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1)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재료를 이리넬에게 넘기자 제작 작업이 시작되었다.
먼저 어느 정도까지 키워 놓은 정화의 힘을 깨지지 않는 크리스털, 즉 크리스털 해골로 옮겨 담았다. 그다음 다시 타락의 구슬을 이용해 정화의 힘을 더욱 키웠다.
정화의 힘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질 경우, ‘그릇’이 버티지 못하고 깨져 버릴 것을 염려한 작업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힘을 키운 정화의 힘은 크리스털 해골 내부에 충만한 생명의 기운에 힘입어 단 몇 분 만에 타락의 힘을 모두 잡아먹었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크리스털 해골의 내부에 정화의 힘이 가득 차올랐다.
그 후 이리넬이 응축의 주문을 사용했다.
완제품을 구하지 못한 탓에 그녀가 주문을 익히고 제작을 완료하도록 한 것이다.
응축된 정화의 힘에 다시 타락의 구슬을 사용하자 정화의 힘은 더욱 커졌고, 같은 작업을 몇 번이고 반복하자 정화의 힘은 더 이상 응축될 수 없을 만큼 단단한 힘이 모였다.
그리고 이제 타락의 구슬 따위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아 소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후우!”
그다음은 간단했다. 다섯 잎 클로버를 크리스털 해골 내부에 집어넣고 겉면에는 방출의 마법진을 새겨 정화의 힘을 뿜어낼 수 있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수의 묘목을 세 개나 사용해 증폭의 보주를 감싸자 정화의 보주가 완성되었다.
[정화의 보주를 획득하셨습니다.]
재료를 넘긴 것이 로칸이었기에 그에게 아이템이 들어왔지만 누가 사용할지는 고민이 필요했다. 애써 만들어 놓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제길, 나밖에 없는 건가 ’
방출의 마법진이 새겨졌으니 마법 계열이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로칸의 생각은 달랐다.
그랜드 마스터씩이나 되는 고대 황제가 과연 가만히 서서 그것을 맞아 줄까
어쩌면 정화의 보주에 담긴 힘을 모두 사용하도록 맞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오크랑 드워프를 믿느니…….’
그렇다면 근접 계열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인데, 오크와 드워프 하이 마스터는 성격이 급해 일을 그르치기 쉬워 보였다.
‘주술 계열인 고블린도 꽝이고. 하프엘프, 트롤, 노움이 유력하기는 하지만…….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지.’
그나마 괜찮은 자라면 하프엘프, 트롤, 노움 하이 마스터이지만 근접 전투보다 원거리 전투에 더 이점이 있는 그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고대 황제의 힘을 흩어 놓는 것 이후에도 전투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생 로칸 자신만 남는다.
거기다 그는 불사 효과가 있는 버서크와 광풍 현신까지 있으니 어떻게든 몸으로 밀고 들어가면 근거리에서 정화의 보주를 사용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설사 실패하더라도 정화의 보주만 뺏기거나 드롭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되살아나 재도전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일단 사용하고 나면 내 역할은 끝.’
그러나 정화의 보주를 성공적으로 발동시키더라도 거기서 끝장이 날 확률도 높았다. 다시 폭주한 고대 황제에게 찢겨 죽기 딱 좋은 위치가 되는 것이다.
불사 효과로 어떻게든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전투에 참여하기는 요원해 보였다.
강자와의 전투라면 누구보다 즐기는 그이기에 이 같은 기회를 단지 키맨 역할만 하고 날려 버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거기까지 생각한 로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굳혔다.
피할 수 없을 바에는 최대한 자기 몫을 챙길 생각이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거로군요.”
마법 전서구를 통해 다시 모두 모인 여덟 종족의 대표들. 그들도 이 상황을 정확히 인식했다.
그렇기에 드워프도, 오크도 함부로 나서서 제가 하겠다는 말 따위를 하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기에. 자칫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무리 방법을 찾아냈다 해도 이번에는 같은 보상을 줄 수 없다. 애초에 이 일은 너희 인간들이 벌인 일이니까.”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로칸뿐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기에 그에게로 시선이 모여들었지만 언데드 하이 마스터는 먼저 선수를 쳐서 못을 박았다.
인간 종족의 과오를 지적하며 이 일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놈이 어쩌면 가장 큰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서 다른 종족의 하이 마스터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새끼들, 쪼잔하기는.’
잘하면 좀 더 큰 것을 뜯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일은 우리 인간이 시작한 일이니까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
“예. 성공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죠.”
“그게 뭐지 ”
“그건…… 제가 처음으로 유효타를 입힌 뒤 각자가 가진 마스터 스킬을 발동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 ”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들은 NPC이니까.
‘흐흐흐, 걸려들었군.’
하지만 로칸은 다르다. 첫 번째 일격. 전문 용어로 ‘선빵’을 누가 치느냐에 따라 아이템 획득 비율이 달라지는 것이다.
선빵을 치고 전투 상태를 유지하기만 해도 제법 많은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다.
아니, 심지어는 가장 핵심적인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이템 드롭과 습득은 랜덤이니까.
“그러죠.”
“알겠다.”
“어려운 일은 아니군. 타락의 힘만 흩어 버릴 수 있다면.”
그러나 방문자의 생리를 알지 못하는 하이 마스터들은 흔쾌히 수긍했다.
“자, 그럼 확실하게 해 볼까요 ”
마지막으로 언데드 하이 마스터의 마지못한 대답까지 들은 로칸은 잔인하게 계약서까지 꺼냈다.
만약 약속을 어길 경우, 지난번과 같이 그들이 지닌 아이템을 하나 내어 준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미 약속한 바였고 지키면 되는 일이었기에 모두 떨떠름해하면서도 사인을 마쳤다.
“가시죠.”
계약서가 빛을 발하며 무사히 계약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자 로칸이 기분 좋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전투에 임할 준비는 모두 마친 상태였으니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로칸만 성공한다면 지금 즉시 고대 황제를 제거할 수 있었다.
“거창하게도 해 먹었군.”
대륙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은 여덟 종족의 대표들은 간단하게 브리핑을 받았다.
그들이 준비를 하는 사이 고대 황제가 벌인 행보와 파괴된 거점의 수, 그로 인해 소멸된 존재의 숫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각 종족에 하달된 명령에 따라 고대 황제가 나타날 낌새만 보여도 모두 숨거나 피난을 떠났음에도 그 피해는 무지막지 했다.
지난 타락 웨이브와 붉은 십자군에 의해 입은 피해까지 합치면 대륙에 존재하는 거점 중 무려 20%는 박살이 난 것 같았다.
그 모든 일들이 자신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서 로칸은 살짝 가슴이 뜨끔했지만 곧 표정을 지웠다.
이전이야 어떻게 되었든 지금이, 앞으로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피해를 입은 만큼 복구를 위한 퀘스트도 발동되었고 이득을 본 자들도 적지 않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놈에게는 어떻게 접근할 거지 ”
잠시 후, 고대 황제의 현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자 여덟 종족의 대표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거점으로 이동했다. 일시적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연동시켜 두었기에 함께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기습을 해야죠.”
“기습 ”
“하찮은 은신 따위로는 놈의 눈을 피할 수 없을 텐데 ”
“그래. 놈도 이쪽에서 뭔가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 테니 쉽게 접근시켜 줄 것 같지 않군.”
그리고 그들은 로칸이 어떻게 고대 황제에게 접근할지, 정화의 보주를 발동시킬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로칸이 은신을 사용할 수 있는 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 봐야 하급 은신, 높게 쳐줘도 중급 은신이다.
하지만 고대 황제는 상급 은신 그 이상을 사용해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로칸의 무식한 공격력과 전투 스타일도 알고 있으니 굳이 접근전을 허용할 리가 없었다.
의념만으로 강력한 오라를 일으킬 수 있는 고대 황제라면 원거리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로칸의 접근이나 견제를 무력화시킬 방법이 있을 테고.
하지만 로칸은 씨익 웃었다.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저기를 노려야죠.”
“하늘 ”
“그 새를 탈 셈인가 하지만 그 또한 시야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텐데.”
맞는 말이었다.
카이가 최대한 높이 난다 해도 고대 황제의 시야를 벗어나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카이가 더 성장하면 모를까, 지금의 상태에서 구름 위를 나는 것까지는 무리이니까.
“글쎄요 ”
하지만 로칸은 웃었다. 자신 있는 표정으로 카이를 소환했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흠…….”
일곱 하이 마스터들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방법이야 어쨌든 로칸은 역할만 제대로 수행하면 그만이고 자신들은 그 뒤를 이어 전투를 치르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들도 이동을 시작했다.
“멀지 않군.”
잠깐의 잡담을 나누는 사이, 고대 황제는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로칸은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을 사용해 점으로 보이는 고대 황제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한 뒤 거리와 고도를 조절했다.
그가 정화의 보주를 사용하는 것에 성공한다 해도 적절한 타이밍에 일곱 하이 마스터들이 개입하지 못한다면 선공은 인식되지 않을 테니까.
고대 황제와 일곱 마스터의 거리까지 계산하며 속도를 조절하다가, 어느 순간 태양을 향해 고도를 높였다.
뀻! 끼윳!
카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교감을 통해 느껴졌지만 참았다. 올라갈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했다.
“전설을 타는 자!”
탈것을 일시적으로 진화시키는 초월의 힘이 발휘되었다.
[대붕(大鵬), 카이]
카이의 몸이 지금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천골마가 적토마로 변신한 것처럼 카이 역시 진화하고, 한계를 초월했다.
날개를 펴면 구름과 같이 세상에 그림자를 뒤덮는다는 상상속의 영물이 되어 지금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늘 위까지 날아올랐다.
‘내가 이미지화한 것이긴 하지만…… 장난이 아니군.’
카이는 그냥 커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상태 창으로 확인한 능력치와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다.
생명 포식자 칼락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고, 엘리멘탈 웜들을 먹이로 잡아먹었던 경험 때문인지 물리 방어력은 물론 속성 방어력도 무지막지했다.
공격력은 몰라도 생명력과 방어 능력은 비할 데 없이 훌륭했다.
‘생각보다 쉬울지도.’
덩치가 커진 만큼 컨트롤하고 적의 공격을 회피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이 생명력과 방어력이라면 몸으로 때우고 들어가도 될 정도였기에 걱정은 없었다.
설령 그랜드 마스터인 고대 황제의 공격이라도 단숨에 카이를 어찌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끼엑!
그때, 카이의 입에서 불만스러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몸집이 커지는 것을 싫어해 신체 조작을 깨달은 카이가 아니던가
이번에도 태산과 같아진 덩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변형을 시도했다.
츠츠츠츳!
‘……사기네.’
날아다니는 성(城)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던 카이의 몸집이 와이번보다 조금 큰 정도로 변화했다. 모든 능력치는 그대로 지니고서.
끼윳!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카이가 빵긋 웃었다. 고대 황제를 향해 수직 낙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