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고대 황제의 부활 (2)
휘이이잉.
때마침 기분 좋은 바람이 불며 바닥의 모래를 쓸었다.
로칸이 위치한 곳은 완전한 사막은 아니지만 사막에 가까운 모래 지형이었는데, 특히 모래가 먼지처럼 가벼워 강풍이 아니라도 제법 많은 모래 먼지가 쓸려 날아갔다.
그리고 그 아래. 흐릿하지만 일반적인 대지와 다른 무언가가 나타났다.
짹 투툭.
카이가 쫀 것은 모래 밑에 있는 바윗덩이였다.
그냥 바위가 아니라 조금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비석이라고 하는 편이 맞는 것이 모래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로칸이 벽화의 그림과 이 장소를 제대로 매칭시키지 못했던 것이겠지.
고작 끄트머리가 조금 보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로칸은 직감할 수 있었다. 즉시 준비해 온 스크롤을 찢었다.
거스트 오브 윈드.
휘이이이이잉!
돌풍이 몰아쳤다. 먼저 손바닥으로 감싸 쥐지 않았다면 카이의 작은 몸이 짐작도 할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을 터였다.
그러나 로칸의 투박한 손은 굳건한 울타리이자 지붕이 되어 주었고, 주변에 가득 쌓인 모래들만 몽땅 날려 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이곳에서 또 다른 하늘을 보았노라.]
돌을 자세히 살피자 거친 필기체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고대어였지만 로칸은 타이틀의 효과로 그것을 읽는 데 성공했다.
“제대로 찾았군.”
그 글이 의미하는 바를 로칸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전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던 것이었으니 다른 이들이었다면 짐작도 하지 못할 터였다.
하늘 위의 하늘. 또 다른 하늘.
그것은 의외로 흔한 표현이었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던 고대 황제의 상황에 빗댄다면 간단히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 그것도 범접할 수 없는 강자를 만난 것이다.
‘……라고 착각하기 쉽지.’
전생에도 그랬다. 그리고 한바탕 그 존재를 찾는 소동 아닌 소동이 있었다.
고대 황제가 또 다른 하늘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강한 존재일까 혹시 드래곤이라도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역시 어떤 유산 같은 것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것을 손에 넣는다면. 그를 깨울 수만 있다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그 결말은 의외로 허무했다.
‘진짜 하늘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니까.’
하늘 너머의 하늘. 또 다른 세상. 고대 황제가 본 것은 중앙 대륙 이후의 세상이었다.
중앙 대륙 내에 워낙 도시가 많아 몇 차 도시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새로운 세상, 새로운 대륙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중앙 대륙보다도 월등히 강한 존재들이 거주하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하늘길이 열리는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담담히 비석을 응시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구슬처럼 튀어나온 어떤 곳을 꽉 움켜쥐었다.
우우우웅.
순간, 마나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로칸이 지니고 있던 마나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상당한 양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게이트.
지속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로칸은 서둘러 몸을 던졌다. 게이트에 연결된 어떤 공간으로 이동했다.
“흠.”
짹 도도도돗.
파닥거리며 떠오른 카이가 로칸의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제법 레벨이 올라 어지간히 거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기에 로칸도 슬쩍 쳐다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맞는 것 같군.’
내부는 어두웠지만 야간시를 지닌 로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황제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곤란을 겪게 할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대 황제의 부활 퀘스트를 진행했던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사실이니까.
짹!
그때, 뭔가를 발견한 카이가 귓가에 지저귀었다.
녀석이 발견한 것은 약 1천여 개의 금속 인형들. 붉은 십자군이라 불리던 존재들이 인형이 되어 황제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가자.”
하지만 로칸은 카이를 톡톡 건드려 안심시키고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생각 같아서는 저 아래로 내려가 인형들을 박살 내 놓고 싶었지만 고대 황제가 부활하기 전까지 저것들은 ‘파괴 불가’ 판정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괜히 힘을 빼는 대신 진입을 서둘렀다.
“짹!”
카이가 다시 한 번 소리를 낸 것은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황제의 진짜 무덤은 화려하진 않지만 무척 커다랬고, 어째서인지 흑색마 소환도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허튼 짓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기능들을 제한시킨 모양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에피소드이긴 하니까.
‘가만 ’
그때, 로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재미난 가설이 떠올랐다. 실패할 가능성도 높지만, 성공한다면 엄청난 이득을 기대해 봐도 좋을 터였다.
로칸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을 향해 이동했다.
“저거로군.”
길의 끝. 제단에 모셔져 있는 것은 고대 황제의 시신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고대 황제의 목이었다.
나머지 시신 조각은 그의 부활을 두려워한 자들이 중앙 대륙 곳곳에 찢어 숨겨 두었지만 목만큼은 이곳에 남아 보관되고 있었다.
의회에서 입수했다는 고대 황제의 시신도 바로 찢겨진 시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저 신체 부위 중 일부에 불과하기에 살과 뼈를 재생시키고 다시 피를 불어 넣을 수는 있어도 고대 황제의 영혼만큼은 제대로 불어 넣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로칸에게 이 같은 퀘스트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목은 다르다. 머리에 영이 깃든다는 미신이 있기도 했고, 다른 시체 부위들처럼 배양( )하는 것이 불가능한 대체 불가의 부위인 것이다.
그리고 황제의 장비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검까지.
이것이라면 충분히 황제의 영혼을 추출하여 부활시킬 수 있을 터였다.
“누구 좋으라고 ”
하지만 로칸은 착실하게 퀘스트를 수행할 생각이 없었다.
확실히 지금 시점에서 고대 황제가 부활하고, 붉은 십자군이 부활하면 인간 족은 단일 종족의 힘만으로도 검은용군단 모두를 압박할 수 있는 강대한 힘을 얻게 될 터였다.
다른 종족들도 종족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감히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겠지.
“그럼 재미가 없지.”
그러나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인간 우월주의에 빠진 고대 황제가 검은용군단뿐 아니라 황금사자 진영까지 적대하며 모든 종족 위에 군림하려 들고,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진영을 처치하고 굴복시키는 색다른 퀘스트가 발동할지도 모르지만 로칸의 기준에서 그것은 재미없는 일이었다.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를 직접 상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 수가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만약 로칸이 나서기도 전에 1천의 마스터로 이루어진 붉은 십자군과 열 명의 하이 마스터로 이루어진 지휘관들이 먼저 칼을 뽑는다면 나서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콘돌이 다른 종족들의 생존을 위해 온갖 반격 퀘스트들을 내놓고 그들의 성장을 촉진시키겠지만, 정작 그 모든 것들이 로칸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대 황제의 목과 검을 영영 감추어 둬야만 할까 인간 종족 퀘스트의 완료를 기약 없이 미뤄야 할까 아니다. 그런 거라면 애를 써서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타락의 구슬, 사용.”
마음을 굳힌 로칸은 아스타페 백작에게서 압수한 타락의 구슬을 사용했다.
그러자 황제의 목으로 녹색 기운이 흘러들어갔다. 타락의 힘이 깃든 것이다.
“된 건가 ”
하지만 로칸도 제대로 된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타락의 힘이 언데드를 직접 생성하지는 못하니까.
어차피 이것은 하나의 가능성을 심어 두는 것일 뿐이니,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결과물을 까 봐야만 알 수 있었다.
“두 개는 과하지.”
그렇게 타락의 힘이 깃든 고대 황제의 목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로칸은 그가 사용하던 검을 집어 들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봉인된 고대의 검][유니크][퀘스트]
힘이 봉인된 고대의 검. 대부분의 힘이 봉인되었지만 여전히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공격력 : 2,900
-내구력 : 10,000/10,000
-[검의 제왕] 효과로 검을 사용한 공격력 500% 증가
-[검의 축복] 효과로 착용 시 모든 능력치 + 100
-착용 제한 : 300레벨
봉인되었다지만 실로 무시무시한 능력치였다. 착용 제한도 마스터급인 데다 검인 주제에 봉인된 광풍의 배틀 액스와 비교해도 공격력이 조금 떨어질 뿐이었다. 옵션 또한 뒤지지 않았고.
심지어 에픽 등급도 아닌 유니크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과연 이 검을 꼭 의회에 가져가야 할까
로칸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는 자가 있으면 입을 찢어 놓을 의향이 있었다. 고대 황제의 완벽한 부활을 꿈꾸는 광신도라면 모를까 자신이 왜
때문에 로칸은 두 가지 아이템을 챙긴 뒤, 일단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영주 방 깊숙한 곳에 고대 황제의 무기인 봉인 된 고대의 검을 감추어 두고 나서야 비로소 타이무라에 있는 의회로 향했다.
“고대 황제의 목을 가져왔습니다.”
“뭣 ”
마치 택배 기사처럼 덤덤히 말하는 로칸의 보고에 의회가 뒤집어졌다.
그토록 애가 타게 찾고 있던 고대 황제의 목을 가져왔다니
그저 고대 황제의 유품 중 하나를 얻어 어떻게든 영혼 추출을 해 보려 했던 그들에게 이것은 큰 기회였다. 아니, 다시없을 기회였다.
애장품만으로도 높은 확률의 영혼 추출이 가능한데 목이라면 거의 100% 가능할 테니까.
크로반은 가능하면 그 모든 공을 독식하고 싶었지만, 이건 그럴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고대 황제를 단번에 부활시킬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스케일이 너무 컸다. 홀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기, 기다리게. 황제 폐하께 보고를 올리도록 하지.”
때문에 크로반은 모처럼 욕심을 버리고 황제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다.
로칸의 공을 이야기하여 자신이 그에게 의뢰를 주었다는 사실을 슬쩍 끼워 넣기는 했지만 공을 가로챌 수작 따위는 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엉덩이 무거운 황제가 직접 그를 찾아와 로칸이 가져온 고대 황제의 목을 홀린 듯이 받아들었다.
“진짜로군.”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황제의 핏속에 녹아 있는 어떠한 힘이 강하게 이끌림을 느꼈다.
“장하다. 참으로 장한 일을 해냈다.”
감격에 겹던 황제의 목소리에 어떤 힘이 실렸다. 아니, 힘만이 아니라 한과 같은 것도 함께 실렸다.
과거의 영광으로 황금사자 진영의 한자리를 겨우 차지하고 있지만, 같은 진영 내에서도 무시받던 설움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위험하군.’
곁에서 담담히 그의 변화를 지켜보던 로칸은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황제가 폭주하고 있음을, 아주 위험한 경계에 발을 들이고 있음을.
“이제 우리 인간들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이다. 최고의 지성 종족이 누구인지, 누가 최강의 종족인지 세계가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두 눈을 붉게 물들이는 폭발한 감정은 로칸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광기.
그것은 무언가를 향한 광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