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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성자 출현 (4) (123/500)

 # 123

성자 출현 (4)

네크로맨서! 그것이 성자라 불리는 자의 본직이었다. 죽은 자를 되살리고, 죽음을 통해 힘을 얻는 자들의 총칭.

아이러니하게도 성자라 불리며 사람들을 치료하고 되살리던 성자의 직업은 네크로맨서였다.

‘이놈만 잡으면.’

당연하게도 평범한 네크로맨서는 아니다.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들은 소환수 치료 스킬은 있어도 정상적인 생명체를 회복시키는 스킬이 없으니까.

타락한 힘.

그러나 타락한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회복 주문과는 메커니즘이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결과는 동일하게, 오히려 일견하기에는 효율마저 더 좋아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부작용이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리기 때문에 아직까지 아무도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

“네크로맨서 ”

“저건 또 무슨 개소리야 ”

로칸의 한마디에 장내의 분위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로칸이 한 말이었으니까.

믿기지는 않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애매한 분위기에 당황한 것은 성자라 불리던 이였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소용없소! 나는 더 많은 이들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뿐이오!”

‘까고 있네.’

교묘한 말장난이었다.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닌 진심만을 호소하는 말이지만, 그 뜻이 진정하기에 마음이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 돈 한 푼 받지 않고 봉사하는 사람에게 무슨 막말이냐!”

“이렇게 숭고한 뜻을 지닌 사람한테 직업이 뭐가 중요해!”

정확히는 놈이 사용하는 타락한 힘에 선동의 효과도 있기 때문이지만.

“이자에게 뭔가를 받았다면 확인들 해 봐야 할 겁니다. 포션의 효율이 떨어졌다거나, 치유 주문의 치유량이 줄어들었다거나 할 테니까.”

“……!”

그러나 로칸의 한마디는 그 모든 선동 효과를 깨기에 충분했다. 포션과 치유 주문의 효율 하락! 그것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유저들에게 엄청난 불이익이었으니까.

공짜 치유, 버프 따위와 맞바꾸기에는 너무나 큰 대가였다.

“야, 힐 써 봐. 당장!”

“포션을……. 에이 씨, 풀피잖아 ”

“대련, 대련합시다. 얼른 깃발 꽂아!”

성자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굳건한 믿음으로 자리를 지켰지만 유저들은 대번에 정색했다. 성자가 공격을 받건 말건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열중할 뿐이었다.

“이런 어리석은…….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종족을 초월해 모두가 하나 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을……!”

이죽거리는 로칸과 더 이상 자신을 옹호하지 않는 유저들을 보며 성자의 눈이 어떤 빛이 일렁였다.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고,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타락한 어둠의 성자 파트란][Lv 261]

눈에서 흘러넘치는 녹빛 안광은 타락한 몬스터의 그것이었다. 놈이 제대로 타락한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로칸은 그답지 않게 그것을 가만 봐주고 있었다.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몇 번이고 연격을 펼쳐 벌써 놈을 잡았겠지만 그가 이제부터 할 짓을 알기에 잠시 시간을 준 것이다.

“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신 자들이여. 내 아래 하나가 될 지어다!”

“으윽!”

“어어어 이거 왜 이래 ”

이윽고, 파트란의 손에서 요사스러운 녹색 광채가 뻗어 나가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변했다. 외형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들의 통제권이 모두 파트란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NPC도, 유저도.

[타락에 조종당하는 검끝에맺힌혼][Lv 208]

[타락에 조종당하는 훼이커][Lv 213]

[타락에 조종당하는 가카로트의영혼][Lv 212]

놈이 치료를 하고 버프를 걸기 위해 사용한 것은 일종의 씨앗이었다.

자신의 피와 살, 그리고 타락한 힘을 빚어 만든 타락의 씨앗.

아주 작은 힘의 조각에 불과했기에 당장 표시가 나지는 않겠지만 차츰 몸을 갉아먹으며 체질은 물론 몸의 구성, 종족까지 변이시켜 버리는 무서운 잠재력을 가진 씨앗 말이다.

그것이 일시에 발아하며 숙주의 몸을 점령했다.

‘유저의 통제를 빼앗다니…….’

슬쩍 돌아보니 유저들의 머리 위로 표시되는 이름이 변화되었다.

녹색 혈관이 돋아 오른 기괴한 몰골로 각자의 무기를 꼬나 쥐고 로칸을 포위해 오고 있었다.

“고맙다.”

몇 겹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촘촘한 포위망.

마을 전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이들이 파트란을 찾았고, 치유와 버프를 위해 방문하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었기에 그 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대업을 방해받은 파트란이 죽일 듯 노려보며 그들을 수족처럼 조종했지만 유일하게 자유로이 움직이는 로칸은 평화로웠다.

오히려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며 씨익 웃었다.

“간만에 용돈 벌이 좀 하겠군.”

“아, 안 돼!”

“저리가! 난 공격할 생각이 없다고!”

유저들은 그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조종당하기 시작한 순간, 그들의 이름 색깔이 일제히 변한 것이다. 정당방위를 넘어 범죄자를 표시하는 회색으로.

크리미널, 즉 범죄자를 뜻하는 이 상태에서는 머더러에 준하는 수준의 페널티가 적용되었다.

레벨 차이가 워낙 커서 경험치는 별 볼 일 없겠지만, 200레벨쯤 되면 장비는 모두 +5강까지 맞춰 놓았을 테니 벌이가 짭짤할 터였다.

당장 로칸만 해도 250레벨이 되기 전까지 200레벨 초기에 얻은 장비들을 강화해 쓰고 있지 않았던가

다른 이들은 구하기 어려워서라는 이유 이외에 비싸서라는 이유로 장비를 교체하기 어려운 상태였기에 여기서 아이템을 드롭하면 피해가 클 터였다.

“휠 윈드!”

하지만 로칸이 알 바는 아니다. 자신이 유도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공짜를 찾은 건 그들이니까.

로칸의 자비 없는 도끼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어흐…… ”

소리라도 내는 놈은 그나마 형편이 좋은 것이다.

한 방의 사나이 타이틀 덕분에 크리티컬이 터진 이들은 거의 대부분 억 소리도 한번 내 보지 못하고 즉사해 버렸다.

거기에 양학에 최적화된 휠 윈드가 더해지자 그야말로 믹서기처럼 닿는 모든 적들이 갈려 나가 버렸다.

지배당한 놈들이 제 기량을 뽐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조합 스킬, 혹은 생성 스킬까지 사용해 가며 덤볐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을 뿐이었다.

더구나 로칸은 상대가 많을수록 강해지는 타이틀도 몇 개나 가지고 있지 않던가

머릿수에 장사 없다지만 조합 스킬, 생성 스킬마저 일반 공격으로 깨부수는 로칸 앞에서는 백 명이든 천 명이든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대의에 몸을 맡겨라!”

그렇게 로칸의 몸에는 티끌만 한 상처도 주지 못하고 일방적인 전투가 이어지자 파트란이 이를 악물며 수를 내었다.

주변에 있던 놈들을 한데 불러 모으는가 싶더니 타락한 힘이 깃든 흑마력을 듬뿍 쏟아 내었다.

꾸억 꾸억 꾸억.

“끄극! 끄그그극…….”

파트란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던 놈들의 몸이 찰흙처럼 뭉개졌다.

찰흙놀이.

시체를 찰흙처럼 뭉개고 뭉쳐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내는 네크로맨서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채로 그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살이 뭉개지고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부러져 재조립되는 것이 모두 제물의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폭격!”

그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로칸이 손도끼를 집어 던져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 놈들을 육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죽음의 순간 오히려 평온한 표정을 짓는 제물들.

그러나 찰흙놀이가 진행되는 것은 한 곳이 아니었다.

“끄어어엉!”

피 칠갑을 한 거대 언데드가 이곳저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신에서 땀을 흘리듯 시뻘건 피를 흘리고,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로칸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퍼억!

“아, 벌써 왔나 ”

그러나 그뿐이다. 200레벨 초반대의 놈들을 뭉치고 강화시켜 봤자 나오는 결과물은 기껏해야 230~240레벨 수준에 불과했다. 고작 그 정도로 250레벨을 찍은 로칸을 어찌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광살을 쓸 것도 없이 휠 윈드를 유지한 채 폴짝 뛰어 놈들에게 부딪쳐 갔다.

거대 언데드의 몸을 꿰뚫고 그대로 통과했다.

“시체 폭파!”

퍼엉!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로칸이 거대 언데드를 파괴하는 순간, 파트란이 보낸 마법 신호가 허물어지던 시체를 폭탄으로 바꾸어 놓았다.

[복합 시체 독에 중독되셨습니다.]

[백독불침의 효과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중독 메시지.

시체 폭파가 일반적인 폭탄보다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시체 독에 의한 중독.

다행히 급조한 언데드로 만들어 낸 독이라 위력이 강하지 않았는지 무효화시킬 수 있었지만, 독이라면 아직 로칸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었다.

“고작 이걸로 끝이냐 덤벼!”

시체 폭파의 충격이 크지 않고, 시체 독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로칸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놈을 도발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놈이 도망치려 하면 언제든 도끼를 때려 박을 준비를 했다.

시간을 주는 이유는 단 하나.

놈이 단 한 마리도 빼놓지 않고 자신에게 쏟아붓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네놈! 대업을 방해한 죄, 천벌을 받을 것이다!”

악에 받쳐 힘을 일으키는 놈을 보며 로칸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까고 있네.”

남들을 속이고, 조종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네크로맨서인 주제에 감히 누구한테

당장 골통을 박살 내 줄 개소리였지만 이번만큼은 넓은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 줬다.

조종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에게 몰아주고, 죽으면 언데드로 되살려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대령하니 죽음을 늦추는 아량 정도는 얼마든지 베풀 수 있지 않겠나.

‘타이밍이 좋았군.’

그렇게 마지막 한 놈까지 처죽이며 로칸은 안도했다.

파트란은 타락한 힘을 꽤나 까다롭게 사용하는 놈인 것이다.

만약 정체를 모른 채 마냥 기다려 주었으면 고레벨 유저와 NPC, 그리고 지금처럼 마을 단위가 아니라 몇 개 도시 분의 병력과 마주해야 했겠지.

아니, 하다못해 로칸이 비정상적인 급성장을 보이지 못했다면 지금도 꽤나 고생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너무 이르게 만난 탓에, 압살에 가까운 결과를 낳았다.

“이럴 수는 없다. 나는 신의 힘을 손에 넣었단……!”

“그래, 그래. 얼른 가서 신이랑 쎄쎄쎄 하고 있으렴.”

퍼석.

그렇게, 비뚤어진 정의와 욕망을 지닌 네크로맨서는 조기에 진압을 당해 허무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타락한 힘을 끌어 올려 폭주를 일으켜 보려 했지만 로칸이 허용하지 않았기에, 정말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소환수가 없으면 한없이 약해지는 것은 네크로맨서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으니까.

“됐나 ”

혼자서 마을 하나와, 그곳에 몰려든 수많은 유저들까지 쓸어버린 로칸은 퀘스트 창을 여는 것으로 최종 확인을 했다.

타락한 몬스터 셋을 잡아야 하는 조사단 퀘스트가 완료 표시되어 상황 종료를 알려 준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로칸은 타이무라로 이동해 퀘스트를 완료했다.

[퀘스트 ‘더 깊은 곳으로’를 완료했습니다.]

[타락의 씨앗에 대한 조사가 시작됩니다.]

[선임 조사단원으로 승격됩니다.]

[조사단원의 팔찌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자 파트란에게 당한 나머지 마을 주민들과 유저들에 대한 조사가 자동으로 시작되었다.

아직 작은 씨앗이기에 마법 또는 신성력 등을 통해 충분히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유저들의 경우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할 터였다.

“흐흐흐.”

그러거나 말거나, 로칸은 새로 획득한 완소 아이템을 착용하며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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