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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신병 받아라! (3)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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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 받아라! (3)

지이이잉.

하멜을 떠민 로칸과 밋티는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다음 층으로 곧장 이동했다. 마법진이 그려진 땅이 푹 꺼지며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이번엔…… 저겠죠 ”

“…….”

다음 층에 다다른 순간, 밋티가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입을 열었다.

굳이 부인하지 않는 로칸.

밋티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말을 덧붙였다.

“헤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그럼…… 살 수는 있을까요 ”

“운이 좋다면.”

그제야 로칸이 한마디 입을 떼었다.

정말로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애초에 깨라고 만들어 놓은 시련이 아니니까.

해답은 그가 얼마나 버텨 주는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보스를 해치우는가에 달려 있었다.

[고통의 제단에 도착하셨습니다.]

[제물을 바치고 통과하시겠습니까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밋티는 아예 스스로 마법진에서 뛰어내렸다. 어차피 버텨봐야 답도 없었고, 차라리 이런 식으로 로칸에게 작은 빚을 지워 둔다면 설사 죽는다 해도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제물을 바쳤습니다.]

[공포의 시련을 마주합니다. 공포의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살아남으세요.]

그리고 곧, 시련이 시작되었다.

이름도 살벌한 공포의 시련.

그 정체는 바로 보이지 않는 공포였다.

쉬이이익.

“헉!”

뱀과 같은 소리와 함께 밋티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실드 마법을 펼친 것은 거의 본능이었다.

파칫.

단단히 세워 올린 실드가 창호지처럼 쉽게 찢어졌다. 하지만 아주 짧은 틈을 벌어 주었다.

그렇다 해도 보통은 피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지만 상대는 클릭 저항이라 불리는 밋티였다. 단순히 몸집이 작기만 했다면 그런 이명이 붙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타고난 반사 신경으로 피해 내자 뒤편의 나무에 무언가 틀어박혔다. 아니, 관통했다.

“젠장…….”

그것을 확인한 밋티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미 로칸은 마법진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 확 바로 죽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후우, 그래, 어디 해보자고!”

마법을 끌어 올리며 방어를, 반격을 준비했다.

* * *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마법진을 통해 다음 층으로 이동하는 로칸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바로 이 던전의 룰이 그러했으니까. 제물로 바친 존재가 죽는 순간, 던전 클리어가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전생에는 300레벨에 근접한 이들이 모여 이 던전을 클리어했었다. 그것도 무수한 실패를 겪으면서.

그에 비해 밋티와 하멜의 레벨은 고작해야 240 언저리였다.

레벨로만 따지자면 무조건 실패라고 봐도 무방할 테지만 로칸은 그들의 특징과 센스를 믿었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어떻게든 속도를 내어 클리어 한다면 빠른 클리어도 가능할지 몰랐다.

[타락 제조 공장에 입장하셨습니다.]

“돌격.”

마지막 층에 들어서자마자 로칸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가장 큰 적이니까.

[관통의 글루터니][Lv 271]

[현혹의 글루터니][Lv 271]

[포식의 글루터니][Lv 271]

조급한 로칸의 앞으로 또 다른 글루터니들이 나타났다.

여러 가지 특성을 한 몸에 다루던 2층과 달리 다시 한 가지의 특성을 가졌을 뿐이지만 로칸의 눈빛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이들의 특성이 한 가지인 이유가 ‘선택과 집중’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가지인 대신 한계까지 강화한 능력. 놈들이 그 힘을 쏟아 냈다.

“웨폰 브레이크!”

쐐애애액.

처음으로 달려든 놈은 송곳인지 창인지 모를 뾰족한 무기를 찔러 오는 관통의 글루터니였다. 방어구를 관통하여 방어력을 무시한 트루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강력한 대미지 딜러!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암살자처럼 움직였다면 모를까 정면에서, 가장 먼저 달려드니 오히려 로칸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것이다.

쩌저저적!

순식간에 놈의 무기를 수십 번이나 때리자 효과가 즉시 나타났다. 연금술로 제련된 놈의 무기는 격노왕의 도끼를 이겨 낼 수 없었다.

[불굴의 의지의 효과로 현혹에 저항합니다.]

관통의 글루터니가 무기를 잃은 그 순간, 이번엔 현혹의 힘이 그에게 깃들었다.

그러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가 현혹의 기운을 가뿐히 짓밟으며 로칸의 시선이 돌아갔다.

“광살.”

로칸의 두 팔을 타고 피어오른 미증유의 힘이 한순간 폭발했다. 포식의 글루터니를 향해서.

이미 힘을 잃은 관통과 현혹을 상대하기보다, 변수가 될 수 있는 요소를 가장 먼저 제거하려는 것이다.

끄억! 퍼엉!

압도적인 힘을 쏟아 내는 로칸의 필살기에 포식의 글루터니가 풍선처럼 터지며 찢어져 버렸다.

포식은 충분한 흡수를 마쳤을 때에 강력한 특성이지만 아직 로칸이 첫 번째 방문자인 탓에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 것이다.

‘시간을 주면 곤란하지.’

게다가 놈의 포식 대상에는 동료, 아니 동족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관통의 글루터니나 현혹의 글루터니 등 다른 놈들을 포식하고 제 힘을 강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충분히 포식을 마친 뒤에는 놈의 제작자인 던전의 최종 보스보다도 강력해질 수 있었다.

때문에 로칸은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놈을 처치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끼아앗!

“큭.”

광살을 쓴 뒤에 찾아온 경직. 그 틈에 관통의 글루터니가 손톱과 이빨을 동원해 로칸을 공격해 왔다.

주 무기는 파괴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공격이다.

로칸은 그것을 오롯이 몸으로 견딘 뒤,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버린다.’

잠깐의 시간을 투자하면 놈들을 묵사발로 만들 수 있지만, 그 시간조차 아깝다 여긴 것이다.

밋티와 하멜이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포식의 글루터니처럼 시간을 줄수록 강해지는 놈들이 몇이나 더 기다리고 있었다.

[응축의 글루터니][Lv 273]

[탄력의 글루터니][Lv 272]

힘을 응축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글루터니와 그를 지키듯 막아서고 있는 방어형 글루터니.

그 탄력 좋은 몸이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하기에, 어지간해서는 대미지를 주기 힘들겠지만 로칸은 달랐다. ‘충격 흡수’계열의 상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정도는 떠올리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

키엑! 싹둑싹둑.

풀스윙 대신 짧은 끊어 치기와 연타가 이어졌다.

절삭력을 강화시키는 샤프니스 스크롤로 인챈트를 걸고 토막 치듯 상처 입히기에 주력한 것이다.

그러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놈이 가진 탄력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전신이 넝마가 된 것이다.

그렇게 헤집어진 몸에 탄력이 남아 있을 리는 만무했다. 특성을 잃은 놈은 재생을 하기도 전에 목이 떨어졌고,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응축의 글루터니가 급하게 움직였다.

“해보자고 좋지!”

꽈앙!

힘 대 힘. 주먹 대 주먹의 대결이었다. 로칸은 참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놈에게 히죽 웃어 보이며 왼 주먹을 내질렀다.

탈골될 듯 뒤틀리며 튕겨 나가는 것은 역시 글루터니 쪽.

로칸은 예상했다는 듯 도끼를 휘둘러 놈을 머리부터 쪼개놓았다. 두개골을 부수고 머릿속을 휘저으며 뇌수로 도끼날을 기름칠했다.

“리프 어택!”

다음 희생양을 찾기 위해 더 빠르게 몸을 날렸다.

‘더 빨리.’

무시할 놈들은 철저히 무시하며 달렸지만 아직 부족했다. 슬슬 한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남은 건 여섯인가 ’

밋티와 하멜이 얼마나 더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승부수가 필요했다.

넷이나 되는 글루터니를 격살하고 이제 그를 쫓는 글루터니는 모두 여섯.

로칸이 작은 원을 그리듯 이동하며 놈들을 한곳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폭주!”

버서크와 동시에 사방을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난무가 공간을 장악했다.

남은 글루터니들은 특이하지만 그리 위협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특성을 지녔을 뿐이니 그 무지막지한 폭력을 막아 내기는 무리다. 순식간에 뼈와 살이 분리되고 그들을 연성한 핵심 연금 재료들을 토해 냈다.

휘이익.

“탈출!”

그렇게 남은 글루터니들을 거의 모두 도륙했을 때, 소리 없이 날아온 투척을 느끼고 로칸이 급히 몸을 빼냈다.

애초에 의식하지 않았다면 잡아내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쨍그랑. 지이이익! 끄워어억!

놈이 투척한 것은 독인지, 염산인지 모를 것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경악스러울 만큼 대단했다. 그 액체에 닿은 글루터니의 몸이 까맣게 타들어 간 것이다.

글루터니는 저항, 아니 몸부림을 쳐 댔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피부를 녹이고 내장까지 파고든 그것은 놈을 완전히 녹여 없앨 뿐이었다.

[타락 제조자 몰록][Lv 266]

“돌격!”

로칸은 그 처참한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감상에 빠질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까.

모습을 드러낸 타락 제조자 몰록을 향해 몸을 날리며 놈이 다른 수를 쓰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천박한 싸움꾼이 어딜!”

그러나 놈 또한 만만치 않았다. 레벨은 고작 266밖에 되지 않았지만 놈의 전투력은 단순히 레벨이나 육체 능력으로 보아선 안 되는 것이다.

조금 전 270레벨이 넘는 글루터니를 한 방에 녹여 버린 것처럼, 놈의 허리께에는 각종 위험한 포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휘익.

그중 하나가 로칸에게로 날아들었다.

“반격!”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닿기만 해도 위험할 게 분명했다. 제 아무리 버서크 상태라지만 빙결 등 온갖 상태 이상까지 걸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로칸은 모션을 캔슬하고 생성 스킬을 발동시켰다.

회피 후 반격! 한 발자국 물러섰다가 더 빠른 속도로 짓쳐 드는 그 공격에 몰록의 손도 바빠졌다.

하나씩 던지던 포션을 두 개씩 쥐고 던진 것이다.

“분신 소환.”

쨍그랑. 화르륵! 치지지직!

하지만 그 또한 막혔다. 정확히는 분신이 대신 맞은 것이다.

다른 이들이라면 조수 소환을 통해 탱커형 조수를 소환할 수도 있었겠지만 로칸의 경우처럼 버서크까지 쓴 마당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생명력도, 방어력이나 저항력도 분신 쪽이 월등한 것이다.

“아닛!”

갑작스러운 분신의 난입에 몰록이 당황해하는 사이, 로칸이 눈빛을 번뜩였다.

지금이 기회였다.

“무장해제!”

로칸이 사용한 것은 광살이 아닌 무장해제였다.

대신 타깃이 달랐다. 다른 적들을 상대할 때처럼 창이나 칼 따위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놈이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연금 포션들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째재재재재재재쟁.

“크아아아아아악!”

효과를 알 수 없는 연금 포션들이 몰록의 몸에 붙은 채로 파괴되어 그의 몸을 적시며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냈다.

“효과 죽이는데 ”

매캐한 연기와 함께 자멸하는 몰록을 두고 로칸은 멀찍이 떨어졌다.

뭔가 더 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놈에게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이 너무 격렬했다.

“폭격!”

콰앙 쾅 쾅!

할 수 있는 것은 멀찍이 떨어져 폭격을 쏟아붓는 것뿐.

‘빨리 해라, 빨리.’

이대로 끝일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로칸의 마음은 조급했다. 1페이즈는 이렇게 끝이지만, 아직 2페이즈가 남은 것이다.

부글 부글 부글.

“캬아아아아악!”

잠시 후, 녹아내리는 것 같던 몰록이 변이했다.

원래대로라면 스스로 들이부어야 했을 약품을 강제로 뒤집어쓴 결과로, 흉측한 몰골을 하고서 녹빛 귀기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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