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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폭주 (2) (15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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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 (2)

고대 황제의 폭주! 인간들의 시도는 실패한 것인가

더 로드를 전문으로 취재하는 웹진들이 내놓은 공통적인 헤드라인은 이것이었다.

노움 지역을 짓밟으며 이동하는 고대 황제의 폭주에 화들짝 놀란 현 인간 황제 카이스만이 수하들을 이끌고 그를 제지하러 갔으나, 오히려 공격을 받고 패퇴하였다는 것이다.

“타락한 힘…… 때문으로 봐야겠지 ”

대화로 풀려 한 것인지, 다른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교섭이 있고 난 이후 고대 황제의 폭주가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노움족만을 노리며 밀고 들어가던 고대 황제가 갈피를 잃었다.

갑자기 방향을 돌려 인근의 드워프 지역을 급습하더니, 그다음에는 하프 엘프 마을마저 파괴했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황금사자 진영의 안쪽에서 움직였기에 타락 웨이브 때 로칸이 한 것처럼 검은용군단이 잠입해 거점을 털어먹는 일은 없었지만, 복구하는 데만 엄청난 비용이 들 만큼 처참한 파괴 행위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의 거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까지 진짜 미쳤군.”

고대 황제가 생전에도 미친 짓을 많이 하고, 그만큼 욕도 많이 먹었지만 한 가지 대원칙은 지켰다.

홍익인간.

다른 모든 종족들은 잔인하리만치 대하면서도 인간들에 대한 애정만큼은 풍부했던 그였다.

아무리 낮은 위치에 있는 인간이라도 가엽게 여기며 그를 위해 대신 분노해 주기도 했던 그가 적대 의사도 없는 인간 도시를 파괴했다

이건 그냥 미친 거다. 이미 제정신이 아님을 알려 주는 지표와도 같았다.

“황제는 그래도 핏줄이라고 살려 준 건가 이걸 한 가닥 이성은 남았다고 봐야하는 건지…….”

물론 현 인간 황제 카이스만 역시 만만치 않은 전력을 거느리고 그를 찾아갔겠지만 그렇기에 살아나온 것인지, 아니면 크로노에게 미약한 한 줄기 정신이 남아있어 카이스만을 알아본 것인지는 불확실했다.

그리고 로칸은 차라리 현 인간 황제 카이스만이 자력으로 탈출한 것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자신이 그들을 사냥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자, 빨리 현상금을 걸어라…….”

하지만 반대로 카이스만이 결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카이스만이 직접 되살린 고대 황제, 즉 그의 선조이니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역모와 같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만, 이 방향은…… ”

아직 카이스만이 그 정도 결단까지는 내리지 않은 것을 확인한 로칸은 좀 더 정보를 모으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고대 황제와 붉은십자군의 이동 경로다.

카이스만과의 접촉 이후 제 멋대로 움직이던 크로노가 어느 순간부터 방향을 잡고 직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인근에 마을이 있음에도 그냥 지나쳐 가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속셈일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검은용군단에게로 돌진하는 것일까

경로를 따라 계속 이동할 경우 마주하게 되는 지역을 확인한 로칸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있군.”

하지만 곧 표정을 회복했다. 금제가 뒤늦게 통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뭔가 촉이 왔다.

다른 무언가가 개입했음을 직감했다.

“어떤 놈인지 면상 좀 보자. 카이!”

일단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그들을 앞질러 간 로칸이 카이를 불렀다. 거대화되는 카이의 등에 올라타 의지를 발현했다.

끼윳! 푸드득!

재빠른 날갯짓에 거대한 몸집이 붕 떠올랐다.

로칸이 착용한 장비의 무게만 해도 상당했지만, 놀라운 힘과 체력으로 아무렇지 않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저기군.’

크로노가 밀고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역으로 되짚어 간 로칸은 한참 후 까맣게 대지를 메운 군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앞서 꽁지에 불이 붙은 듯 도망치는 유저 한 명의 모습도.

‘저놈은 뭐야 ’

하지만 성급하게 곧바로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 크로노와 그의 군대가 작정하고 쫓는데도 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 무척 놀라웠기 때문이다.

따로 기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스터 레벨에 준하는 능력치를 가진 붉은십자군의 속도는 백골마를 탄다 해도 조금씩 따라잡힐 정도였다.

그런데 놈은 어떻게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일까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로칸은 심지어 그가 여유 있게 거리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미친, 천골마 ”

그가 가까워졌다. 안력을 돋우자 그가 타고 있는 말까지도 비교적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천골마였다.

무려 한 필에 천 골드나 하는 미친 가격의 특수 탈것.

종류에 따라 스태미나가 높든, 속도가 좀 더 빠르든, 전투력을 갖췄든 하는 놈들이지만 기본적으로 백골마보다 30%는 더 빠른 종자가 천골마였다.

그것을 지금 시점에 구입한 사람이 있다고

물론 로칸도 마음먹으면 살 수 있었지만 돈지랄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아 미루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산 사람이 있을 줄이야.

“와, 돈으로 떡칠을 해 놨네.”

다시 눈을 비비고 놈을 확인한 로칸이 탄성을 내질렀다. 천골마뿐 아니라 그가 걸치고 있는 장비 역시 엄청난 가격이었다.

게다가 그중에는 로칸 자신이 직접 골라 개인 상점에 올려 뒀던 아이템들도 꽤 많이 보였다.

“얼씨구, 강화까지 ”

심지어, 강화까지 잔뜩 해 놨는지 은은한 강화 이펙트마저 감돌고 있었다.

저 정도면 몸에 집 한 채를 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놈인가 캐시맨 ”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젓던 로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최강의 현질 유저, 캐시맨.

보유한 자산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더 로드 초반에만 10억은 우습게 쏟아부었다고 알려진 궁극의 현질러.

중국의 공산당 간부라는 소리도 있고, 중동의 석유 부자라는 소리도 있던 그였지만 이제 보니 한국인이었던 모양이다.

아직 해외 유저들과 만나는 타이밍은 아니었으니까.

‘한국에서 저 돈이 벌어져 재벌인가 ’

뭔가 얼떨떨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했다. 잠시 그들의 추격전을 지켜보던 로칸이 인벤토리에서 스크롤을 하나 꺼내 찢었다.

“월 오브 스톤.”

쿠구구궁.

“……!”

부리나케 달리는 캐시맨의 앞으로 돌벽을 세워 올린 것이다. 전력은 아니지만 굉장한 속도로 달리던 그에게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장애물. 그러나 천골마가 괜히 천골마가 아니었다.

“이럇!”

휘익.

그대로 도약해 돌벽을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적어도 2미터는 되는 높이를!

“파이어 필드, 월 오브 스톤, 패럴라이즈 필드!”

그 모습에 약이 오른 로칸이 연달아 다음 스크롤들을 찢었다. 불 벽을 일으키고, 조금 떨어진 위치에 다시 돌벽을 일으켰으며, 마지막으로 조금 떨어진 위치에 마비 주문을 깔았다.

천골마가 도약해 불 벽을 넘고, 돌벽의 윗부분을 밟아 2차 도약했을 때 떨어지는 정확한 위치였다.

“큭, 누가 ”

투웅!

그러나 캐시맨도 만만치 않았다. 당황하면서도 천골마를 절묘하게 컨트롤해 불과 돌벽을 넘고, 마지막 패럴라이즈 필드는 충격탄을 사용해 넘어선 것이다.

기계공학 아이템까지 구비해 두었을 줄은 몰랐던 터라 로칸도 살짝 놀랐지만 그래도 됐다. 놈이 천골마를 역소환했으니까.

놈이 설사 스피드 타입의 캐릭터이더라도 뒤쫓아 오는 붉은십자군을 따돌리기는 무리였다.

휘릿!

“와, 저 미친놈.”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캐시맨의 재력을 너무 얕잡아본 모양이었다.

다시 몸의 중심을 잡자마자 캐시맨이 다시 휘파람을 불어 천골마를 소환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타고 있던 천골마는 이제 막 역소환이 됐으니 천골마만 최소 두 마리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2천 골드면 대체 얼마야…….’

골드 시세가 꽤 내려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1골드에 8~9만 원 정도는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 골드를 현금화했을 때도 대량 거래인 덕에 골드 당 9만 원을 받았으니까.

그렇다면 그가 탈것에만 투자한 비용이 최소 1억 6천만 원 이상이라는 소리였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외제차값인 셈이니 일반인들은 엄두도, 꿈도 못 꿀 일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고 있는 것이다.

찌릿.

그러는 사이 캐시맨도 로칸을 발견했다. 설마하니 비행 탈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한참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지만 숨을 곳도 없는 평원인지라 결국은 발견해 낸 것이다.

시야와 관련한 특별한 스킬이 없다면 거의 점처럼 보일 테지만, 존재 자체는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뭐 ’

그러나 로칸이 도망칠 이유도 없다. 뭐가 무서워서

‘꼬우면 덤비든가.’

당장 그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 것은 지금 시점에 머더러 상태가 되면 귀찮기 때문이지 그나 그의 세력이 부담스러워서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에는 아예 직접 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폭격.”

난무를 섞어 한층 개량된 조합 스킬이었다. 일시에 열 개나 되는 손도끼를 집어 던지자 작은 열 개의 점들이 캐시맨의 앞으로 다가왔다.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그의 예상 이동 경로에 포탄처럼 틀어박혔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그야말로 폭격. 한 방, 한 방이 떨어질 때마다 공간이 터져 나가며 1미터는 됨직한 구덩이가 생겼다. 천골마를 놀래키는 것은 물론, 발을 내딛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개자식아! 누군지 모르지만 두고 보자!”

그런 상황에서 캐시맨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폭격에 맞지 않게 이리저리 피하고 도망칠 수밖에.

로칸을 향해 저주의 말들을 잔뜩 퍼붓는 그였지만 과연 누군지 알아도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로칸은 비웃음을 흘리며 손도끼를 더 꺼낼 뿐이었다.

“스로잉, 스로잉, 폭격.”

폭격이 아니라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폭발의 힘은 아니지만 맞으면 낙마 정도가 아니라 두 쪽이 날 수도 있는 무지막지한 위력이니까.

애초에 로칸이 맞히려 하지 않았기에 버티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진작 죽었을 캐시맨이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사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죽여라!”

“컥!”

어느새 뒤쫓아 온 붉은십자군이 그를 덮친 것이다.

금속 인형들의 자비 없는 검격이 캐시맨의 몸을 꿰뚫었다.

광역 도발 스킬은 가지고 있지만 은신이나 회피 스킬은 부족한지 캐시맨은 속수무책으로 금속이 몸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설령 있다 한들 그들을 피해 내긴 무리였겠지만 말이다.

“죽여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그렇게, 캐시맨이 싸늘히 죽어 쓰러진 이후에도 크로노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혹시 투창이라도 할까 싶어 얼른 더 높은 상공으로 피해 버린 로칸이 인식 범위에서 벗어났기에 주인 없는 분노를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동선이 꼬였다. 캐시맨이 유도하던 방향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진짜 돌았군.’

그 모습을 창공에서 바라보며 로칸은 직감했다. 크로노에게 더 이상 이성적인 행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 증거로 조금 전 사망한 캐시맨도 인간 종족이었고, 크로노의 두 눈에 녹빛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 녹빛의 기운은 타락에 잠식되었다는 증표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을 끌어 무엇 할까.

상태를 확인한 로칸은 즉시 카이를 움직여 조금 전까지 캐시맨이 하던 일을 대신 수행하기 시작했다.

다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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