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기사 대전 (3) (12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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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전 (3)

‘빌어먹을…….’

하시모츠의 검에 피어오르는 기운들을 목격한 로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스킬은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하시모츠의 마스터 스킬 엘리멘탈 소드.

평범한 일격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 깃든 힘만큼은 광살 한 방 한 방보다 윗줄일 터였다.

‘저건 무리야.’

아직 전생처럼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걸 정면으로 막아 낸다 그것은 아무리 자신이라도 무리였다. 대번에 도끼가 박살 나거나, 내구력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칠 것이 분명했다. 생명력 또한 함께 추락하고 말겠지.

가장 좋은 것은 맞지 않는 것이지만 빌어먹게도 저 스킬은 범위형 공격이었다. 피한다고 완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우스운 것은 폭격 또한 통하지 않으니 어떻게든 막거나 피한다 해도 결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폭격!”

“어림없다!”

로칸은 재빨리 손도끼를 꺼내 놈에게 던졌다.

타격을 입히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것을 아는지 하시모츠는 코웃음을 치며 폭격의 힘을 걷어졌다.

콰앙!

폭격을 가뿐히 쳐 냈지만 엘리멘탈 소드에 담긴 기운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격에 필살기 급의 위력을 낼 수 있는 기술이지만 동시에 포스처럼 지속적으로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칸 역시 엘리멘탈 소드를 소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스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대신 놈의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지척까지 도달했다.

“범의 아가리로 몸을 들이미는구나!”

하시모츠는 로칸의 대시를 오히려 반겼다. 그가 어떻게 하든 자신을, 엘리멘탈 소드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윈드 커팅!”

오히려 엘리멘탈 소드에 연격 스킬을 입히며 로칸을 조각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폭주!”

“큭 ”

그때, 로칸이 기다렸다는 듯 생성 스킬을 발동시켰다.

버서크의 사용과 함께 방어력을 높이고 난무를 쏟아붓는 반격 스킬!

위력 면에서는 여전히 엘리멘탈 소드가 한 수 위였지만 로칸은 힘 대결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철저한 소모전! 그것이 목적이었기에 엘리멘탈 소드를 몸으로 받아 내면서 자신의 공격 또한 철저히 하시모츠에게로 퍼부었다.

‘통해.’

덕분에 방어구가 크게 갈라지고 생명력이 급격히 하락했지만 아직 바닥은 아니었다.

상대의 타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상관없다. 통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까.

‘버서크가 끝나기 전에 끝장을 본다.’

300레벨 방어구라고는 해도 +8강까지 마친 유니크 등급 무기를 완전히 방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면 되었다.

로칸의 눈빛이 야수의 그것처럼 변했다.

“미친!”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는 광전사. 불굴의 의지를 얻기 전의 그 모습처럼 변한 로칸이 피해를 도외시하고 막무가내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정직한 기사 스타일인 하시모츠는 당황하면서도 착실히 공격을 방어하고 반격을 꽂아 넣었지만, 지금의 로칸에게는 무의미했다.

생명력은 0까지 내려간 지 오래. 이미 방어라는 것은 로칸의 머릿속에 없었으니까.

“난무!”

“소드 실드!”

덕분에 하시모츠 역시 점점 로칸의 페이스에 말려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유리한 건 그였다. 착실히 방어만 하더라도 버서크의 지속 시간이 끝나면 손쉽게 승부를 볼 수 있는 건 그니까.

그것을 아는지 온갖 방어 스킬을 동원해 로칸의 공격을 막아갔지만, 대미지가 누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로칸이 계속 생명력 0인 채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피의 각인.

그 각인의 힘이 발동하며 하시모츠가 방어에 전념할 때마다 대미지에 비례한 생명력이 로칸에게로 흡수되고 있었다.

“이런…….”

그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로칸의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하시모츠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강력한 위력에 비례해 막대한 마나가 소모되는 엘리멘탈 소드는 잠시 캔슬해 둔 상태. 이대로 있다가는 상대가 지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왔다.

“기사도! 연환십육검!”

냉정해진 하시모츠가 조합 스킬을 연달아 쏟아 냈다.

방어력을 극단적으로 끌어 올리는 기사도에 이른 16콤보! 그 역시 공격을 몸으로 받으며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놓치면 안 돼.’

그러나 로칸은 놈의 노림수를 짐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공방의 전환이 아니다. 자신을 떼어 놓기 위한 수작에 불과했다.

그다음은 역시 한 방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엘리멘탈 소드일 것이다. 위력이 강한 만큼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 스킬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로칸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전진하며 16단 콤보를 넣는 조합 스킬을 몸으로 받아 내며 도끼를 마주 휘둘렀다.

아주 가끔, 심장이나 목을 노리는 공격만을 방어할 뿐 정말 미친놈처럼 달라붙었다.

“긴급 탈출! 체인 매직!”

그러자 도망친 쪽은 하시모츠였다. 마지막 조합 스킬까지 끌어내며 몸을 빼내더니 생성 스킬로 마법까지 마구 뿌려 댔다.

“대쉬!”

로칸이 재빨리 뒤쫓아 봤지만 늦었다. 하시모츠의 검에서는 다시금 불과 번개가 솟아나고 있었다.

‘젠장.’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다. 로칸은 이를 악물고 다시 돌진했다.

‘지금.’

그리고 놈이 전력을 다해 검을 찔러 오는 순간, 스스로 몸을 들이밀었다.

“돌격!”

“엘리멘탈 소드, 일점격파!”

퍼엉!

가죽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로칸의 상체 일부가 꿰뚫렸다. 검의 지름보다 배는 더 큰 구멍이 심장을 뚫으며 생겨났다. 버서크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실행한 것이다.

“크으으윽.”

달려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로칸의 몸이 검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섰을 때, 빛을 잃어 가던 로칸의 눈에 살광이 번뜩였다.

“잡았다, 요놈.”

광살.

죽음을 전하는 살육의 도끼가 다시 춤을 추었다.

“크아아아아앗!”

치명타 대미지가 증폭된 연격이 한순간에 하시모츠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쑤걱쑤걱.

난동을 부릴 때마다 하시모츠의 검이 몸 안을 휘저었지만 괜찮다. 아직 버서크가 사용 중이니까.

두 개의 심장 효과로 나머지 한쪽 심장이 터지지 않는다면 즉사는 면할 수 있기에, 검이 몸속을 휘젓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분신 소환!”

아예 자신을 빼닮은 분신까지 소환했다. 혹시나 딜이 부족할 것을 대비하여 전력투구를 하는 것이다.

“크헉…….”

심장 부근에서 덜렁거리는 엘리멘탈 소드는 잘못 그으면 나머지 심장까지 위협할 지경이었지만, 설마 심장이 두 개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급히 회수되어 방어에만 쓰이고 있었다.

한 방이 아니라 두 방. 하시모츠는 몰매 맞는 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엘리멘탈 소드의 힘을 방어에 실었지만 버서크까지 사용한 상태에서 복제된 분신의 대미지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능력치는 하락해도 장비는 그대로 복제가 되지 않던가 버서크 사용 시 공격력이 30%나 증가했고 [광분]의 효과로 적중 시마다 3% 확률로 공격 속도가 5%씩 증가했다.

이 정도면 원판의 로칸과 다르지 않을 정도다.

더불어 본판의 로칸 역시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어 대니 제 아무리 엘리멘탈 소드라도 흔들리고, 조합 스킬로 강화된 방어력에도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끝낸다!’

시간이 없었다. 엘프의 눈물 목걸이 덕분에 과다 출혈로 죽을 일은 없지만 상대는 마스터 레벨이다. 또 무슨 수를 써서 상황을 뒤엎을지 알 수 없었다.

“휠 윈드!”

“휠 윈드!”

펼쳐진 것은 더블 휠 윈드!

방어에 약점이 있지만 지속 대미지 딜링으로 이만한 스킬이 없었다. 양쪽에서 두 명의 로칸이 허리케인처럼 도끼를 휘돌리며 무자비한 대미지 폭격을 쏟아부었다.

“빌어먹을!”

콰앙!

그때, 하시모츠가 최후의 수를 사용했다. 엘리멘탈 소드의 힘은 물론 검의 내구도까지 모조리 희생하며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일명 소드 봄버.

무기를 파괴하며 대미지를 폭발시키는 최후 스킬이 그에게서 터져 나온 것이다.

“컥!”

그 엄청난 위력에 로칸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또 다른 스킬.

“앱솔루트 배리어!”

절대 방어 주문. 그것은 애초에 그가 가진 스킬이 아니었다. 로칸이 그랬듯, 아티팩트를 이용해 펼친 마스터급 방어 주문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가 가지고 있던 액세서리 중 하나가 바스러져 사라졌고, 그의 주위로 5분간 절대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배리어가 형성되었다.

“씨발…….”

5분. 별것 아닌 시간일 수 있지만 로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버서크의 남은 지속 시간도 그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심지어 30분이란 긴 지속 시간을 가진 분신은 이미 생명력을 다해 사라진 상태였다. 버서크의 다른 효과는 적용되었지만 불사 효과만큼은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소드 봄버의 위력이 분신의 생명력을 모두 지워 냈다.

‘기사도를 외치던 놈이 이럴 줄이야…….’

유저들과 달리 기사라고 자부하는 NPC들은 자부심이 높았다. 설령 목숨을 잃는다 해도 검을 놓지 않고,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 족속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갓 마스터에 오른 놈에게는 패배에 대한 자존심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목숨 같은 검을 버려 가며 승부수를 걸었다.

‘그래도 인벤토리는 없어.’

꼼짝없이 버서크 후유증을 안고 싸워야 할 판. 그나마 다행인 것은 NPC들에게 인벤토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놈에게 더 이상 무기가 없다는 것이고, 자신은 버서크의 후유증을 안는 대신 놈은 두 주먹으로 싸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마스터 레벨이라 해도 전투력이 급감할 것은 당연한 일. 입술을 깨물고 놈을 노려보자 생명력이 점점 차올랐다.

[엘프의 눈물 목걸이의 효과로 매 초마다 최대 생명력의 1%가 회복됩니다.]

유니크지만 그 이상의 아이템보다 귀중한 엘프의 눈물 목걸이 효과를 톡톡히 보며 몸 상태를 끌어 올렸다.

그래 봤자 버서크의 후유증으로 최대 생명력의 40% 가량이 한순간 사라지겠지만 아직 그에게는 조사단원의 반지가 있었다.

‘무슨 짓을…….’

모두가 숨죽이는 가운데, 한참이나 눈싸움을 하던 하시모츠가 몸을 슬쩍 돌리고 무언가를 꾸몄다.

별것 아니겠지만 이미 자존심을 버린 놈이 무엇을 할지는 알 수 없었기에 로칸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5분 후.

[버서크의 지속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컥.”

“맹세의 돌진!”

버서크가 종료됨과 동시에 놈이 앱솔루트 배리어를 해제하고, 한순간 생명력이 깎여 비틀대는 로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히얄라마의 극독에 중독되셨습니다.]

[독의 수준이 너무 높아 백독불침의 효과가 듣지 않습니다.]

[초당 100의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이 새끼가!’

독! 그것도 손쓸 수 없는 극독이다. 손목에 부착할 수 있는 작은 라운드 실드에 부딪치는 순간, 로칸의 몸속으로 극독이 파고든 것이다.

60%가량 남아 있던 생명력이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아티팩트의 효과일까 아니면 반칙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망가진 가슴팍을 내어 주는 대신, 도끼를 휘둘러 머리통을 쪼개 갔다.

쩌엉!

강력한 스윙이 놈의 골을 흔들었다. 투구가 마지막으로 제 역할을 하며 한 차례 공격을 막아 냈다.

“기사도! 방어 태세!”

“광살!”

놈은 아예 방어 스킬까지 중첩하며 버티기에 들어갔고, 로칸 역시 자신의 필살기를 쏟아부었다.

창과 방패, 아니 도끼 대 방패의 싸움!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깨지느냐가 아니었다. 이것은 시간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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