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고대 황제의 부활 (3) (14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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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황제의 부활 (3)

‘그래. 얘도 미친놈이었지.’

하긴, 그러니 고대의 황제와 그의 군대까지 일으켜 인간 종족의 부흥을 이끌려고 하는 것이겠지.

아무리 인간 종족이 다른 종족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고 약하다지만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스터 레벨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NPC들뿐 아니라 유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

로칸이야 워낙 압도적인 일들을 벌여 온 터라 인간 종족의 한계를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확실히 종족 특성만 놓고 본다면 인간 종족은 모든 종족 중에서 가장 약했다. 언밸런스라고 할 정도로.

실제로 그 차이를 얕본 인간 유저들 중 상당수가 한계를 느끼고 캐릭터를 삭제한 뒤 다른 종족으로 새로 키우는 일이 많았고, 그동안 플레이한 것이 아까워 꾸역꾸역 키우고 있는 이들 역시 온몸으로 차이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인간 종족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당장 확인 가능한 건 두 가지 정도뿐이니까 말이야.’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장점은 바로 ‘훈련’과 ‘약함’이었다.

로칸이 그러했듯 훈련장을 이용해 타 종족에 비해 부족한 능력치의 일부를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장점이다.

이것만 제대로 해내더라도 고급 훈련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종족 간의 능력치 차이는 대부분 메울 수 있었지만 의외로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지겨운 반복을 견디질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약하다는 것 그 자체였다.

약하기에 뭔가를 이룰 수만 있다면 더 큰 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고등급의 타이틀을 획득하기 훨씬 쉽다는 것이었다.

다른 종족들은 당연하게 해내야 하는 일들이 인간족에게는 인정을 받을 만한 일이 되니까. 어느 정도 요령만 익혀도 매직 등급 타이틀 몇 개쯤은 쓸어 담을 수 있었다.

훈련장과 타이틀만 제대로 챙기더라도 약간의 부족함은 있겠지만 다른 종족에게 기가 죽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가능성이지.’

그러나 이 정도뿐이었다면 로칸도 다시 인간 종족을 택하는 것에 주저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 가지 장점이 그를 다시 인간 종족을 택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종족의 콘셉트가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앞선 두 가지 장점 모두 인간이 가진 가능성에서 발로된 것들이었고 마지막 세 번째 장점이야말로 그 가능성의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인간 종족 퀘스트 ‘고대 황제의 부활’이 최종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실험에 성공할 시 고대 황제가 부활하게 됩니다.]

[연구 완료까지 남은 시간 : 239시간 59분]

‘열흘이라……. 그 안에 마스터 레벨을 찍는 것까지는 무리겠군. 결국 실시간으로 마스터 레벨을 찍는 수밖에 없나 ’

그때, 인간 종족 퀘스트 ‘고대 황제의 부활’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알림이 나타났다.

실험은 당연히 성공적으로 끝날 터였고, 그렇다면 앞으로 열흘 뒤 고대 황제와 붉은 십자군이 부활한다는 소리였다.

로칸은 그사이 어떻게든 마스터 레벨을 찍고 싶었지만 아직 290도 되지 않는 레벨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결국, 그들이 부활한 이후 빠르게 레벨을 올려 마스터 레벨을 찍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걸 완성시키지 못한다면 고대 황제를 잡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

로칸이 이처럼 부득불 마스터 레벨을 찍으려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마스터 스킬을 얻기 위하여. 그리하여 전생에서 로칸이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던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로칸 덕분에 인간의 ‘가능성’이 알려지게 되었었다.

‘이번에는 좀 다른 걸 섞어 볼까 ’

여러 가지 스킬을 조합하며 하나의 스킬을 창조해 낸다는 것은 같지만, 마스터 스킬은 자신의 클래스가 아닌 스킬까지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정 섞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족별로 조합 할 수 있는 클래스의 종류와 숫자가 제한되어 있었다.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

오직 인간만이 모든 클래스의 스킬을 조합할 수 있고, 한 번에 조합 가능한 스킬의 숫자 또한 제한이 없는 것이다.

조합 스킬처럼, 무조건 많이 섞는다고 강한 스킬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만 뽑아내면 그 어떤 종족보다 강력한 마스터 스킬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 종족이 뒤늦게 부흥기를 맞은 것도 바로 이러한 비밀이 밝혀진 이후다.

로칸을 비롯한 다수의 인간족 마스터 레벨 유저들이 상위권을 멋대로 휘저은 덕분에 그 강함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로칸은 전생과 달리 좀 더 색다른 스킬들을 섞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전생의 조합으로도 폭력의 왕이라 불릴 만큼 완성형의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2회 차 플레이를 하며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섞어 내려는 것이다.

과거의 능력으로는 창세의 왕에게 닿지 못했으니까.

이미 그가 가졌어야 할 많은 타이틀들을 선점한 로칸이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창세의 왕. 그가 빼앗은 타이틀 대신 또 어떤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황제의 앞에서 물러난 로칸은 가만히 다음 계획들을 세우다 왼 어깨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는 카이.

로칸은 남은 열흘 동안 레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한편, 카이의 레벨을 올려 둘 생각이었다. 당장 탑승까지는 무리일지 몰라도 적어도 전투에 방해가 되지는 않아야 할 테니까.

“로그아웃.”

그렇게 레벨 업 동선을 비롯한 열흘간의 계획을 세운 로칸은 모처럼 여유 있게 게임을 빠져나왔다.

고대 황제가 부활하면 로그아웃할 새도 없이 부산스러워질 테니 미리 쉬고 컨디션을 끌어 올리기 위함이었다.

“……응 ”

그렇게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TV를 조작하고 인공지능 비서인 령에게 지시하여 정보를 모으던 로칸의 눈에 스마트폰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아주 오랜만에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가 확인되었다.

[너 어쩌려고 그랬니 아버지가 너 휴학한 거 아셨다. 당장 쫓아간다 하시는 거 내가 말렸으니 이번 주말에는 꼭 내려오렴. 아니, 휴학했으니까 아르바이트하는 거 아니면 평일에라도 내려와서 싹싹 빌어.]

“……윽.”

대번에 영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휴학하고 게임을 한다면 분명 노발대발하실 것이 분명해서 몰래 휴학 신청을 해 두었는데 대체 어떻게 아신 걸까.

아니, 어떻게 알았는지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말 안 통하기로 유명한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일 뿐.

휴학을 하고 게임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다리몽둥이를 분지르든가, 게임 캡슐을 박살 내든가 둘 중 하나는 일어날 터였다.

‘전생에서는 휴학이 아니라 성적이 박살 난 것을 아신 뒤였지만, 어쨌든 연을 끊자며 모든 지원과 연락을 끊으셨지.’

영민은 벌써 골이 아파 오는 것 같았다.

일단 어머니께는 알겠다고 답을 보내기는 했지만 오늘이 목요일이니 주말까지는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아니, 마음을 돌리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어떻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후우.”

영민이 한껏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로칸이었을 때조차도 몇 번 지은 적 없는 심각한 표정이었기에 보는 사람조차 불안해질 지경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만큼 떨리고 불안한 상황이었다.

“아버지.”

“앉아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아버지. 그리고 그 옆에서 어머니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둘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윽…….’

게임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는 독불장군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지만 현실에서는, 상대가 아버지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고집을 넘어선 꼬장꼬장함이 얼굴에 보이는 아버지였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학교에 전화해 봤다. 휴학을 했다고 하더구나.”

“……예.”

이미 다 알고 있는 마당에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영민은 슬쩍 두 분의 눈치를 보다가 담담히 대답했다.

“왜냐 ”

그러자 훅 들어오는 직구. 딱히 노기가 서린 말투도 아니지만 여기서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건 자명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한다면 분노가 폭발하시겠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그 어린 것을 야구 배트로 엉덩이 쉰 대나 두들기셨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지는 영민이었다.

영민은 어쩌면 게임 속 자신의 성격이 아버지를 닮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을…… 좀 했습니다.”

“일 취업을 한 거냐 ”

게임이라고 대답한다면 뭔가가 얼굴로 날아왔을지 모르지만 일이라고 하자 반응이 조금 유해졌다. 취업이 아니라도 인턴쯤을 했다고 말한다면 후속 질문은 이어지겠지만 꽤 유하게 풀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영민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본가에 내려와 시간을 뺏기는 행위 자체가 그에게는 너무 시간이 아까운 일인 것이다. 그러니 이번 한 번으로 끝을 내야만 했다.

“어디서 일을 했다는 거냐 어서 대답을 좀 해 봐!”

“이걸 봐 주세요.”

표정을 굳힌 로칸은 말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답답해하며 벌써 성질을 내기 시작하는 아버지 대신, 그 옆에서 불안해하시는 어머니를 향해 작고 네모난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게 뭐니 어머나!”

물음표를 띄우며 그것을 받아 든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셨다. 그저 눈만 껌벅거리며 영민과 그것을 번갈아 보기만 하실 뿐이었다.

“뭔데 그래 ……너 이게 어디서 난 거냐.”

아버지가 휙 낚아채 간 그것은 다름 아닌 통장이었다. 오늘을 위해 로칸이 어제 새로 개설한 따끈따끈한 통장. 그리고 그 안에는 무려 0이 여덟 개나 찍혀 있었다.

1억!

골드를 팔아 급하게 마련한 현금 1억 원이 그 통장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큰돈이지만, 지금의 로칸에게는 그리 무리되지 않는 정도의 골드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대학생에게 1억이 든 통장이라니, 정당한 방법으로 벌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때문에 어머니의 표정에는 걱정이, 아버지의 표정에는 당황과 노기가 어려 있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노력한 만큼 번 돈이니까. 그리고 그 돈은 드리는 거니까 편하게 쓰세요. 이 집 남은 대출금도 갚으시고.”

사실 게임 머니의 현금화가 합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라 말이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아이템의, 골드의 현금화는 더 로드에서 당연하게 통용되고 있는 일일 뿐이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스윽.

아버지가 불신에 찬 눈빛으로 뭔가를 말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영민이 먼저 선수를 쳤다. 통장을 하나 더 꺼낸 것이다.

들어 있는 금액은 이번에도 똑같이 1억 원. 이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었다.

“이건 제 통장입니다. 그거 드려도 저 쓸 돈은 충분하니까 걱정 말고 쓰세요.”

원한다면 1~2억도 더 당길 수 있는 영민이지만 딱 1억을 더 바꾼 것은 아버지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1억을 드리고 자신의 통장에는 2억이 들어 있다면 내심 서운해할 수도 있는 분이니까.

“이거 참…… 말해 봐라,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냐 ”

그제야 아버지도 인정했다. 불법적인 일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지우지 못한 듯했지만.

“그 돈 모두 게임으로 벌었습니다.”

“게임 ”

게임으로 돈을 번다는 사실 자체는 두 분에게도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영민이 중고등학생 때도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을 팔아 돈을 벌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단위가 달라서인지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시는 모양이었다.

“더 로드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게임이 있습니다. 그 게임의 아이템을 판 돈입니다. 아직 초반이니 앞으로는 더 벌 겁니다.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을 예정이고요. 그래서……. 학교는 자퇴를 할까 합니다.”

“…….”

자퇴 이야기까지 나왔음에도 아버지의 반응은 없었다. 그저 침묵을 유지하며 한참이나 골똘히 생각에 잠기셨다.

덕분에 초조해진 건 영민도 마찬가지.

어머니는 뭔가를 말씀하시려다가 역효과일까 싶으셨는지 말을 아끼셨고, 한참 뒤에야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여셨다.

“좋다. 매일 게임만 하더니 네가 이쪽으로 재주라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아무나 이 정도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 게임이란 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재능이 있는 일을 발견했다면 그쪽에 매진해 보는 것도 좋겠지.”

“……!”

1억의 힘일까 매우 긍정적인 반응. 이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못했던 까닭에 영민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학교는 포기하지 마라. 세상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나중에 애한테도 부끄럽지 않겠냐. 그리고 이 돈은 쓰지 않고 가지고 있을 테니 혹시 필요하게 되면 이야기 하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영민이 밝은 표정으로 머리를 숙였다. 진심으로 허락에 감사를 표했다.

이제,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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