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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화.캬루스 VS 로칸 (3) (211/500)

 # 211

캬루스 VS 로칸 (3)

땅굴. 그리고 디그독.

그제야 바쿠칸은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그의 마스터 스킬이 대지를 뭉개 버리기 직전, 디그독을 소환한 로칸이 아예 땅속으로 숨어 버린 것이다.

충격과 진동은 있겠지만 그뿐이다. 직접 타격은 없었고, 굳이 전설을 타는 자를 발동하지 않아도 디그독은 땅을 파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방심한 바쿠칸의 등 뒤로 돌아갔다.

“캬아아아아악!”

피가 울컥울컥 쏟아지는 왼팔을 붙잡고 괴성을 지른 바쿠칸이 폭주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듯 자신의 마지막 힘을 폭발시켰다.

“광마강림!”

순간 칠흑 같은 검은 기운이 놈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구멍 난 상처에서 쏟아지던 핏물이 점차 줄어들고 놈의 등 뒤로 귀신같은 검은 악령이 깃들었다.

피보다 붉게 변한 두 눈.

로칸은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제길.”

버서크.

하지만 그냥 버서크는 아니었다. 로칸 자신과 동류였다. 버서크를 기반으로 여러 스킬들을 뒤섞은 것이다.

아무래도 강림 계열의 주술 스킬을 섞은 모양인데, 그렇게 될 경우 본인의 전투 방식을 잃고 불러들인 영혼의 전투법을 따르게 될 확률이 높았다.

육체적인 스펙이야 상승하겠지만 마냥 강해진다고만은 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했다. 인간처럼 모든 종류의 스킬을 제한 없이 섞을 수는 없다 보니 한정된 클래스 스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효율을 뽑아낸 것일 테니까.

여기까지 오기 전에 진작 끝낼걸, 하는 후회와 함께 로칸이 어쩔 수 없이 힘을 개방했다.

“광풍 현신!”

검은 마귀에 맞서 로칸도 금빛과 적빛이 불타오르는 거인의 모습으로 화했다.

거대화 스킬까지는 넣지 못했는지 바쿠칸의 덩치는 커지다 만 느낌이지만 로칸은 확실히 거대했다.

마치 거인 대 짐승의 싸움을 보는 것만 같았다.

“캬아아악!”

속도 중심의 마수라도 깃든 것일까. 바쿠칸은 인계의 그것이 아닌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쾌속하게 움직였다.

상처는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왼팔이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지 측면으로 파고들며 끊임없이 로칸을 공략하려 들었다.

“귀찮게 구는군!”

후우웅!

그럴 때마다 로칸이 파리를 쫓듯 배틀 액스를 휘둘렀지만 놈은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회피했다.

몸의 균형마저 깨졌다고는 하지만 놈은 하이 마스터였고, 강력한 강화형 마스터 스킬까지 사용한 상태였다.

좀처럼 공격을 허용하지 않으며 치명적인 일격을 남기기 위해 본능에 몸을 내맡겼다.

“폭격!”

콰과과광!

이쯤 되자 로칸도 짜증이 났다.

아까처럼 힘 싸움을 하려 든다면 금방 거꾸러뜨릴 것 같은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빈틈만을 노려 대니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승부수를 띄웠다.

실패한다면 공격을 허용할 수도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충분히 버틸 자신이 있는 것이다.

“끼엣!”

팽그르르!

그러나 승부를 건 것은 로칸만이 아니었다.

이동기까지 사용하며 전력으로 빠져나간 바쿠칸이 소중히 들고 있던 대검을 집어 던졌다.

원을 그리며 날아간 대검이 로칸의 가슴을 가르려 들었다.

“튕기기!”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왼손에 휘감은 사슬을 방패삼아 대검을 쳐 낸 로칸은 그 틈을 노려 지척까지 파고든 바쿠칸을 똑바로 응시하고 길게 자라난 흉악한 검은 손톱을 향해 배틀 액스를 내리찍었다.

까가가강!

배틀 액스와 손톱이 부딪치는데 쇳소리가 났다.

검은 불꽃이 튀기며 바쿠칸의 몸이 밀려났다. 바닥에 붙을 듯이 휘청거리며 힘의 차이를 드러냈다.

“폭주 전차!”

파앙!

바로 그때, 로칸의 돌진이 이어졌다.

터져 나온 것은 숄더 차지. 그 강인한 어깨가 놈을 들이받자 공간이 터져 나가며 놈이 튕겨져 나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어딜!”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느새 무기를 바꿔 든 로칸이 일격이 바닥을 찍었다.

토황추!

그것에서 일어난 맹렬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어 몸을 일으키려던 바쿠칸의 몸을 다시 땅바닥에 쳐 박았다.

“잡았다, 요놈.”

단 한 번만이 아니었다. 워낙 크게 처박히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출렁거리는 대지는 파동이 계속 되는 동안 놈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방해했다.

그런 놈의 앞으로 로칸이 사신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광살.”

퍼버버벅!

광마강림으로 질기고 단단해진 피부가 습자지처럼 찰박찰박 터져 나갔다.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 그 무엇도 무의미했다.

필살(必殺).

로칸의 광기가 검은 마귀의 마성까지 잡아먹었다. 전신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시신을 짓밟았다.

“후우!”

뜨거운 기운을 훅 하고 토해 낸 로칸은 즉시 몸을 날렸다. 아까웠으니까.

시간 역행이 있다지만 광풍현신을 써 버린 이상 남은 지속 시간을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폭격! 말살의 사슬!”

“으악!”

열 자루의 손도끼와 사슬 폭풍이 거의 동시에 쏘아졌다.

캬루스를 향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없는 곳으로 도약하며 힘을 뿌려 댔다.

“이 애송이가 ”

자신을 피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캬루스의 눈빛이 변했다.

손주를 바라보는 듯하던 그의 눈빛이 돌변하며 부드럽게 허공을 짚었다. 하프를 연주하듯 빈 활시위를 매만졌다.

“……!”

그 순간, 로칸이 숨을 들이켰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치명적인 위협이 다가옴을 느낀 것이다.

사슬을 되돌리고 배틀 액스로 급소들을 급히 가렸다.

콰광!

“큭. 미친 영감 같으니…….”

무영시!

무음무형의 마나 화살을 쏘아 내는 캬루스만의 비기!

캬루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기술이 터진 것이다.

“이제 좀 나를 바라볼 생각이……. 저 맹랑한 놈이!”

그제야 만족스러운지 캬루스가 로칸을 도발했지만 로칸은 이미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영시의 기운에 몸을 맡기고 밀려나 더 먼 곳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나랑 한판 붙고 싶으면 거기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영감!”

전투가 시작되었다.

보통 일기토가 끝나면 진 쪽이 물러나는 게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캬루스와, 적들을 향해 여전히 이빨을 드러내 보이는 로칸의 모습을 확인한 유저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깨달았다.

본래의 목적을 간신히 떠올려 냈다.

“에잇, 이판사판이다!”

“싸워! 마스터 하나라도 잡고 드롭 템 먹으면 무조건 이득이다!”

어설픈 조합 스킬이나마 쏟아 내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전체 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힘을 합친다면 마스터 몇 정도는 잡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가장 선두에서 적의 마스터들을 쳐죽이고 있는 로칸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떠올랐다.

“어지간히 우습게 보인 모양이군. 그럼 원하는 대로 해 줄까 무영시!”

후두두두두둑!

그러나 캬루스는 그 희망의 싹을 짓밟았다.

노기에 찬 미소를 지우지 않고 제자리에서 활을 튕겨 댔다.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듯 손가락을 튕겨 댈 때마다 기세가 올라 함성을 질러 대던 인간 유저들이 우수수 쓰러져 나갔다.

한 발에 한 명도 아니다. 단 한 방에 몇 명이 함께 관통되며 쓰러졌다.

그랜드 마스터에 가장 가까운 자.

그와 같은 영광된 표현이 자신에게 왜 붙었는지를 몸소 확인시켰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군!”

하지만 놀랍게도 무영시에 로칸이 적중되는 일은 없었다. 로칸이 움직이는 방향마다 인간들이 들어차며 시야를 가리고, 경로를 방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곡사를 쏘자니 로칸이 방어해 낼 것 같고, 무영시를 쏘자니 방해꾼들이 너무 많았다. 로칸에게 닿기도 전에 힘이 약해져 별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사실은 모두 로칸의 노림수였다.

얼핏 보기에는 닥치는 대로 걸리는 놈들을 작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캬루스가 무영시를 쏘아 댈 것을 상정하고 다른 유저들을 등 뒤에 두는 교묘한 무빙을 치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그러는 동안, 로칸은 몇이나 되는 적들을 더 죽였다.

배틀 액스를 꼬나 쥔 손으로 그들의 영혼을 잡아 뜯으며 목적을 이루어 갔다. 놈들의 숨을 끊으며 로칸이 카운트를 셌다.

캬루스의 무형시가 자신의 머리를, 심장을 꿰뚫기 전 달성해야만 하는 목표가 있었다.

“크허허허허헝!”

그것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쉼 없이 배틀 액스를 휘두르는 것은 물론, 시선을 뺏고 빈틈을 만들어 낼 기계공학 아이템들도 아낌없이 뿌려 댔다.

‘마지막 하나!’

퍼억.

그리고 마지막 카운트가 올라가려는 찰나, 옆구리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한순간 숨을 쉬지 못할 만큼 강렬한 위력이었다.

“제길.”

몸을 비틀며 적의 협공에 대비한 로칸의 시선이 캬루스를 향했다.

시선이 얽히자 씨익 웃으며 활을 들어 보이는 그의 두 발은, 로칸이 말을 던졌던 그 시점의 그 장소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저 미친 트롤 새끼가.”

반면, 둘 사이를 가로막던 인간 유저들은 거의 전멸 상태였다.

적어도 수천은 됨직한 시체가 그의 앞으로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그 짧은 사이 모조리 쓰러뜨린 것이다.

“큭.”

퍼억

슬쩍 눈치를 보던 로칸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놈을 향해 뛰어들려 했지만 캬루스의 무영시가 한발 더 빨랐다.

로칸조차 식스센스에 잡힌 끔찍한 감각에 간신히 몸을 빼내며 그를 다시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감이 좋구나.”

진심으로 감탄하는 캬루스. 그러나 결코 놓아줄 생각은 없는지 눈은 더 깊어졌다.

이렇게 되면 로칸도 선택을 해야 했다.

피해를 감수하고 재시도를 해야 할지, 아니면 캬루스가 원하는 대로 놈과의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아야 할지.

부대 관리 창을 슬쩍 살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다.

적들이 충분히 시신을 수습하고 나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적어도 마스터 레벨 이상의 정예만큼은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이를 앙다문 로칸이 캬루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힘을 끌어 올리며 고함을 질렀다.

“디그독!”

투둑.

“이런!”

그 순간, 캬루스의 발밑이 들썩였다. 디그독이 그의 발밑을 뚫고 올라오며 균형을 흩어 놓은 것이다.

[‘디그독’이 강제 역소환되었습니다. 앞으로 1시간 동안 소환이 불가능합니다.]

캬루스가 즉시 바닥을 쏘아 그 이상의 무언가는 하지 못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재빨리 쏘아진 로칸의 배틀 액스가 고블린 마스터 하나의 목을 이미 따고 있었으니까.

‘됐다.’

[영혼 수집가의 권능][에픽]

영혼의 힘을 쥐어짜 이적을 발휘할 수 있는 영혼 수집가의 권능이 담긴 반지.

-영혼 수집 : 5,000 / 10,000

-사냥한 영혼을 수집할 수 있다.

-자신보다 20레벨 이상 낮은 영혼은 수집할 수 없다.

-수집한 영혼을 소모하여 이적을 발휘할 수 있다.

-이적 [강화] : 소모 영혼 100

-이적 [영혼의 시계 되감기] : 소모 영혼 1,000

-이적 [영혼 군단] : 소모 영혼 5,000

-이적 [초월 각성] : 소모 영혼 10,000

“영혼 군단!”

몇 개의 거점을 점령하며 간신히 모은 영혼을 몽땅 털어 넣었다.

이렇게 또 써 버리면 초월 각성은 언제쯤 쓸 수 있을지 속이 부글거렸지만 이대로 허무하게 죽어 버리는 것보다는 몇 만 배 나았다.

마스터 레벨, 또는 그에 근접한 몬스터 1천.

이 정도면 그래도 시간 끌기에 적당하지 않겠나

“이노옴!”

다시 로칸의 주위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어떤 것들을 보며 캬루스가 대로했다.

또다시 로칸과의 일전을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무영시를 마구 쏘아 댔다.

그 덕에 모습을 드러낸 영혼체들이 퍽하고 흩어져 버리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상당히 많은 수가 활동을 개시했다.

“영감탱이, 힘도 좋구먼.”

마구 날뛰는 캬루스를 보며 로칸이 쓰게 웃었다.

저렇게 쏘아 대면 마나가 금방 동이 날 것 같은데, 전혀 힘 빠지는 기색 없이 스킬을 난사해 대는 것을 보며 로칸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캬루스는 자신이 아니면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카이, 가자!”

끼엣.

결심한 듯 카이를 소환해 날아오른 로칸이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캬루스에게 짓쳐 들었다.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놈과의 승부를 끝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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