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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광풍의 흔적을 찾아서 (3) (153/500)

 # 153

광풍의 흔적을 찾아서 (3)

“하이 마스터!”

“막앗!”

퍽!

고블린 하이 마스터 하나가 병사인 척 숨어 있던 것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느낀 이들이 뒤늦게 반응했지만 이미 늦었다.

가장 먼저 반응해 몸을 날린 실버 라이온 기사 하나의 몸이 지워진 듯 꿰뚫렸지만 화살은 전혀 힘을 잃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재차 몸을 날리기에는 각도가 교묘했다.

애초에 저격을 목표로 한 일격인지라 몸을 날려도 닿지 못하는 위치인 것이다.

‘황제 고대 황제 ’

그것은 로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버 라이온 기사단보다도 빠르게 공격을 눈치챈 로칸이지만 막아설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그 기회조차 잃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선택을 해야 했다. 황제의 앞을 막아설지, 고대 황제의 육신을 보호할지.

1초를 몇으로 쪼갠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제압!”

촤르르륵!

황제의 버프로 재사용 시간이 돌아온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이 특수 능력이 고대 황제의 육신을 휘감았다.

터엉!

“……!”

무엇이든 무로 돌리는 소멸의 화살이었다.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지는 않지만 소리마저 먹어 치우는 무음의 화살에, 닿는 순간 소멸되어 버리는 일격필살의 스킬.

그러나 그조차도 압도적인 템빨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고대 황제의 몸을 순식간에 칭칭 감아 버린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에 닿자 통 하고 튕겨 나와 버린 것이다.

심지어 튕겨져 나온 화살에는 어떠한 힘도 실려 있지 않았다. 소멸의 힘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어떤 기운이 쇠사슬 가득 실린 까닭이었다.

‘……이게 되네.’

버서크를 써도, 광살로 부딪쳐 보더라도 막아 낼 자신은 없었다. 그렇기에 도박을 하듯 던진 것인데 진짜로 막아 낼 줄이야.

로칸은 자신이 하고서도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을 죽여라!”

그러는 동안, 인간 측의 하이 마스터가 고블린 하이 마스터를 잡기 위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같은 하이 마스터라지만 이처럼 좁은 공간 내에서 싸우면 궁수 계열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은 당연하다.

놈은 자신을 실패하게 만든 로칸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조합 스킬을 발동해 몸을 빼냈다.

이쯤 되면 이미 실패나 마찬가지였으니 자신이라도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옳았다.

“퇴각하라!”

고블린 하이 마스터의 외침에 고블린 진영이 술렁거렸다.

예고되지 않은 후퇴이기도 했지만 이만큼 병력을 희생하고도 승부를 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정말 후퇴를 해야 할지 망설이는 것이었다.

어차피 임무에 실패한 이상 돌아가도 좋은 꼴은 보기 힘들 텐데.

때문에 일부는 명령에 따라 후퇴했지만 일부는 결연한 표정으로 오히려 인간들에게 덤벼들었다.

오크나 트롤, 언데드 진영도 놈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는 모습이지만 명령권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고블린들과 같은 이유로, 그들 역시 결사항전을 선택했다.

하이 마스터의 발만 묶는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될 것도 같은데……!

그 도박 중독자 같은 마음이 그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그것이 그들이 전멸하게 만드는 독약이 되었다.

“주위를 정비하라. 병력을 증원하고 수비를 굳건히 하라!”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자 황제는 즉시 재정비를 지시했다.

제법 많은 숫자의 마스터를 잃긴 했지만 고대 황제와 붉은십자군만 부활시킬 수 있다면야.

1천의 마스터와 열 명의 하이 마스터라면 손해를 메우다 못해 다른 종족을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피해가 집계되어 보고될수록 황제의 눈에는 광기가 들어찼다.

“잘했다. 잘해 주었다, 레갈리아 백작.”

“황송합니다, 폐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황제의 칭찬에 로칸은 겸손으로 답했다. 은신으로 숨은 자신을 꿰뚫어 보던 황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했다.

[공훈도 30,000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30,000이나 되는 공훈도를 얻은 것은 덤.

마스터 둘을 해치우고, 하나를 토스한 것까지 합치면 55,000이나 되는 막대한 공훈도를 불과 몇십 분 만에 습득한 것이다.

다수의 마스터가 나타나고 상대해야 하는 괴악한 난이도에 상응하는 훌륭한 보상이 아닐 수 없었다.

“서둘러 재정비하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소모된 병력은 금방 충원되었다. 황제가 모든 것을 걸고 추진하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NPC도 무한정 리스폰되는 게임은 아니라 마스터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으니 질보다 양이 늘어난 느낌이긴 했지만, 그것은 어차피 적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남은 시간은 약 4시간.

로칸의 활약 때문에 큰 신뢰를 보인 황제 덕분에 로칸은 남은 시간 동안 수시로 기계공학 아이템을 찍어 내야 했다.

[기계공학 숙련도가 0.1% 상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숙련도에 제작 성공률이 크게 좌우되는 기계공학이지만 재료의 질에 따라서도 성능과 숙련도 상승 확률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황제의 지원 아래, 로칸은 4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최상급 재료들로 원 없이 기계공학 숙련도를 올렸다.

물론 그사이 추가적인 습격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처음과 같은 대규모 공습은 아니었고, 로칸이 제압과 버서크를 쓰는 정도로 충분히 요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들 역시 마스터 레벨은 귀했으니까.

“오오, 드디어……!”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고대 황제가 부활하는 때가.

‘튀어야겠군.’

황제와 의회가 준비한 막대한 양의 마나가 고대 황제의 육신에 깃드는 것을 보며 로칸은 슬금슬금 몸을 빼낼 준비를 했다.

되살아난 고대 황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신 할 수 없는 것이다.

‘재수 없으면 다 죽는 거니까.’

만약 타락한 힘이 놈의 이성을 완전히 앗아가 버리기라도 했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존재를 말살하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여차하면 튈 준비를 마친 가운데, 눈부신 빛과 함께 집중되던 마나가 사라졌다.

고대 황제의 육신에 온전히 흡수 되었다.

[드디어, 부활의 때가 온 것인가.]

번쩍 눈을 뜬 고대 황제는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만족스런 웃음을 터트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완전히 눈이 돌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젠장, 효과가 없는 것 아니야 ’

때문에 불안해진 것은 로칸이었다. 기껏 고대 황제의 목에 타락한 힘을 깃들게 만들었는데 아무 영향이 없다고 원래 미친놈이라 타락이 깃들어도 똑같은 건가

동공이 흔들리고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것 같았다.

[너흰 나의 후손인가 핏줄에 따라 흐르는 미약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예, 맞습니다. 저는 레스토니아 제국의 79대 황제 카이스만이라고 합니다.”

마스터 레벨인 눈 아래로 보는 것만 보아도 고대 황제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카이스만은 납작 엎드리며 머리를 숙였다. 그의 이상은 그저 황제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성기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지금 바깥의 상황은 어떻지 아무래도 우리 인간들이 예전만큼의 성세를 이루고 있지는 않을 것 같구나. 나를 부활시킨 것을 보니.]

“송구합니다. 사실은…….”

카이스만은 미주알고주알 고대 황제에게 지금의 상황을 고해바쳤다. 인간들이 태생적 한계로 인해 무시받고, 핍박받는 현실을. 황금사자 진영 내에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음을.

고대 황제는 그 하소연에 가까운 이야기를 가만히 늦고 있다가 은근한 노기를 끌어 올렸다.

[감히 그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 그랬단 말이지. 걱정 말거라, 나의 후손아. 우리 인간의 시대는 다시 올 것이다. 나와 나의 기사들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고대 황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위를 슥 둘러보더니 가만히 손을 들어 기운을 발출시켰다.

쿠르르릉.

연구소가 박살 나며 길이 열린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하 깊은 곳이었는지 무너진 천장에서는 햇빛이 새어나왔고, 고대 황제의 몸이 슈퍼맨처럼 날아올랐다.

이미 초인의 경지에 오른 그였기에 가벼운 점프만으로도 그와 같은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누군가 봤다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로칸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이 그랜드 마스터의 힘…….’

고대 황제가 죽기 전 이루었던 마지막 경지는 하이 마스터 다음의 경지인 그랜드 마스터였으니까.

대륙에 적수가 없는 것을 넘어 수많은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가 달려들어도 단신으로 썰어 버렸던 무지막지한 그 힘 중 얼마나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하이 마스터 이상의 능력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돌아가자. 돌아가서 저분이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리자.”

그렇게 떠난 고대 황제를 감격에 겨운 눈으로 좇으며 현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황궁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했다.

‘서둘러야겠군.’

모든 병사와 기사들이 주섬주섬 짐을 싸는 가운데, 로칸이 가장 먼저 이동했다. 고대 황제가 연구소를 파괴한 순간부터 공간 이동에 대한 제약이 풀린 것이다.

곧장 룬북을 사용한 로칸은 고대 황제의 무덤이 있던 그곳으로 이동했다.

“아직 안 왔나 보군.”

다행히도 직접 몸을 움직이는 고대 황제보다 룬북을 이용한 로칸의 이동 속도가 더 빨랐다.

우우우웅.

로칸은 즉시 장치를 조작해 무덤 안으로 이동해 목표가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폭격! 광살!”

콰과과과광!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로칸은 전력을 다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스킬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후드드득.

‘됐다!’

그가 노린 것은 바로 금속 인형들. 고대 황제의 직속 병단인 붉은십자군의 형상을 한 금속 인형이었다.

본래는 파괴 불가의 오브젝트로 분류되었던 것들이지만 고대 황제가 부활한 순간, 파괴 불가 옵션이 풀리고 ‘활동 정지 중인 강철 인형’으로 전락한 것이다.

‘페널티는 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지.’

그렇기에 기동하지 않는 녀석들을 로칸이 부수고 경험치를 습득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직 기동하지 않은 존재를 파괴한 페널티로 원래의 경험치와 드롭률보다 한참이나 낮은 수치가 적용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다. 저항조차 하지 않는 상대이니 말이다.

“버서크!”

로칸은 아예 버서크까지 사용하며 날뛰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금속 인형이라고는 하지만 그 내구도가 엄청나서 로칸의 공격으로도 금방 파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때문에 로칸은 아예 시간 제약을 두는 대신 공격력을 극대화시켰다. 어차피 고대 황제가 도착하면 끝장이니까.

놈이 되살릴 수 있는 붉은십자군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무차별적인 파괴 행위를 시작했다.

[10초 후에 버서크의 지속 시간이 종료됩니다. 9, 8, 7…….]

결국 그 파괴 행위는 버서크의 지속 시간이 끝나고서야 멈추었다.

“룬북 사용, 타이무라로!”

그다음 행동은 당연히 도주! 고대 황제가 도착하기 전, 로칸은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다. 마지막으로 작은 흔적을 남겨주고서.

‘타락 웨이브는 검은용군단이 재미를 봤으니 이번에는 좀 다른 것도 좋겠지.’

재미있게도 그 흔적은 노움과 관련된 것이었다.

노움족 기계공학에서만 사용되는 전용 재료 중 하나를 구석에 슬쩍 떨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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