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폭주 (1) (155/500)

 # 155

폭주 (1)

다음 사냥감으로 점찍은 것은 일반 유저들이 꺼려하는 곤충족, 그것도 지렁이과에 속하는 ‘웜’이었다.

그것도 갖가지 속성을 지닌 ‘엘리멘탈 웜’.

주로 흙이나 바람, 나무 따위를 먹고 상황에 따라서는 불과 번개까지도 먹어치우는 게걸스러운 놈들이지만 지형의 특성상 흙, 바람, 나무가 주를 이루었다.

먹어 치운 힘을 마법과 같은 능력으로 바꾸어 토해 내기 때문에 경험치는 제법 줘도 사냥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놈들이지만, 로칸과 카이 콤비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봤자 녀석들의 레벨은 250남짓이니까.

“크허허허허헝!”

로칸은 일단 광기의 외침으로 놈들을 기절시켰다. 이미 291레벨을 찍은 로칸 앞에 놈들은 그야말로 지렁이쯤밖에 되지 않았다.

째액!

배인지 뭔지 모를 것을 뒤집으며 정신을 잃은 놈들을 향해 카이가 날렵하게 날았다.

터업. 질겅질겅. 퉤엣.

새와 벌레. 종족의 상성 덕분에 30%나 상승한 부리 공격력에 힘입어 윈드 웜 하나를 이리저리 물고 씹다가 뱉어 냈다.

한 번에 씹어 삼키기에는 레벨 차이가 나고, 놈의 생명력이 너무 높은 것이다.

“스트라이크.”

퍼억!

그래서 로칸이 한 팔 거들었다. 놈의 연약한 몸을 반 토막으로 만들어 버리며 생명력을 쭉 떨어뜨린 것이다.

짹! 짹! 꿀꺽!

그러자 카이가 날름 그것을 받아먹었다. 맛있는 먹잇감이라는 듯 기분 좋게 울며 삼켜 버렸다.

[카이가 윈드 웜을 소화했습니다.]

[카이의 몸속에 바람의 기운이 일부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자 카이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외관상으로는 차이가 없지만 내부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단 한 마리를 잡아먹고 극적인 변화를 바라는 것은 무리.

하지만 수십, 수백 마리를 먹으면 어떨까

‘시간 단축이 필요하겠군.’

하지만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했다. 로칸에게는 별것 아닌 250레벨 몬스터라지만 마법에 가까운 능력을 사용하기에 생각보다 사냥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로칸은 약간의 꼼수를 쓰기로 했다.

“인벤토리.”

퍼엉!

엘리멘탈 웜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 로칸이 기절한 놈들에게 집어 던진 것은 다음 아닌 기계공학 아이템이었다.

이름하야 응집탄.

충격탄이 밀쳐 내는 것이라면, 응집탄은 모으는 용도였다.

엘리멘탈 웜들의 작은 몸이 자력에 이끌리듯 응집탄을 중심으로 끌려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다.

“난무!”

퍼버버버버벅!

그러고는 고기를 다지듯 도끼를 마구 내리쳤다.

짹! 짹!

덕분에 신난 것은 카이.

아예 로칸의 공격력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린 놈들도 있었지만 간신히 생명을 이어 가는 놈들도 있었다.

텁! 냠냠.

[카이가 어스 웜을 소화했습니다.]

[카이의 몸속에 땅의 기운이 일부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놈들은 모조리 카이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난무 한 방에 워낙 많은 엘리멘탈 웜들이 터져 나갔기에 카이는 복싱을 하듯 상체를 휙휙 움직여 파편들을 받아먹었다.

“나 참…….”

그 모습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로칸은 피식 웃으며 계속 엘리멘탈 웜들을 사냥했다.

뒤뚱뒤뚱. 꾸, 꾸룩!

그렇게 사냥하기를 한참. 로칸의 곁에서 쉬지 않고 엘리멘탈 웜들을 주워 먹은 카이는 이제 급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부지런히 엘리멘탈 웜의 시체를 쫓아다니는 대신, 입을 앙 벌리고 받아먹기만 했다.

그런 주제에 식탐은 어찌나 많은지 배가 불룩해져 볼링공처럼 체형이 둥글게 변할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이대로 체형이 굳어져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로칸이 걱정할 정도였을까.

[카이의 배가 가득 차 더 이상 먹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배를 채운 카이를 누운 건지 구르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그 자리에 뻗어 버렸다.

“잠깐 쉬어야겠군.”

이제는 사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카이의 소화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걸리게 생겼다.

그렇게 사냥하고 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자 카이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카이의 몸에 엘리멘탈의 힘이 깃듭니다.]

[카이의 속성 저항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스킬 습득과는 또 다른 변화였다. 로칸이 그동안 체력 포션을 먹였던 것처럼, 먹이에 따라 성장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펫의 특성이 발휘된 것이다.

엘리멘탈 웜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힘들이 소화를 통해 카이의 몸에 깃든 것이다.

당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속성 저항력뿐이지만 계기만 주어진다면 속성과 관련된 스킬을 얻게 될 수도 있었다. 혹은 이미 얻은 스킬에 속성의 힘이 가미되거나.

어느 쪽이든 훌륭하다. 애초부터 마법 계열의 펫이 아닌 이상 속성의 힘을 포함한 스킬은 좀처럼 갖기 어려우니까.

“자, 그럼 또 먹으러 가 볼까 ”

보통이라면 여기서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칸은 달랐다.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 더구나 어차피 이곳에서 카이의 레벨을 200까지 끌어올릴 생각이었으니 멈출 이유가 없었다.

짹!

카이도 당연히 찬성이었다. 소화를 마치면서 다시 홀쭉한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 해도 배가 불렀던 기억과 기분은 남아 있을 테니 머뭇거릴 만도 했지만 그 주인에 그 펫이라는 것인지 카이는 기쁘게 대답하게 다시 한 번 끝장을 보기 시작했다.

‘이래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군, 쩝!’

이러다 식탐과 관련된 스킬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가 살짝 걱정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단기간에 급성장을 시키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로칸은 눈을 빛내며 총총 걸어 따라오는 카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쨌든 해 보는 수밖에.

사냥하고, 먹고, 쉬는 일이 셀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카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카이가 20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활기찬 생명의 빅버드 카이가 한 단계 더 성장합니다.]

끼엣!

그렇게 200레벨을 억지로 찍자 카이의 몸이 변화했다.

급성장. 누군가 거대화 마법을 쓴 것처럼 덩치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됐군.’

모든 뼈와 살, 장기가 뒤바뀌는 일이었으니 카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모습이 퍽이나 안쓰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이것이 카이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고통을 견디고 성장한 카이의 등에 올라타 탑승 스킬을 익히는 것뿐.

그런데, 일이 뜻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카이가 엘리멘탈 빅버드로 성장했습니다.]

[카이가 강력한 의지로 성장에 저항합니다.]

[엘리멘탈 빅버드, 카이가 신체 조작을 깨달았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

[스킬 습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카이가 신체 조작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젠장! 이게 무슨 짓이야!”

진화에 가까운 성장을 마친 카이가 스스로 스킬을 익혀 버린 것이다. 당황한 로칸이 황급히 펫 관리 창을 열어 조작해 보지만 습득 포기도 불가능한 마당에 스킬 삭제가 될 리 없었다.

로칸은 겨우 3칸밖에 없는 스킬 슬롯 중 하나를 제멋대로 채워 버린 카이의 행동에 열불이 났지만 한 번은 꾹 눌러 참았다. 일단은 카이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 돌겠군.”

빠르게 확인한 카이의 능력치는 기대 이상이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성장 방향도 그대로 따르고 있었고, 능력치의 증가폭도 더 컸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스킬 슬롯이 막혀 버렸으니 속이 터지는 것도 당연하다.

[신체 조작]

사용 시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단, 신체 사이즈에 따른 능력치의 증감은 없다.

“이거 참…….”

스킬의 능력은 꽤나 애매했다. 신체 사이즈를 조종해서 어디다 쓴단 말인가

그나마 능력치가 변동되지 않는다는 것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지만 애초에 비행 탈것으로 카이를 키울 생각이었던 로칸에게는 불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 카이. 일단 커져 봐.”

짹 째액!

어디 그뿐인가 겨우 화를 삭이고 요구하는 로칸의 말에도 격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아팠던 기억 때문인지 다시 좀 전의 크기를 유지하곤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테이밍하는 몬스터쯤만 됐어도 그냥 머리를 쪼개고 다른 놈을 찾았을 텐데, 그것도 불가능했으니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자, 이걸 줄 테니까. 해 봐.”

포옹.

로칸이 내민 당근은 최상급 체력 포션. 식탐이 있는 카이이기에 먹을 걸로 꼬신 것이다.

째액…….

결국, 카이는 식탐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못 이기는 척 다가와 최상급 체력 포션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것을 다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로칸의 뜻대로 신제 조작을 하기 시작했다.

“좋아, 그대로 가만히 있어.”

카이는 정말로 사람을, 아니 트롤도 태울 수 있을 것 같은 크기로 변화했다.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여럿을 태우는 건 무리겠지만 로칸 하나 정도는 어떤 짐을 짊어졌든 커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덕분에 부담 없이 폴짝 뛰어 카이의 등에 탈 수 있었다.

[스카이 라이딩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당신은 최초로 비행 탈것을 길들이셨습니다. 당신은 하늘을 나는 최초의 전사입니다.]

[타이틀 ‘최초의 스카이 라이더’를 습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최초의 스카이 라이더][유니크]

당신은 비행 탈것을 길들인 최초의 인간입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보유 효과]

-비행 속도 + 15%

-[교감] 효과로 비행 시 탈것에게 무언의 의사 전달 가능

-[교감] 효과로 사용자가 받는 특수 효과들이 동일하게 적용

그 즉시 효과가 나타났다. 그렇게 벼르고 벼른 타이틀을 습득한 것이다.

더구나 최초 효과로 비행 속도 보너스가 5%나 더 붙었고, 교감이라는 능력까지 생겼다.

원래는 고삐 또는 구두 명령을 통한 조종을 해야 하지만 생각만으로 조종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주문이 가능해진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사용자가 받는 각종 특수 효과들까지 동일하게 적용된다니, 단순히 비행뿐 아니라 비행 전투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로칸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래서 가능했던 거였군.”

전생에 창공의 기사라 불리던 인물이 떠올랐다. 거대한 랜스를 주 무기로 삼던 인물인데, 그가 어떻게 그리 미친 컨트롤을 보일 수 있었는가 했더니 이 타이틀의 효과 덕분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 능력이 이제는 로칸에게로 넘어왔다.

“좋아. 아주 좋아.”

아슬아슬하던 계획이 보다 완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만 준비하면 되는 건가 ”

카이를 위한 사냥은 여기까지. 기본 준비가 되었음을 확인한 로칸은 다시 타이무라로 돌아왔다. 자신의 상황과 능력을 다시 정비하기 위함이었다.

“조합 스킬 생성.”

이미 장비든 뭐든 업그레이드 하기는 무리인 로칸이기에 바꿀 것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조합 스킬과 생성 스킬.

로칸은 일단 자신의 조합 스킬 중 폭격을 삭제했다. 그리고 한 가지 스킬을 추가해 재생성했다.

[조합 스킬의 이름을 지정해 주세요.]

“폭격.”

이름은 같았다. 그러나 그 효과는 조금 달랐다. 조합하는 스킬에 ‘난무’를 집어넣은 것이다.

기존의 폭격은 단일 개체에게 강대한 타격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새로 만든 폭격은 난무를 사용해 한 번에 열 개의 손도끼를 던졌다.

위력은 약간 떨어졌지만 좀 더 폭격이라는 이름에 가까워졌다.

[생성 스킬의 이름을 지정해 주세요.]

“파괴의 돌진.”

그리고 한 가지 더. 무기를 파괴하던 웨폰 브레이크 중심의 생성 스킬, 무장 해제를 삭제하고 이전에 조합 스킬로 사용하던 파괴의 돌진을 생성 스킬로 재현해 냈다.

아무래도 돌진 계열 스킬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웨폰 브레이크나 아머 브레이크가 필요 없을 만큼 강력한 대미지가 나온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로칸은 다시 정보를 수집했다.

그가 두문불출 사냥터에 박혀 있는 며칠 동안 크로노와 붉은십자군이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 인간들은 어떤 대응을 했는지 대충은 확인했지만 자세한 정보가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알던 전생의 사건과 다른 양상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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