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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해적왕 (2) (159/500)

 # 159

해적왕 (2)

쾌속선이 파괴된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비싼 수리비까지 감수하며 로칸이 해적섬을 찾은 것은 비단 연습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멀록의 난파선에서 얻은 아이템과 힌트, 그것이 가리키는 사자왕의 무구가 있는 위치를 찾아온 것이었다.

격노왕의 사슬 도끼도 대단했지만, 무려 사자왕의 무구라면 또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그 묘한 기대감과 함께 전투를 시작했다. 소란을 떨고 있는 해적 하나를 향해 냅다 도끼를 집어 던졌다.

“스로잉!”

퍼억!

폭격도 아니건만 해적 하나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이 무시무시했으니까.

촤르륵!

로칸이 힘을 주어 당기자 놈의 머리를 부수고 날아간 도끼가 다시 회수되었다. 주 무기를 투척용으로 쓰고도 손쉽게 회수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여기까지가 가장 간단한 사슬 도끼의 활용법.

“조심해! 투척 무기가 강력하다!”

‘나쁘지 않군.’

이런 식의 공격은 투척 후 회수하는 시간이 관건인데 이 정도면 꽤 쓸 만하다.

그러나 반대로, 고작 이것뿐이라면 곤란했다.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다양한 실험을 시작했다.

휘익!

이번에는 로칸이 하늘 높이 도끼를 집어 던졌다.

공중에 적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느닷없는 그의 행동에 해적들도 황망히 날아간 도끼를 쳐다보았다.

“흐읍.”

부우웅!

그 순간, 로칸의 오른팔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땅으로 내리찍었다.

콰앙!

위치 에너지까지 더해진 강력한 일격이 내리꽂혔다. 폭격 그것도 우스웠다. 고작 손도끼가 낼 수 없는 막강한 파괴력이 발휘되었다.

“커…….”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일직선상에 머무른 모든 해적들이 죽었다. 그야말로 파괴되었다.

예비 동작이 필요하긴 했지만 위력만큼은 확실했다. 시간을 끌어 줄 사람만 있다면 강력한 일격을 꽂아 넣는 용으로 쓸 만할 것 같았다.

“재미있는데 ”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써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차피 250~280레벨밖에 되지 않으니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한다 해도 문제가 없으니 다양한 활용과 연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이는 빈틈들도 빠르게 수정해갈 수 있었다.

“읏차!”

투웅. 촤르륵.

사슬 도끼의 효용은 길게 뻗어 내는 것만이 아니었다.

스냅을 이용해 튕기자 뱀처럼 요동치며 주변을 때렸다. 도끼가 날아간 이후 채찍처럼 사용이 가능한 것이다.

“컥.”

“마, 막아!”

“방패가 박살이……!”

그러나 고작 연결선이라고만 생각하기엔 너무나 강력하다. 쇠사슬 자체가 레전드 등급인 탓에 도끼와 같은 공격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제압!”

아예 로칸은 결합 전의 스킬까지 구현해 보았다. 길게 늘어난 쇠사슬을 의지로 조종해 적 하나의 몸을 감싸 버린 것이다.

“리프 어택.”

살아 있는 생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놈은 대처하지 못한 채 붙잡혔고, 로칸은 내친 김에 곧장 뛰어올라 도끼자루를 움켜쥐었다.

퍼억!

그러고는 제압된 해적의 머리통을 쪼개 놓았다.

의지를 통해 조종할 때는 공격으로 인식되지 않는 듯했지만 이 같은 변칙 공격은 충분히 가능했다.

“적이다!”

“포위하라! 살려 보내지 마라!”

그렇게 한창 즐기고 있자, 더 많은 숫자의 해적들이 몰려왔다. 이 섬 가득 들어찬 해적들이 전부 나오기라도 하듯, 적어도 1백 이상은 됨직한 숫자였다.

씨익.

그 모습에 로칸이 다시 한 번 웃었다. 가장 기대하는 방법을 사용해 볼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리프 어택.”

휘이익. 쿠웅!

높이 뛰어오른 로칸이 해적들의 한가운데로 떨어져 의도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휠 윈드!

촤르르르르륵!

회전하는 로칸을 따라 쇠사슬이 늘어났다. 걸리는 모든 것을 박살 내며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후웅 후웅!

도끼처럼 날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둔기에 가까운 타격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누구도 로칸의 압도적인 파괴력을 받아 낼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꼭 날이 있어야만 치명타가 적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움직여라!’

거기에 한 가지 기능을 더했다. 휠 윈드를 발휘하는 도중 쇠사슬이 요동치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도 타격이 들어가는 걸 보니 조종을 하는 중이라고 꼭 대미지 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닌 듯싶었다.

‘윽, 장난 아니군.’

위력도 장난이 아니지만 로칸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보통이 아니었다. 상하로 움직여 대는 쇠사슬을 붙잡느라 손바닥에 통증이 일어난 것이다.

로칸이나 되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이들이었다면 진작 손바닥이 찢어지고 사슬을 놓쳐 버렸을 터.

거기다 휠 윈드에 사용되는, 또 사슬을 움직이는 데 사용되는 마나가 상당했다. 최대 길이까지 늘린 채 장시간 사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듯싶었다.

“이거 말이 안 나오는구먼.”

물론 그만큼 오래 쓸 일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회전을 멈추고 돌아보니 주변에 나타났던 해적들이 모조리 죽어 나간 상태였다.

어떻게든 상체를 숙이고 바닥에 몸을 붙여 피해 보려 했던 놈들도 사슬이 움직이며 패대기를 친 덕분에 모조리 숨이 끊어진 상황. 인벤토리 수북하게 쌓인 아이템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소모된 마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해안가를 따라 한 바퀴 쭉 돌아볼까 ”

아무리 상대적으로 저레벨의 몬스터라지만, 이만한 몰이사냥이면 레벨 업도 기대해 볼 만했다.

일단 본단이 있는 중앙을 버려 두고 외곽을 돌며 경험치와 아이템들을 수급하기 시작했다.

“흠, 이것도 처치 곤란이군.”

그렇게 몇 곳의 초소를 털어먹었을까, 그곳에서 사흘을 꼬박 보낸 로칸은 인벤토리에 너무나 많이 쌓인 아이템에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룬북으로 저장하고 왔다 갔다 하면 간단하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룬북 저장이 되지 않는 장소였다.

버리거나 그냥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건 별로고, 이것도. 이건 좀 쓸 만하네.”

그래서 버렸다. 어차피 아이템을 보는 눈이야 로칸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지 않으니 슈페리어 이하는 그냥 버리고, 매직 등급 이상 중에서도 쓸 만한 놈들로만 남겼다. 그러자 로칸의 옆으로 아이템의 산이 쌓였다. 이대로 둔다면 일정 시간 뒤 사라지겠지.

장사만 잘할 자신이 있다면 이것만 팔아도 상당한 이득을 챙기겠지만, 이것들과 인벤토리에 쌓인 아이템을 모두 팔아도 어차피 쾌속선 1척 값이 나오지 않으니 미련을 둘 필요는 없었다.

그나마 로칸이 챙긴 것도 쾌속선의 수리비나 할 요량으로 남겨 둔 것일 뿐이었다.

“슬슬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 ”

그렇게 변화된 무기에 어느 정도 적응한 로칸은 해적섬의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안쪽이라고 사실 별반 다를 것은 없다. 몇 개의 거점이 있고, 그곳에서 290레벨대의 해적 부두목들이 나올 뿐이다.

보스 판정을 받는 네임드들이기는 했지만 로칸이 누군가 이미 마스터를 몇이나 때려잡은 강자였다.

해적왕이라면 모를까, 부두목쯤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딱히 사슬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압살 할 수 있을 정도로.

촤르르륵!

그러나 로칸은 적극적으로 사슬을 이용했다. 앞으로 한두 번 사용할 것도 아니니 최대한 익숙해지는 쪽을 택했다.

“좋았어.”

슥삭슥삭.

1천이 넘는 적을 베고 부수며 손상된 내구도를 회복시키며 간단히 작전을 짰다.

“카이!”

뀻!

로칸의 부름에 카이가 거대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타이무라에서 구입해 둔 아공간 스킬 덕분에 언제든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 카이였다.

“가자!”

그러나 높이 난 것은 아니었다.

저공비행.

바닥을 쓸 듯 고도를 낮추고 빠르게 날았다.

“잡아라!”

“쏴서 떨어뜨려!”

“젠장, 너무 낮아! 우리가 맞는다고!”

바로 몰이를 위해서였다.

로칸은 전생에 이곳에서 사냥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동안의 경력, 짬밥이 대충 말해 주고 있었다. 어떤 경계를. 그 경계를 넘는 순간, ‘보스’가 나타날 것이라고.

그렇기에 교묘하게 그 경계를 넘지 않고 뱅글뱅글 돌았다.

투척 무기가 이따금씩 날아들었지만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티딩.

쇠사슬이 저절로 움직여 그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전투를 통해 많이 익숙해진 덕에 이제 약간의 의지를 싣는 것만으로도 조종이 가능했다.

로칸의 방어력을 한층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재밌네.’

그 과정이 로칸은 너무 재미있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투 방식이니까 아직은 조금 덜 익숙해 미묘하게 반응이 늦은 것도 재미있었다. 개선할 여지가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 아슬아슬함이 짜릿하기 때문이다.

“카이, 올라가.”

몇 번이나 투척 공격을 방어해 낸 로칸은 가로막는 해적들만을 가볍게 쪼개 가다가 카이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충분한 수의 해적이 모였으니까.

“휠 윈드!”

다시금 사슬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그 안에 위치한 모든 존재들까지.

“이봐, 너무 싱겁잖아 ”

스윽.

그렇게 모여든 모든 해적들을 쓸어버린 뒤, 한 발자국 더 내디뎠다. 경계를 넘은 것이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AI가 뛰어나고 자유도가 높다지만 게임은 게임이다. 딱 그 경계를 넘는 순간, 안채에 있던 해적왕이 몸을 일으켰다. 부두목들도 함께.

“이제야 놀 만한 놈들이 나왔군.”

로칸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드디어 신무기를 제대로 사용해 볼 기회가 왔다. 학살용으로만 쓰기에는 너무 아까웠으니까.

“뭐 해 덤벼!”

시작은 역시 광기의 외침이었다. 그러나 놈들도 기절하거나 눈에 띌 만큼 약화되지는 않았다. 산적왕의 근처에 있는 탓에 강화 효과를 받은 것이다.

‘그래. 그래야지.’

그 또한 즐겁다. 잔뜩 위축된 상대를 쥐어 패기만 해서 어디 실력이 늘겠나.

로칸은 오랜만에 오싹한 짜릿함을 느끼며 놈들에게로 먼저 파고들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해졌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파괴의 돌진!”

강대한 힘이 일어나 두 다리에서 폭발했다.

짓쳐 든 것은 부두목 중 하나.

어려운 싸움을 즐긴다지만 졸을 놔두고 보스만 상대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다.

“다중 투척!”

부두목의 손에서 손도끼가 날았다.

로칸의 폭격과도 비슷하지만, 한 점을 향해 여러 개를 던진다는 것과 마법 대미지로의 전환이 없다는 것이 달랐다.

‘움직여라!’

가드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쓰지 않았다. 격노왕의 사슬 도끼는 그대로 손에 쥔 채, 사슬만을 움직여 방어했다.

까가가강!

놈의 조합 스킬은 위력적이었지만 이쪽은 무려 레전드 등급의 쇠사슬이다. 마스터 레벨도 아닌 놈의 공격으로는 자그마한 스트레치 하나 내기 어려웠다.

“큭!”

자신의 조합 스킬을 정면으로 받아 내고도 전혀 줄지 않는 속도에 놈이 당황하며 다급히 무기를 들어 올려 커다란 도끼의 옆면을 몸으로 받쳐 힘으로 저지하려 들었다.

꽈앙!

트럭에 받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구의 부두목이 하늘을 날았다. 충격을 상쇄하지 못하고 날아가 처박혔다.

“약점 간파! 관통!”

그 틈을 노려 또 다른 부두목이 로칸을 향해 뛰어들었다.

로칸의 몸에 그에게만 보이는 작은 점들이 생겨났다.

찌르면 무조건 크리티컬에 방어구 관통 효과까지 갖는 조합 스킬과 극쾌의 찌르기를 콘셉트로 한 조합 스킬이 동시 발동되었다.

티잉!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다. 로칸이 곧장 뒤를 돌며 쇠사슬을 움직인 것이다.

동그란 연결 고리 사이에 정확히 놈의 찌르기를 끼운 뒤 휘두르자 반탄력으로 날아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함선 쪼개기!”

마지막은 역시 해적왕.

그 역시 대뜸 조합 스킬부터 꺼내 들었다. 바다 위에서 적의 함선을 일검에 쪼개는 가공할 경력이 놈의 도(刀) 위에 깃들자 로칸이 기쁨의 미소를 흘렸다.

그가 바다의 제왕이라면 이쪽은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광기의 화신이자 싸움의 화신이었다.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도끼를 마주 부딪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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