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광풍의 흔적을 찾아서 (2)
‘만만치 않군.’
마스터 레벨과의 2 대 1. 그것은 로칸에게도 버거운 것이었다.
그나마 적들도 쿨 타임이 긴 마스터 스킬을 아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 둘이서 짜고 한 번에 쏟아붓는다면 제아무리 로칸이라 할지라도, 버서크의 효능이 있다 할지라도 죽음을 면키 어려울 터였다.
때문에 로칸은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식의 광전사 스타일 전투를 선보이는 대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쟀다.
타이틀 효과로도 어렵지만 어쩌면 한순간 뒤집을 수 있는 순간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리고 그 타이밍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마스터 레벨도 아닌 상대에게 둘이나 되는 마스터가 달라붙고도 제대로 찍어 누르지 못 하는 것에 짜증이 난 놈들 중 하나가 승부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후우우웅!
사람보다도 커다란 대검을 횡으로 쓸어오는 것을 확인한 로칸이 공중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다른 한 놈이 허공에서 행동이 제약된 로칸을 향해 조합 스킬을 발동해 꼬챙이 같은 크리스를 찔러 왔다.
“가드!”
까앙!
로칸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했다. 생명력이 깎이는 것쯤은 어차피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 방어력을 높인 팔을 가져다 대며 몸을 비튼 것이다.
덕분에 허공에서 한 번 더 몸을 띄워 놈들의 사이로 날았고, 인벤토리에서 한 손 가득 충격탄을 꺼내 던졌다.
“먹어라!”
퉁 퉁 퉁 퉁!
충격탄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닿는 순간 파괴되고, 파괴되는 순간 발동되는 넉백 효과는 마스터라 할지라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었다.
“헉!”
그리고 튕겨 나간 오크 마스터의 몸이 황제가 있는 방향으로 날았다.
“흑왕의……!”
푸슈슈슉!
당황한 놈은 급히 마음을 다잡으며 아껴 두었던 마스터 스킬을 펼치려 했지만 황제를 호위하던 근위기사들이 좀 더 빨랐다.
최소 마스터 레벨에 오른 강자들. 그들이 일시에 힘을 떨쳐 놈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광전사도 아닌 놈은 그 몰매를 견뎌 낼 재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치워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제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이처럼 뜻깊은 자리에 놈의 더러운 시신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된 다는 듯 무척이나 냉정하고 경멸적인 눈초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뭣들 하느냐! 저 더럽고 오만한 놈들에게 인간의 힘을 보여 주어라!”
[황제의 오라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25%만큼 증가합니다.]
[황제의 오라 효과로 모든 재사용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황제의 오라 효과로 공격력과 방어력이 25%만큼 증가합니다.]
[황제의 오라 효과로 모든 스킬의 위력이 25%만큼 증가합니다.]
오직 황제만이 발휘 할 수 있는 광역 버프가 발동된 것이다.
모든 능력치와 공격력, 방어력이 증가하고 재사용 시간마저 초기화되는 미친 능력.
이 정도면 권위가 아니라 권능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효과였다.
“그렇다면 질 수 없지.”
그 효과를 가장 제대로 받은 것은 바로 로칸이었다.
2 대 1 상황에서 벗어난 것도 모자라 또다시 능력이 강화되었으니 아무리 마스터 레벨이라 해도 일대일로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혈귀강림!”
“쳇.”
로칸은 강화된 능력을 이용해 한껏 적을 몰아쳤지만 상대도 초짜는 아니었다. 갑자기 더욱 무거워진 공격을 간신히 받아 내는가 싶더니 안 되겠는지 마스터 스킬을 발동시켰다.
혈귀강림. 주술 능력을 베이스로 온갖 강화 스킬을 떡칠한 버서크의 강화 버전 능력이 녀석의 몸에 깃들었다.
버서크처럼 불사의 능력은 아니지만 능력 증폭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한 수 위.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전력을 다해 부딪쳤다.
“광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녀석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크리티컬!]
[크리티컬!]
[크리티컬!]
이미 여러 습격자들을 베어 넘기며 전투 중첩 효과들이 최고조에 이른 로칸이었다.
덕분에 공격 속도와 치명타 확률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고, 로칸의 도끼가 스킬 때마다 놈의 생명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격노왕의 도끼 특수 효과로 30%나 증폭된 대미지가 가감 없이 놈에게 꽂혀 들었다.
“크윽!”
그러나 로칸도 마찬가지였다.
버서크의 불사 효과를 믿고 방어를 도외시한 채 공격을 때려 붓는 바람에 로칸의 몸으로 가해지는 충격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충분할 만큼 강화를 끝마친 방어구가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지며 생명력이 곤두박질을 쳤다.
그것이 바로 로칸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생명력이 5% 이하로 하락했습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생명력이 5% 이하로 하락할 시 발동되는 불굴의 의지 특수 효과! 피의 각인이 자꾸만 생명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적의 공격력이 더 위였다.
호승심이 강한 오크답게 마주쳐오는 로칸에게 지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이 순간은 버서크가 치트 키다, 이놈아!’
아무리 유저 보호를 위해 경감된 통증만 느껴진다지만 전신이 얼얼한 충격일 텐데도 로칸은 굳건히 버티며 오크 마스터와의 난타를 지속했다.
“인간…… 따위에게……!”
장장 10분간의 혈투. 최후의 승자는 역시 로칸이었다.
오크답게 머리를 뭉개 버리려는 놈의 시도를 차단하며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부어 댄 보람이 있게 놈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후우, 숨 돌릴 틈이 없군.”
쐐애애액!
그러나 로칸은 승리의 감상 따위를 즐길 틈이 없었다. 대결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매서운 화살이 한 발 날아온 것이다.
로칸의 목을 꿰뚫는 정밀 사격.
간신히 몸을 비틀어 피해 냈지만 살짝 긁히며 살갗이 터져 나갔다. 몇 센티만 가까웠어도 그대로 목이 터져 죽음을 맞이할 뻔했다.
“이렇게 되면…….”
로칸은 위치를 가늠할 새도 없이 숨어 버린 녀석의 자취를 쫓는 대신 몸을 움직였다. 전방을 향하는 대신, 고대 황제의 의식이 진행 중인 방향으로 뛰어들었다.
“멈추시오!”
“안 가, 안 가. 잠깐 숨만 좀 돌리자고.”
하지만 딱 근위기사들이 막아서는 위치까지였다.
버서크를 풀고 생명 충전으로 생명력을 회복한 로칸은 전투에 재참여하는 대신 숨을 돌리며 전황을 살폈다.
다행히 황제도 그것까지 뭐라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적의 마스터를 여럿이나 쳐죽인 로칸이니까.
‘일단 1차 후유증이라도 없애야 해.’
여러 버프와 타이틀 효과를 얻은 덕분에 마스터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비벼 볼 만도 했지만 그 작은 전투에 신경 쓰다가 죽어 버리면 말짱 꽝이었다.
때문에 로칸은 일단 1차 후유증이라도 없앤 후 적당히 간을 보며 적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차하면 후유증을 감수하고라도 버서크를 재시전할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 써 버리면 정말 남은 시간 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 ”
그리고 그때, 로칸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와, 이게 여기서 뜨네.’
[광풍의 흔적을 찾아서][퀘스트]
오래전 세계를 질타한 광풍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나머지 흔적을 찾아 광풍의 유지를 이으십시오.
-고급 훈련장 수료 (완료)
-해저 터널 최초 통과 (완료)
-클래스 익스퍼트 상태로 클래스 마스터 다섯 명 살해 (완료)
-봉인된 광풍의 배틀 액스 획득 (완료)
-
-
징검다리처럼 건너뛰었던 퀘스트의 빈 칸이 채워졌다.
뭔가 완료한 것이 아니라 완료당한 느낌이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정말 괴악한 완료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누가 있어 클래스 익스퍼트 때 클래스 마스터를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일대일로 죽일 생각을 하겠나 알고도 못 할 그 위업을 저도 모르게 달성한 로칸이었지만 이번에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보다 더한 조건이 아직 두 가지나 남아 있었으니까.
“젠장, 이정도면 힌트나 중간 보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쯤이면 뭐라도 주면서 꼬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스템은 묵묵부답. 어쩔 수 없이 혀를 차며 전장을 살펴야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비벼지는군.’
황제의 버프 덕분인지 일방적으로 밀리던 인간 측이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 가고 있었다.
마스터 레벨들은 철저히 회피하거나 같은 마스터가 버티기만 하고 그사이 버프를 받은 병사와 기사들이 적을 상대하니 여전히 밀리지만 그 속도를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었고, 적들 역시 대규모 전쟁이 아닌지라 제한적인 인원만 침투한 까닭이다.
‘각 진영의 최강자가 떴다면 벌써 끝났겠지.’
또한 함정일지 모른다는 의심도 한몫을 했다. 인간 종족의 종족 퀘스트가 벌써 끝이 났다는 것은 타 종족의 입장에서도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자칫 정예 전력을 투입했다가 그것이 황금사자 진영의 함정이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반대로 사실이라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기에 인원을 투입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만한 숫자의 마스터가 죽어 나간다면 그들로서도 큰 타격이지만, 회복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닌 것이다.
적의 하이 마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인 듯싶었다. 어차피 적을 섬멸하는 것이 아닌, 방해를 하고 망가뜨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다수의 마스터라면 힘들지만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랄까.
“크아아악!”
그렇게 한참 대치가 이어지자 조급해진 것은 적들이었다. 인간 측의 주력은 아직 되살린 고대 황제의 육신을 지키고 있는데 전진은 더뎌지기만 하니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돌파를 결심한 놈들은 일제히 마스터 스킬을 격발시켰다. 잔챙이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거나, 방해가 되는 마스터 레벨 기사들을 격살하며 통로를 뚫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실버 라이온 기사단은 들어라. 저 노예로 부리지도 못할 잡놈들의 팔과 다리를 잘라 내 앞에 대령하라!”
“충!”
하지만 그것이 트리거가 되었다. 담담히 전장을 살피던 황제의 두 눈에 노기가 서렸고, 그와 고대 황제의 육신을 수호하던 황제 직속의 황실 근위 기사단, 실버라이온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상급 마스터이자 일부는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초강자들이 전투에 나선 것이다.
“명심하라. 이건 섬멸전이 아니다. 목표를 파괴하는 데 집중해!”
그에 맞서 검은용군단의 적들도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의 목표는 섬멸이 아닌 파괴.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고대 황제의 육신에 한 칼만 먹이면 그만이었다. 고대 황제의 부활만 막는다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죽어도 좋았다.
서로가 다른 목적을 지닌 두 집단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신.’
그 틈에서 로칸은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전장을 이탈한 것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나서기 위해서.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혼란의 틈으로 숨어든 것이다.
현 황제 역시 마스터 레벨이고, 그의 곁을 지키는 하이 마스터도 있었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몸을 던져 황제의 목숨이라도 구한다면 대단한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죽음의 가호!”
“필멸의 일격!”
“실버 라이온의 광휘!”
“실버 라이온의 기백!”
콰과과과과과과광!
같은 마스터 레벨 간의 대결이지만 전투 스타일은 판이했다.
검은용군단의 습격자들은 각자가 위력적인 마스터 스킬을 퍼붓는 반면, 실버 라이온 기사단은 서로에게 시너지를 줄 수 있는 마스터 스킬을 순차적으로 꺼내서 엄청난 집단 강화 능력을 보인 것이다.
거기에 일부는 공격을, 일부는 수비를 담당하는 마스터 스킬을 사용하니 아주 간단히 적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피해를 가중시킬 수 있었다.
“소멸의 화살.”
그렇게 치열한 공방이 오가던 중, 한발 물러나 있던 검은용군단 병사들의 틈에서 기이한 파장을 가진 화살 한 발이 날아들었다. 소리도, 기척도 없지만 직시하는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드는 그런 공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