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종족 대연합 (5) (173/500)

 # 173

종족 대연합 (5)

“후우…….”

단 한 호흡 만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로칸이 천천히, 가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호흡을 고르며 세포 하나하나에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할 만큼 조금 전의 공격이 너무도 격렬했던 것이다.

“광풍 현신이 아니면 꿈도 못 꾸겠군.”

실로 엄청난 힘이고 위력이었다. 놈이 간신히 들어 올린 방패를 무참히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갈이 될 때까지 때리고 부쉈으니까. 이제는 한 방 한 방의 공격이 주변까지 피해를 입히는 범위 공격으로 바뀐 까닭이다.

집중해서 힘을 컨트롤한다면 일점 타격 하는 것도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조금 전의 공격은 로칸조차 컨트롤하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이었다.

그 증거로 만약 광풍 현신 상태가 아니었다면 사용자인 로칸 자신의 근육이 찢겨 팔이 덜렁거리고 있었을 것 같았다.

“물론 광풍 현신을 써서 이런 위력이 나온 것이겠지만.”

정확히는 광풍 현신으로 강력해진 능력치에 붉은 유성, 휠 윈드, 급가속, 광살을 연달아 펼친 여파였다.

[기적적인 업적! 당신은 하이 마스터를 단신으로 쓰러뜨렸습니다.]

[타이틀 ‘규격 외’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규격 외][에픽]

당신은 지금까지 모든 단계에서 한 단계 위 등급의 존재를 일대일로 쓰러뜨렸습니다.

이제 당신을 등급으로만 판단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보유 효과]

-모든 NPC들이 한 단계 위 등급으로 대우

-동급의 존재를 상대할 때 모든 능력치 10% 상승

-동급의 존재를 상대할 때 모든 스킬 효과 20% 상승

-상위 등급 몬스터 사냥 시 온전한 아이템과 경험치 획득

‘좋았어.’

단지 하이 마스터를 잡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성장해 오면서 모든 단계에서 한 단계 위 등급을 일대일로 사냥했기에 주어진 타이틀이었다.

그렇기에 등급은 무려 에픽. 보유 효과도 엄청났다. 능력치와 스킬 효과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 상위 등급 몬스터를 사냥할 때 드롭률 하락과 획득 경험치 하락이 일어나던 페널티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아주 고속도로를 뚫어 주는군.’

페널티를 받은 경험치임에도 로칸은 충분히 빠르게 성장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최소한의 브레이크조차도 사라졌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하이 마스터라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몬스터를 사냥해야 했지만 가능성을 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로칸은 충분히 흥분할 수 있었다.

마스터 레벨부터는 1레벨, 1레벨을 올리기가 극악하리만치 어려운 대신 다음 단계인 하이 마스터가 350레벨로 비교적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스터가 하이 마스터로 오르기 위해서는 처음 캐릭터를 만들고 마스터에 오르기까지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말이다.

‘다들 제법.’

짜릿한 보상에 희열을 느끼던 로칸은 뒤늦게나마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 역시 순식간에 몰아쳤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이미 전투가 끝난 이들이 몇이나 있었다.

하이 마스터끼리의 전투는 치열했지만, 의외로 서로의 상성이나 마스터 스킬의 위력에 따라 한순간에 갈릴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마스터 스킬을 로칸처럼 지속형으로 꾸미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합류한다.’

상황을 파악한 로칸은 즉시 힘을 보탰다.

아직 광풍현신의 지속 시간이 20분가량 남았으니 최대한 하이 마스터를 처치하려는 것이다.

혼자서도 킬을 따냈으니 협공까지 한다면 의외로 쉽게 거꾸러뜨릴 수 있을 테고 보상도 더욱 오를 것이란 계산이었다.

다음 목표는 하프엘프가 맡고 있던 붉은 근위병.

따지고 본다면 하이 마스터를 둘이나 맡고 있는 검은용군단 쪽 하이 마스터들을 돕는 것이 맞겠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굳이, 왜 ’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고, 2 대 1의 전투는 그들이 자청한 일이니 자칫 잘못 끼어들었다가 자존심이 상했다며 길길이 날뛸 수도 있는 노릇인 것이다.

“절대 포박!”

로칸의 등장을 알아차린 것인지 하프엘프가 자신의 조합 스킬을 발동시켰다.

바닥에서 크고 아름다운 나무줄기들이 일어나 놈을 속박했다.

‘배운 변태로군.’

그 자세가 어딘지 묘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로칸은 놈을 향해 폭발적인 돌진을 발휘하며 짓쳐 들었다.

하프엘프가 상대하던 붉은 근위병의 타입은 탱커. 좀 전까지 로칸이 상대하던 놈과 거의 비슷한 타입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속박과 정령술, 궁술을 주 무기로 삼는 하프엘프 하이 마스터가 좀처럼 승부를 걸지 못하던 것이다. 속박에 대한 저항은 약한 편이었지만 반대로 원거리 공격에 대한 방어력만큼은 최고였으니까.

때문에 쉽게 기울어지지 않던 균형의 추를 로칸이 강제로 끌어내려 아예 패대기를 쳐 버렸다.

“파멸의 일격.”

쿨 타임이 돌아온 파멸의 일격. 방어력을 관통하고 내구력을 크게 손상시키는 그 파괴적인 일격이 놈의 위로 꽂혔다.

한 방. 그 한 방에 모든 것이 변했다.

굳게 닫혀 있던 놈의 가드가 열리고 성벽 같던 방패에 실금 같은 균열이 일어났다. 절대 방어처럼 느껴지던 놈의 방어 태세에 빈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머 브레이크, 난무!”

아예 로칸은 거기에 아머 브레이크까지 더했다. 이미 몇 차례의 격돌을 통해 봉인된 광풍의 배틀 액스가 가진 강도와 내구력을 확인한 것이다.

‘역시 단단하군.’

배틀 액스가 부딪친 자리에서 금속 조각이 튀고 마찰의 불꽃이 튀었다. 그럴수록 한번 생겨난 균열은 거미줄처럼 퍼지며 더욱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나 정작 로칸의 배틀 액스 내구력은 10이 채 깎이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의 격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사용해 오면서 깎인 내구력을 모두 합쳐도 그랬다.

상대의 갑옷은 물론 뼈와 살을 부수어 댔음에도 고작 10만큼도 손상이 가지 않은 것이다.

그 정도면 숫돌로 몇 분만 갈아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수준. 회복시키지 않아도 10,000이나 되는 내구력을 다 깎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이니 이쯤 되면 이 배틀 액스의 재질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피하세요!”

그렇게 한바탕 타작이 끝나자 뒤쪽에서 하프엘프 하이 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 있는 모양. 로칸은 즉시 공격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패애앵! 퍼버벅!

그러자 로칸을 스치듯 피해 날아간 여섯 발의 화살이 거의 동시에 놈에게 꽂혔다. 로칸이 만들어 놓은 균열을 비집고 제대로 박혀 들어갔다.

“엘리멘탈 익스플로젼!”

쿠과과과과광!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여섯 발의 화살에 각각 담긴 속성 에너지가 일제히 공명을 일으키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일정한 속도,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공격에 성공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그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면 엄청난 위력을 일으킨다는 콘셉트의 조합 스킬이었다.

“이 미친년이!”

문제는 그것이 로칸의 코앞에서 터졌다는 것이다.

피한다고 피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폭발의 영향권이었다.

자신의 합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일까

로칸은 이를 악물고 방어에 전념했다.

그는 탱탱볼처럼 튕겨 나가 아무렇게나 패대기쳐졌다.

‘아오, 저걸 죽여 살려 ’

간신히 자세를 수습한 로칸이 눈에 쌍심지를 켰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계약서’가 있긴 해도 이 같은 간접 타격까지 인정되진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크 리치도 아닌 하프엘프에게 이런 꼴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라 황당함이 밀려왔다.

‘그래. 저것들도 은근히 똘끼 있는 놈들이었지.’

로칸은 자신이 안일했음을 인식했다. 일반 게임에서의, 판타지에서의 인식이 어떻든 이곳 더 로드의 종족들은 단 한 종족도 방심해서는 안 될 족속들이었다.

때문에 하프엘프 하이 마스터에게 화를 내는 대신, 여운이 가시지 않은 폭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고작 이 한 방으로 놈이 끝장났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광살!”

폭연을 뚫고 들어간 로칸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전력을 끌어 올린 필살의 난무를 펼쳤다.

쩌저저적!

이미 넝마가 된 갑옷이 조각조각 쪼개지며 본래의 가치를 잃고 영락했다. 때문에 놈은 로칸의 공격을 중간부터 맨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헤드 샷!”

그리고 이어진 스나이핑!

또다시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하프엘프의 화살이 로칸을 지나쳤다. 놈의 이마를 꿰뚫으려 했다.

“튕기기.”

까앙!

“……!”

그러나 그 뜻은 쉽게 이루지 못했다. 로칸이 스킬을 발휘해 화살을 대신 쳐 낸 것이다.

실컷 양념만 해 놓고 밥숟가락은 다른 놈이 뜨는 상황을 그가 용납할 리 없었다.

“난무!”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하프엘프 하이 마스터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로칸의 연격이 쏟아졌다. 놈의 몸을 헤집고, 한쪽 팔을 떨어뜨렸다.

“애로우 레인!”

‘이년이 진짜!’

후두두두둑!

그때, 하늘에서부터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그냥 화살도 아닌, 마력을 가득 머금은 화살이다.

광풍 현신으로 덩치가 커진 로칸이니 저것에 노출됐다간 피부가 얼고, 불타고, 꿰뚫리며 생명력을 크게 잃을 것이 분명했다.

“참격!”

그러나 로칸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놈을 넘어뜨리고, 올라탄 모양새를 취하며 자신의 공격을 이어 갔다.

푸확! 쩌적! 화르륵! 파지지직!

공격을 꽂아 넣는 사이, 그의 등짝은 걸레가 됐다. 얼고, 불타고, 지져지고, 관통당하는 등, 각 속성의 효과를 고스란히 받아 생명력이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차피 로칸은 광풍 현신 상태였다. 버서크의 힘이 작용하며 생명력이 0이 되어도 죽지 않는 불사의 상태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머리와 심장만 보호된다면 굳이 피해 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통증만큼 강하게 배틀 액스를 놈에게 박아 넣었다.

“후우!”

그렇게 계속해서 배틀 액스를 내리쳐 끝장을 낸 로칸이 찌릿 눈을 흘겼다.

범위 공격이고, 명백히 타깃은 붉은 근위병이었으니 계약 위반은 아니었지만 고의성이 다분했던 만큼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하지만 이미 하프엘프 하이 마스터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로칸이 과민 반응 하는 것처럼 여겨질 만큼 금세 힘을 일으켜 다른 곳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당한 마당에 순진하게 우연이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로칸은 이를 갈며 일단 주변을 살피며 전장을 빠르게 스캔했다.

“이상한데…….”

상황은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기계 용과 샤벨 타이거는 일찌감치 역소환을 당했고, 2 대 1을 자신 있게 외치던 오크 하이 마스터는 피 갑을 한 채 밀리고 있었지만 결국 아군은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붉은 근위병은 셋만 남긴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마스터 스킬은 이미 빠졌는지 협공을 당해 슬슬 밀리고 있었으니 이건 승기를 잡았다고 보아도 좋았다.

그래서 불안했다.

붉은 근위병은 몰라도 크로노가 있는데 밀린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상보다 각 종족의 하이 마스터들이 가진 능력이 출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크로노의 저력은 잘 알고 있었기에 로칸은 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확실히 이상해.’

그가 주입한 타락의 힘이 독으로 작용한 것이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리 봐도 하이 마스터들을 몰아치는 크로노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전생에 봤던 그의 절대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빈 수레처럼 요란하기만 한 힘을 뿜어 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예 제대로 된 스킬이라고 보기도 힘들 정도로 막무가내의 힘이었다.

“제길.”

뭔가 있다. 당장 달려들어 그 비밀을 파헤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로칸은 초조한 모습으로 한발 물러서며 체력을 회복시킬 준비를 했다.

이미 생명력은 0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이 싸움의 끝을 지켜보기 위해서는 생명 충전을 쓰든, 다른 수를 내든 단시간에 생명력을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다.

지이이잉.

“……!”

그리고 각 종족 하이 마스터들의 협공에 마지막 붉은 근위병이 쓰러진 그때, 크로노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하늘에서 내려온 요사스러운 빛이 그를 감싸고, 놈은 광합성을 하듯 그 빛을 흡수해 버렸다.

“또다시 나의 군단이……! 모두 죽여 버리겠다!”

사람의 그것이 아닌 소리만 내던 크로노의 눈에 녹색 정기가 돌아왔다.

광폭하던 기운이 정갈해지고 더욱 날카로워졌다.

“헉!”

“피해!”

쏴아아악.

예리한 무형의 기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대지마저도 반듯이 잘라 내는 예기.

의지만으로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그 모습에 모두가 황급히 물러서 경악을 토했다.

이것이 진정한 고대 황제 크로노의 모습.

제2라운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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