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대도서관 (2)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당연히 루베론이 소속된 파벌의 수장인 후스타페 공작이 배후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른다니
로칸이 잠시 혼란스러운 눈빛을 했다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타락한 힘을 이용하려는 자들 중에 후스타페 공작이 있나 ”
-아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제압된 영혼은 거짓을 말할 수 없지만 알아서 말을 늘어놓을 이유는 없기에. 질문을 정확히 하지 않는다면 오해할 수 있는 답변을 내놓는 것도 가능했다.
“타락한 힘을 이용하는 자들의 수장은 누구지 ”
-그건…… 킬라만타 공작님이시다.
“……뭐 ”
이번만큼은 로칸도 예상하지 못했다.
킬라만타 공작이라면 오히려 후스타페 공작과 반대파로 분류되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루베론 백작은 스파이였단 말인가
혼란스러웠지만 빠르게 정신을 추슬렀다. 제한 시간이 있었으니까.
“킬라만타 공작과 후스타페 공작은 같은 편인가 ”
-아니다.
일단 둘이 한패는 아닌 듯싶었다. 루베론 백작이 연기를 하며 스파이짓을 한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타락한 힘을 이용하는 자들에는 누가 있지 ”
-킬라만타 공작님과…….
놈은 다시 귀족들의 이름을 쭉 나열해 놓았다.
그들의 정체는 루베론조차 모두 알지 못하는지 생각보다 빨리 대답이 끝났지만 로칸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상황이 영상으로 저장되고 있으니 차근히 알아보면 될 일이다.
남은 시간을 체크하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번 일과, 그리고 타락의 힘을 이용하는 자들과 관련된 자료나 정보는 어디에 숨겨 두었지 ”
파앗.
제법 긴 대답을 끝으로 루베론의 영혼이 흩어졌다.
스피릿 스피킹은 같은 대상을 상대로 연속해서 사용하지 못하니 이걸로 끝이었다.
그래도 원하는 바는 모두 이루었기에 로칸은 아쉬워하지 않고 즉시 걸음을 옮겼다. 그에게 들은 것을 바탕으로 숨겨진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그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기사들이 샅샅이 내성을 뒤졌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보이지 못하던 중이었다.
[역모의 흔적 #1을 발견하셨습니다.]
[역모의 흔적 #5를 발견하셨습니다.]
[역모의 흔적 #2를 발견하셨습니다.]
로칸은 차분히, 그러나 놓치지 않고 자료들을 수집했다.
비밀 장치와 비밀 장소에 숨겨진 것도 있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집처럼 움직이며 자료들을 수집했고, 개중에는 내성의 바깥 땅에 묻힌 것도 있었다.
‘일단은 이것부터 처리해야겠군.’
그러나 로칸은 그것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없었다. 한 번에 건드리기에는 너무나 굵직한 인물들이 끼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이번 일에 한정하여 연루된 인물들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료들을 조합하여 직접 연관이 있는 자들부터 잡아들이고,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후스타페 공작령으로 바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연결된 끈이 너무 짧았다.
인원을 나눈 뒤, 직접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진 다른 백작들부터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놔라, 이놈아!”
“로칸 후작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처리하고도……!”
퍼억!
그러나 이번에는 가급적 살인은 자제했다.
로칸의 행보에 황제가 제제를 걸지 않는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그들을 죽여 없애기보다 그들의 입을 통해 보다 윗선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폭력으로 다스리며 놈들을 잡아들였고, 영문 모를 된서리에 인간 귀족들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황제가 당신을 호출했습니다. 6시간 이내에 황궁으로 이동하십시오.]
그렇게 한바탕 난리굿을 피는 사이, 황제가 로칸을 호출했다.
로칸은 그 메시지를 받고 대충 황제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좋은 반응이군.’
만약 로칸을 막고 싶었다면 바로 사람을 보내거나 즉시 황궁으로 오도록 호출을 했겠지. 그러나 6시간의 유예를 주었다.
이 말은 곧 로칸을 말리는 시늉은 취하되, 막지는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었다.
쿨 타임 때문에 조수 소환을 통한 영혼술사 활용은 어려워졌지만, 로칸은 주먹으로 대답을 이끌고 수색을 통해 증거들을 찾아냈으며 다른 귀족들의 입김을 원천 봉쇄했다.
애초에 그와 연결된 귀족이 거의 없었고 이미 작위가 후작이나 되다 보니 같은 후작이나 한 끗발 위인 공작이 나서지 않는 이상 막기 어렵기도 했다.
‘나설 리가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후스타페 공작이 나서는 것도 우습다. 다른 죄목도 아닌 ‘반역’, ‘역모’의 굴레를 씌웠으니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본인도 엮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후작급 이상은 기이하리만치 잠잠했고, 대신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후작님, 콜로란도 백작이 죽어 있었습니다.”
“후쉬발 백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집무실도 깨끗이 비워져 있었습니다.”
백작급이나 되는 인물들이 실종되거나, 급사한 채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명백한 꼬리 자르기.
어찌나 말끔히 치워 놨는지 흉수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는 보고를 받은 로칸은 가능한 수준에서만 놈들을 잡아들이고 일단 조사를 마쳤다.
황제의 호출에 응하기 위해 황궁으로 넘어갔다.
“그래. 반역자들을 잡아들였다고 ”
다시 만난 황제는 무척 부드러운 음성으로 로칸을 맞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백한 증거가 있었고, 자신의 명에 반기를 드는 반역자들이 줄어드는 것은 황권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정확히는 황제의 권위뿐 아니라 힘도 강화되기 때문이겠지.’
그뿐이 아니다. 죽은 반역자들의 재산과 영지, 사병이 어떻게 되겠나 모두 몰수되어 황제의 소속으로 들어갈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로칸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귀족들의 세력이 약해지고 황제의 힘이 강해지면 그를 지원하는 황제의 후원도 더 커질 터였다.
게다가 오히려 한데 뭉치기 쉬워지면서 종족의 힘 자체가 강해지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황제의 말이라도 종족이 멸망하려는 순간이 아니라면 귀족들은 자신의 사병을 온전히 내놓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예. 우연히 증거를 확보하고 관련자들을 색출했습니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 미리 보고드리지 못한 점 송구합니다.”
“아니다. 잘해 주었다. 나는 그대를 믿고 있으니 올바른 일이라 생각되거든 뜻대로 하거라. 명분만 확실하다면 아무도 그대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니.”
예상대로 황제는 로칸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선언했다.
갑자기 나타난 방문자이기는 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능구렁이 같은 귀족들보다는 원하는 바가 확실한 방문자들이 오히려 황제의 입장에서는 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황제의 자리를 노리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황제는 같은 NPC들을 믿었다. 로칸이 만약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면 그들이 돕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감사합니다.”
“전공을 세우는 것에 이어 반역자를 조기에 색출하는 큰 공을 세웠으니 보상이 뒤따라야 하겠지. 원하는 바가 있다면 말해 보거라. 황궁 무고를 다시 열어 주길 바라느냐 ”
때문에 황제는 아예 로칸은 아이템으로 꼬셨다.
황궁 무고의 개방.
이미 로칸에게는 두 번이나 베푼 혜택이긴 했지만 그 약빨은 쉬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로칸이 대영지를 거느리며 세금으로만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황궁 무고의 아이템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니까.
획득 시 귀속되는 종류도 아니니 본인이 사용해도 좋고, 동료나 부하에게 주어도 좋았다.
당장 하이 마스터급인 탈라란이나 델라스에게 강력한 무기를 쥐여 준다면 충성도가 극에 달하는 것은 물론 커다란 전력의 상승이 되지 않겠나
‘당장 아이템 하나로 전력의 상승은 크지 않다. 그것보다는 다른 게 필요한데…….’
하지만 로칸은 아이템보다 다른 것을 원했다. 그것을 입 밖으로 내야 할지 말지 고민이었지만.
“황궁 무고 대신……. 허락해 주신다면 대도서관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대도서관이라 ”
“예. 출입 제한 없이 가장 깊은 곳까지 둘러보기를 원합니다.”
황궁 대도서관. 그곳은 인간의 역사와 지식의 보고였다. 모든 종류의 정보가 담긴 책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책이 있었고, 스킬 북이 있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로칸의 대답을 다른 뜻으로 해석했다.
“좋다. 내 그대에게 황족과 같은 S급 서고 출입증을 부여하겠다. 단, 그곳에 들어갈 기회는 한 번뿐이며 총 두 권의 책을 가질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S급 서고 출입증을 획득했습니다.]
[황궁 대도서관에서 총 2권의 책을 반출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 내에서는 스킬 북의 사용이 불가능하며 반출 후 습득이 가능합니다.]
S급 서고 출입증. 여기서 S급은 Secret의 S다. 공작급으로도 들어갈 수 없는 가장 안쪽의 서고까지 접근할 수 있는 권한.
“감사합니다.”
그것을 받아 든 로칸의 입꼬리가 길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스킬 북 두 권이라는 의외의 소득도 있었지만 그것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사자왕의 무구. 그게 나한테 있다는 걸 알릴 필요는 없지.’
로칸이 원한 것은 나머지 두 개의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의 행방이었다. 일단 고대 황제에게 입혔던 것이 하나 있으니 황제라면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입 밖에 내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로칸이 그것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면 현 황제인 카이스만도 욕심을 낼지 모르니까.
사자왕의 무구를 모두 모으면 그가 가진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으니 탐을 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때문에 로칸은 그것을 직접 묻는 대신 스스로 찾아볼 생각이었다. 대도서관이라면 사자왕과 관련된 역사서들이 잔뜩 있을 테니까.
‘지루하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러기 위해 몇 권의, 아니 몇백 몇천 권의 책을 읽어야 할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해야 했다.
남은 사자왕의 무구는 둘.
그것만 모으면 사자왕의 무구에 걸린 봉인이 해제될 터였다.
‘그 정도면 거의 졸업 템이지.’
봉인이 풀린 사자왕의 무구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 하이 마스터에서 그랜드 마스터가 될 때까지는, 어쩌면 그랜드 마스터를 졸업하고 말로만 들었던 마제스티 마스터가 될 때까지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자왕의 경지는 최소 그랜드 마스터로 알려졌고, 어쩌면 마제스티 마스터였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황제에게 인사를 마친 로칸은 즉시 황궁 대도서관으로 향했다.
[황궁 대도서관에 입장합니다.]
[S급 서고 출입증 확인. 모든 서고에 대한 권한이 개방됩니다.]
대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자동으로 그가 가진 출입증이 인식되었다.
후작이라는 작위만으로도 꽤나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겠지만 S급 서고 출입증은 최소 2구역의 출입 권한을 더 개방해 주었다.
[본 출입증은 1회용입니다. 한 번 밖으로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위해 새로운 출입증이 필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서고 관리자’를 호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고 관리자 소환.”
시스템 알림에 따라 소리를 내자 그의 앞으로 마법 생명체가 나타났다.
누군가에게 포섭되어 살짝 출입을 눈감아 줄 수 있는 인간 대신 마법 생명체를 통해 관리함으로써 더욱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목, 내용 검색. ‘사자왕’.”
로칸은 즉시 서고 관리자를 통해 키워드를 검색했다.
키워드는 당연히 사자왕이다.
그러자 곧바로 검색 결과가 출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