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탈환전 (1)
2 대 수천.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그것도 두 명 쪽의 승리라는 믿을 수 없는 결말로.
물론 그것을 위해 엄청난 희생이 있기는 했다.
마스터 레벨에 오르는 순간 ‘괴물’이 된다지만 오스람의 마나양에도 한계가 있는 관계로 폭탄과 포션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며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본 것이다.
그뿐 아니라 거점 자체가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에 복구를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안 했다.
로칸은 쿨하게 사누하 영지를 포기했다. 따로 무언가를 하는 대신 재탈환전을 감행하면 쉽게 가져갈 수 있게끔 방치하기로 한 것이다.
지리와 지형상 언제든 빼앗길 게 분명한 곳이었으니 미련 없이 수비를 포기한 것이다. 어차피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만한 투자를 하고서 로칸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산처럼 그득그득 쌓이는 경험치!
그것이 로칸이 얻은 전부였다. 오스람이 그의 가디언처럼 따라붙으면서 그가 적을 해치우며 획득하는 경험치 역시도 모두 로칸에게 돌아간 것이다.
아예 펫이나 소환수라면 모를까, 용병이나 가디언 등이 획득하는 아이템과 경험치는 유저에게 돌아가는 까닭이었다.
덕분에 로칸은 수천의 경험치와 아이템을 모조리 독식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폭렙!
슬슬 죽도록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는 소위 ‘사(死)렙 구간’에 접어들었지만 단숨에 몇 개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돈으로 경험치를 살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지.’
어차피 돈은 차고 넘친다. 게다가 아직 풀지 않았을 뿐, 시장에 푸는 순간 지금까지 모은 돈은 우습게 벌 수 있는 아이템이 둘이나 더 있었다.
강화석과 미용 포션.
그것을 손에 쥔 로칸이 레벨을 올리기 위해 돈을 아낄 리 없었다. 오히려 문제인 것은 폭탄과 폭발 포션, 독 포션의 부족한 공급이랄까.
각 대도시를 돌며 물량을 채웠지만 한 번에 쏟아붓는 양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
“예. 이제 슬슬 다음 단계를 준비하죠.”
로칸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황제에게 바친 거점을 제외하고도 그가 가진 거점은 몇 개나 더 있었고, 그곳에서도 똑같은 짓을 해 줄 의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곳에서 그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일어날 일에도 대비했다.
[미더랑 영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버서크의 후유증이 끝나고 다시 몇 시간이 지났을 때, 로칸의 시야에 두 개의 알림이 나타났다.
사누하 영지와 마찬가지로 검은용군단 진영에 위치한 영지 한 곳에 탈환전이 시작된 것이다.
로칸은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미더랑 영지로 이동했다. 이미 검은용군단 진영에 위치한 거점들은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서둘러라! 무조건 영주성부터 뚫어!”
“도적 계열은 폭탄부터 찾아라! 이상한 점이 있으면 선조치 후보고해!”
이번에도 양상은 같았다. 사누하 영지의 실패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지 폭탄과 포션에 대해 주의하는 것과 공격자가 언데드가 아닌 오크들이라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 미더랑 방어의 핵심은 폭탄이 아니었다.
피유웅. 펑!
이번에도 영주성 입구를 틀어막은 로칸은 기계공학 아이템 중 하나인 ‘신호탄’을 하늘에 터트렸다.
투우웅!
그와 함께 하늘을 수놓는 것은 다름 아닌 투석기.
미더랑의 경우 이미 성벽이 무너져 있었기에 폭탄을 사용하는 대신 등지고 있는 산 쪽에 투석기를 배치해 둔 것이다.
위장막을 설치해 둔 덕분에 사전 노출은 피할 수 있었고, 로칸이 신호하는 순간 위장막의 해제와 함께 바윗덩이들이 하늘을 날았다.
“끄아아악!”
“저걸 어떻게 막아!”
“마법, 마법을 쏴! 요격 하라고! 안 되면 방향이라도……!”
예상치 못한 폭격에 놈들이 당황하는 사이, 후방을 치고 올라오는 인영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오스람이다.
하이 마스터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를 가르쳐 주듯 그는 오러를 채찍처럼 뽑아내며 진형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씨발! 그냥 끌어들여! 바짓가랑이를 잡아서라도 쥐포로 만들어버리라고!”
이쯤 되자 적들도 이판사판이었다. 아직도 투석기의 포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일부가 투석기부터 부수기 위해 이동하긴 했지만 처리를 완료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때문에 아예 물귀신 작전을 실행했다.
설령 거점 탈환에 실패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적대 진영의 하이 마스터를 잡아 낸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다. 단번에 남작이 아니라 자작의 작위까지도 받아 내지 모른다.
물론 하이 마스터라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해서 그저 오스람이 마스터 레벨 정도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스터 또한 국가적인 큰 전력이었으니까.
때문에 직접 전투로 잡아 낼 자신은 없고, 아예 목숨을 버리더라도 붙들어서 투석기에 깔리도록 유도하려 했다.
“태산일검.”
콰광!
“…….”
“…….”
오스람이 집채만 한 바위를 일 검에 박살 내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씨발, 저게 사람이냐.”
“답 없다. 튀어!”
그 이후로는 지리멸렬이었다.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존재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탈환전을 위해 들이닥쳤던 오크들은 투석기에 당했을 때보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남은 것은 일방적인 학살뿐!
“계속 그렇게 있을 건가 ”
반면 로칸이 있는 영주성 쪽은 소강상태였다.
어차피 경험치야 오스람이 알아서 벌어다 주니 로칸으로서는 무리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지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영주성 안쪽에 기계공학으로 만든 함정들을 깔아 두니 로칸을 무시하고 넘어가려던 놈들은 바보가 되고 말았다.
그런 놈들에게는 뒤통수에 도끼를 한 방씩 박아 주면 끝!
덕분에 영주성으로 몰려온 놈들이 좀처럼 덤벼들지 못하고 있을 때, 로칸의 시야에 또 한 가지의 알람이 나타났다.
[레갈리아 영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레갈리아 영지가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적들도 머리가 있으니 수천의 병력을 전멸시킨 것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았을 테고, 그 빈틈을 노려 역으로 레갈리아를 공격해 들어온 것이다.
아마도 이곳을 미끼로 던진다는 생각이겠지. 대단히 빠른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 줄 알았지.’
피유웅, 펑!
그것을 확인한 로칸이 두 번째 신호탄을 쏘았다.
오스람에게 퇴각을 명하는 신호였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약속을 해 두었던 것이다.
신호를 확인한 오스람은 적들을 몰아붙이는 척 외곽으로 빠져나갔고, 이제는 로칸 차례였다.
“기사 고용. 함정 설치.”
영지 관리 창을 이용해 영주성을 무장시켰다.
기사를 고용하고, 곳곳에 강력한 함정을 만들어 두었다. 자신이 빠져나가더라도 그들이 함부로 공략하지 못하도록.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고서야 거점을 탈환할 수 있도록.
뚫리는 것은 이제 상관없다. 경험치만 더 뽑아 먹을 수 있다면.
덤으로 그들의 드롭 아이템도 인벤토리에 자동 습득되니 어지간히 돈을 써서는 티도 안 날 터였다.
그렇게 나머지는 고용된 기사들에게 맡기고 몸을 빼낸 로칸은 즉시 룬 북을 열고 공격받고 있는 레갈리아로 몸을 날렸다.
당연히 오스람 역시 같은 곳으로 이동했다. NPC들에게는 룬 북이 없었지만 이 순간을 위해 비싼 값을 치르고 따로 제작한 위치 저장 텔레포트 스크롤을 지급해 둔 상태였으니 문제없었다.
“정비.”
곁에 있는 오스람의 존재를 확인한 로칸은 일단 정비를 명했다. 정비라고 해 봤자 포션을 사용해 소모된 마나를 회복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마나가 80% 이상 차올랐을 때,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위치는 레갈리아 내성이 아닌 것이다.
로칸은 적들의 공격 루트를 예상하고 그들의 후방으로 좌표를 찍어 둔 상태였다.
이유는 단 하나. 적의 정예를 잡기 위함이었다.
“괜찮겠습니까 ”
“맡겨 주십시오.”
슬쩍 돌아본 오스람은 그야말로 이를 갈고 있었다. 대부분의 날 동안 수성을 한 까닭인지 늘 불리하면 몸을 빼내는 적의 정예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는 것이다.
싸움에서 흥분은 금물이지만, 때로는 좋은 에너지원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투에 돌입했다.
‘좋군.’
떠나기 전 해 둔 안배 덕분에 상황은 무척 좋았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놈들이 오는 길목에 없던 함정을 설치하고,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공성 장비들을 배치해 둔 덕이다.
특히 함정의 경우 일회용에 불과했기에 적들도 큰돈을 들여 설치해 둘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상당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었다.
휘익!
오스람은 없다. 하지만 함정은 있다. 그 때문인지 적들은 기습의 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상태였다.
예상대로 적의 정예인 다섯 명의 마스터는 간을 보듯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고, 놈들을 발견하자마자 오스람이 득달 같이 달려들었다.
“태산일검!”
“엇!”
“저자가 어떻게 뒤에서……!”
화들짝 놀란 적의 마스터들은 급히 각자의 무기를 빼 들며 오스람의 조합 스킬에 저항했다.
“파멸의 일격!”
“흉신의 방패!”
“착취의 손아귀!”
한 박자 늦었지만 셋의 연계는 무척 좋은 편이었다.
같은 조합 스킬이라도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 간에는 상당한 위력 차이가 있었지만 한 명이 태산일검의 위력을 줄이고, 한 명이 몸으로 막아 내자 다른 한 명이 오스람의 생명력을 빼앗아 탱커에게 불어 넣었다.
덕분에 다소 생명력이 깎이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빠득!”
“오스람을 포위하라!”
“여기서 끝장을 본다!”
그리고 공격을 막아 내자 더욱 전의를 불태웠다.
오스람이 그들에게 이를 갈 듯, 그들 역시 오스람을 반드시 처치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마스터 레벨도 되지 않는 놈들로 오스람에게 제대로 된 피해조차 주기 어렵겠지만 힘만 빼 놓을 수 있다면 자신들 셋이 어떻게든 잡아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철벽의 마스터라고는 하나, 그는 이미 늙었으니까.
오스람의 전성기에 검을 맞대어 보지 못해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지만 그 혼자라면 정말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허허헝! 감히 어딜 나서느냐!”
그때,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던 로칸이 일갈을 내질렀다.
혼이 달아날 것 같은 울부짖음. 마스터들조차 한순간 휘청거릴 지경이었으니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병사들의 넋이 나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폭격! 너희들의 상대는 나다!”
그 틈을 타 로칸이 잔챙이 처리를 자처하고 나섰다.
한 차례 마스터 레벨을 꺾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부담스럽기도 했고, 오스람이라면 충분히 저 셋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누가 처리하든 이득을 보는 건 나니까.’
그리고 누가 그들을 잡든 경험치와 아이템, 명성, 공훈도를 얻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러니 무리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기에 로칸은 오스람이 신경 쓰지 않도록 병사와 기사 무리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최소 270레벨의 강자들이었지만, 마스터 레벨만 아니라면 로칸이 질 이유는 전혀 없었다.
탱커든 뭐든 로칸의 도끼에 걸리기만 하면 두 쪽이 났고, 간혹 피해를 입더라도 더 빠르고 강하게 상대를 쥐어 패며 피의 각인 효과로 생명력을 회복시켰다.
지루한 버티기가 아니라 로칸 역시 일방적인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방어전’의 일환인 까닭이다.
“저건 또 뭐야!”
“레갈리아에 미치광이 영주가 하나 내려왔다더니…….”
그 모습에 3인방의 표정이 일변했다. 오스람만 눈에 보일 뿐, 거의 종자처럼 여기던 로칸이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보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총력을 기율여도 오스람을 몰아붙일까 말까 한 판에……!
“빨리 처리해!”
결국 그들 중 하나가 나섰다. 오스람을 상대로 버티기를 각오하며 딜러에 해당하는 마스터급 기사가 몸을 빼낸 것이다.
“건방진 놈들이군!”
이번에는 오스람이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마스터 둘이 버티고 섰다니 눈빛이 변하는가 싶더니 감추었던 힘을 격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