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7화.막타의 민족 (2) (207/500)

 # 207

막타의 민족 (2)

인간의 트롤 거점 공략전 대승.

그 소식은 대륙 전역에 빠르게 전해졌다.

-와드 : 보라, 이것이 로칸 갓이다!

└피묻은칼 : 그래 봤자 전쟁인데 로칸갓은 무슨. 인간들은 쪽수가 적어서 한곳에 뭉친 거고 트롤은 방어할 거점이 많아서 전력이 분산된 거지.

└쾌걸네티 : 아는 척 노노 해. 로칸 혼자서 성문 때려 부수고 마스터들 다 조짐. 유튜브에 영상 많더라. 가서 보고 오렴.

-트롤롤롤로 : 아씨, 트롤이 최강 종족 아니었어 아무리 로칸이 있다지만 뭔 최약체 인간한테 두 번이나 털리냐. 그것도 제일 먼저!

-최강스나이퍼 : 뼈다귀 놈들 각 잡고 대기해라. 다음 거점은 언데드다.

나머지 전선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 하나의 거점을 빼앗겨 이제는 트롤과 언데드뿐 아니라 고블린들의 거점까지 노릴 수 있게 되면서 심리적 위축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같은 선상에 있는 다른 트롤이나 언데드 거점부터 안정적으로 가져간 뒤 더 깊숙한 거점으로 밀고 오는 것이 맞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더 깊숙이 나아간 뒤 포위하듯 일명 ‘쌈 싸 먹기’를 할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닌가

이러한 걱정과 불안은 당장의 전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고, 특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하프엘프들과 마주하던 언데드 유저들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일부 유저들은 아직 전투의 균형추가 무너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레 겁을 먹고 자리를 이탈했고, 기가 산 황금사자 진영의 유저들은 각자의 종족 전투에 더욱 열성적으로 지원하며 승기를 빼앗아 갔다.

‘흠, 이상하군.’

그러나 정작 로칸은 그리 기뻐하고만 있지 않았다. 전투를 치르며 마스터 레벨의 트롤도 몇이나 목을 쳐 냈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무리 예상 밖의 방식으로 적을 흔들어 놓았다지만 적들의 저항이 너무 약했다. 게다가 하이 마스터 또한 이번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트롤 종족 전체로 보자면 이쪽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의 하이 마스터가 남아 있을 텐데, 그들을 투입하지 않은 것이다.

‘뽑기 운이라고 보기에도 좀 수상하긴 하네.’

물론 하이 마스터가 머물지 않는 거점을 공격한 것일 수도 있다. 타이밍 좋게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운 사이 공격해 들어간 것일 수도 있고.

그러나 그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다.

그렇기에 로칸은 마음을 놓고 승리를 만끽하는 대신 경비를 강화하고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원래는 좀 더 준비를 한 뒤 다음 거점 공략에 들어가려 했지만 로칸의 활약 덕분에 피해가 생각보다 적은 것이다.

“판매, 판매, 판매.”

때문에 로칸은 아예 새로 점령한 성을 거의 비우다시피 했다.

일단 영지 보유금을 모두 인출하고, 트롤들이 사용하던 수비 시설들을 모조리 팔아 치웠다.

설령 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트롤들이 탈환전을 펼치더라도 무방하도록 아예 빈 깡통으로 만들어 버린 뒤, 즉시 다른 거점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트롤의 거점이 아니라 인접한 언데드의 거점이 목표였다.

‘트롤들을 몰아치는 것도 좋지만, 이쪽을 건드리면 부수적인 효과들을 얻을 수 있지.’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언데드의 거점을 향해 나아가면 이제 막 전투가 시작된 하프엘프들이 힘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병력을 분산해야 하는 언데드의 힘은 자연히 약해질 것이고, 만약 병력을 나누지 않고 하프엘프들과의 전투에 집중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득이다. 인간들의 공략전이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말이다.

“전군 대기!”

그것을 노리고 빠르게 언데드들의 다음 거점으로 진격한 인간의 군대는 또다시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섰다.

“공성 병기 조립!”

투석기와 발리스타, 마법 대포 등 공성 병기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

그리고 그때, 언데드의 성문이 자발적으로 열렸다.

이미 트롤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의 전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나를 공급하는 한 끝없이 재생할 수 있는 스켈레톤들을 주력 병력으로 사용하는 언데드였으니 농성을 벌이기보다는 개활지에서 소모전을 펼치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상대가 바로 로칸이라는 것이다.

“카이!”

끼윳!

그들이 성문을 열고 우수수 병력을 쏟아 내는 것을 확인한 로칸은 카이를 타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곧장 들이받은 것은 아니다. 그들이 충분히 빠져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천인장들의 지휘 하에 각 부대는 전투 대형을 갖추었고, NPC 병력들은 조금 더 후방으로 후퇴하며 공성 병기의 조립과 장전을 마쳤다.

“인간…….”

“죽어라……!”

덜그럭덜그럭.

뼈마디가 덜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언데드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이사이로 놈들을 재생시키고, 저주를 퍼붓고, 마법 공격을 담당할 리치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인간들은 섣불리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로칸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지키며, 어떤 순간을 기다렸다.

“전설을 타는 자, 붉은 유성!”

시작은 역시 로칸이었다. 대붕으로 화한 카이가 로칸과 일체화되어 떨어져 내렸다.

메테오와 같은 거대한 존재감.

그것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자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지상을 휩쓸었다.

“저놈! 저놈부터 죽여라!”

거대한 크레이터와 함께 일대가 모조리 가루로 변해 소멸했지만 언데드의 숫자는 여전히 많고 많았다.

유저인지 NPC인지 모를 리치의 고함 소리에 따라 나머지 언데드들이 로칸을 찢어 죽이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치명적 일격…….”

그리고 그때, 카이를 다시 하늘로 날려 보낸 로칸이 충격 때문인지 멈추어 선 채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런데 한 가지, 뭔가 이상했다. 로칸이 들고 있는 무기가 이전과 달랐다.

배틀 액스가 아닌 거대한 쇠망치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뼈 부수기, 참격!”

쿠우우웅!

가장 먼저 뛰어나간 스켈레톤 워리어의 칼날이 그에게 닿기 직전, 높이 치켜들었던 로칸의 망치가 대지를 강타했다.

대지가 물결처럼 출렁이며 엄청난 파동을 일으켰다.

토황추!

타격력에 따라 무지막지한 충격파를 일으키는 유니크 등급의 무기가 특수 능력을 발휘했다.

“끄악!”

“으어어억!”

그와 함께 로칸을 둘러싸듯 달려오던 모든 존재가 뒤집어졌다.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대지를 차마 딛고 서지 못했다.

공격은커녕 몸조차 가눌 수 없게 되며 벌러덩 바닥에 나자빠진 채 혼란에 빠졌다.

“……저게 뭐야 ”

“저게 가능한 일이야 ”

“뭣들 해 공격해, 공격!”

“이런 보너스를 놓칠 참이냐!”

비현실적인 상황에 함께 정신 줄을 놓은 것은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비교적 빠르게 정신을 수습했다. 로칸이 미리 예고해 놓았기 때문이다.

부대장들을 중심으로 소리를 지르고 공격을 독려하자 곧 원거리 공격을 마구 쏟아 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진동의 여운이 남은 땅으로 직접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각자가 가진 원거리 공격 스킬을 마구잡이로 퍼부으며 제법 재미를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성벽이나 성문을 직접 공략해 볼 수도 있겠군.’

놀란 것은 직접 토황추를 사용한 로칸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예상한 효과였기에 누구보다 먼저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나자빠진 놈들을 도륙하는 대신, 어안이 벙벙해져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내성의 수비 병력들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었다.

끼에에엑!

“크허허헝!”

대붕으로서의 위엄을 토하는 카이와 광기의 함성을 내지르는 로칸. 공포를 모르는 것이 언데드의 특징이었지만 그들의 소리에 모두의 혼이 달아났다.

그런 놈들을 향해 로칸이 다시 한 번 떨어져 내렸다.

“폭격!”

콰과광!

고작 손도끼를 연달아 던졌을 뿐인데 맞닿은 것들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유저든 NPC든 소환체든. 로칸의 상대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타이틀 만인살을 얻는 순간부터, 로칸은 언데드의 천적과도 같은 존재가 된 것이었다.

전투 상태에 들어간 존재가 많을수록 전투력이 상승하는 그에게 있어 다수의 소환체를 만들어 내 싸우는 언데드야말로 가장 쉬운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휠 윈드!”

가벼운 휠 윈드 한 방에 수십, 수백이 갈려 나갔다. 마스터 이상은 빠르게 몸을 빼냈지만 그들이라고 별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파멸의 저주!”

“본 샤벨 타이거, 소환!”

조합 스킬, 마스터 스킬로 만들어 낸 저주를 퍼부어도 로칸의 전투력은 여전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무지막지했고, 아무리 강력한 소환체를 내세워도 마찬가지였다.

끼엣! 후두두둑.

당장 로칸이 아니라 카이가 나서서 부리를 쪼아 대기만 해도 다시 뼛조각으로 돌아갔으니까.

전투 계열의 하이 마스터가 기습을 해도 어려울 판에 주문 계열, 그것도 네크로맨서의 클래스를 지닌 하이 마스터로는 로칸에게 대인전을 걸어 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저기군.’

반면, 로칸은 마구잡이로 주변을 부수면서도 예리하게 눈을 빛냈다.

자신이 마구 날뛰어 둘수록, 하나라도 많은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를 잡을수록 아군의 피해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즉시 고레벨의 위치를 파악하고 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리프 어택!”

주문까지 사용해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에 들어간 내성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외성 안에 있는 고레벨들을 찾아 죽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향해 무수한 디버프 스킬이 날아오고, 빈틈을 노리는 예리한 원거리 공격이 쏟아졌지만 로칸의 격을 낮추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제한적인 저주 효과를 막기 위해 동종의 스킬이 적중할 경우 가장 효과가 강한 하나의 스킬만 인정이 되는 까닭이다.

저주의 종류를 무수히 분화시킨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유저들이 사용하는 저주의 종류는 비슷했기에 로칸을 눈에 띄게 약화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좋았어.’

덕분에 로칸은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저주의 효과보다 타이틀을 통해 강화된 효과가 월등히 앞섰으니까.

더구나 그에게 직접 무기를 맞대 오는 자들이라고는 어중간한 소환체이거나 고작해야 마스터급의 존재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언데드의 종족 특성상 파워 타입도 아니고 민첩에 힘을 준 암살 계열이 많았다.

그리고 속도와 감각이라면 타이틀의 힘을 등에 업은 로칸이 월등히 앞서고 있었다.

끄그극!

“젠장!”

“싸워 주지 마! 시간만 끌란 말이야!”

그러나 적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전투력에서 압도당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철저히 로칸과의 전투를 피하려 들었다. 소환체를 기꺼이 희생시켜 가며 시간 끌기에 나선 것이다.

어차피 광전사는 지속 시간 동안만 붙잡아 두면 끝이었다.

성문 밖으로 내보낸 언데드 군단이 순식간에 쓸려 나가고 이제 인간의 군대가 내성으로까지 진입을 시작했지만, 어떻게든 로칸만 막아 낸다면 승산이 있다고 자위했다.

시체 폭발이든, 라이즈 언데드든 어떤 식으로든 병력은 충원할 수 있었고 시간을 끌고 전력을 소모시키다 보면 승기는 자신들의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기를 20여 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찾아올 반격의 순간을 탐욕하며 마지막 인내를 발휘했다.

로칸이 그 스킬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시간 역행.”

츠즈즈즛…… 파앗!

순간, 로칸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공간 이동을 벌인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 ”

“도, 도망쳤다. 놈이 도망쳤어!”

“지금이다! 모조리 없애 버려!”

그것을 확인한 언데드들이 환호하며 함성과 함께 마나를 폭발시켰다.

여전히 전체적인 전황은 열세였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응축된 분노를 폭발시켰다.

성안 가득 널브러진 시체들이 폭발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 죽음의 기운이 진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으흐흐! 귀여운 짓들을 하는군. 그럼 2부를 시작해 볼까 광풍 현신!”

로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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