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종족 대연합 (4)
“먼저 가지!”
서로의 시야가 맞닿은 순간, 먼저 몸을 날린 것은 오크와 드워프 하이 마스터였다.
근접 계열인 것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나서지는 않았어도 오크 하이 마스터만큼이나 드워프 하이 마스터 역시 전투라면 자신이 있었다. 오크가 그렇듯 드워프 또한 태생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춘 전사였으니까.
“환영시.”
“하이퍼 빔 라이플!”
그러나 가장 먼저 닿은 것은 노움과 트롤이었다. 각자 원거리 무기를 쏘아 내며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의 전투 방식은 달랐지만 같았다.
기계공학 기술을 중심으로 스킬을 구성한 노움족과 전형적인 사냥꾼의 그것인 트롤이지만 묘하게 그 스킬 구성이 닮아 있는 것이다.
“나와라, 샤벨!”
“나와라, 다이노!”
선공에 시선을 빼앗긴 하이 마스터들이 짓쳐 들기 전, 둘은 동시에 무언가를 소환했다.
트롤 하이 마스터가 소환한 것은 300레벨대의 몬스터인 샤벨 타이거. 그리고 노움 하이 마스터가 소환한 것은 기계공학 기술을 집약해 만든 기계 공룡이었다.
심지어 마법적 힘이 더해져 꽤 뛰어난 AI를 지닌 상태였다. 이 역시 300레벨 이상의 전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기에 원거리 무기인 빔 라이플과 잘 맞는 호위병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노움 하이 마스터는 기계 공룡과 함께 싸우기를 택했고, 트롤 하이 마스터는 샤벨 타이거를 또 다른 붉은 근위병에게 붙였다는 게 다를 뿐이다.
“자라나라 줄기 줄기!”
“환세천하의 술!”
“죽음의 늪.”
이어 하프엘프와 고블린, 언데드 하이 마스터가 힘을 썼다. 각자가 찜한 하이 마스터들을 묶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였다.
“일어나라, 죽음의 거인이여.”
그리고 또 하나 더. 아크 리치가 자신의 마스터 스킬을 발휘했다. 죽음의 거인, 스켈레톤 킹의 소환이었다.
일반 스켈레톤과 비교해도 수십 배는 족히 되는 거체를 일으킨 녀석이 크로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끼어들어야겠군.’
그 모습을 가장 늦게까지 지켜보던 로칸도 남은 한 놈에게 도약했다. 그 역시 타이밍을 맞춰 한 마리를 맡아 주지 않으면 이 싸움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든 두 사람 몫을 하는 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애초에 이런 일대일 상황은 로칸 역시 바라던 바였기에 기쁘게 한 놈을 후려쳤다.
까앙!
첫 격돌은 로칸의 손해였다. 하지만 그건 아직 광풍 현신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 안 될 건 알지만 한번 힘의 차이를 느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보다는 할 만한데 ’
그러나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았다. 무기빨, 장비빨이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이다.
단지 광전사 스킬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800% 공격력 상승 보정을 받는데 하이 마스터라고 꿀릴 이유가 무엇이 있으랴.
때문에 로칸은 아예 광풍 현신을 사용하지 않고 싸워 볼까도 생각을 했지만 금방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완벽한 일대일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튀는 싸움의 여파가 너무 엄청난 것이다.
벌써부터 생명력이 조금씩 깎이는 것이 이대로는 충격을 해소해 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광풍 현신!”
로칸은 즉시 광풍 현신을 사용했다.
금빛과 핏빛이 어우러진 기운을 삼키며 거인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광살!”
변화를 마치자마자 승부수를 던졌다. 포스를 오라로 대체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직업들의 마스터 급 스킬들을 녹여 더욱 빠르고 강력해진 참격이 붉은 근위병의 몸을 휩쓸었다.
하필이면 로칸이 맡은 마지막 놈이 제 몸집만 한 히터 실드를 들고 있는 방어 계열 하이 마스터였지만 굴하지 않고 강력한 공격을 방패 위로 내리찍으며 방패를 부술 기세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귀찮게 굴기는!”
방어 계열 조합 스킬이라도 사용한 것일까 광살의 모든 공격이 방패 위에 찍혔음에도 굳건히 버티고 선 녀석은 오히려 눈을 빛내며 로칸에게 접근해 그 자체로 철벽과 같은 방패를 밀치며 로칸에게 충격을 돌려주었다.
“큭!”
방패 밀치기. 워낙 방패도 커다랗고 로칸도 커졌기에 피해내기는 어려웠지만 아주 간단한 수법이라고 생각을 하고 부딪친 그것에 로칸의 생명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강력한 타격이었다.
저 작은 몸집에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던 것일까 아니다. 로칸은 충격의 순간, 그 원인을 직감할 수 있었다.
‘대미지 반사……!’
로칸이 방패 위로 쏟아부은 광살의 대미지를 그대로 축적하여 되돌린 것이다.
방어 타입에 대미지 반사라면 실로 무지막지한 능력 조합이었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로칸이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어차피 광풍 현신이 지속되는 동안은 무한한 생명력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닌 로칸이었다. 완전히 대미지를 무효화해서 되돌리는 것이 아님을 파악하자마자 즉시 난무를 쏟아부으며 더욱 강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어디 이건 어떤지 볼까 ”
그 무차별적인 난무가 계속되는 가운데 로칸이 새로운 수를 꺼냈다.
촤르르륵.
사슬이 로칸의 왼손에 감기자, 그는 허리를 돌려 강력한 힘을 응축시켰다.
“파멸의 일격!”
퍼엉!
공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쏘아진 것은 강력한 펀치!
바로 로칸이 만들어 낸 새로운 생성 스킬, 파멸의 일격이었다.
“컥!”
그 한 방에 지금껏 꾹 참아 오던 붉은 근위병이 비명을 내질르고 마나로 이루어진 피를 토하며 땅으로 거칠게 쳐박혔다.
바로 파멸의 일격에 담긴 두 가지 스킬 때문이었다.
하나는 상대의 방어력을 관통하는 힘, 다른 하나는 자신의 방어력에 비례해 파괴력을 올리는 능력이었다.
파멸을 봉인한 사슬이 가지는 방어력은 과연 몇일까 무기에 장착하긴 했어도 이렇듯 주먹을 감싸면 그에 걸맞은 효과가 발휘될 것이라 판단한 로칸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허…… 이거 사긴데 ”
광살도 막아 냈던 놈의 방패에 구멍과 함께 무수한 균열이 생겨났다. 누적된 충격의 여파이기도 하겠지만 파멸의 일격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로칸 스스로도 얼마나 놀랐던지 놈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는 것도 그냥 보고만 있을 정도였다.
예비 동작이 조금 크긴 하지만 이만한 위력이라면, 또 다른 필살기로 써먹을 만하지 않은가
로칸은 작은 미소와 함께 다시금 투기를 일으켰다.
“붉은 기사의 검!”
그렇게 잠시 시간을 주자 이번에는 붉은 근위병이 힘을 발휘했다.
마스터급인 붉은십자군들 중 다수가 가지고 있던 마스터 스킬, 붉은 기사의 검. 검이 붉게 물들며 막대한 마나를 집약시키는 그 기술이 똑같이 발휘되었지만 위력만큼은 붉은십자군이 사용할 때와 천지 차이였다. 압도적인 마력을 바탕으로 로칸을 베기 위해 휘둘러졌다.
“광풍참!”
그리고 그때, 로칸도 한 가지 수를 내었다. 광살마저 막힌 지금, 그가 쓸 수 있는 최강의 공격 중 하나인 광풍참을 발휘한 것이다.
한 방, 한 방은 붉은 기사의 검보다 약했지만 광풍참은 무형의 기운과 함께 주위를 한순간 수십 차례나 난도질하는 스킬이었다.
수십 번의 격돌 끝에 붉은 기운을 죽이고 무력화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어떻게……!”
하이 마스터는 서로의 경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놈의 표정에 경악이 떠올랐다. 아무리 강력한 마스터 스킬을 개발해 냈다 한들 고작해야 하이 마스터도 되지 못한 이일 텐데
자신의 마스터 스킬이 막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뛰어난 전사답게 능숙하게 방패를 들었다.
구멍 난 방패일지언정 급소만 피하면 된다는 것인지 자세를 낮추고 방패를 당겨 로칸의 반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로칸에게는 마침 딱 맞는 스킬이 있었다.
“뼈 부수기.”
콰앙!
방패 위를 때렸지만 내장이 흔들렸다. 방어력을 관통하는 대미지가 그의 오장육부를 때리고 흔든 것이다.
만약 금속 인형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속을 게워 냈을지도 모를 엄청난 충격이었다.
후두두둑.
더불어 방패의 균열 또한 더 커졌다. 로칸의 스킬이 내구도를 크게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참격!”
꽈앙!
덕분에 멈칫거린 놈의 위로 또다시 배틀 액스가 찍혔다. 공격력을 3배나 증폭시킨 강대한 위력이 방패를 든 놈의 팔까지 부러뜨릴 듯 집중되었다.
“아머 브레이…….”
“크으…… 사자열파!”
세 번째 강격을 내리치려는 순간, 몸이 더욱 몸을 웅크렸다가 응축된 힘을 한 번에 폭발시켰다.
방패로부터 뿜어진 사자 형상의 기운이 로칸을 씹어 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그럴 줄 알았지. 튕기기!”
그때, 로칸이 알고 있었다는 듯 왼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새로운 생성 스킬 튕기기를 사용해 사슬로 보호 받는 팔로 짓쳐드는 방패의 옆면을 때렸다.
마스터 스킬이 가진 기세를 한 번에 죽이지는 못했지만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화염 저항력의 영향으로 화 속성 대미지가 크게 감소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쏘아진 홍염의 투기는 어쩔 수 없었다. 놈의 돌진을 비껴 내는 대신 홍염은 대부분 뒤집어썼다.
화르르륵!
다른 이들이라면 살이 익고 뼈가 녹을 위력이지만 로칸은 속성 저항력 중에서도 화염 저항력이 가장 높았다.
생명력은 꽤 빠르게 하락했지만 초고열의 불길조차도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땀을 쭉 빼는 것으로 이겨 내며 불길을, 사자의 형상을 흩어 버렸다.
‘장난이 아니군.’
어떻게든 힘을 해소해 내고 놈의 마스터 스킬까지 깨부쉈지만, 로칸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자열파가 내뿜은 열기에 노출된 것만으로 생명력이 3분의 1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물론 앞의 대미지 반사 공격이 있긴 했지만 불과 5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광풍 현신 덕에 상승한 생명력이 얼마인데 3분의 1밖에 남지 않았다니, 하이 마스터의 무서움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전차 돌진!”
“점프!”
그렇게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놈이 저 멀리서 방패를 앞세우고 달려왔다.
그것을 로칸은 생성 스킬인 점프로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힘으로 막아 세우는 방법도 있지만 그 또한 조합 스킬인지 돌진해 오는 힘이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붉은 유성!”
그러나 투우사처럼 피하기만 하는 건 로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카이에게 매달려 2단 점프를 했을 때보다는 낮았지만 즉시 뛰어올라 높이 에너지를 파괴력으로 전환시켰다.
강화와 돌진의 힘으로 범벅이 된 거대한 탄환이 되어 놈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휠 윈드! 급가속!”
아니,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로가 아닌 세로로. 오직 한 점에 집중시키는 회전 참격이 놈에게로 꽂히기 시작했다. 그것도 급가속의 힘을 받아서!
쿠과과과과과과광!
로칸의 배틀 액스가 놈을 때렸다. 때리고, 또 때렸다.
교묘하게 길이를 조절하며 사슬이 아닌 배틀 액스 본체로 타격하도록 하더니, 지척에 다다랐을 때는 스킬을 캔슬하고 튕기듯 배틀 액스를 낚아챘다.
몸을 역으로 비틀어 균형을 찾는가 싶더니 낙차의 힘과 온몸의 탄력을 이용해 최강의 참격을 꽂아 넣었다.
“광살!”
자신의 진정한 힘을 놈의 몸 구석구석에 각인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