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2화.만인살 (3) (192/500)

 # 192

만인살 (3)

‘좋군.’

퀘스트 진행 중 1.3배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퀘스트 보상도 훌륭했다.

레어 아이템이나 경험치 보상이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1레벨 확정 상승 보상,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꿀이었다.

지금 로칸의 상황은 마스터 레벨 몬스터를 수십 마리 잡아도 경험치 바를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채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1레벨 상승이라니. 최소 며칠 동안 틀어박혀 사냥을 하는 것보다 이편이 이득이었다.

‘레벨도 올리고 전쟁의 무게 추도 기울이고. 딱 좋아.’

그래도 당장 하이 마스터까지 레벨을 끌어올리는 것은 무리였지만 마음잡고 레벨 업을 하는 것도 다 카잔티아의 상황이 안정되고 난 후에나 가능한 것이기에 로칸은 충분히 만족 할 수 있었다.

“다들 눈 돌아가겠군.”

전투는 치열할 것이 분명했다. 기여도에 따라 끊기는 하지만 무려 유니크 등급의 드워프제 무기가 걸렸으니까.

클래스 익스퍼트 상급에 해당하는 무기라고 생각할 때 돈으로 따지면 최소 수천 골드는 족히 줘야 할 테니 그간 간만 보던 길드들도 모조리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진짜 전쟁다운 전쟁을 할 수 있겠어.”

그리고 또 하나. 이쪽의 상황을 전해들은 오크들도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NPC들이 먼저 파악하든, 유저들 중 고위 NPC와의 친분을 가진 자가 상황을 전하든 이쪽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알아챌 테고 그들 역시 준비를 할 것이었다.

특히 오크족은 강력한 육체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숫자가 무지막지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종족이다.

제대로 마음먹고 준비한다면 그동안 나타났던 몇백, 몇천 정도가 아니라 수만, 어쩌면 수십만까지도 병력을 집결시킬 힘이 있는 놈들인 만큼 로칸도 만족스레 웃을 수 있었다.

상대가 많을수록 그 또한 제대로 날 뛸 수 있고 더 많은 경험치와 전리품을 벌어들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업적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업적이었다.

로칸이 노리는 것은 전쟁 상황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수한 타이틀이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더 많은 숫자의 적이 필요했다.

물론 로칸이 아닌 다른 이들이 그 타이틀을 가로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로칸처럼 다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고, 그들 모두는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만 딸 수 있는 것이니까.

로칸의 눈빛이 음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루마릭성에 황금사자 진영 유저 대거 집결 중!]

[취힐라만 요새에도 오크 대부족 집결 중!]

일반적인 전쟁이라면 야금야금 군수물자와 병력을 모으겠지만, 유저들이 있는 이상 두 거점에 병력이 모여드는 것은 감출 수가 없었다.

유저들은 퀘스트를 받아 병력을 이끌고 물자를 나르며 각 거점으로 모여들었고, 공략전과 방어전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드는 이들로 텔레포트 마법진이 쉴 새 없이 번쩍거렸다.

어쩌면 첫 번째로 열릴 대규모 공성전에 모든 고레벨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250레벨이 넘는 유저들만 일만 이상 각 거점에 모여들었다.

“와우, 이렇게 고레벨 유저가 많았었나 ”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더 로드의 맵은 광활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넓었고, 필드 사냥터 역시 그만큼 크고 많았다. 거기에 공개 던전과 비공개 던전까지 더하면 여기에 있는 사람으로도 많이 모자라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래도 적당히는 모였군.’

때문에 로칸의 평가는 조금 박했다.

이 정도면 그저 준수한 정도에 불과하다. 아마 진짜 제대로 모인다면 1만이 아니라 4~5만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200레벨 이상으로만 꾸린다면 10만을 훌쩍 넘길 테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고레벨 유저 1만이 모인 이번 전투는 거의 탐색전에 가까운 것이었다.

“성문이 열린다!”

까앙 까앙 까앙 까앙!

당장 성문을 열고 나서는 드워프 병력만 보아도 그러했다.

무려 5만에 달하는 클래스 익스퍼트급 드워프 전사들. 그들이 방패를 때리며 소리를 내면서 진군을 시작했다.

[각 천인장들은 부대 이동을 시작해 주십시오.]

[일정 시간 이내에 목적지로 도달하지 못하면 퀘스트가 실패하고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 중 가장 레벨이 높은 10인에게 주어진 천인장의 임시 타이틀이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대 메시지 온. 이동을 시작한다.”

당연히 로칸 역시 천인장 중 하나였다.

사실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하기는 했지만, 천인장의 타이틀을 달았다고 킬 수가 나눠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기에 잠시 귀찮음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출정. 간단한 미니 맵이 펼쳐지며 그 위에 녹색 점으로 찍히는 부대원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로칸이 NPC 드워프 부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싸우고 누구보다 많은 숫자를 죽여야 했으니까. 최대한 일어나는 전투에 모두 참여할 생각이었다.

“뒤처지는 자는 버린다. 알아서 따라와라.”

[칼갈이 : 어우, 칼 같은 거 봐. 베이겠네.]

[드웝 : 까불지 말고 따라붙기나 해. 이 부대에 속한 이상 꿀 빠는 건 확정이니까, 흐흐흐!]

[파노 : 잡소리는 그만. 너네 여기서 안 싸워 봤지 오크들도 개쎄다. 집중 안 하면 꿀을 빠는 게 아니라 개털리게 될 걸 ]

로칸의 카리스마 있는 한마디에 부대 메시지는 난리가 났다.

저마다 한마디씩을 하면서도 로칸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자 1천 개의 녹색 점들이 빠르게 모이기 시작했다.

‘어디, 얼마나 준비했을지 한번 볼까 ’

거기까지 확인한 로칸은 부대 메시지에서 관심을 껐다.

귀찮음을 방지하기 위해 알림을 꺼 두고 부대 메시지 창도 반투명하게 바꾸어 치워 둔 뒤 더욱 속도를 높여 선봉에 선 드워프 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오, 자네로군. 어때, 오늘 자신 있나 ”

“흐흐,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

“하하! 그렇지 이 도끼가 모든 것을 말해 줄 텐데. 입으로 떠들어 봐야 소용없지.”

로칸에게 친한 척을 하는 것은 고대 황제와의 전투에서 함께 싸운 드워프 하이 마스터 에취히였다.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라는, 격이 다른 위치이긴 했지만 지난 전투를 통해 그를 인정한 그였기에 이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물론 드워프의 친구 타이틀과 명성, 평판 효과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에취히 님이 직접 나서시는 걸 보니 드워프 측에서도 이번 전투를 크게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물론이지. 이곳은 각 종족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자 상대 진영으로 통하는 연결로와 같은 곳이 아닌가. 이번 전투에서 취힐라만 요새를 빼앗을 수 있다면 공격 루트는 보다 다양해지고 다음 거점을 빼앗는 것도 훨씬 쉬워지겠지.”

그리고 친한 척을 하는 것은 로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서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함이었다.

이미 친근함을 느낀 에취히는 별것 아니라는 듯 순순히 로칸이 원하는 답을 내놓았고, 로칸은 이동하는 동안 계속해서 말을 붙이며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다 왔군.”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걷자 전면전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오크의 대군단을 마주할 수 있었다.

“껄걸, 적이지만 역시 호기로운 건 알아줘야겠군.”

오크들이 진을 친 것은 요새 안이 아니었다. 요새로부터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평원에서 드워프군이 전진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새에 웅크리고 수성을 준비하는 것은 오크들의 사상과 철학에 맞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개미 떼 같은 오크들의 숫자를 모두 수용하기도 어려운 요새 따윌랑 벗어던지고 평원에서 전사답게 한판 붙는다!

그것은 오크들이기에 가능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오크들과의 전투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전군 전투 준비!”

전장을 뒤흔드는 에취히의 고함에 평원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경계와 투지, 불안감과 공포가 한데 뒤섞이며 한순간의 묘한 침묵을 만들어 냈다.

“와라!”

하지만 그 침묵을 깬 것은 오히려 오크들 쪽이었다.

오크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하이 마스터 하나가 거칠게 소리를 토하자 싸늘하던 전장이 빠르게 달구어졌다.

투기와 투지로 뜨겁게 불타며 서로를 달리게 만들었다.

“오냐, 간다!”

그것은 로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놈의 도발에 응답하듯 소리치며 점프를 이용해 높이 날아올랐다. 빠르게 소환해 낸 카이를 타고 날아오르더니 겁도 없이 적진 깊숙한 곳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크핫하! 여전히 혈기 넘치는 친구로군. 저놈은 내가 맡지. 마음껏 날뛰어 보게!”

하지만 로칸이 떨어진 곳은 적의 정예가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이미 에취히에게는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를 상대하는 대신, 적의 병력을 최대한 줄여 아군의 희생을 줄이겠다 언질해 둔 덕분에 에취히와 드워프족 마스터, 하이 마스터들이 그의 빈자리를 채우며 적의 정예를 대신 맞이했다.

물론 드워프의 전투인 만큼 그들이 주역이 되는 것이 맞는 일이기도 했다.

‘흐흐흐! 좋았어.’

덕분에 로칸은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휠 윈드!”

그러나 버서크는 사용하지 않았다. 단기 결전이라면 모를까 이건 수만 대 수만이 부딪히는 대전투였으니까.

광풍 현신을 사용하면 단숨에 수백을 쳐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지금은 장기전을 끌고 갈 때였다.

버서크와 광풍 현신은 아껴 두고 기본기와 생성 스킬, 조합 스킬을 중심으로 오크들을 도륙해 갔다.

“이놈! 나와 겨뤄 보자!”

퍼억!

자신 있게 덤벼들던 오크 전사 하나의 머리가 가로로 갈라졌다. 휠 윈드의 힘을 받은 배틀 액스의 도끼날에 가볍게 썰린 것이다.

일말의 멈칫거림도 없는 압도적인 공격력!

보통은 그 모습을 보는 즉시 공포가 척수까지 스며들어 몸의 통제를 빼앗길 테지만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크 전사였다.

호전적이고 호승심 넘치는 오크들은 로칸이 뿜어내는 공포를 쾌감과 희열로 환원하여 되레 홀린 듯이 덤벼 왔다.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았지만 그들에게는 그 같은 죽음도 명예이고 영광이었기에 로칸을 향한 돌진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연속 100kill 달성!]

[연속 200kill 달성!]

[연속 300kill 달성!]

덕분에 로칸의 연속 킬 알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마스터급 이상의 전사들은 같은 수준의 드워프들과 치열한 전투를 펼치는 중이기 때문에 로칸을 막아설 자가 없는 것이다.

로칸의 돌파가 황당했고 전투력이 놀랍기는 했지만 곧 수적인 열세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라 오판한 것도 한몫했다.

‘미쳤다, 이건 미쳤어!’

그러나 정작 로칸은 온몸 가득 차오른 힘과 수직 상승한 공격력, 방어력에 벅찬 희열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가 가진 타이틀 중에는 적의 숫자가 많을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종류가 몇 개나 있는 것이다.

[타이틀 폭군의 효과로 주변 적대 진영 군단 효과를 삭제합니다.]

[타이틀 폭군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15% 상승합니다.]

[타이틀 폭군의 효과로 적대 진영 NPC에 대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15% 상승합니다.]

[타이틀 폭군의 효과로 주변 적대 진영 적의 숫자에 따라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적용 효과 : 50%.]

그중 압권은 바로 이것이었다.

에픽 등급의 타이틀 폭군.

다른 모든 타이틀을 차치하고라도 이것이 있는 이상 로칸이 적대 진영 한복판에서 맥없이 사냥당하는 일 따위는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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