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격노왕 (1)
[고대 사막 황제의 비법서를 획득하셨습니다.]
[피로 물든 사막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피로 물든 사막의 심장이 피의 각인과 반응합니다.]
[피의 각인 효과가 강화됩니다.]
[기적적인 업적! 사막 황제를 단신으로 쓰러뜨리셨습니다.]
[타이틀 ‘사막의 제왕’을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사막의 제왕][에픽]
당신은 사막 황제 스콜피온 킹을 단신으로 쓰러졌습니다. 사막의 공포로 불리던 이를 해치운 당신을 모든 사막의 존재가 두려워할 것입니다.
[보유 효과]
-사막 지형 내에서 공격력과 방어력 각 30% 증가
-모든 사막 몬스터 비선공 효과
-모든 사막 몬스터에 대한 공포, 위압 효과 강화
-화염 저항 + 30%
-독 저항 + 20%
스콜피온 킹을 사냥하고 얻은 것은 에픽 등급의 타이틀만이 아니었다.
혈석의 제작법이 자세히 적힌 고대 사막 황제의 비법서는 물론, 사막의 보물이라고도 불리는 사막의 심장까지 획득했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혈석 제조를 통해 피의 힘을 잔뜩 머금은 사막의 심장이 로칸의 각인에 반응해 피의 각인 효과가 영구 강화된 것이다.
적중 시 생명력 흡수(3%)가 적중 시 생명력 흡수(7%)로, 2배가 넘게 효과가 강화되었다.
그야말로 사기적인 능력. 로칸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사막의 심장은,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능력치가 상승하고 더위를 막아 주는 보물이었다.
“슬슬 돌아가 볼까 ”
그렇게, 1회 클리어 만에 피라미드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로칸은 가뿐한 마음으로 타이무라에 돌아왔다.
생각 같아서는 비선공 효과를 이용해 강력한 몬스터들을 마구 잡아 레벨 업을 마저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스코른 사막에는 피라미드 내부의 몬스터들보다 강력한 존재가 드물었다.
“이제 제법 북적거리는 군. 슬슬 넘어올 때도 됐지.”
돌아온 타이무라는 이미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로칸이 딴 짓을 하는 사이, 중앙 대륙을 넘어온 유저들이 타이무라를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전생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의 속도였다. 로칸이 비정상적으로 빨랐을 뿐이니까.
그러나 타이밍이 맞지 않은 것인지, 로칸의 경고 때문인지 헬하운드 소속의 유저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곧 마법진도 완성되려나 ”
그렇다면 곧 대륙 간 이동 마법진도 완성될지도 모른다.
타이무라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히 대륙 간 이동 마법진을 연결하는 퀘스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퀘스트를 완성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대륙 간 이동 마법진의 완성이 빨라지는 것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명이 완성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보상 경험치와 골드가 제법 큰지라 거르기엔 너무 매력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할 테니까 어쩔 수 없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고, 아예 어차피 누군가 할 것, 우리 길드가 독식해 버리자는 생각으로 뛰어드는 곳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아무나 쓰지는 못하겠지만.”
게다가 완성된다 해도 대륙 간 이동 마법진을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기본 자격인 레벨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고, 이용 요금이 더럽게 비쌌으니까.
결국 돈 없는 서민들은 대륙 간 이동 마법진의 완성과 더불어 운행이 시작될 안전 정기선에 덜 비싼 요금을 치르게 될 터였다.
그리고…….
“수익 단위가 달라지겠군.”
그들은 로칸에게 다시 큰돈을 벌어 줄 터였다. 먼저 중앙 대륙에 진출한 이들이 다시 ‘방문자 상점’을 통해 돈을 벌어 주고 있듯이.
도시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수행 중인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로칸은 일단 자신의 상점으로 향했다.
이들의 진출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지만 자칫 물건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벤더 소환.”
얼른 상점에 물건들을 채워 넣고, 그동안의 수입을 수거한 로칸은 벤더 하나를 더 소환시켰다.
바로 ‘뽑기’ 혹은 ‘겜블’이라 불리는 그것을 위한 NPC였다.
로칸의 무게 게이지가 한계에 올 만큼 가득가득 채워 온 ‘오래된 아이템’ 시리즈. 그것들을 풀 때가 온 것이다.
“어 이건 뭐야 ”
“새로 생긴 NPC인가 ”
“뭔데, 뭔데 헐! 감정 받아야만 알 수 있는 아이템 와, 더 로드에도 뽑기 시스템이 있었어 ”
벤더 설정은 주인에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창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일반 상점 이용객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딱히 로칸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새로 나타난 NPC에 관심을 보이며 우르르 몰려갈 뿐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엉키고 뒤섞이자 로칸의 존재는 묻혀 사라져 버렸다.
“벤더 소환.”
그 틈에 로칸은 벤더를 하나 더 소환했다. ‘감정사’의 능력을 지닌 벤더였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감정이 가능하되, 일반보다 약간 비싼 감정료를 부여하여 소소한 이득마저 챙기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제대로 당첨된다면, 그 기쁨마저 고민하던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 테고.
“으으으, 어쩌지 한번 질러 봐 ”
“에잇, 남자는 한 방이지. 가만 있어 봐. 내가 깐다!”
덕분에 로칸은 별로 공을 들이지 않고 겜블 벤더를 홍보 할 수 있었다.
“블라인드.”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둠의 거래자 타이틀을 통해 얻은 특수 스킬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수 스킬 블라인드.
그것은 아이템을 미확인 상태로 봉인시키는 능력이었다. 즉, 겜블용 아이템을 임의로 찍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하루 30회로 횟수 제한은 있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뽑기도 뽑기지만 ‘한정판’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사람들이니까.
초반 붐업을 위해 아예 기존에 얻어 둔 상위 아이템까지 섞은 로칸은 블라인드된 아이템의 새 이름을 오래된 시리즈로 맞추고 슬쩍 판매 물품 목록 상단에 추가해 두었다. 물론, 나머지 스물아홉 개는 쓰레기 템이었다.
“떠, 떳다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첨자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생각보다 아이템 뽑기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탓이었다.
‘눈 돌아갔군.’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이들이 너도나도 확률 싸움에 뛰어드는 것을 확인하며 로칸은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의회. 카르본을 만나기 위함이다.
* * *
“해냈군, 해냈어! 전설인 줄만 알았는데 진짜로 해내다니. 다시 봤네!”
그에게 상급 혈석을 건네자 그야말로 뛸 듯 기뻐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불사와 부활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가 담긴 것이기 때문에 인간 종족 퀘스트인 ‘고대 황제의 부활’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게 더 기쁜 것이겠지만.’
더불어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을 성공시킨 카르본의 영향력 또한 의회 내에서 커질 것이 분명했다.
“청이 있습니다.”
“청 그래. 얼마든지 말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주지!”
그 보고 과정에서 로칸의 존재가 누락될 것은 당연했다.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고대 사막 황제의 비법서만큼은 내어놓지 않았다.
카르본이 이것을 받고 입을 싹 닦아 버리면 자신은 그저 작은 공훈도를 받는 정도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를 뵙게 해 주십시오.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것만큼은 다이렉트로 보고하고, 황제에게 직접 진상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렇게 할 경우 카르본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오히려 견제를 받게 될 수도 있지만 감히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는 이미 로칸이 황제의 관심을 받고 있을 테니까.
의회의 입김이 세다 한들, 황제 앞에서는 무기력 했다.
“황제 폐하를 ”
갑자기 튀어나온 황제 이야기에 카르본이 대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예직이긴 해도 이제 로칸 역시 기사가 아닌 귀족이니 자신이 다리를 놓는다면 유망한 귀족으로 황제에게 소개할 수 있긴 하겠지만, 황제와 접점도 없는 그가 대뜸 황제를 만나고 싶다니 뭔가 미심쩍고 불안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고작 명예 남작 따위가 자신을 건너뛰고 황제에게 뭔가를 직접 보고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찍히고 싶은 게 아닌 이상에야 어찌
때문에 마뜩잖긴 했지만 일단은 수용했다.
어설픈 하급 귀족 나부랭이들이 황제의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일은 간간이 있는 일이니까.
“알겠네. 조만간 한번 자리를 잡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래 아닌 거래는 성사되었다.
다만, 황제와의 면담 자리 주선을 이유로 카르본은 상급 혈석을 가져온 것에 대한 별도의 보상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경험치 보상조차 주지 않는 쪼잔함을 보였지만, 상관없다. 로칸은 이미 훨씬 많은 것을 가졌으니까.
경험치 보상이라고 해봐야 쥐꼬리만큼일 텐데, 그 정도쯤이야 250레벨을 달성한 마당에 별로 티도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여기는 곧 포기하겠군.”
카르본을 만나고 나온 로칸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리나이 영지였다. 영주에게 간단히 보고를 하고, 영지의 상태를 살폈다.
그 결과, 두 번째 광산은 아직까지 단 하나의 광물 덩어리도 제대로 채굴해 내고 있지 못했다.
계속해서 적자가 나는 것은 물론이오, 그동안 로칸이 사냥해 놓은 몬스터의 부산물 역시 대부분 팔아 치워 슬슬 영지의 창고가 비어 가고 있는 것이다.
“흠, 소식은 아직인가 ”
그것을 확인한 로칸은 영주성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 잠잠했다.
잠시 영지를 더 둘러본 로칸은 신비가 잠든 동굴을 몇 바퀴 더 돌고, 다시 리나이 영지를 떠났다.
‘이벤트’를 기다리는 동안, 남은 할 일을 마저 하기 위함이다.
“어디 보자, 어떤 놈으로 할까나…….”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로칸이 펼쳐든 것은 다름 아닌 마법 지도였다.
내비게이션 기능을 이용해 수월하게 길을 찾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표시되는 다른 것들을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다름 아닌 타락한 몬스터.
조사단에서 지도에 추가해 준 기능으로 타락한 몬스터들의 위치를 살펴보았다.
“이놈들이 좋겠군.”
그중에서 사냥할 두 놈을 골랐다. 총 세 마리의 타락한 몬스터를 더 잡으면 조사단원의 팔찌를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른 놈들 중 하나는 이미 로칸과 작은 인연으로 얽혀 있는 놈이었다.
“격노왕이라…….”
산적 소굴에서 얻은 격노왕의 친서로 시작된 에피소드 퀘스트. 그것을 발동시키고 놈을 먹어 치울 시간이 온 것이다.
“장비도 바꿀 겸 딱 좋군.”
원래는 당장 해치울 예정이 없던 놈이었지만 250레벨을 달성한 이상 이놈만 한 상대가 없었다. 격노왕이 사용하는 격노의 도끼는 250레벨대의 무기 중에서도 최상급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시중에 나도는 아이템 자체가 별로 없는 도끼류 무기가 최상급 장비로 등장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에 로칸은 즉시 떠날 채비를 했다.
250레벨 제한 때문에 뒤로 미뤄 두었었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어졌다.
즉시 격노왕의 친서를 의회로 가져가 고발하고, 관련 퀘스트를 얻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