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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정화의 보주 (2)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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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보주 (2)

우우웅. 콰앙!

로칸이 급히 몸을 돌려 봤지만 보스 룸의 문은 이미 닫힌 상태였다.

생성 스킬 회피를 지운 것이 처음으로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알 수 없는 고대의 기관이 작동합니다.]

[강력한 생명력 흡수 효과가 방 안 가득 채워집니다.]

“쓰읍.”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적 자체에서 작동하던 생명력 흡수 효과가 더욱 강력해졌다.

이제는 로칸도 살짝 부담스러울 만큼 눈에 띄게 생명력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더러워 죽겠군.”

어쩔 수 없음을 깨달은 로칸은 현실을 마주했다.

그의 눈앞에서 누군가의 두개골로 탑을 쌓고, 펄떡이는 심장을 맛있게 씹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것들의 주인이 누구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

고대의 존재인 그들의 심장이 아직도 이처럼 생동하고 있다는 건 뭔가 특수한 처리가 되어있기 때문인 듯싶었다.

[생명 약탈자 칼락][Lv 320]

평소라면 그저 이름과 레벨만 보이겠지만 [통찰]을 사용하자 놈의 능력치며 간단한 설명이 나타났다.

“저 정도면 거의 세계수 수준인데…….”

힘과 민첩 모두 동 레벨 이상의 수준이었지만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체력 수치였다.

생명력의 총량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능력치.

로칸이 작정하고 두들겨 패도 한참을 패야 할 정도인데, 심지어 놈이 심장을 씹을 때마다 생명력의 총량이 상승했다.

‘저게 다가 아니겠지.’

하지만 로칸은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저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심장이 아니더라도, 이 방 안에 작동하는 생명 흡수의 힘이 단순히 침입자의 생명력을 깎기 위함만은 아닐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놈이 로칸을 향해 몸을 돌리기 시작하자 로칸이 먼저 움직였다.

빈틈을 노린 광살 아니다. 돌격와 파괴 전차, 급가속까지 가미해 놈의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덕분에 칼락이 바로 뒤쫓았음에도 뒤를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달리자 곧 예상했던 무언가가 나타났다.

탑.

좀비들이 쏘아 냈던 것과 같은 탐욕스러운 녹빛의 구슬을 품고 있는 가로등 같은 작은 탑이 로칸을 맞이했다.

우우웅. 슈욱.

그리고 즉각 방어 모드에 들어갔다.

생명 착취의 광선을 뿜어내며 로칸을 공격했다.

“흥!”

광선은 빨랐지만, 로칸이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광선이 발사되기 직전, 약간의 딜레이가 있었기에 눈썰미가 좋다면 충분히 피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약점 간파.”

빠르게 접근하며 약점 간파를 사용하자 광선이 쏘아지고 있는 구슬에 붉은 점이 찍혔다. 예상대로 그것이 탑의 약점인 것이다.

“폭격!”

열 개의 손도끼가 같은 위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것이 물리력 없는 광선의 약점이라는 듯, 광선을 가르고 같은 곳을 연달아 때렸다.

쩌적! 푸쉬쉬쉭!

구슬이 파괴되자 그 안에 가득 차 있던 어떤 힘이 뿜어져 나왔다.

방 안에 펼쳐진 어떤 힘에 흡수되는가 싶더니 녹색의 벼락이 되어 로칸을 뒤쫓던 생명 약탈자 칼락에게 떨어져 내렸다.

[생명 약탈자 칼락이 대량의 생명력을 회복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지.”

그럴 줄 알았다. 이 탑들이 놈에게 생명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설정이었다.

그렇기에 로칸은 생명력을 포식하느라 잠시 행동을 멈춘 칼락을 버려 두고 다른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휘익! 전설을 타는 자!”

예상이 적중했음을 확인하자 아예 적토마까지 소환을 했다.

카이를 소환할 수도 있지만 전설을 타는 자로 강화하기에는 천골마가 좀 더 적합한 것이다.

“돌격! 파괴 전차!”

다음 탑에 접근하자 또다시 광선이 쏘아졌고, 로칸은 이번엔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그것들을 피해 냈다. 카이처럼 교감을 사용할 수 없으니 차라리 속도로 찍어 누르려는 것이다.

“폭격!”

그리고 다시 쏘아진 폭격.

명중률 보정까지 얻은 로칸은 굳이 명중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즉시 방향을 틀어 나머지 탑들을 공략해 갔다.

“크워어엉!”

손도 써 보지 못하고 탑을 모두 잃어서일까, 칼락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적토마가 아닌 일반 천골마였다면 겁에 질려 발버둥을 쳤을 만큼 거대한 공포가 들이닥쳤다.

“시끄러, 인마!”

그러나 공포라면 로칸 역시 뒤지지 않는다.

신나게 뛰고 또 뛰어야 했던 짜증을 담아 으르렁거리자 공포가 상쇄되었다.

만약 광풍 현신이나 버서크 상태였다면 오히려 능력치가 떨어지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은 놈의 쪽이었겠지.

그렇게 네 개의 탑이 모두 무너지자 놈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미친.”

[생명 약탈자 칼락의 생명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생명 약탈자 칼락이 생명 포식자로 진화합니다.]

부글부글.

놈의 몸에 커다란 기포 같은 것이 생기는가 싶더니 몸집이 더욱 커졌다. 처음에도 이미 로칸의 2배는 됨 직하던 녀석의 몸이 거의 광풍 현신을 한 로칸의 수준으로 커진 것이다.

두두두두두두두.

그리고 장식품으로만 여겼던 두개골의 탑에도 변화가 생겼다.

“저건 ”

두개골의 탑의 크기가 빠르게 줄어드는가 싶더니 불과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곳에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두개골. 로칸은 그것이 무엇인지 즉시 확인할 수 있었다.

[생명의 기운이 응축된 크리스털 해골][에픽]

1천 이상의 두개골과 막대한 양의 생명력이 응축되어 하나의 아이템을 탄생시킨 것이다.

크리스털 해골!

저것이 바로 로칸이 찾던 부서지지 않는 크리스털일 확률이 높았다.

“급가속! 광기의 시간!”

로칸의 몸이 순간 몇 배나 빨라졌다.

진화한 칼락의 앞으로 들이닥치는가 싶더니, 등짐처럼 매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노움 오형제!”

투웅, 퉁 퉁 퉁 퉁.

뿜어지듯 튀어나온 것은 노움 전사 인형이었다.

사이즈는 일반 노움보다도 작았지만 하나하나가 마스터 레벨의 힘을 가진 기계인형들이었다.

놈들이 로칸을 대신해 일제히 칼락에게 달려들었다.

“은신.”

그사이 로칸은 모습을 감추고 칼락의 곁을 스쳐 크리스털 해골을 향해 달려갔다.

쿠웅!

그러나 크리스털 해골은 쉽사리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계로 자신을 보호하고, 결계에 맞닿은 로칸의 생명력을 단숨에 빨아들였다.

“헉!”

그 흡수량이 어마어마해서 로칸조차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날 정도.

지이잉.

그와 함께 크리스털 해골의 안구에서 푸른 빛이 쏘아졌다.

[생명 포식자 칼락이 대량의 생명력을 회복했습니다.]

“돌겠군.”

다섯 노움을 상대하며 소모된 놈의 생명력이 다시 회복되었다.

점점 가속되는 방의 생명 흡수 효과도 있으니 이래서야 끝이 나지 않을 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칸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응 ’

바로 그때, 로칸은 칼락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노움 오형제, 소환 해제!”

그 즉시 대치 중인 노움들의 소환을 해제시켰다.

다행히 칼락이 완전 회복을 하고 난 뒤 제대로 된 격돌은 없는 상태였다.

“그래, 어디 배 터지게 먹어 뒈져 봐라! 광풍 현신!”

크흥

그다음 로칸이 한 행동은 놀라웠다. 오죽하면 칼락조차 당황할 정도. 광풍 현신을 시전한 채로 크리스털 해골을 향해 뛰어든 것이다.

쿠웅 쿵 쿵 쿵…….

그리고 그때마다 장벽에 가로막히고, 생명력을 빼앗겼다.

포션까지 들이부으며 반복해서 부딪히고 있지만 장벽은 깨어질 줄을 몰랐다.

“크헝!”

심지어 칼락이 달려들었지만 싸워주지도 않은 채 회피하며 계속 몸을 날렸다.

지이잉.

[생명 포식자 칼락이 대량의 생명력을 회복했습니다.]

[생명 포식자 칼락이 대량의 생명력을 회복했습니다.]

[생명 포식자 칼락이 대량의 생명력을 회복했습니다.]

덕분에 칼락은 계속해서 생명력을 회복했다. 아니, 회복하다 못해 넘치고 있었다.

로칸이 노린 것도 바로 그것. 진화까지 할 만큼 생명력을 포식한 칼락의 몸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몸이 못 견디고 있어.’

사실 이것은 도박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칼락의 생명력만 가득 채워 주고, 힘을 부풀려 준 뒤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끝나게 되겠지.

하지만 가설이 성립한다면

‘뻥! 하고 터지겠지.’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몸이 넘치는 생명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로칸은 30분에 걸쳐 칼락과의 술래잡기를 계속했다. 생명력을 크리스털 해골에게 헌납하며 놈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종료하였습니다.]

[앞으로 1시간 동안 재현신이 불가능합니다.]

[광풍 현신의 후유증으로 모든 능력치가 20% 감소합니다.]

“버서크!”

어디 그뿐인가 아예 광풍 현신이 끝난 뒤에는 버서크마저 연달아 사용했다.

그러자 칼락의 움직임이 과식한 사람처럼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러나 로칸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몸을 던져 댔다.

지이잉. 끄웍 부들부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변화가 일어났다.

멈춰 선 칼락의 몸이 한 번 더 부풀어 오르더니 부분 부분 터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 포식자 칼락의 몸에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이 유입되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생명 포식자 칼락의 몸이 곧 폭발합니다.]

“잘 가라, 끈질긴 새끼야.”

콰과과광!

칼락의 몸은 결국 생체 폭탄화되었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살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뻥 하고 터져 버렸다.

엄청난 폭발을 동반하며.

“후우, 난장판이군.”

아무것도 남지 않은 보스 룸. 칼락의 죽음과 함께 크리스털 해골의 앞을 가로막던 장벽 또한 사라졌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응축된 크리스털 해골을 획득하셨습니다.]

결국 크리스털 해골을 획득하고 말았다.

“살았네 ”

게다가 타이밍 좋게 레벨 업까지 했다.

이미 생명 충전을 사용해 버려 꼼짝 없이 죽었구나 생각했건만, 레벨 업이 그를 살린 것이다. 생각보다 칼락이 준 경험치가 막대했던 모양이었다.

“어우, 죽겠……!”

쿠구구구구궁!

그렇게 안도하는 순간, 유적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폭탄이 되어 터져 버린 칼락이 준 충격 때문인지, 크리스털 해골을 잃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유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얼른 크리스털 해골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로칸은 버서크의 후유증도 잊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형 변경 불가 제한이 걸려 있는 보스 룸을 탈출해 한참을 달려 나갔다.

“디그독!”

절묘한 타이밍에 디그독을 소환해 땅으로, 땅으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쿠궁.

한참을 땅을 파고 내려가자 위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잦아들었다.

완전히 소리와 진동이 멈추자, 알림이 하나 나타났다.

[고대의 유적, 생명을 취하는 자들의 유적이 파괴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대의 문명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유적의 완전한 파괴.

잘만 풀렸으면 룬북에 저장을 해 두고 영혼을 모으러 들락거리려던 로칸의 계획도 함께 무너졌다.

“어쩔 수 없군.”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처음의 목표는 이루었으니까.

땅속에서 한숨 돌린 로칸은 안전한 곳까지 이동한 뒤 타이무라로 돌아왔다.

때마침 균형의 보석을 구하러 떠났던 하프엘프 하이 마스터도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구하셨습니까 ”

“음…… 그런 것 같군요.”

퀘스트 창을 슬쩍 살핀 로칸은 자신이 구한 것이 ‘깨지지 않는 크리스털’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퀘스트 창에 완료 표시가 적혀 있었으니까.

다섯 잎 클로버도 이미 크리스털 해골을 구하러 가기 전 구입을 마쳐 놓은 상태.

이어 균형의 보석 가루가 든 주머니까지 받아 들자 퀘스트에 모두 완료 표시가 나타났다.

이로써, 고대 황제를 대적할 준비는 모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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