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막타의 민족 (1) (206/500)

 # 206

막타의 민족 (1)

막타!

많은 게임에서 마지막 일격을 날린 이에게 경험치 획득, 아이템 획득 등의 이점을 주기 때문에 명백한 비매너 행위로 인식되는 일이었지만 더 로드에서는 막타보다 선공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중요성이 그다지 크지 않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거점 공략전에서는 달랐다. 지배의 홀이 깨지고 나타나는 ‘영주의 인장’만큼은 막타를 친 인원에게 우선권이 돌아가는 것이다.

만약 타이밍 좋게 스킬을 쏟아부어 막타를 칠 수만 있다면 전쟁에 전혀 기여하지 않고도 영주의 권한을 얻을 수 있었고, 혹은 타락 웨이브 때처럼 누군가 파괴한 뒤 차지하지 않은 영주의 인장을 뒤늦게 다른 이가 가져가는 것도 가능했다.

‘욕은 먹겠지만 알 바 아니지.’

그런 만큼 막타만 노리던 것이 들킨다면 아무리 같은 진영이라도 엄청난 욕을 먹을 수 있었다. 어쩌면 종족 대 종족의 입장으로 정식 항의 공문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뭐

그렇다고 연합을 끊고 적대하기라도 할 것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막타 때문에 거점의 권한을 뺏기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그다음부터 주의를 기울이고, 아예 영주의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견제하는 일은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전생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니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로칸은 그 비열한 행동을 그들에게 종용했다.

“어…… 그게 됩니까 ”

“아무래도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흐흐,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

설명을 모두 들은 유저들은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눈을 빛내며 흥미로워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뒷일은 모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여러분은 거점을 먹은 뒤, 저에게 권한을 넘기고 작위와 영지를 받아 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로칸의 보상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걱정을 하는 대신 탐욕의 빛을 번뜩일 뿐이었다.

“작위요 ”

“영지까지 주시는 겁니까 ”

단순히 작위를 제시하는 것만 아니라 영지까지 내어 주겠다 공헌한 것이다.

작은 영지 하나만 다스리게 되더라도 유저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건 기정사실이 아니던가

귀족이 된 일부 유저들의 리뷰를 통해 그걸 알고 있기에,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이 정도면 아무리 미친 짓이라도 도전해 볼 만하지.’

그 유혹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같은 유저인 로칸도 알고 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이 모두 도전할 것이고, 그중 몇몇은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작위뿐 아니라 영지까지 내어 주는 것은 로칸으로서도 다소 손해를 볼 수 있는 일이지만, 후작이 되고 그 이전에 리나이 영지를 비롯한 여러 작은 영지를 먹어 치우면서 남는 영지가 제법 생긴 그였다.

그중 특수 던전이나 특산품이 없는 영지도 제법 되었으니 따지고 보면 그리 손해도 아니었다.

편의에 따라 기존 하나의 영지를 몇 조각으로 쪼개어 나눠 줄 수 있는 꼼수와 권한도 그에게 있었고.

“받으십시오. 이걸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해 보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로칸은 아예 은신 기능이 내장된 액세서리 아이템까지 그들에게 지급했다.

부가 옵션은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영주의 방에 잠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어떤 타이밍에 잠입하고, 조합 스킬을 퍼부을지는 그들의 게임 지능에 달린 것이지만 로칸은 그들을 믿었다. 모두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꼭 해내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혹시, 원하는 영지를 고를 수도 있습니까 ”

그들 역시 자신감에 차 있었고, 벌써 어떤 영지를 받을지 설레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인간 종족에게 ‘막타의 민족’이라는 별칭 아닌 별칭이 붙을 사건이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 *

“준비는 ”

“끝났습니다. 명령을 내리시면 언제든 진격이 가능합니다.”

“좋아, 가지.”

호위대로 임명한 이들에게 임무를 주어 내보내고, 로칸은 후쉬칸성에 모인 유저들의 편성을 마쳤다.

당연히 주 역할은 화살 받이다. 그들은 앞장서서 공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충원이 어려운 NPC 병사와 기사를 대신해 소모되는 역할이 그들의 주된 임무였다.

그들의 편성을 확인한 로칸은 드워프와 노움의 출정 소식까지 확인한 후, 이동을 시작했다.

-로칸 : 부대장님들은 위치를 확인하고 진군을 시작해 주십시오.

진정한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전군 경계를 늦추지 마라.”

“경계 범위 넓혀! 적이 게릴라전을 준비한다는 첩보가 있다!”

참여한 인간 유저의 숫자만 무려 7만.

이 정도면 굳이 로칸이 세세하게 지휘를 할 필요도 없었다. 아군의 희생을 줄이고, 본인이 소속된 부대의 공적을 높여야만 부대장인 천인장들의 보상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천인장들은 이미 상위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지휘도 꽤나 능숙했다. 그 속에서 로칸이 할 일이라고는 NPC들을 조심조심 이동시키고 적들의 동태를 살피는 일뿐이었다.

“곧 도착하겠군.”

다만 한 가지, 그의 꾀가 들어간 부분은 있었다.

바로 이동 경로.

후쉬칸에서 바로 노릴 수 있는 거점은 무려 다섯 개나 되었고 그중 둘은 언데드, 나머지 셋은 트롤의 거점이었다.

로칸이 향한 방향은 언데드와 트롤의 거점 모두를 향할 수 있는 어중간한 방향이었다. 인간 군대의 이동을 알아차리고 있을 적들에게 가능하면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양쪽 거점 모두에서 대비를 할 수 있지만 공격받지 않는 한 곳은 심력 낭비만 하게 될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전원 우선회! 지금부터 속도를 높인다!”

그렇게 어느 지점에 다다랐을 때, 전군은 속도를 높였다. 목표는 트롤의 거점이었다. 사이가 안 좋기로 따지면 언데드가 인간, 하프엘프와 상극에 가까웠지만 아무래도 트롤들이 처음으로 인간을 노리던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놈들부터 밟아 놓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카이!”

뀻!

트롤의 거점이 가까워지자 로칸은 자리를 이탈했다. 카이에 올라타 높은 상공에서 놈들의 거점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멀었지만,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 덕분에 어렵지 않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역시 의식하는 건가.”

이미 한 번 잠입에 당했기 때문일까. 트롤들은 수비 방식을 바꾸었다.

기존에는 사냥꾼의 특성을 이용해, 넓게 거점 주변으로 배치해 놓은 간이 진지에 퍼져 나가 진격 속도를 늦추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아주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쉬익!

게다가 공중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일찌감치 로칸을 발견한 트롤 사냥꾼 중 일부가 위협사격을 하며 로칸을 견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겁을 먹을 로칸이 아니다. 놈들의 진형과 수비 방식을 파악하자마자 다시 땅으로 내려와 부대 메시지를 날렸다.

-로칸 : 포메이션 C로 갑니다.

이미 천인장들을 불러 모아 작전에 대한 설명은 끝내 놓은 상태였다.

그중 하나를 꼭 집어 이야기하자 각 부대는 자신의 위치로 이동하며 진형을 넓게 펼쳤다. 시위라도 하듯 세를 부풀리고 과시하며 트롤의 거점을 둘러싸듯 날개를 펼쳤다.

“디그독 소환. 전설을 타는 자.”

그렇게 시선을 끄는 사이, 로칸은 디그독을 소환했다.

아예 전설을 타는 자까지 사용해 디그독을 진화시킨 뒤, 땅을 파고 내려가 놈들의 거점 아래쪽으로 꽤나 커다란 땅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지.”

땅굴은 트롤의 거점 바로 아래에서 멈추었다.

본래 트롤 사냥꾼들의 예민한 감각이라면 충분히 그 진동과 알 수 없는 소음을 알아차렸겠지만 이미 투석기와 발리스타, 마법 등을 이용해 인간들이 성벽을 두들겨 대고 있던 통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쯤이면 되겠지.”

때문에 로칸은 지표면까지 땅굴을 연결시키는 대신, 바로 직전에서 멈추었다.

디그독의 소환까지 해제하고 다시 군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쿨 타임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속전속결도 좋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전투가 시작된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겠나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공성 병기만을 운용해 놈들에게 긴장감을 심어 주었다.

“땅굴 부대 투입.”

대신 자신이 만들어 놓은 땅굴로 다른 이들을 은밀히 내려 보냈다.

적의 성안으로 들어갈 경우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사전에 지원을 받은 부대들을 내려 보내 호응할 수 있도록 해 두고 부대 메시지를 통해 상황을 보고받았다.

-워록 : 도착했습니다.

-마스터쿼카 : 나머지 부대들도 대기 완료입니다.

천인장급이 이끄는 부대만 무려 다섯. 총 5천의 병력이 투입 대기한 상태에서 비로소 로칸이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지휘관의 입장이라지만 뒤에서 보고만 있는 것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 가 볼까 휘익!”

로칸은 이번엔 천골마를 소환했다. 쿨 타임이 돈 전설을 타는 자를 사용해 적토마로 진화시켰다.

“광풍 현신, 폭주 전차!”

광풍 현신을 사용하자 이어진 돌진 스킬의 힘을 어느 정도 적토마가 나누어 받았다. 이 정도라면 트롤들의 견제에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터였다.

투다다다다다다다.

“쏴라!”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혹시 모를 오발 사고를 막기 위해 공성 병기의 가동조차 멈춘 상태. 질풍과 같이 달려 나가는 로칸에게 모든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엄청난 공격력, 방어력 증가 효과에 불사의 효과까지 받은 로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조합 스킬이 쏟아져도, 마스터 스킬까지 날아와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광기의 시간! 급가속!”

맞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알고도 맞히기 어려운 무지막지한 돌진력에 타이밍 좋게 순간 가속 능력까지 더해 버리자 로칸을 위협할 만한 공격은 아무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성문으로 짓쳐 드는가 싶더니 스스로 충차가 되어 성문을 들이받았다.

쿠와아앙!

성벽이 흔들렸다. 쩌적 파열음을 내며 갈라졌다.

완파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가했던 어떤 공격보다도 강력한 대미지가 들어갔음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로칸에게 후쉬칸을 빼앗기고 방비하기 위해 몇 번이나 강화된 성문일 텐데도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광살!”

문제는 로칸이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멈춰 섰다간 고슴도치가 될 테니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연달아 스킬을 퍼부어 대자 성문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파괴되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그와 함께 안과 밖에서 동시에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길을 열어 낸 로칸의 뒤를 따라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물론, 로칸이 난동을 피우는 것에 맞춰 나머지 땅을 파낸 땅굴 부대가 성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집중 사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로칸에게 혼을 빼앗긴 트롤들이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먼저 지상으로 올라온 유저들이 흩어지며 시선을 분산시킨 것이다.

그렇게 트롤들의 거점이 또다시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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