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기사 대전 (4) (12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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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전 (4)

“컥!”

이미 만신창이가 된 하시모츠의 갑옷이 먼저 깨졌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로칸의 생명력은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초 단위 싸움. 누구의 숨이 먼저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크흐흐흐흐흣!”

이제는 누가 광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시모츠 역시 거의 반실성 상태로 방패를 들었고, 로칸도 전력을 다해 놈을 내리찍었다.

[생명력이 5% 이하로 하락했습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그리고 생명력이 5%까지 떨어졌을 때, 마지막 포텐이 터졌다.

모든 능력치 50% 상승!

버서크 후유증을 날려 버릴 그 가공할 힘이 로칸의 도끼로 모여들었다.

퍼억!

“생명 충전!”

그것이 꽂히는 순간, 또 한 가지의 안배가 터져 나왔다. 조사단원의 반지가 가진 내장 스킬, 생명 충전이 3,000의 생명력을 다시 채워 올린 것이다.

곧바로 100의 생명력이 하락했기에 까딱했으면 써 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 있었지만, 아슬아슬한 컨트롤에 이골이 난 로칸이었기에 그 모험 같은 컨트롤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하시모츠와의 대결에서 승리했습니다.]

[기사 대전에서 최종 승리하셨습니다.]

[기사 대전의 계약에 따라 레밍턴 영지에 대한 소유권이 로칸 님에게 양도됩니다.]

“허억.”

기사 대전의 종료를 알리는 선언 같은 알림. 그것을 마주한 로칸이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기 위해 숨마저 참고 몰아친 까닭이다.

“히익!”

그런 다음 날카롭게 레밍턴 영주 쪽을 쳐다보자 그 살광에 놀란 이들이 기겁을 했다.

필승을 자신하던 익스퍼트급 기사 넷을 때려잡고 마스터 레벨의 기사까지 처참하게 도륙하는 것을 보았으니 감히 떼를 써 보거나 우겨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 대결, 승자 로칸! 이로써 황, 제, 폐, 하께서 명하신 신성한 기사 대전은 리나이 영지의 승리로 끝이 났음을 선언한다!”

그사이 기사 대전의 종료를 알리는 크로반의 선언이 이어졌다. 이제는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일로 그 결과가 확정 지어졌다.

‘루베론 백작, 이 개자식……. 두고 보자.’

하지만 로칸의 화는 아직 식지 않았다. 버서크 후유증 때문에 무기력함이 남아 있지만 그 마음만큼은 버서크를 사용했을 때 이상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 것이다.

마스터급의 기사, 하시모츠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는 명확했으니까.

루베론 백작의 뒤에 누가 있는지, 루베론 백작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놈이 자신에게 시비를 건 것만은 분명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영주님!”

선언을 마친 크로반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휙 돌아 나가 버리자 연무장에 남은 이들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리나이 영지의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를 피웠고, 졸지에 영지를 홀랑 털려 먹은 레밍턴 영주와 수하들은 그야말로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죽게 될 수도 있었다. 영지를 빼앗겨 효용 가치가 떨어진 데다가 잠시 빌려준 하시모츠라는 마스터 레벨의 NPC를 잃어버린 루베론 백작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설령 아직 레밍턴 영주의 쓸모가 남아 있다 해도, 그것이 과연 마스터 레벨의 기사보다 높을지는 의문이었다.

“수고했습니다, 레밍턴 영주. 아, 이제 영주가 아니지 ”

그런 걱정들도 사색이 되어 있는 놈들에게 로칸은 아예 대놓고 염장을 질렀다.

부들부들.

그러나 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스터 레벨의 기사라면 영지 전체가 달려들어도 어쩔 수 없는 괴물인데, 로칸은 그런 놈을 일대일로 꺾은 이가 아니던가

뭐라고 말을 쏘아붙였다가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제 목숨부터 걱정해야 했다. 아직은 하시모츠가 패배하고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려지는 즉시 자신을 잡으러 누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추, 축하드리오.”

덕분에 말까지 공손해졌다. 여전히 남작의 신분은 유지되지만 사실상 둘 사이에는 큰 격차가 생긴 것이다. 영지가 없는 남작은 명예직일 뿐이니까.

“고맙소, 영지를 자알 키워 줘서.”

히죽.

비아냥이 가득한 웃음을 지은 로칸은 즉시 등을 돌려 일행에게 돌아갔다.

“씨발, 우리 좆 된 거 아니야 ”

“로칸이 벌써 영지까지 가진 귀족일 줄이야……. 마스터 레벨 기사 잡은 거 실화냐 ”

“젠장. 명성이 얼마나 떨어진 거야 이거 언제 복구하지 ”

“지금 기사 퀘가 문제냐 만약 로칸이 적대했다고 복수하려고 들면……. 미치겠네. 싹싹 빌어야 하나 헬하운드 꼴 나는 거 아니야 ”

“야, 얼른 다른 애들한테 영지에서 뜨라고 해. 잡히면 뒈진다. 얼른!”

그런 로칸의 뒤에서 더 바쁜 것은 유성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상대가 로칸일 줄은 모르고 참전한 것이라지만 어쨌든 적대를 했고, 처참하게 패배를 했으니 그에 따른 보복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힘으로 찍어 누르고자 한다면, 길드 해체까지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헬하운드가 그랬던 것처럼.

때문에 즉시 길드 메시지를 보내 길드원들을 레밍턴 영지에서 탈출시키고, 그들 역시 영지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래도 중앙 대륙은 넓으니 죽자고 도망치면 어떻게든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로칸이 추적과 암살에도 뛰어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몇 번쯤 죽는 걸 각오하면 어떻게든 게임을 접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레밍턴 이 새끼, 두고 보자.”

“아까 그 지랄을 했다 이거지 넌 길에서 마주치기만 해 봐라.”

대신 분노의 화살을 레밍턴 영주, 아니 사킨쿤 남작에게로 돌렸다. 아직 기사의 신분조차 되지 못한 그들이지만 이미 가장 큰 힘인 기사들마저 잃은 그라면 충분히 암살할 자신이 있는 그들인 것이다.

이미 기사 대전에 참가하지 못한 기사들 정도는 컨트롤로 꺾은 바 있는 그들이니까.

‘잘들 논다.’

하지만 로칸은 그런 감정의 교차를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더 이상 그들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유성 길드 전생에 들어 봤을 만큼 제법 성장 잠재력이 큰 길드이긴 하지만 딱히 나쁜 관계도 아니었고, 기사 대전에 참여한 것 역시 그들이 로칸을 저격하기 위해 일부러 한 일도 아니었으니 문제 삼을 생각도 없었다.

“룬 북 사용, 레밍턴 영지로.”

서로를 노려보는 그들을 놔두고 곧장 레밍턴 영지로 이동했다.

“영지 관리.”

그리고 곧장 영지 관리 창을 열었다.

“오 새끼, 알뜰하게도 모았네.”

영지의 각종 정보들과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영지 보유금.

설마하니 리나이 영지에게, 로칸에게 패할 줄은 몰랐던지 금고에 돈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이 맛에 전생에도 ‘먹튀’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영지 하나를 어떻게든 홀랑 털어먹고, 영주 권한을 얻자마자 세금을 왕창 올려 영지 보유금을 빼먹고 도망가는 자들이.

그런 것도 모르고 영지를 구입하거나 양도받았다가는 다시 처음부터 키우느라 개고생을 하게 되었다.

[영지 보유금 : 10,132골드 97실버 23쿠퍼]

“이 정도면 속 좀 쓰리겠는데 ”

로칸의 그 의미심장한 웃음은 사킨쿤 남작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레밍턴 영지가 인근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영지라지만 이만한 돈을 자력으로 모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외부의 조력자가 있고, 그들로부터 투자 또는 지원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은 홀랑 로칸의 주머니에 넘어온 상태였지만.

“이걸로 대체 뭘 하려고……. 응 ”

넘치는 영지 보유금에 희희낙락 영지 관리 창을 살펴보던 로칸은 작게 반짝거리는 항목을 발견했다. 영지에 특이 사항이 있을 때 나타나는 알림이다.

[로요타 영지와 진행 중인 외교가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

[미우리타 영지와 진행 중인 외교가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

[호요로이 영지와 진행 중인 외교가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

“외교 ”

의아했지만 한편으로 예상되는 일도 있었다. 작은 기대를 품고 터치하자 자세한 내용이 나타났다.

[로요타 영지에 항복과 합병을 권유했습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

[미우리타 영지에 영지 매각을 권유했습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

[호요로이 영지에…….]

“모두 계속 진행한다.”

역시나, 리나이 영지를 시작으로 주변 영지들을 먹어 치우던 레밍턴 영주의 야욕이 진행 중이었다. 로칸의 개입과 리나이 영지의 성장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전생보다는 빠른 타이밍이었지만 덕분에 로칸만 배부르게 되었으니 상관없다.

로칸은 전 영주인 사킨쿤이 진행하던 외교를 모두 그대로 진행하도록 설정하고 인원을 재배치했다.

리나이 영지와 레밍턴 영지. 두 곳 모두 로칸의 것인데 굳이 한 곳에만 몰아 둘 이유가 없지 않나 어느 쪽이 발전하든 이득을 보는 것은 로칸 자신이니까. 낼 수 있는 시너지가 있다면 최대한 내는 쪽이 좋았다.

두 곳의 상단을 잇는 것은 기본. 가장 핵심적인 광산 개발과 관련된 인원들을 대거 리나이 영지 쪽으로 투입시키며 노다지가 될 세 번째 광산 개발에도 역시 박차를 가했다.

[기사 라이노가 레밍턴 영지를 이탈했습니다.]

[기사 코로나가 레밍턴 영지에 남기를 청했습니다.]

[기사 팔나힘이…….]

그러는 사이, 레밍턴 영지를 지키던 사병과 기사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탈했다.

남기를 자청한 이들도 있지만, 사킨쿤에게 기사의 맹세를 한 이들 중 일부가 그를 따라 영지를 이탈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로칸이 레밍턴 영지를 날로 먹긴 했지만 맹세를 통해 주종관계를 맺은 그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지닌 것은 아니기에 터치 할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없는 놈들에게 등 뒤를 맡기는 것도 그의 스타일이 아니고.

그렇게 하나둘 떠나보내자 남은 것은 철저히 계약관계로 묶이거나 이곳에 정을 두어 이제 떠날 수 없는 이들 뿐이었다.

“병력 이동.”

로칸은 그들을 다시 둘로 나누었다.

뒤통수를 맞을까 봐 그럴 리가. 어차피 그들 모두가 덤벼도 찜 쪄 먹을 자신이 있기도 했지만 죽어 봤자 다시 살아나는 마당에 굳이 경계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 사냥이 꿀이지.”

바로 특수 던전 반복 사냥. 횟수가 제한된 특수 던전의 경우 유저가 입장하면 입장 횟수가 줄어들지만, NPC들이 입장할 때는 입장 횟수가 차감되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기존에도 레밍턴 영지에서 로열젤리를 특산품으로 밀 수 있던 것이고.

그렇다면 리나이 영지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강화석 독점도 가능하겠군.”

당연히 강화석이다. 로칸은 즉시 자신이 따로 지어 두었던 집을 철거시키고 기사들로 하여금 반복 사냥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유저의 입장 당연히 제한이다. 때문에 아예 유저들을 수하로 거두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굳이 좋은 것을 나눠 먹을 이유는 없으니까.

“이 주변 영지들의 특산품은 뭐가 있더라…… ”

더불어 더 큰 것을 향해 탐욕의 빛을 드러내고 아예 영주의 힘을 이용해 주변 영지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기분 좋은 소식들이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로요타 영지가 영지 합병을 수락했습니다.]

[미우리타 영지가 영지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호요로이 영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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