 잠시 망설였다. 허락을 구하듯 거친 숨을 내쉬며 내 앞에 서 있는 도지윤의 얼굴로 손을 올려 그의 입술에 손을 댔다.
부드러운 입술이 내 엄지손가락 아래에서 뭉개지고, 도지윤은 곧바로 혀를 내밀어 사탕을 핥듯 내 손가락을 핥았다. 평소와 다른 도지윤의 행동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나의 망설임을 눈치채듯 도지윤이 간절하게 다시 나를 불렀다.
“대리님….”
내 가이드. 정말 꺼질 듯이 작게 덧붙인 그 말이 벼락처럼 꽂혀 내 귓가를 콕콕 쑤셨다. 순간적으로 스친 이름 모를 감정 때문에 심장이 찌릿찌릿 아팠다. 나는 그 감정의 이름을 알아내기도 전에 입을 벌렸다.
“벗어요.”
내가 뱉어낸 말의 의미가 그제야 뇌로 전달이 되었다. 바깥의 불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도지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시선이 부딪혔다고 생각했지만 어둠 속이라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잠깐 내게서 몸을 떼어낸 도지윤이 어둠 속에서 스르륵스르륵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시각은 차단된 채 청각만 활짝 열려있는 지금,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아랫배를 죄어왔다. 도지윤이 옷을 대충 다 벗자마자 다시 나에게 고개를 내려왔다. 어둠 속에서도 어찌 그렇게 기가 막히게 내 위치를 찾아내는지, 에스퍼란 종족이 부러웠다.
“잠깐, 잠깐, 잠깐….”
내가 네 번째로 도지윤을 멈추자, 도지윤은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멈추라고 말하는 내 입으로 도지윤의 입이 돌진해왔다. 이빨이 부딪힐 만큼 급하게 맞붙어오는 입술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곧바로 도지윤의 얽어오는 혀에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시발. 침대로 가자고. 현관에서 이러지 말고.
도지윤의 입에 가로막혀 꺼낼 수 없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하지만 도지윤은 쉴 틈을 주면 내가 또 ‘잠깐’이라고 할까 봐 그러는지, 밀어붙이기만 하고 있었다.
도지윤의 혀가 내 입천장을 긁자 목구멍에서 신음이 흐른다. 도지윤의 혀와 내 숨이 엇박자를 이루면서 점점 숨이 가빠 오기 시작했다. 배 속에서는 성감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고, 도지윤은 허벅지로 자꾸 내 것을 뭉근하게 문질렀다.
셔츠 안으로 들어온 도지윤의 손이 갈비뼈 부근을 세심하게 어루만진다. 뼈 하나하나를 타고 올라오다 편평한 가슴에 작게 솟아있는 돌기를 찾자,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숨이 부족해 도지윤을 퍽퍽 내려치자, 도지윤이 내 입에서 입술을 떼어 내 바로 내 오른쪽 귀로 옮겨갔다. 그제야 자유로워진 입을 떼어 침대로 가자고 하려 했지만, 도지윤이 자꾸 내 귓구멍을 핥아대는 것에 신음하느라 한 문장을 완성하기 힘들었다.
“도… 도지윤 에스… 아흣. 침대. 침대로.”
도지윤은 나를 벽에서 떼어내어 그대로 들어 올렸다. 성인을 쉽게 들어 올려 어린아이를 안듯 손으로 엉덩이를 받쳤다. 나는 깜짝 놀라 자연스레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멋없이 괴이한 비명을 짧게 내질렀지만 도지윤은 신경도 안 쓰며 연신 내 목을 핥아댔다.
곧바로 침실로 향해 직진을 하는 도지윤을 내려다보며 살짝 불안감이 들었다.
얘 맛이 간 거 같은데….
침대로 향한 도지윤은 제정신이 아닐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나를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안정적인 침대 위에 올라서자, 공간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에 조금 긴장했던 몸이 이완되었다.
일단 도지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침대 옆의 스탠드를 켰다. 불을 켜는 그 짧은 순간에 도지윤에게 잡혀 몸이 뒤로 휙 넘어갔고, 도지윤은 옆으로 돌아간 내 몸을 그대로 짓눌렀다. 도지윤은 손가락을 내 티셔츠 안으로 집어넣어 배꼽 주변을 손가락으로 몇 번 덧그리더니 그대로 유두로 올라왔다. 간지럽히듯 손끝으로 빠르게 문지르며 자극을 주었다. 그 간질간질한 느낌에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도지윤은 내 목과 귀를 끊임없이 핥았다.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확인할 수 없는 위치에 어쩔 수 없이 가이딩 먼저 시작했다. 시작과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생리적인 혐오감이 위를 자극했다. 몸이 크게 튀는 것을 도지윤도 느꼈던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대리님….”
한숨과도 같이 꺼질 듯이 나를 부른 도지윤은,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밀려 올라가게 해서 가슴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쇄골 근처를 강하게 깨물었다.
“아!”
따끔한 고통에 작게 비명을 내리자 도지윤은 사과하듯 혀로 살살 핥아 올리고, 빨아올렸다.
“도… 도지윤 에스퍼. 보이는 데는 안 돼요.”
아침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차오르는데, 도지윤이 내 목을 크게 깨물었다. 이빨 없이 입술로만 내 목을 물어오는 것이 대답을 대신하는 듯했다. 도지윤은 다시 쇄골 주변으로 고개를 내려 부지런히 자국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손으론 유륜을 간지럽히다, 유두를 톡톡 건드리며 내 성감을 끌어내고 있었다.
점점 고개가 내려가던 도지윤이 마침내 내 유두에 입을 대고 혓바닥으로 진득하게 핥아 올리자 내 입에서 다시 신음이 튀어나왔다.
“흐읏. 잠깐. 거기 싫은….”
도지윤이 괴롭히는 것은 내 유두였지만, 자꾸 배 속에서 간질간질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내 발끝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 배꼽을 지나 관자놀이로 흘러 내 눈까지 도달한 그것은, 곧 속눈썹이 젖게 만들었다.
탈의한 도지윤의 뜨거운 몸과 내 상반신의 살갗이 닿았다. 손끝에 걸리는 도지윤의 탄탄한 몸에 손바닥을 대자, 톡톡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근육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내려 도지윤의 얼굴을 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도지윤이 시선만 들어 나를 마주 보았다. 스탠드의 노란빛에 비친 도지윤은 평소의 맹한 웃음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고, 매우 갈증이 인 사내의 얼굴로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붉게 변한 눈동자가 내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혀를 길게 빼 내 유두를 핥아 올렸다.
혀끝으로 콕콕 쑤시며 내 유두를 건드리는 손길에 말할 수 없는 간질거림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도지윤은 다시 입 전체로 내 유두를 감싸더니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댔다.
“아, 아파. 도지윤.”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쾌감에 절로 허리가 들려 도지윤에게 더 빨아달라는 듯이 가슴을 내밀었다. 목구멍에서부터 한숨처럼 나오는 신음이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붉은 눈동자가 내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빛나고 있어, 손을 뻗어 그의 고개를 내 가슴으로 묻어버렸다.
도지윤은 한참 괴롭히던 유두에서 고개를 떼어 다른 쪽 유두로 방향을 틀었다. 침에 번들번들거리는 유두를 손가락이 짓뭉개고 꼬집으며 자극을 주자, 어느새 나는 허리를 은근히 흔들며 도지윤에게 내 하반신을 문지르고 있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단단해진 유두를 더 괴롭혀주기를 원했다. 아니, 이것 이상의 것을 해주기를 원했다. 한참을 유두를 괴롭히던 도지윤이 가슴에서 입을 떼고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의 입에서 시작한 하얀 실이 내 유두에 걸쳐져 있다, 도지윤이 일어서자 뚝 끊어졌다.
열에 취한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자, 그가 느릿느릿 말을 한다.
“대리님. 허리….”
물리계 에스퍼답게 적당히 근육이 잘 잡힌 몸을 쳐다보며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허리를 들어 올렸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바지와 드로즈를 한꺼번에 벗겼다. 이미 내 페니스는 꼿꼿이 서서 아랫배에 닿을 듯했다.
도지윤은 내 페니스를 한번 쓸었다. 이미 치솟아있는 내 페니스를 감싸 쥐고 귀두를 엄지로 뭉근하게 문질렀다.
“아흑.”
그 직접적인 자극에 나는 시트를 그러쥐었다. 요도에서 흘러나오는 선액을 귀두에 천천히 펴 바르며 도지윤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느낄 틈도 없이 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쾌감에 떨었다.
도지윤은 내 페니스를 손으로 느리게 두어 번 훑더니 그대로 고개를 내려 입으로 삼켰다.
“미친!”
도지윤은 내 허벅지를 단단하게 고정하고 내 페니스를 축축한 입으로 빨아들였다. 온몸에 조각조각 흩어진 성감이 아랫배에 재구성되고 있었다. 나는 멈추고 싶은 것인지, 더 해달라는 것인지 모를 뜻으로 도지윤의 머리카락을 힘없이 붙잡았다.
“아, 아아앗, 핫, 으핫!”
몸 안에서 야금야금 뜨거움이 치솟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쾌감에 목구멍에서 신음이 튀어나왔고, 나는 그 신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도지윤은 그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혀로 기둥을 쓸다 살짝 고개를 들어 귀두만 입에 물었다. 손을 뻗어 깨문 내 입술을 살살 펴더니 귀두를 문 채로 말을 했다.
“대리님. 입술 상해요.”
도지윤의 입에서 흘러나온 제대로 발음되지 않은 말은 내 귀보다는, 내 페니스에 더 큰 자극을 주었다. 도지윤의 혀가 움직이면서 귀두를 살살 핥았다. 구멍에서 흐르는 선액을 도지윤이 빨아들이자 허리가 저절로 꺾였다.
“하악.”
도지윤이 다시 입 전체로 내 것을 모조리 삼켰다. 목구멍으로 내 페니스를 깊게 빨아들이자 저절로 턱이 천정을 향해 들렸다. 고양되는 쾌감이 사정을 원하고 있어, 간신히 도지윤의 이름을 불렀다.
“도… 도지윤. 이제….”
도지윤의 고개를 떼어내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지만, 도지윤은 오히려 볼이 홀쭉하게 패일 만큼 힘을 주었다. 그 강한 힘에 나도 모르게 도지윤의 입안에 사정을 하고 말았다. 그 쾌감과 동시에 찾아온 당혹스러움에 나는 몸을 뒤틀어 도지윤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도지윤은 내 허벅지를 붙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나는 내 페니스가 도지윤의 습한 입에서 울컥울컥이며 토정하는 것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당혹스러움과 민망함, 약간의 충격을 담아 도지윤을 바라보았다. 도지윤은 내 눈에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지윤의 붉은 입에서 번들거리는 내 페니스가 천천히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도지윤은 손을 들어 그의 길고 하얀 손에 내 정액을 뱉어내었다. 도지윤의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하얀 실에 나는 얼굴이 벌게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짧은 가이딩만으로도 조금 진정이 되었던지, 도지윤의 눈동자 색깔은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본인의 페이스를 되찾은 그가 나를 보며 요염하게 웃어왔다.
입술을 하얗게 번들거리며 도지윤은 나를 다정하게 불렀다.
“대리님….”
명백한 의미를 담아 나를 안타깝게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오랜만의 쾌감에 절여진 뇌가 한구석에서 속살거리고 있었다. 안 될 게 뭐야?
도지윤이 내 정액을 손에 뱉은 채 나를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실체 없는 걱정에 갑자기 대책 없이 긍정적인 생각이 물끄러미 고개를 들었다.
괜찮지 않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모르겠다. 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분명 새빨개졌을 것이 분명한 얼굴을 조금이라도 가리고자 팔뚝으로 눈을 가렸다. 수풀에 고개를 처박은 꿩처럼 나는 내 눈만 가리면 모든 게 가려질 거라 생각했다.
도지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목을 울려 가볍게 웃었다. 내 행동을 바로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그는 곧바로 정액을 내 회음부에 펴 발랐다. 미지근한 정액이 도지윤의 손가락을 따라 덧그려지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 머릿속으로 더 상상이 잘돼 미칠 것 같았다.
내 회음부 부근을 느리게 문지르던 도지윤은 곧 손가락 하나를 얕게 넣었다. 정액을 윤활제 삼아 내부로 침입을 시도했지만, 아무래도 뻑뻑한 그곳은 손가락을 삼키지 못하고 간신히 손톱만 머금을 수 있었다. 손톱만 넣었는데도 느껴지는 그 생경함에 나는 강하게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대리님. 입술 상한다니까요.”
그러자 도지윤은 역시나 다른 손을 뻗어 내 입술을 느리게 문질렀다. 한 손은 내 입술을, 한 손은 내 안쪽을 느리게 문지르는 느낌이 이상했다. 입술을 깨물던 이를 떼고 그냥 입을 앙다물었다.
살짝 떨리는 입술이 보였는지, 도지윤이 내 위를 덮어 누르며 입술로는 내 턱을 쪼았다.
“대리님. 괜찮아요. 긴장하지 말아요.”
안심을 시키듯 내 턱, 목 여기저기 가볍게 쪼아대고 있었지만 내 몸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젤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미안해요. 대리님.”
빠듯하게 손톱만 물고 있는 내 아래를 보더니 도지윤이 혀를 찬다. 그러더니 손을 떼어 내 허벅지를 단단히 잡아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순간 아까 도지윤이 펠라를 했던 때가 떠오르며, 기시감이 들었다.
하지만 도지윤은 남이 입을 댈 거라고는 잘 상상할 수 없는 그곳에 입을 댔다.
“미친!”
자꾸 창의성 없는 욕만 뛰쳐나오고 있다.
도지윤의 뜨겁고 축축한 혀가 내 내부를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습한 생물체가 살아 움직여 내 내부로 꿈틀꿈틀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 간지러움과 충격에 바들바들 떨리는 것은 내 정신이 아니라 허리였다. 물기 어린 소리가 자꾸 아래에서 들렸다.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감은 눈 너머로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손에 핏기가 가셔 하얘질 정도로 시트에 손끝을 처박았다. 그러다가 결국엔 시트를 그러쥐고 도지윤을 견뎠다. 충격과 비례하여 상승하는 성감에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흘렀다. 뜨거운 내부가 그보다 더 뜨거운 혀로 철퍽철퍽 적셔지고 있었다.
“헉. 아앙. 도… 도지윤. 그거 싫어. 읏!”
도지윤은 혀로 성교를 하듯 내 구멍에 쑤셔 넣었다. 내벽을 벌리며 내 안으로 들어오는 도지윤의 부드러운 혀에 나는 속절없이 신음만 내뱉었다.
한참을 내 밑에서 고개를 파묻고 있던 도지윤은, 내가 느껴도 내 구멍이 흐물흐물해진 것 같은 정도가 되자 고개를 떼었다. 경악과 흥분이 뒤섞인 내 얼굴을 도지윤이 상큼하게 웃으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손가락을 두 개를 넣었다.
아까는 손톱 하나도 빠듯하게 물었는데, 너무나도 쉽게 물어대는 내 몸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물감에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래도 아직은 좁은 내부가 도지윤의 손가락을 꽉꽉 물어왔다. 도지윤이 가위질을 하듯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구멍이 뻐끔거리며 공기를 머금는 것이 느껴졌다. 강제로 열리는 내벽에 수치스러움이 들어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대리님. 색깔이 예쁘네요.”
도지윤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도지윤의 움직임으로 내부에서도 물이 조금씩 나와서 적셔 어느새 손가락 두 개는 익숙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세 번째 손가락이 들어왔다.
“흑.”
빠듯한 구멍에 반사적으로 몸이 비틀렸다. 규칙성 없이 번갈아가며 움직이는 세 개의 손가락이 버거웠다.
“히… 힘들어….”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대리님.”
나도 모르게 새어나간 소리에 도지윤이 다정히 대답해준다.
천천히 내부를 넓혀가던 도지윤의 손가락은 조금씩 속도를 올려가고 있었다. 이제 성행위를 하듯 빠르게 왕복 운동을 반복하고 있었고, 젖어가는 내부를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대리님 구멍에서 물이 나오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으니 입 좀 닥쳐줬으면 좋겠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익숙해질 때쯤, 도지윤은 늘어져 있던 내 한쪽 다리를 접어 내 가슴으로 밀어 올렸다.
들려 올라가는 엉덩이를 따라 도지윤의 손도 약간 방향을 바꾸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숫제 손을 다 처박을 듯이 빠르게 피스톤 운동하는 손가락을 느끼며 불편함에 허리를 약간 비틀었다.
“헉.”
그 순간 조금씩 느껴지던 쾌감이, 갑자기 텅하고 바위가 내려앉은 듯 밀려왔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몸이 크게 튕겨졌다. 화들짝 놀라 눈을 도지윤을 쳐다보자 도지윤이 진하게 웃고 있었다.
이를 드러내며 즐거운 듯한 도지윤의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대리님. 조금 깊네요.”
도지윤은 입술을 혀로 축이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도지윤이 똑같은 장소를 망설임 없이 문질러 왔다.
“아흑… 도. 도지윤. 에스퍼. 흑.”
난 도지윤의 이름이 구원이라도 되는 듯, 연신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내 밑에서 철퍽철퍽하는 소리가 침실을 울리고 있었다. 손을 대지도 않았지만 힘을 받는 페니스가 느껴졌다. 점점 차오르는 사정감에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간신히 숨만 내뱉고 있었다.
발끝이 오므라들고 시트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흣, 아, 시… 싫어.”
“싫은 게 아니에요. 대리님. 좋다고 해야지.”
도지윤이 친절하게 일러주며 한 번 더 극점을 눌렀다. 다시 꼿꼿하게 선 내 페니스는 선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사정할 것 같은 기분이 내 등허리를 솟게 만들었다. 그때 도지윤이 손을 멈추었다. 멈춰져 있던 폐에 숨이 다시 돌고, 뇌에도 산소가 흘러 들어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쾌감을 쫓아 내 페니스로 손을 뻗었다.
“아. 안 돼. 빠, 빨리.”
내가 무어라고 중얼거리는지도 모른 채 본능만을 좇자 도지윤이 내 손을 잡아서 멈추었다. 전신을 휘감는 이 뜨거움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서 원망에 차 도지윤을 쳐다보았다.
그런 내 모습에 도지윤이 씨발, 이라며 내뱉더니, 급하게 드로즈를 벗어 던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 기억 속의 모습보다 더 거대한 도지윤의 페니스에, 순간 급하게 정신이 들었다.
씨발. 저걸 넣는다고?
달아오른 쾌감과 냉정한 이성이 머릿속에서 급하게 싸웠다. 그 결말을 낼 틈도 없이 도지윤은 다시 내 밑에 자리를 잡았다.
“대리님. 좋아해요.”
“그… 그거 안 들어가!”
내 다급한 말에 도지윤은 예쁘게 웃기만 했다. 그 예쁜 모습에 순간 사고가 멈추었다. 그러자 도지윤이 내 두 다리를 가슴에 닿도록 접었고 허공에 훤히 드러난 곳에 도지윤의 시선이 닿자 내 구멍이 벌름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도지윤은 입술을 혀로 핥고, 손으로 본인의 페니스를 잡아 구멍에 맞추어 내렸다.
굵고 뜨거운 도지윤의 페니스가 내 구멍에 대고 미끌미끌 문질러졌다. 불덩이 같은 그 뜨거움에 순간 ‘아 씨발’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기대감이 한구석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 구멍은 젖어있었지만 작았고, 도지윤의 페니스는 너무 컸다. 가장 두꺼운 선단 부분이 머리를 들이밀고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빠듯함과 같이 밀려오는 고통이 너무 버거워서 달아올랐던 몸이 식고 힘겨움에 식은땀이 맺혔다.
“대리님. 힘 좀. 빼요.”
이를 악물고 참는다는 듯이 도지윤이 뚝뚝 끊어 말했다. 그가 하는 말이 들리긴 들렸는데, 머릿속에서는 입력이 되지 않았다.
찢어질 것 같았다. 그 생리적인 혐오감과 두려움이 나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아프다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내 말을 도지윤은 들어주질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찡그린 채 집중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의 일부가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 충격과 아픔에 숨도 쉬지 못했다.
“대리님. 숨 쉬어요.”
아랫도리 사정과는 다르게 도지윤은 다정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그도 그닥 좋은 상황은 아니었던지, 달리기를 하듯 숨이 차 있었다. 도지윤은 살짝 풀죽은 내 페니스를 잡아 문질렀다. 갑자기 느껴지는 성감에 몸이 조금 이완되는지, 몸에 살짝 힘이 풀리자 도지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 들어온 거 아니었어?
경악과 배신감에 차 도지윤을 노려보자 도지윤이 찡그린 얼굴로 내 밑에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흑. 도… 도지윤. 아파….”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나고, 그제야 도지윤의 까슬한 음모가 엉덩이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어서 숨만 헉헉 쉬고 있자, 도지윤이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대리님. 왜 이렇게 구멍이 작아요. 내 좆 끊어먹겠네.”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펴져 있을 것 같은 접합부를 도지윤이 문지르자, 그 손가락을 따라 뜨거운 불길이 지펴지는 것 같았다.
“너… 너무 커.”
숨만 바르작거리며 겨우 적응을 하고 있었다. 내 내부가 도지윤의 페니스에 맞추어 모양을 바꾸는 것 같았다. 너무 커서 배 속을 뚫고 나오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채 도지윤의 것에 적응을 다 하지도 못했는데, 도지윤이 몸을 숙여 내 위로 엎드렸다. 결합이 더 깊숙해져서 나는 그만 울고 싶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애원을 해봐도, 도지윤은 바로 길을 들이듯 잘게 왕복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내 내부가 익숙해진 것 같자, 바로 그의 것을 뒤로 완전히 빼더니 다시 처박았다. 쓰라린 느낌에 구멍이 찢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대리님. 괜찮아요.”
도지윤은 귀두가 내 안에 남아있을 정도로 빼서, 다시 그의 음모가 내 엉덩이에 닿을 때까지 세게 박았다. 천천히 왕복 운동을 하면서 나에게 끊임없이 ‘대리님 예뻐요. 대리님 좋아요. 대리님 괜찮아요.’를 주문처럼 외우고 있었다. 내 내부가 그의 것을 빈틈없이 물고 있었다.
“아. 아흐.”
여러 번 길들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빠듯한 느낌에 엉덩이를 떨며 도망가려 하자 도지윤이 무게를 더해 내 몸을 깔아 눌렀다. 그러면서 내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어대었다.
“대리님. 귀 좋아하는구나. 완전 조여.”
귀에다 대고 바로 말하는 도지윤의 어깨를 붙잡고 나는 덜덜 떨고만 있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에 겨우 어느 정도 적응했을 무렵, 도지윤이 그의 것을 끝까지 뺐다가 다시 처박았다. 이번엔 내가 느끼는 곳을 단박에 쑤셔왔다.
“흐아!”
눈앞에 하얀 번개가 번쩍 치고, 나는 비명 같은 신음을 뱉어내었다. 이번엔 쾌감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귓가에 도지윤의 한숨 같은 신음이 들렸다.
“아! 응… 하앗!”
도지윤이 계속해서 내가 느끼는 부분을 쑤셔오자 몸이 파들파들 떨리며, 목구멍에서 신음이 계속 뛰쳐나왔다. 도지윤은 추삽질을 계속하며 내 턱을 길게 핥았다.
“시… 싫어… 하악!”
“이렇게 오물오물 씹어대는데 싫다고?”
나는 죽을 것 같아 도지윤의 팔에 매달려 온몸으로 그를 느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지윤이 쑤걱쑤걱 박아오자 그의 팔에 손톱을 세웠다.
“흑. 으아. 도… 아… 도지윤.”
속도를 더해 그 부분만 잘게 찔러대는 도지윤에게 그만하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혀가 풀려 입에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지윤은 표정도 없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내 눈에 눈물이 차올라 눈가로 흐르자, 도지윤이 입을 눈가로 가져와 혀로 날름날름 눈물을 핥았다.
도지윤이 살짝 올라오느라 더 깊어진 결합에 내 입에선 길게 비명 같은 신음이 터졌다. 그의 목에 매달려 그의 속도를 따라가지도 못해 흔들리고 있자니 죽을 맛이었다. 절로 벌어진 입을 타고 끊임없이 신음만 튀어나왔다.
쉼 없이 비벼오는 자극에 난 그에게 애원했다.
“가… 가고 싶어. 도지윤. 제발.”
도지윤은 내 아랫입술에 다정히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내려 내 페니스를 두어 번 훑자, 어이없게도 바로 사정을 했다. 입만 벌린 채 벌벌 떨었다.
“아. 대리님. 지금 안 완전 경련해요.”
동시에 내 내부도 뜨겁게 적셔지는 것이 느껴졌다.
엉망이었다. 눈은 눈물로 짓물렀고, 허리 아래로는 쾌감에 아직도 부들부들 떨렸다. 도지윤은 뜨겁게 사정을 하고서도 계속 나를 눌러 내리고 내 몸 여기저기를 핥았다.
조금 진정이 되는 듯하여, 그를 떼어내려고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밀었다. 도지윤이 상체를 살짝 들어 나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자, 어이없어서 나도 따라 살짝 웃었다. 그러자 도지윤이 더 진하게 웃으며 내 몸을 홱 뒤집었다.
“뭐… 뭐. 왜요. 왜.”
연결된 채로 뒤집어져서 그의 페니스에 쓸린 내부가 떨려왔다.
당황함에 도지윤에게 외치는데, 도지윤은 다정하게 내 어깨에 입술을 내려 쪽 소리 나게 부딪혔다.
“대리님. 한 번만 더요.”
나는 허락도 안 했지만, 멋대로 다시 단단해진 그의 페니스가 내부에서 느껴졌다. 침대 위에 볼썽사납게 엎어져서 엉덩이만 들어 올린 채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급히 침대 머리로 도망치려 했지만, 내 골반을 단단하게 붙잡은 에스퍼의 완력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대리님. 좋아해요.”
도지윤이 허리짓을 다시 시작하며, 그의 것을 끝까지 다 빼더니 단숨에 처박았다. 이미 앞선 행위로 심하게 예민해진 몸은 경련하며 그의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팔에 힘이 빠져 다시 침대 위로 철퍼덕 하고 넘어졌다.
“흑. 도. 도지윤. 천. 천천히요. 아… 아아.”
쾌감을 견디느라 손등에 핏줄이 돋도록 시트를 그러쥐었다. 도지윤이 내가 느끼는 지점을 다시 찾자 자연스레 허리가 휘었다. ‘적당히’를 모르는 쾌감은 고통이 되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리게 만들었다.
고개를 침대에 처박고 천천히 해 달라 애원하기 위해 뒤로 한 손을 뻗어 도지윤의 손을 찾았다. 그러자 도지윤이 내 팔목을 잡고 잡아당겼다.
“헉.”
곧바로 다른 쪽 손목도 도지윤이 잡아 올리자, 내 상체는 도지윤의 손에 의해 지지되어 허공에 반쯤 뜨게 되었다. 넘어질 것 같아 자연스레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뒤에서 ‘씨발’이라고 외친 도지윤이 더 빠르게 허리짓을 했다.
아까 도지윤이 싸놓은 정액과 내 몸에서 나오는 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난 눈앞에서 펑펑 터지는 쾌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목 놓아 신음했다.
“핫. 읏. 아! 으으응.”
“대리님. 씨발. 왜 이렇게 예뻐요?”
온몸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쾌감에 떨며 무릎으로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차라리 엎어져 있고 싶었는데, 내 두 팔목을 잡고 있는 도지윤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시… 싫어. 싫어.”
헐떡이며 싫다고 외쳐도 도지윤은 들어 처먹지 않았다.
“대리님. 싫은 게 아니라, 좋은 거예요. 지금 대리님 안에서 내 좆 잡고 씹는 거 느껴져요?”
그리고 갑자기 천천히 도지윤이 허리짓을 시작했다. 뭉근히 내 포인트를 눌러오는 도지윤에 나는 어이없이 사정을 했다. 페니스에서 밀려나오듯 흘러내린 정액은 세 번째 사정이라 그런지 묽어져 줄줄 흐르고 있었다.
“히… 힘들어….”
헐떡이며 바람 빠진 소리로 내뱉었지만, 내가 사정하는 순간부터 도지윤은 다시 허리짓을 빠르게 시작했다.
“아… 안 돼. 가고 있… 있… 흑… 아. 아아….”
절정으로 갔는데도 계속 비벼오는 그의 페니스에 나는 이제 신음이 아니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온몸이 사정없이 떨려 더 이상 허벅지에 힘을 줄 수도 없어 몸이 무너졌다. 그러자 도지윤은 내 몸을 침대 위에 엎어놓고 엉덩이만 들게 해 빠르게 추삽질을 했다. 쾌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댔다.
나는 엉엉 울며 잘 돌아가지도 않는 혀로 도지윤에게 애원했다.
도지윤이 목뒤를 씹어대며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는 것을 그대로 느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도지윤이 내 골반을 잡고 있던 손에 강하게 힘을 주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 몸속에서 약간 익숙해진 뜨거움이 번졌다. 도지윤의 두 번째 사정이었다. 도지윤은 내 몸속 더 깊은 곳에 사정하려는 듯이, 울컥대는 그의 페니스를 더욱더 깊이 내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길고 긴 사정 동안, 도지윤은 내 등에 입술을 내려 여기저기 씹어 댔다. 그 또한 쾌감으로 느껴져 나는 움칠움칠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도지윤이 몸을 들어 완전히 내 안에서 빠져나가자, 그의 페니스를 따라 정액이 주르륵 딸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도지윤은 뒤집어져 있던 내 몸을 똑바로 눕게 해서 내 얼굴 위로 입술을 내려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내버려두었다.
눈물에 젖어있던 속눈썹도 도지윤이 혀를 내밀어 날름날름 핥았다. 약간의 후희를 즐기고 이제 떨어지기 위해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들어 올리려고 하자, 도지윤이 맹하게 웃었다.
불길했다.
도지윤이 내 다리 한쪽을 들어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도… 도지윤 에스퍼.”
“대리님. 한 번만 더요.”
이 씨발 새끼가.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자, 도지윤이 다급히 입을 맞춰온다. 동시에 도지윤의 페니스가 흐물흐물해진 내 구멍으로 저항 없이 밀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내 입 밖으로 튀어 나간 것은 신음이었다.
도지윤은 한쪽 다리를 잡고 들어 페니스를 끝까지 뺐다. 귀두만이 얇게 왔다 갔다 하자, 내 구멍이 오물조물 조르듯이 그를 무는 것이 느껴졌다.
“대리님. 조르는 거예요?”
웃음기 띤 도지윤의 말에 욕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곧바로 다시 내가 느끼는 지점을 쑤셔오는 통에 나는 신음 말고는 아무것도 내뱉을 수 없었다.
“으하. 아. 핫!”
단어도 되지 못한 신음들이 자꾸 목구멍에서 징징 울렸다. 이제 내벽은 도지윤의 움직임에 맞추어 같이 딸려 움직이고 있었다. 더 이상 배출할 것도 없을 거 같은데, 내 페니스는 다시 힘을 받았다.
도지윤이 내 구멍에 페니스를 처박은 채 내 종아리를 길게 핥아 올렸다.
“도… 도지윤 에스퍼. 히… 힘들어요.”
그 잠시 쉴 틈에 나는 헐떡이며, 너무 힘들다고 애원했다. 도지윤이 맹하게 웃었다.
“힘들면 잠시 쉴까요, 대리님?”
그 말에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도지윤이 내 다리를 놔주었고, 나는 도망가기 위해 엉덩이를 꿈틀대며 침대 위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도지윤이 다시 내 골반을 잡아 끌어내렸고, 내 몸을 일으켜 마주 보는 자세로 나를 앉게 했다. 도지윤의 페니스가 내 무게 때문에 더 깊게 들어왔다. 깊숙한 내부를 여는 감각에 나는 온몸을 발갛게 물들이며 몸서리쳤다.
“쉬. 쉬 괜찮아요. 대리님. 괜찮아요. 우리 잠시 쉬는 거잖아요.”
“도… 도지윤 에스퍼.”
도지윤이 말할 때마다 둥둥 울리는 감각이 그의 페니스를 통해 내 배 속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잠시 보여준 그 친절함에 나는 갑자기 눈물이 울컥 솟았다. 방울져 흘러내리는 눈물을 도지윤은 연신 핥으며 괜찮다고 내 등허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우느라 코맹맹이 소리를 내었지만, 부끄러움 따윈 없었다. 정말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다.
서러움에 엉엉 울면서 도지윤에게 따지고 들었다.
“많이 힘들어요. 대리님?”
도지윤이 다정하게 물어오자, 나는 눈물만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지윤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내 얼굴 위에 가볍게 키스를 내렸다. 그 부드러운 분위기에 조금 진정이 되었고, 도지윤이 내 아랫입술을 물어올 때에는 눈물이 멈추었다.
도지윤이 부드럽게 나에게 키스를 할 때, 나는 자연스레 도지윤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도지윤의 허리짓이 시작되었다.
“도, 도지윤!”
앞선 행위들로,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내 몸은 모든 구석이 다 성감대 같았다. 도지윤의 페니스가 위아래로 나를 퍽퍽 쳐올렸다. 무게에 더해져 도지윤은 이제껏 닿지 못했던 안쪽까지 들어왔다.
“으앗, 하, 아앙.”
죽을 것같이 다시 신음하며, 도지윤의 목에 내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이 고통 때문인지 쾌감 덕분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도지윤이 나를 쑤셔주면 난 절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온 신경을 내 내벽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도지윤이 멈췄다.
방향을 잃은 쾌감에 나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도지윤을 쳐다보았다. 도지윤은 맹하게 웃으며 혀로 내 눈가를 핥았다.
“도… 도지윤.”
나는 절정에 다다르기 위해 스스로 몸을 움직였다. 엉덩이를 조금 들어 내려앉으려고 했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당황과 원망스러움에 도지윤을 쳐다보자, 도지윤이 다정하게 웃었다.
“대리님. 가고 싶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지윤이 땀에 들러붙은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이렇게 내 좆을 씹어대도 부족한 거예요?”
불 지펴진 몸이 얼른 절정을 원하고 있었고, 나는 도지윤에게 얼른 움직이라는 의미로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물대지 말아요. 대리님.”
도지윤이 손을 내려 내 유두를 비틀었다. 순간적인 쾌감에 구멍을 확 조이자, 도지윤이 낮게 신음했다.
“대리님. 내가 누구예요?”
“도… 도지윤.”
잘 돌아가지도 않은 혀로 더듬더듬 대답하자 도지윤이 다시 맹하게 웃었다.
“누구 에스퍼예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멍해진 눈으로 쳐다보자, 도지윤이 엉덩이를 한번 추어올렸다. 단박에 내 극점을 쳐올리는 페니스에 비명 같은 대답이 뛰쳐나갔다.
“내… 내 에스퍼.”
“잘했어요. 대리님.”
도지윤은 천천히 엉덩이를 추켜올렸고, 나는 더 빨리 움직이기를 원하는 마음에 그가 원하는 대답을 계속 내뱉었다.
“도… 도지윤. 내 에스퍼… 내… 내 에스… 아앗. 헉.”
반복되는 내 말에 도지윤이 정답이라는 듯, 내 골반을 잡고 쾅쾅 찍어 올렸다. 나는 쾌감에 절여진 목소리로 ‘도지윤. 내 에스퍼.’만 반복해서 내뱉었다.
그리고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내벽을 도지윤이 강하게 짓이겨 비벼 올리자, 나는 또다시 절정에 올랐다.
나는 쌀 만큼 싸버려서 물 같은 정액을 뱉어내었지만, 아직 가지 못한 도지윤은 나를 붙잡고 계속 쾅쾅 찍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대며 결국 나는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다. 그제야 도지윤은 내 안에 파정했다.
내 내벽을 따라 도지윤의 페니스가 박동하는 것이 핏줄 하나하나까지 느껴졌다. 배 속을 가득 채운 뜨거움이 내 몸을 불태워 버릴 것 같았다.
도지윤이 지쳐 늘어진 내 몸을 고쳐 안으며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었다. 이제 정말 죽을 거 같아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바람 소리 같은 목소리로 그만하자 말을 했지만, 도지윤은 맹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불길한 미소에 곧바로 ‘씨발’ 하고 욕이 튀어나왔지만, 도지윤은 ‘한 번만 더요. 대리님.’이라며 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도지윤은 두 번의 사정을 더한 뒤에 울고불고하며 더 이상은 못한다는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질질 짰다는 창피함 따윈 없었다. 나는 진짜 죽을 뻔했다. 누군가는 복상사가 명예로운 죽음이라 하지만, 나는 이런 이유로 죽고 싶진 않았다.
도지윤이 안 하겠다고 약속을 하자, 나는 그제야 침대에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침이었다. 텅 비어버린 내 에너지와 허리 아래의 고통이 눈뜨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졌다.
좆같은 가이딩 시발.
퉁퉁 부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온몸이 가위에 눌린 것처럼 무거웠다. 손을 움직이려 힘을 주자 손끝만 까딱까딱 움직였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근육에 한숨만 나왔다.
“일어났어요? 더 자요.”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있던 도지윤이 곧바로 손을 뻗어, 방금 전까지 손가락을 까딱거렸던 내 손을 감싸 쥐었다. 모로 누운 내 뺨 위로 도지윤이 몸을 일으켜 입술을 붙였다 뗐다.
“…지금. 큼.”
말을 하려 입을 떼자 엉망으로 쉬어버린 목소리가 나왔다. 가다듬기 위해 큼큼 대어도 말라버린 목구멍이 아파지기만 했다. 이런 내 상태를 눈치챈 도지윤은 내 고개를 살짝 들어주어 미리 따라놓은 물을 입에 대주었다. 조금씩 흘러들어 오는 물에 입을 적셨다. 물 한 컵을 다 비우자 조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지금 몇 시입니까.”
그래도 엉망으로 쉬어버린 목소리가 낯설게만 들렸다.
“9시 좀 넘었어요.”
도지윤의 느릿느릿한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지만 허리와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다시 침대로 엎어졌다.
“헉.”
올라오는 고통 때문에 눈가에 생리적인 눈물이 고이고, 신음이 튀어나왔다. 옆에서 도지윤이 나를 부르며 허리를 다시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이 개새끼.
“움직이지 마세요. 대리님.”
다시 침대에 고개를 처박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자, 도지윤이 손으로 허리를 부드럽게 마사지해준다. 분명 뒤처리를 못하고 기절하듯이 잠들었는데, 도지윤이 해결했나 보다. 고개를 도지윤 쪽으로 간신히 움직여 그를 째려보았다.
“도지윤 에스퍼. 양심이란 게 있습니까?”
“네?”
평소와 똑같이 맹하게 웃음 지으며 도지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비양심적인 모습을 보자니 내 속에서 열불만 났다.
“내가 어제 얼마나 그만하자고….”
내 기억 속에서 울부짖었던 모습이 생각나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차마 말을 못 잇고 있자니 도지윤이 알았다는 듯이 말을 한다.
“아. 어제 대리님이 너무 귀여워서… 대리님 구멍이 오물오물 제 좆을 잡고 안 놓아주는데….”
맹하고 순진한 얼굴로 태연히 음담패설을 뱉어내는 도지윤이 꼴도 보기 싫어 손을 들어 입을 막아버렸다. 이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이.
도지윤은 부들부들 떨리는 내 팔목을 잡아 손바닥을 핥아 올렸다. 도지윤은 옆에서 계속 내 허리를 주물렀다.
“대리님이 내 가이드라서 너무 좋아요.”
환하게 웃는 녀석을 보자니 속에서 치솟던 전의도 상실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침대로 처박았다.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나는 출근해야 했다. 시발.
하지만 이런 몸 상태로는 도저히 출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핸드폰을 들어 지원팀 박 대리에게 문자를 넣었다. 몸이 아파 출근을 할 수 없으니 연차를 사용해달라는 것이었다.
시발. 내 피 같은 연차. 이제 몇 개 남지도 않았는데.
내 입사일과 남아있는 연차의 개수를 헤아려보자 암담해졌다.
“도지윤 에스퍼는 출근 안 합니까?”
“전 오늘까지 출장이라서요.”
“…좋겠네요. 연차 안 써도 돼서.”
부러워서 눈물이 다 났다.
침대에서 끙끙대며 누워있자 도지윤은 연신 내 허리를 주물러주었다. 그러면서도 자꾸 손길이 은근슬쩍 음흉하게 변해가려고 해서, 나는 개수작 부리지 말라며 일침을 놓았다.
도지윤은 시무룩해졌지만, 곧 회복해서 다시 나에게 연신 치대었다. 도지윤은 내가 침대에 엎어져 있는 동안 내 집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에서는 한번 경악하다, 그래도 구석에 처박혀있던 사과를 꺼내 예쁘게 잘라 나에게 먹여주기도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자, 도지윤은 어디서 사 온 것인지 죽을 내 입에 들이밀었고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것 같던 나는 맛있게 먹었다. 대충 씻고 다시 잘 준비를 하기 위해 도지윤에게 꺼지라고 축객령을 내리자 도지윤은 미적미적 대며 안 나가려고 했다.
매섭게 노려보며 ‘양심’ 운운하자 도지윤은 마지못해 집에 가겠다고 했고,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도지윤의 손을 낚아채 내부의 에너지를 점검했다.
시발. 인정해야 했다. 섹스로 하는 가이딩의 효과는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