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신병 받아라! (1)
[기계공학 스킬을 노움족 기계공학 스킬로 변경하시겠습니까 ]
[노움족 기계공학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노움족 기계공학 레시피를 다수 획득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스다. 전직 아닌 전직을 마치자 노움족 특유의 기계공학 장치 제작법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기발하면서도 유용한 그것들이.
“여기까지 하죠.”
그렇게 노움족 기계공학 스킬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참을 더 교육받던 로칸은 숙련도가 75%에 이르러 정체 상태를 보이자 비로소 배움을 멈추었다.
계속한다면 한 80%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떠먹여 줄 것 같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기계공학에만 쏟아부은 며칠 동안 다른 이들은 열심히 레벨을 올리고 업적을 쌓아 가고 있을 테니까.
물론 자신과 아직 비교도 되지 않는다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제 노오오력해야겠군.’
부족한 소질에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천운이다. 나머지는 숙달과 반복을 통해 천천히 올리기로 하고 일단 노코로콘을 나섰다.
숙련도 80%까지만 돼도 그가 원하던 기상천외한 아이템들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액세서리는…… 아쉽지만 일단 적당히 차야겠군.’
그렇게 각인과 보조 직업 숙련도를 통해 전투력을 끌어 올린 로칸은 마지막으로 액세서리에 집중했다.
목걸이와 팔찌는 바꿀 생각이 없지만 반지는 좀 생각해 볼 일이었다.
총 착용 가능한 반지의 개수는 다섯 개.
조사단원의 반지와 겁쟁이 마법사의 반지는 아직도 유용하게 쓰고 있지만 겁쟁이 마법사의 방어 반지와 탈출 반지는 그다지 써먹어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럴 바에는 나머지 반지 슬롯 하나까지 해서 다른 것을 끼우고 있는 게 당장은 이득일 게 분명했다.
겁쟁이 마법사의 탈출 반지야 팔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 바꿔 끼우고 사용하면 그만이고.
“쓸데없이 비싸다니까.”
이미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버는 로칸이지만 별 부가 능력도 없는 액세서리에 비싼 돈을 투자하는 건 역시 아까웠다.
그나마 그가 찾는 물건이 일반적인 능력치 상승용 액세서리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일까.
로칸이 통합 경매장에서 구한 것은 치명타 확률과 치명타 대미지 증가 옵션이 붙은 반지 하나와 적중 시 생명력 흡수 효과가 붙은, 피의 각인을 보조할 반지 하나였다.
그렇게 세팅을 마치자 비로소 기본은 갖춘 느낌이었다.
기본이라기엔 터무니없이 강하긴 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한 셈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연습이 필요하겠군.”
잠시 스스로를 돌아본 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의 주술 각인. 이것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로칸의 연습은 남들과 달랐다. 허수아비 같은 놈들을 도륙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진정 자신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는 대상을 택하는 것이다.
“퀘스트부터 받아 볼까 ”
마침 딱 적당한 상대가 널려 있었다. 바로 타락한 몬스터.
마법 지도 덕분에 대략의 위치 파악이 가능하고, 귀찮게 무리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일도 없는 놈들이 타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 먹을 수 있는 건 해 먹어야겠지.
일단 타락한 몬스터 관련 퀘스트를 받기 위해 조사단 건물로 향한 로칸은 대뜸 황당한 소리를 마주해야 했다.
“어이, 로칸 선임 조사관!”
“…… ”
돌아보니 일전에 조사단원의 팔찌를 받을 수 있는 선임 조사단원 퀘를 주었던 그놈이었다.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 녀석은 로칸을 향해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신병 받아라!”
“……!”
그것은 신병의 짐 꾸러미였다. 사실 속은 비어 있었지만 게임 제작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인지 더플백이라 불리는 그것과 어쩐지 닮아 있었다.
‘이런…….’
선임 조사단원은 조수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 있어 조사단원의 팔찌를 주는 것인데, 이번에는 반강제로 조수가 붙은 것이다.
그것도 둘이나.
[신병 받아라!][퀘스트]
선임 조사단원으로서 모범을 보이며 후임을 양성하라.
-완료 조건 : 신병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공훈도 획득
-완료 보상 : 조사단의 휘장
원하지 않는다면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조사단원의 팔찌는 그러라고 준 아이템이니까. 하지만 퀘스트의 완료 보상으로 나타난 조사단의 휘장이 도저히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인벤토리 내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능력치가 상승하고 효과를 발휘하는 소지형 아이템인 것이다.
옵션이 압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소지형 아이템은 효과가 중첩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을 때 어떻게든 가지는 것이 좋았다.
‘젠장. 어쩔 수 없군.’
때문에 로칸도 현실에 수긍했다. 까짓 것, 멱살 잡고 캐리해서 공훈도를 채워 버리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비쩍 마른 하프엘프 하나와 너무 작아 소멸해 버릴 것같이 생긴 노움 하나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큭.”
그들을 보는 순간 로칸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둘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단에 정상적인 놈이 없다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후임으로 받은 조사단원이 이놈들일 줄이야.
그 둘은 전생에도 괴짜로 소문난 녀석들이었다. 물론 그만한 실력이 받쳐 주니 이름을 떨칠 수 있던 것이기도 했지만.
클릭 저항 밋티.
성바퀴 하멜.
그것이 그들이 각기 불리던 이름이었다.
‘이것도 인연은 인연이군.’
전생에도 그들과의 접점은 있었다. 대부분 안 좋은 관계로 끝이 난 로칸이지만 그들처럼 특이한 플레이를 하는 이들에게 관심이 제법 있던 그였기에 몇 번 만나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했던 것이다.
“조, 존경합니다, 로칸 님!”
그리고 그중 성바퀴 하멜은 그의 광팬이었다. 덕분에 꽤 귀찮기도 했지만 로칸의 성격을 알기에 질척대는 정도는 아니었다. 딱 팬심으로서의 따라다님 정도랄까.
“헤헤헤헤, 잘 부탁드립니다, 로칸 님!”
밋티야 철저한 영업맨 마인드로 강자에게 숙이는 녀석이었고.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다. 특별히 자신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한 녀석들이고, 거슬리지 않게 알아서 행동하는 타입이니 곧장 실전으로 투입해도 무방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녀석들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중앙 대륙에서 활약하며 조사단원의 반지까지 얻어 낸 그들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죽어 나갈 것 같지 않았다.
‘3인이라……. 공교롭게도 딱 좋군.’
로칸 자신을 포함해서 3인. 이 정도 전력이면 손쉽게 잡을 수 있는 타락한 몬스터만 해도 몇이나 되었지만 로칸은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다.
시도하고 싶었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 실력이 아니라 믿을 만한 인원이 없어 아직 하지 못하던 그것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따라와라.”
파티를 맺자마자 곧바로 그들의 레벨을 확인한 로칸은 그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물론, 자신의 레벨과 정보는 비공개로 돌려 둔 상태였다.
“저기, 로칸 님, 어디로 가는 겁니까 ”
“…….”
“어이구, 이 녀석이 괜한 말을!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로칸이 반응 없자 알아서 숙이는 밋티. 왠지 만담 콤비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로칸은 일단 그들을 원하던 장소로 인도했다.
“타락을 쫓아야지.”
“아하! 타락한 몬스터. 역시 그렇군요. 조사단이니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타락한 몬스터는 그 둘 역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역시 조사단원이 되기 위해 타락한 몬스터를 상대해 보았을 테니까.
하지만 로칸이 지금 하려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타락한 몬스터 사냥이 아니었다.
“아니, 우린 지금 타락한 몬스터를 만들어 내는 ‘배후’를 쫓으러 간다.”
타락한 몬스터를 만드는 배후. 타락의 구슬을 만들고, 온갖 방법을 통해 몬스터와 NPC들을 타락시키는 배후를 쫓으려는 것이다.
“배후……요 ”
그 말에 둘의 눈빛이 흔들렸다.
배후라니 타락한 몬스터를 몇이나 잡기는 했지만 그 원인이나 배후에 대해 감도 잡지 못하던 그들이기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 둘뿐 아니라 다른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기에 조금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알고 있는 루트는 최소 3인 이상일 때만 공략이 가능하니까.
차라리 어설픈 길드 놈들을 끌어들이느니 이들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괴짜들이긴 해도 실력 하나만큼은 믿을 만하니까.
“따라오기나 해.”
마음을 굳힌 로칸은 망설이지 않았다. 정비할 시간 따위도 주지 않고 곧장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했다.
비싼 가격에 입이 떡 벌어지는 둘이었지만 상관없다. 돈이라면 차고 넘칠 만큼 있었고, 이번 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야 푼돈이다.
우물거리는 두 사람의 텔레포트 비용까지 모조리 지불한 로칸은 멱살을 끌듯 어디론가 이동했다.
“여긴…… ”
“준비해라. 곧 전투가 시작될 테니까.”
로칸은 그들에게 많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물론 정보를 공유하면 공략이 더 쉬워질 수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로칸은 그들을 믿었기에, 그들을 난관으로 떠밀었다.
“에엣 ”
“전투라고요 ”
그들이 도착한 곳은 평범한 마을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인근에 고레벨의 몬스터가 득실득실한 산이 하나 있다는 것 뿐.
그렇다면 산을 타겠다는 것일까
두 사람의 생각은 절반만 맞았다. 산을 오르는 것은 맞지만, 정확히는 그 산속에 숨겨진 비밀 던전을 찾으려는 것이다.
“아앗, 로칸 님, 같이 가요!”
말없이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향하는 로칸을 따르던 두 사람의 눈에 펼쳐진 것은 무참히 도륙당하는 230레벨대의 몬스터들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저 중 그 누구도 감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수준의 몬스터들이 잡몹 취급을 당하며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헐…….”
“역시 로칸 님!”
그 모습에 밋티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하멜은 반한 표정으로 따라갔다.
[비밀 던전 타락한 연금술사의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입장 보너스로 3일간 획득 경험치가 30% 증가합니다.]
[최초 입장 보너스로 3일간 드롭률이 30% 증가합니다.]
[타이틀 ‘선구자’의 효과로 최초 입장 보너스가 10% 강화됩니다.]
산의 중턱까지 오른 뒤, 올라오면서 잡은 몬스터의 시체들을 제물로 바치자 나타난 비밀 던전의 입구.
안으로 들어서자 여느 때와 같이 최초 입장 보너스가 나타났다.
“40% ”
아무래도 파티원들에게까지 타이틀 선구자의 효과가 적용된 모양. 그다지 밝히고 싶은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니기에 모르는 척 앞으로 나아갔다.
“폭격.”
콰앙!
그 얼떨떨한 표정을 긴장의 빛으로 바꾼 것은 로칸의 일격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무시무시한 폭발을 견디고 꾸역꾸역 몸을 일으키는 적의 존재였다.
[무통의 글루터니][Lv 253]
“헉!”
무려 250레벨이 넘는 몬스터.
그것도 들어 본 적도 없는, 밀가루 반죽 같은 특이한 형태를 한 녀석의 등장에 두 사람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자신들이라도 감히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는 공격을 온전히 받아 내다니
그 믿을 수 없는 맷집에 감탄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충격 흡수일 뿐이다.”
서걱!
그러나 로칸은 여전히 무심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뭉개진 호떡 반죽처럼 푹 퍼졌다가 솟아오르는 놈을 횡으로 베어 버린 것이다.
벤 것인지 터트린 것인지 모를 지경이지만 이번 공격은 확실히 통했다. 둘로 쪼개진 놈의 몸체가 부르르 떨더니 곧 축 늘어졌다.
“해 봐.”
지금 것은 간단한 시범이었다는 듯, 한 발 뒤로 물러선 로칸이 시험관의 눈빛으로 밋티와 하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다가오는 두 마리의 글루터니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