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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쿠데타 (1) (213/500)

 # 213

쿠데타 (1)

“후우, 젠장!”

즉시 부활을 선택한 로칸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패배.

한순간 희망을 보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영체화가 강력한 마스터 스킬인 이유. 그것은 아무런 경직 효과나 피격 효과 없이 대미지를 받는 중에도 자신의 공격을 이어 갈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즉, 로칸의 광풍참이 작렬하는 사이 캬루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로칸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는 소리다.

아무리 영체화가 있더라도 로칸이 주는 대미지는 실로 엄청났다. 아무리 캬루스라도 먼저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긴장을 느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러나 놈은 극도의 침착함과 자신감으로 그것을 극복했다.

“그러니 최강 소리를 듣는 거겠지. 제길.”

덕분에 로칸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부대 관리 창을 열어 보니 아슬아슬하게 잡히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슬아슬하다는 것은 잡힐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지만 로칸은 상황을 봐서 다시 개입할 생각도 있었다.

광풍 현신을 사용하지는 못할 테지만 버서크라면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시간만 끌 수 있다면 어떻게든 캬루스를 저지하는 것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혼 군단과 추격 저지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 그들이야 당연히 전멸했다.

“어 ”

내성에서 부활한 덕분에 마법 스크린을 살필 수 있게 된 로칸은 적들의 움직임에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쯤이면 병력을 추스르고 쫓기 시작해야 할 텐데 아직 미동도 없는 것이다.

캬루스가 자신과 같이 죽기라도 했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어떠한 시스템 알림도 없었으니까.

그럼 치명상을 입었나 그럴 수도 있지만 트롤의 재생력과 회복 주문, 회복 포션 등을 사용하면 금세 몸을 추스를 수 있을 텐데

의문스러운 움직임에 로칸도 행동을 정지했다. 그들의 이동 경로를 보고 난 뒤 움직여도 늦지 않으니까.

인간들이 점령한 지역은 단편적이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이 운용되고 있으니 그것을 타고 이동하면 무조건 적들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 또한 유저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

그렇게 제자리에 머무르기를 한참. 캬루스를 비롯한 검은용군단의 병력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방향은 비슷했지만 인간의 군대를 쫓는 것도 아니었다. 침공해 온 방향 그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 되면 보는 사람이 혼란스러울 정도.

로칸조차 무슨 생각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영지 관리 창에 불이 났다.

[리로토고 영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하스터쿼 영지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하사니가 영지가 공격…….]

검은용군단의 일제 진격!

캬루스와 검은용군단이 정예의 난입으로 후방이 시끄러워진 틈을 타 검은용군단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예상된 바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도 그 공세가 매서웠다.

하나하나 탈환전을 벌이는 것이 아닌 동시다발적인 공격!

그쪽에서 상당한 고수들이 있던 것인지 그래도 제법 수비를 배치시켜 두었던 거점들이 순식간에 넘어갔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다음 선상의 거점들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진퇴양난이로군.”

이래서야 마냥 병력을 뒤로 물릴 수만도 없다.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빼앗았던 거점들이 모조리 다시 빼앗길 테니까.

하지만 다시 병력을 물려 방어선을 구축했다가 캬루스와 게릴라 부대가 다시 덤벼든다면

아찔한 상상 속에서 로칸이 통신구를 집어 들었다.

각자 나름대로의 대응 중일 황금사자 진영의 사령관들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

적들의 공세가 격하다 한들 무작정, 무한정으로 밀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유저들이야 사정이 좀 낫지만 NPC들은 피로도의 영향을 꽤 크게 받았고 보급과 물리적인 거리 등을 생각할 때 하루에 이동하고, 점령할 수 있는 거점의 수는 제한적이었다.

로칸은 그 점을 이용했다.

최전선의 거점 몇 개를 버리는 대신 캬루스와 검은용군단 게릴라 부대의 이동을 끝까지 확인했다.

그들이 처음 치고 나왔던 거점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동속도를 늦추도록 지시했던 병력을 모두 되돌렸다.

목적지는 바로 놈들이 사라진 그곳이었다.

“돌아갔군.”

만약 그곳에서 캬루스가 기다리고 있다면 심각한 타격을 입거나 최악의 경우 전멸까지도 생각해야 했을지 모르지만 로칸이 다시 앤트맨 작전을 펼친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거점을 차지할 수 있었다.

“수비 시설 설치.”

그 후 로칸은 그곳을 기점으로 방어선을 구축했다.

병력의 분산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적들이 공격해 올 수 있는 루트가 최소화되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그 사실을 다른 연합군에게도 알리자 그들 역시 라인을 맞추어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미 각 종족의 증원군이 후방에서 올라오고 있었고, 이대로 후퇴만 계속한다면 끝도 없이 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버틸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수비 시설을 확충하고, 추가 병력을 징집했다.

각 종족의 특성을 살린 퀘스트도 발동시켜 게릴라전으로 적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방어를 단단히 했다.

진짜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정면 승부는 피해! 무조건 치고 빠진다!”

“막아라! 저놈들 도망치지 못하게 전투 상태 유지시켜! 그럼 무조건 잡는다!”

전쟁은 치열했다.

황금사자 진영이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이제는 검은용군단이 마구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전쟁이 과열되면서 퀘스트 보상은 더 커졌고, 그동안 눈치를 보고 숨죽이던 유저들과 상위 길드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의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수비 측에서도 수비 라인을 사수하기 위해 방어 시설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기에 거점이 무너지는 일은 잘 발생하지 않았지만 대신 국지전이 무수히 일어났다.

전쟁을 치르면서 빠르게 성장한 유저들을 양 진영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유저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로칸이었다.

“휠 윈드!”

아무리 레벨이 올랐다 한들 마스터 레벨도 찍지 못한 유저들 사이에서 로칸은 재앙 그 자체였다.

광풍 현신을 발동하고 휠 윈드를 돌면 수십 명의 유저가 한 번에 갈려 나갔고 붉은 유성이나 리프 어택으로 적진에 뚝 떨어져 돌기라도 하면 수백 킬을 한 번에 올리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로칸 떴다. 튀어!”

“저 새끼는 뭐 주워 먹겠다고 여길 또 와 미치겠네!”

“나 쟤한테만 벌써 열 번 죽었어!”

레벨이 오르고, 상대 진영의 마스터 레벨 NPC를 상대하며 자신감이 오른 검은용군단의 유저들이 처음에는 로칸을 공략하러 들었지만 전투가 거듭되며 느낀 것은 깊은 절망감뿐이었다.

적어도 마스터 레벨 유저가 나오기 전까지는 언터처블.

검은용군단 유저들 사이에서 로칸은 레이드 몬스터 그 이상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난감하군.”

그러나 정작 로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자신이 어떻게든 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전력은 검은용군단에게 밀리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면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캬루스를 비롯해 지금 검은용군단에서 날뛰고 있는 최상위 하이 마스터들에게 대적할 힘이 생길 테지만 그것은 너무나 요원한 일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오픈된 마스터 레벨 사냥터는 난이도만 높을 뿐, 경험치 획득량이 형편없었고 그것을 긁어모아 하이 마스터에 오를 때쯤에는 아마도 황금사자 진영이 초토화된 다음일 터였다.

그렇게 되면 애써 모은 공훈도와 영지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겠지.

그나마 계속해서 수도에서 넘어오는 증원군과 마스터 레벨 이상의 고위 NPC들 덕분에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지만 황금사자 진영의 수비 라인은 언제 밀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이미 몇 번이나 밀리기도 했고.”

지금 버티는 것도 몇 번이나 수비 라인을 뒤로 물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덧 전선은 전쟁 초기 차지했던 후쉬칸성까지 밀린 상태였고 그나마도 틈틈이 290레벨대 사냥터를 돌며 영혼을 공수해 온 로칸의 영혼 군단 덕분에 함락당할 뻔한 것을 막은 적이 있었다.

어느 시점 이후로 캬루스가 다시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이대로면 언제 거점이 뚫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드워프, 노움, 하프엘프들도 마찬가지.

그들 역시 분투하고 있지만 국지적인 승리를 몇 번 가져왔을 뿐, 좀처럼 전선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황제가 당신을 호출했습니다. 1시간 이내에 황궁으로 이동하십시오.]

“1시간 ”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알림이 나타났다. 황제의 호출. 그것은 몇 번이나 받은 적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심상치 않았다.

1시간 이내에 황궁으로 이동하라니 보통 급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조금 전 국지전이 끝난 상태. 당장의 전투는 없을 것이라 판단한 로칸은 망설이지 않았다. 즉시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황제가 있는 수도로, 황궁으로 이동했다.

“로칸 후작, 어서 오게!”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황제와의 만남은 도착 즉시 주선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황제의 표정이 심각했다. 무척이나 긴장되어 보였다.

‘대체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한데, 로칸으로서도 이번만큼은 가늠할 수 없었다.

“폐하,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

“크흠, 그것이 말일세…….”

로칸의 물음에 황제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고대 황제가 난동을 부릴 때도 볼 수 없었던 불안한 표정과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쿠데타가 일어났네.”

“……예 ”

이 시기에 쿠데타라니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종족 전체를 말아먹으려고 아니, 대체 어떤 놈이

로칸의 얼굴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답변을 요구하는 얼굴로 쳐다보자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킬라만타 공작, 그가 병사를 일으켰어. 그만은 내 편이라 믿었거늘.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생각했거늘…….”

“킬라만타…….”

쿠데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이름은 후스타페 공작이었다.

파벌을 규합하고, 자신의 세를 불리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라면 혼란한 틈을 타 황제의 자리를 노릴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친황제파로 불리던 킬라만타 공작이 주범이었다.

후스타페 공작도 함께 엮여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은 앙숙이니까.

당장 루베론 백작을 스파이로 심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로칸은 곧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루베론에게 들었던 이야기. 바로 킬라만타 공작이 ‘타락 결탁자’라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타락의 힘을 이용해 세상을 정복하려는 자.

그들이라면 이 시기에 이빨을 드러내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타락의 힘은 파괴와 공포, 절망에서 비롯되니까.’

타락의 힘을 만드는 원천은 파괴와 공포, 절망에서 비롯되는 마이너스 에너지였다.

그 사실은 로칸도 전생의 기억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전쟁.

지금과 같은 종족 전쟁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마이너스 에너지가 급속도로 축적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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