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작전명 앤트맨 (2)
[토황추][유니크]
대지의 기운을 담은 거대한 망치. 강하게 내리치면 강력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다.
-공격력 : 2,500
-내구력 : 10,000 / 10,000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내리칠 시 강력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다.
-내리치는 힘에 따라 진동의 위력이 달라진다.
-체력 + 100
토황추. 이건 꽤 재미있는 무기였다.
강하게 내리칠수록 엄청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는데, 근력이 로칸쯤 되면 단지 진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진. 그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울림과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힘으로 버티고 이겨 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자라도 나자빠지면 틈이 생기기 마련이지.’
스턴은 아니지만 그 파동에 걸리면 무조건 넘어진다. 마스터든, 하이 마스터든.
그사이 무기를 스왑하여 공격을 펼친다면 그건 큰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직접 무기를 부딪치면 적의 내부를 울리게 만들 수도 있었고, 다른 재미난 활용법도 많이 있었다.
전생에는 창세의 왕이 이끌던 라그나로크 팀 소속의 드워프 유저가 가지고 있던 무기. 그것이 로칸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재미있군. 이건 정말로 유니크(unique)한 아이템이니까.’
유니크라는 것은 유일무이하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이것을 그저 등급을 표시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고, 더 로드에도 분명 그런 부분이 있지만 실제 몇 가지 아이템은 이 유니크라는 이름에 부합했다.
딱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
토황추 역시 로칸이 아는 한에서는 그런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로칸은 이 무기를 그 누구보다 잘 활용할 자신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다른 자들이 어떤 아이템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드워프제 유니크인 만큼 만족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자신이 쓰는 무기와 다른 종류일 수는 있지만 팔아 치워도 큰돈을 만질 수 있었고 옵션만 좋다면 아예 아이템에 맞춰 주 무기를 바꿀 이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웨폰 마스터리야 쓰다 보면 오를 테고, 다른 스킬에 비해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까.
그렇게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물러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로칸은 생각에 잠겼다.
당연히 저들의 아이템을 어떻게 빼앗을까 하는 것 따위는 아니었다. 드롭률도 낮고 이런 전쟁 통에 아군까지 조심하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아니지. 만인살이 있잖아 ’
그러다 문득, 유혹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어차피 토황추 같은 특수한 아이템이 아닌 이상 구해 봤자 팔아 치울 뿐이기에 정세를 읽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드워프들이 수성을 택할지, 계속해서 진군할지부터 봐야겠군.’
그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검은용군단의 대처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수성을 한다면 오크들이 모여들 테고, 병력의 소모가 적었던 것을 고려해 한 발 더 나아가려 한다면 다른 종족들도 끼어들 여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로 다른 황금사자 진영 종족들이 움직일 기회를 만들어 줄 터였다.
“역시인가 ”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로칸은 드워프들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선택에 종족의 성격이 담긴 것이다.
건축과 제작의 달인들답게 빠르게 무너진 성벽을 복구시키는 한편 수성용 병기들을 잔뜩 옮겨 두고 방어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동시에 전투 병력을 움직일 준비를 했다. 한번 일으킨 균열을 더욱 크게 벌리기 위해서.
게다가 포위되는 것만 피한다면 그들이 움직임으로 해서 취힐라만 요새를 수비할 시간을 더 벌 수 있기도 했다.
‘드워프들이 요새화를 시작하면…… 끔찍하지.’
어느 쪽이든 드워프들의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전투에 나선 이들이 거점을 하나 더 빼앗아도 이득, 실패하더라도 시간만 벌 수 있다면 그것도 이득.
다만 그들의 이동 경로가 조금 미묘했다.
“뭐지 ”
만약 자신이라면 아예 오크족의 다음 거점을 치러 갔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크족 거점을 향하는가 싶더니 선발대를 제외한 나머지 병력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 ”
놀랍게도 그 방향은 또 다른 최전선이었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대신 아예 벌어진 틈을 강제로 잡아 열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취힐라만 요새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블린들의 성채, 히랏타였다.
“그런 건가.”
그것을 보고도 아직 감을 잡지 못한 이들이 많았지만 로칸은 경험을 통해 드워프들의 전략을 알아차렸다.
선봉으로 오크족 거점을 향해 빠져나간 이들. 그들의 역할은 단순히 정찰 따위가 아니라 ‘길목 폭파’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길을 무너뜨리고 함정을 설치하며 본진이 떠난 사이 취힐라만을 기습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방해하기 위한 공병 병력인 것이다.
최소 몇만 단위의 대병력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길이 필요하니까. 아니라면 이동 시간이 배 이상 길어질 수도 있었다.
나중에 드워프들이 다시 진격을 하고 싶으면 어쩌냐고
그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작의 달인인 드워프들이니 길을 망가뜨린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복구시킬 수 있을 테니까.
“이번엔 스케일이 좀 커지겠군.”
그 즉시 로칸은 다른 종족들의 진영으로 눈을 돌려 공격 대상인 고블린들뿐 아니라 비교적 인접한 언데드들의 움직임과 반대로 드워프의 인접 종족인 노움들의 움직임까지 파악했다.
“역시…….”
그리고 그들 역시 모종의 움직임을 벌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아직 크게 눈치챌 수 없도록 은밀히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는 듯했지만 그들 역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고블린은 노움들이 대치하던 종족이고, 그들마저 무너진다면 다음은 언데드들의 차례가 될 확률이 높았으니까.
협동 공격과 협동 방어가 이루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재밌는데 ”
그렇다면 문제는 하프엘프들의 반응이다.
언데드들이 움직인다면 그들과 대치 중인 하프엘프들에게도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 잘 움직이지 않는 온건한 성격의 종족이라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그건 바보였다.
‘좀 불안하기는 한데…….’
그건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일단 드워프&노움 vs 고블린&언데드의 전쟁도 꽤나 볼 만할 것 같았다.
황금사자 진영의 두 종족은 근접과 주문 계열의 조합이고 검은용군단 진영의 두 종족은 주문 계열 중심이되, 언데드를 통한 병력 충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속도전이 관건인가.’
하지만 그조차도 드워프와 노움 연합이 빠르게 밀고 들어간다면 여의치 않아진다. 언데드라는 것은 재료인 시체가 필요하니까.
시간을 주지 않으면 황금사자 진영이 그래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테고, 투석기 등을 통해 수성하는 병력의 마나를 고갈시킨 뒤 치고 들어가면 유리한 싸움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사거리가 같다면 모를까, 드워프들이 제작하는 투석기나 발리스타의 경우 사거리가 일반의 것보다 상당히 길어서 공성에 엄청난 이점을 줄 터였다.
“아쉽군. 그걸 볼 수 없다니.”
생각만 해도 장관이 연출될 것 같은데, 아쉽게도 로칸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전투를 해야 할 테니까.
트롤의 대군을 격파했다고는 하나 트롤들은 아직 여력이 충분했고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이번에는 위풍당당하게 정면으로 오지 않고 다른 수를 쓰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전에, 이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모두 지휘 막사로 들어오도록.”
적당히 그들의 진격 속도를 살피다가 다시 카잔티아로 돌아온 로칸은 즉시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 작전을 세우기 위해 그럴 리가. 그저 작전을 하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가능하긴 한 겁니까 ”
로칸이 내놓은 작전은 무척이나 대범했다. 위험했고, 오만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사냥의 달인이라 불리는 트롤이 아니던가
그뿐이 아니다. 최강자인 캬루스부터 다수의 트롤 강자들이 사냥꾼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될 뿐, 특유의 재생력과 힘, 민첩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근접 계열도 많았고 의외로 주술사를 택한 놈들도 많았다. 주술사의 스킬 트리 중 자신의 피를 매개로 하는 스타일이 트롤과 잘 맞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전투 방식을 가진 까닭에 여덟 종족 중에서도 최상위의 전투력으로 평가 받는 트롤에게 도박을 걸다니, 탈라란과 델라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준비나 잘하도록.”
하지만 로칸은 자신감이 넘쳤다. 아직 전쟁의 극초반이고, 특히나 NPC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유저들의 방식’이 먹히기 쉬운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무조건 먹힌다.’
특히나 트롤은 ‘사냥꾼의 감’을 가진 종족. 누군가 접근한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테지만 로칸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들이 가지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이번에는 독으로 작용할 터였다.
자신 만만해하다가 병력의 대부분을 잃고 영혼까지 탈탈 털려 패퇴한 톨로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일단은 연습이 좀 필요하겠군.”
여러 번의 기회는 없다. 단 한 번만 통할 수 있는 시도였기에 로칸은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계획의 핵심이 될 ‘어떤 것’에 대한 연습을 반복하며 드워프, 노움 연합이 고블린의 성채 히랏타는 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 * *
“여기는 베타. 붙었습니다.”
통신구를 통해 델라스의 음성이 속삭이듯 드워프, 노움 연합 대 고블린, 언데드 연합의 전투가 드디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인간들의 군단도 이동을 시작했다.
로칸이 노움의 기계공학 스킬로 만들어 놓은 허수아비들을 성벽에 세워 적들의 눈을 기만하는 동안 병력들이 적의 감시 마법에 걸리지 않도록 뿔뿔이 흩어져 트롤의 최전방 거점, 후쉬칸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후쉬칸에 머무르는 병력의 숫자를 생각하면 턱도 없는 수준이었지만 상관없다. 로칸에게 필요한 것은 그야말로 시간을 끌어 줄 최소한의 병력이니까. 게다가 수적인 열세를 해결할 방법도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다.
모든 종족의 관심이 고블린 성채 히랏타로 쏠린 사이, 가장 약체 종족으로 꼽히는 인간이 가장 강력한 종족으로 꼽히는 트롤의 거점을 노리고 있었다.
“카이, 우리도 슬슬 준비해 볼까 ”
뀻!
그 시각, 로칸은 홀로 후쉬칸 인근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카이의 등에 탑승한 채 평범한 새처럼 이리저리를 날아다녔다. 후쉬칸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초소들의 위치를 파악하다가, 어느 순간 하늘 높이 솟구쳤다.
“전설을 타는 자.”
카이의 몸에서 비롯된 거대한 그림자가 한순간 후쉬칸의 상당 부분을 덮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볼 만큼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츠즈즈즛!
신체 조작을 극한까지 사용한 카이가 파리보다 작은 사이즈로 줄어들었다.
[교감]을 사용한 로칸 또한 같이.
“작전명 앤트맨. 시작이다.”
먼지 같은 무언가가 후쉬칸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