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타락 결탁자 (3)
“여자들이라면 환장을 할 수밖에 없지.”
1차 수요는 귀족들이다.
NPC들에게는 비록 피부 재생, 피부 미용 정도의 효과뿐이지만 아기 피부처럼 촉촉하고 탱글탱글해지기에 그것만으로도 큰돈을 지불할 귀부인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다음은 유저들. 유저에게도 비슷한 효과가 적용되지만 한 가지 특별한 기능이 적용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성형수술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그건 바로 ‘성형’이었다.
미용 포션을 사용하면 피부 개선 효과와 함께 변경된 외모를 선택할 수 있는 창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완벽에 가까운 얼굴을 만드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그래 봤자 더 로드 내에서의 얼굴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거액을 지불할 사람은 차고 넘칠 터였다.
게임에서 여성에게 미모란, 그 자체로 권력과도 같으니 말이다. 까짓것, 현실에서는 만나지 않으면 될 게 아닌가
전생에서는 이 미용 포션으로 성형을 한 뒤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람도 생겼지만, 그것까지 로칸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커스터마이징으로는 한계가 있지.”
캐릭터를 처음 만드는 커스터마이징 단계에서도 일부 수정은 가능했지만 외모보다는 체형 수정에 가까웠다.
이곳에서도 본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질 터였다. 미용 포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수정이 가능해질 테니까.
‘남자들이라고 예외일까 ’
그리고 과연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이 여성 유저들뿐일까 미용 포션의 가격은 비싸겠지만, 그 수요는 확실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저들의 경우 미용 포션 하나만으로는 제대로 효과를 보기 어려우니 남은 건 돈을 쓸어 담는 일뿐이었다.
“미용 포션 양산을 연구하라.”
타락한 힘에 손을 댄 이들을, 또 아스타페 백작의 치부를 알고 있는 자들을 그냥 둔다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로칸은 반대로 그것이 그들을 옭아맬 족쇄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직접 타락한 힘을 취한 것은 아니나 그것을 연구한 것만 알려지더라도 그들의 목숨은 물론 가족, 친지, 지인들의 목숨까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로칸은 그들을 없애는 대신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계속 연구를 이어 가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단, 쓸데없는 연구들을 모두 접어 두고 미용 포션의 제작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양산되는 날, 더 로드의 경제는 다시 한 번 요동을 치게 되겠지.
“슬슬 소식이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내정 관리를 마친 로칸은 무언가를 기다렸다.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재판이 있기 하루 전, 뭔가 소식이 들려올 법도 한 것이다.
“왔군.”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 시야 한편이 반짝거렸다. 매번 물리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서신’이 온 것이다.
[아스타펠 백작 지하 감옥에서 사망. 자살 추정.]
“자살은 퍽이나.”
내용은 간단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아스타펠 백작의 죽음.
외부의 침입 흔적이 없어 자살로 추정.
하지만 로칸에게 그것을 믿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그처럼 생에 대한 욕구가 강한 인간이 자살이라고 그건 마치 로칸이 빈혈 환자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셋 중 하나겠군.”
그러나 로칸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장부를 펼쳤다.
그 안에 적힌 세 개의 이름에 주목했다.
“먼저 연락 오는 쪽이 범인일 테고.”
그들 중 하나가 이제 움직일 것이다. 협박이든 회유든. 로칸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겠지.
그러니 로칸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치안 강화. 치안 인력 배치.”
물론 호락호락 만나 줄 생각도 없었다. 좀 더 애가 닳도록 만들어야겠지.
때문에 로칸은 보유한 영지들에 치안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영지 설정을 치안 중심으로 바꾸었다. 정식 사절을 통해 교류 의사를 표출할 수도 있고, 잠입에 능한 인원을 보낼 수도 있지만 아예 물량으로 경비 범위를 커버해 버리면 고레벨의 도적 계열이라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애를 태우다 보면 좀 더 노골적이거나 과감한 배팅을 하게 되겠지.
“나도 다시 몸을 만들어야겠군.”
모든 처리를 마쳐 두고 로칸이 몸을 일으켰다. 다른 영지들이야 이대로 두기만 해도 알아서 잘 굴러갈 테니 이젠 자신을 챙길 차례였다.
벌여 놓은 것이 많은 만큼, 그것을 감당할 힘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됐다.
‘일단은 마스터 레벨부터.’
로칸은 그 최소한의 선을 마스터 레벨로 보았다.
그 위로 하이 마스터라는 경지도, 또 그 위로 그랜드 마스터라는 경지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마스터 레벨만 찍어도 상당히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으니까.
적어도 이 대륙에서는 말이다.
“영지 귀환.”
로칸은 일단 영주의 고유 권한인 영지 귀환을 사용해 메인 영지인 레갈리아로 돌아왔다.
꽤나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기는 했지만 아무도 그를 무시하거나, 쌀쌀맞게 대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영주의 권위와 귀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로칸이 자리를 비우는 대신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둔 덕분이었다.
영지민과 병사들의 복지가 높아졌고, 소량이지만 기사들에게는 드워프제 무기까지 공급해 주니 사기가 높아지고 이전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당연했다.
[공훈도 4를 획득하셨습니다.]
[공훈도 6을 획득하셨습니다.]
성과라는 것은 당연히 검은용군단 진영과의 전투 결과였다. 분쟁 지역인 이곳에서 낼 수 있는 성과가 또 무엇이 있을까.
한 번에 들어오는 수치는 이전과 비슷하지만 더 빠르게 공훈도를 습득하고 있었다.
보통은 이 공훈도를 재투자하여 장비를 구입하거나 기사와 병사를 늘리거나, 그도 아니면 공성 병기 등을 배치시키지만 로칸은 그 모든 것을 현찰 박치기로 끝낸 것이다.
따라서 공훈도는 소모 없이 차곡차곡 쌓였고 벌써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공훈도를 벌써 쓸 필요는 없지.’
하지만 여전히 공훈도는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돈으로 때울 수 있기도 했고, 공훈도는 차후 작위 상승을 비롯해 거창하게 쓰일 곳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로칸은 영지 관리를 하는 대신, 철벽의 마스터 오스람을 찾았다.
“오셨습니까, 영주님.”
다시 만난 오스람의 안색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보급이 잘되기도 했지만 로칸이 수성에 유리한 공성 병기들을 다수 들여놓은 덕분에 적들의 공격을 막아 내기 훨씬 수월해진 덕분이었다.
이곳 레갈리아 영지는 분쟁 지역이기는 하지만 공격하는 일보다 수비하는 일이 훨씬 많은 위치였으니까, 빠듯한 병력을 짜내어 쉬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막아 내던 이전과는 꽤나 차이가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오스람이 있기에 방어가 가능한 것이지, 그와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 아니었다면 2배의 자금을 투자했어도 어찌 됐을지 모른다.
“한동안 신경을 못 썼습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
“영주님의 배려 덕분에 아주 좋아졌습니다. 병사와 기사들도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고, 수성과 함께 정찰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병력의 희생도 줄었지요. 모두 영주님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오스람을 보자니 마음 한편이 찔리는 기분이었지만 로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공치사를 받자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제 반격을 할 차례이군요.”
“반격…… 말입니까 ”
오스람이 의아해하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하이 마스터라는 엄청난 실력을 지녔음에도 수비에 바빠 제대로 힘을 써 보지 못했던 그였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스터급부터는 하나하나가 전략 병기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으니 몸이 근질근질할 만도 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역으로 적들을 칠 겁니다. 때마침 아주 좋은 기회가 있죠.”
“어떤 기회입니까 ”
“그건…….”
잠시 뜸을 들인 로칸은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오스람의 눈동자에 깃든 작은 열망을 보았다.
* * *
검은용군단의 진영, 사누하 영지.
이곳은 무척 특이한 상황에 놓인 곳이었다.
검은용군단 진영에서도 외곽을 제법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 꽂힌 깃발은 황금사자 진영, 그중에서도 인간 종족의 것이었으니까.
타락 웨이브에 한차례 휩쓸린 뒤, 로칸이 점령해 털어먹은 곳 중 하나였다.
이런 곳들 중 일부는 황제에게 진상되어 인간의 점령군이 들어찼지만 사누하 영지를 포함해 몇 곳의 영지는 방어가 어려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기본 방어 병력만 존재 할 뿐, 별다른 대비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유저들은 범접치 못할 방어력이기는 했다.
경비병 하나와 일대일을 겨룰 수 있는 유저도 아직 손에 꼽는 상황이니 어찌 침공을 엄두나 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영영 놔두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건 기회다. 이것만 성공하면 작위도 받을 수 있어! 그러니까 모두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직접 전투보다는 기사들을 지원하는 데 온 힘을 다하도록!”
상위 길드 중 하나가 자기 종족의 귀족을 꼬드겨 병력을 지원받은 것이다. 사누하를 반드시 탈환하겠다고 굳게 약속을 하고서.
아직 유저들이 비비기에는 어림없는 일이었지만 귀족도 그들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사병과 종족 차원에서 지원받은 병력이라면 껍데기뿐인 사누하 영지쯤은 가뿐히 탈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허락하고 퀘스트를 내렸을 뿐이었다.
“진격! 성문 안으로 진격하라!”
“모조리 쓸어버려!”
그 때문일까. 이미 충분한 전력을 확보한 그들은 별다른 작전도 없이 곧장 진입을 시도했다.
성벽 위에서 간간이 활을 쏘는 경비병이 있긴 하지만 그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압도적으로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을 자신했다.
“경비병들을 도륙하라! 탈환조는 나와 함께 영주성으로 간다!”
그리고 그 계산은 거의 적중했다.
머리 위로 방패를 쳐들자 별다른 타격 없이 본진 모두가 도시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고, 경비병들과의 전투가 벌어졌다.
유저들이 있는 탓에 경비병이 계속 리스폰된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압도적인 병력 차이에 그것도 무의미해졌다.
퀘스트를 받은 이들이 경비병을 뿌리치며 거점 탈환을 위해 영주성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건 뭐야 ”
“해치워!”
그리고 영주성 입구를 지키고 선 누군가를 맞닥트렸다.
“어서 와, 폭죽놀이는 처음이지 ”
꾸욱.
흥분한 탓에 너무 앞서 달린 것일까 경비병을 상대할 자신이 없는 유저들이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입구를 막아선 존재가 어떤 버튼을 꺼내 꾸욱 눌렀다.
쿠과과과과광!
그와 함께 폭죽놀이가 시작됐다.
도시 곳곳에 매장되어 있던 폭탄이 터져 나가고 한편에 쌓여 있던 독 포션, 폭발 포션이 연쇄 작용을 일으키며 지옥을 만들어 내었다.
“미친!”
“이게 무슨……!”
쿠르르릉.
심지어는 성벽까지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잔해가 쌓이며 모든 성문이 무너져 내렸다. 입구도, 출구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것들. 원래 가야 할 곳으로 보내 주마.”
콰과과광!
도시 안쪽. 영문 모를 대폭발에 당황해하는 병사들의 사이로, 한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하이 마스터 오스람.
철벽의 마스터라는 수식어가 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수비적이기만 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밀릴 수밖에 없는 거점을 개인의 무력으로 틀어막고 버텼기에 붙은 별명일 뿐.
그리고 그 진정한 무력이 지금 이곳에서 선보여지고 있었다.
탈환을 자신하며 보낸 수천의 병사들이었지만 하이 마스터는커녕 마스터 레벨조차 없는 이상,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계속 눈싸움만 할 거냐 ”
그것은 로칸이 있는 영주성 쪽도 마찬가지. 추가적인 폭음을 통해 오스람이 시작한 것을 인지한 순간 로칸도 기세를 일으켰다. 탈환전을 노리는 이들을 상대로 ‘방어전’을 시작했다.
[타이틀 ‘최초의 기사’의 효과로 ‘기사도’가 발휘됩니다. 방어전 진행 시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타이틀 ‘최초의 점령군’의 효과로 방어전 진행 시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타이틀 ‘최초의 점령군’의 효과로 적과의 인원 차이에 비례해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