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쿠데타 (2)
“킬라만타 공작령을 중심으로 타락한 몬스터들이 집결하고 있네. 주변의 영지를 점령하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어. 일단 그쪽 영지들과 이어지는 텔레포트 마법진은 봉쇄해 두었지만 그의 영지가 수도와 멀지 않으니 멀지 않은 시점에 이곳까지 들이닥칠 걸세. 내가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군.”
황제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들렸다.
대귀족들에게도 일부 권력을 나누어 주었지만 한때 중앙 집권형 정치를 펼치며 제국을 호령하던 카이스만의 모습은 이미 찾기 어려웠다.
가장 믿었던 킬라만타 공작이 배신을 했으니 후스타페 공작도 믿기 어려웠다.
더구나 전쟁을 위해 주요 병력들을 모두 최전방으로 올려 보낸 까닭에 지금, 수도의 방어 병력은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이들만으로 점점 세를 불리고 있는 킬라만타 공작의 사병들과 타락한 몬스터들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어려웠다.
그렇다고 다른 귀족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자니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확신할 수 없었고. 때문에 카이스만은 로칸을 호출했다.
유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더 로드의 시스템상 따지고 보면 그 역시 100% 신뢰할 만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기댈 곳은 그밖에 없었다.
“저들을 막아 내고 킬라만타 공작을 처리해 줄 수 있겠나 ”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황제의 푸념과 같은 부탁을 들은 로칸은 몸을 숙여 예를 다했다. 그의 말을 받들었다.
[쿠데타 저지][퀘스트]
타락의 힘을 이용해 쿠데타를 일으킨 킬라만타 공작의 야욕을 저지하라.
-성공 조건 : 킬라만타 공작의 사망
-실패 조건 : 수도의 함락, 황제의 사망
-성공 보상 : 카이스만의 절대적 신뢰, 제한 없음
이것은 일종의 거래였다. 황제를 구원하고 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성공 보상에서 나타나듯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터였다.
황궁 무고를 털든, 다른 무엇을 요구하든 황제는 들어줄 수밖에 없을 터였고 황제까지는 아니지만 공작의 자리까지는 노려 볼 수 있었다.
킬라만타 공작이 죽는다면 공작의 자리가 하나 비게 되는 셈이니까.
그 자리에 오를 만한 이가 후작 중에 누가 있을까
파벌을 생각하더라도 로칸밖에 자격을 갖춘 이는 없었다.
이런 계산을 끝마친 로칸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당장 수도의 방어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핵심 병력을 전방으로 올렸다 하지만 황제에게는 근위대가 있으니까.
최소 마스터 혹은 하이 마스터로 구성된 그들이라면 만약의 상황에도 황제의 목숨 정도는 지켜 줄 수 있을 터였다.
“타락한 몬스터란 말이지…….”
황궁을 빠져나온 로칸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전방의 병력을 일부 돌려야 할까
아니다. 타락한 몬스터의 숫자가 적지 않을 것임을 감안 할 때 그것을 적이 알아차린다면 대번에 전선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럼 유저들을 동원하면 어떨까
국지전에서는 패하겠지만 이동이 자유로운 유저들이라면 적들이 들이닥치더라도 돌려보내 수성전에는 참가시킬 수 있다.
타락한 몬스터들이라면 경험치도 좋고, 드롭하는 아이템도 일반의 것보다 좋으니 꽤 매력적인 먹잇감이 되겠지.
‘하지만 영향은 크지 않아.’
때문에 필수적이 되기야 하겠지만 반대의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유저들이 킬라만타 공작 쪽에 붙는다면
만약 쿠데타가 실패할 경우 함께 반역자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테지만 성공만 한다면 개국 공신이 되는 것이다.
순위 반전을 노리고 싶은 상위 길드라면 혹할 수도 있는 유혹이었다.
그러니 유저들만으로 부대를 꾸리는 것은 부족함이 있었다.
“일단…… 퀘스트 발동.”
로칸은 일단 유저들을 대상으로 퀘스트를 발동시켰다. [계엄군]이라는 이름으로,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한 퀘스트를 연 것이다.
이를 통해 쿠데타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마냥 늦추고만 있다가는 역으로 킬라만타 공작이 먼저 퀘스트를 발동시켜 상위 유저와 길드들을 빼 갈 수도 있었으니까.
당연히 작위를 보상으로 내걸었고 경험치 보너스, 드롭률 보너스와 다수의 타락한 몬스터를 사냥하면 특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정했다.
이만하면 꽤나 대단한 보상이었지만 로칸은 안심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입장이라면 남작, 자작 따위가 아니라 백작 이상의 작위까지 걸 테니까.
하지만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있으니 이제 선택은 유저들의 몫이었다.
“타락한 몬스터라면…… 일단은 그곳을 찾아야겠군.”
다음으로 로칸은 타이무라에 있는 ‘조사단’을 찾았다.
타락한 힘을 추적하는 그들이라면 타락한 몬스터들 사병화하여 부리는 킬라만타 공작의 야욕에 함께 저항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으음, 그게 말이죠…….”
그러나 그들에게서 얻은 답변은 다소 의외였다.
“그래서, 관망하시겠다 ”
로칸이 원한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조사단의 힘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을 빌어 드워프, 노움, 하프엘프의 잔여 병력을 움직여 보려는 것이었을 뿐.
그러나 그 요청은 매정하게 거절당했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지만 결국 내용을 종합해 보면 상황을 좀 더 관망하겠다는 것이다.
타락한 몬스터의 존재는 위협적이지만 전쟁으로 병력 소모가 큰 지금, 다른 종족을 위해 자신의 종족을 희생시킬 여력과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몇 번을 요청하고 재확인해도 동일하게 들려오는 답변에 로칸이 냉기를 풀풀 풍기며 돌아섰다.
조사단 소속의 병력 일부를 지원해 주겠다고는 하나 그 정도로는 턱도 없는 일이다.
지원하는 조사단원이라고 해 봤자 마스터 레벨 이하의 어중간한 레벨이 고작인데다 수가 많지도 않았으니까.
‘그래. 이놈들도 똑같겠지.’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로칸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
과연 타락 결탁자가 인간 중에만 있겠는가 그들의 내부에도 타락 결탁자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 터였다.
그들의 반대와 전쟁이라는 상황이 더해지니 파병이 어려운 것도 당연하겠지.
“미치겠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수도까지 이어지는 길목의 병사를 모두 끌어모은다 해도 적을 상대하기에는 턱도 없는 수준이었고, 그가 혼자 날뛴다 해도 적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고작일 터였다.
그렇다면 적당히 게릴라전을 펼치다가 수도에서 농성이라도 벌여야 할까
유저들이 얼마나 모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요격은 무리였다.
“정화의 보주가 남아 있었으면…….”
고대 황제를 되돌려 놓으면서 정화의 보주가 망가진 게 한이었다. 정화의 보주가 있었으면 타락한 몬스터들의 정신을 되돌려 놓으면서 서로가 난투를 벌이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가만 ”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잘만하면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용병 고용.”
그 즉시 로칸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각 도시를 돌며 NPC 용병들을 고용했다.
단기 고용임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전쟁 거점을 먹으며 올린 세금 수입이 어마어마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거금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각 도시를 돌며 한계치까지 용병을 고용한 로칸은 그들 모두를 한 지점으로 불러 모았다.
“젠장, 제대로 돈지랄이군.”
전생이었다면 그냥 맨몸으로 부딪쳤을 터였다.
고작 NPC 용병 따위 고용할 돈이 있다면 몇 번쯤 죽어 줄 각오를 하고 몇 번이든 들이받아 적을 갈아 버렸겠지. 아니면 차라리 암살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조건이 다르고 여유가 달랐다.
지금은 굳이 자신을 갈아 넣으면서 적을 넘어서기보다 성공 확률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결국에는 자신이 날뛰어야겠지만.
-로칸 : 1선 대기.
방법을 정한 로칸은 약간의 꼼수를 썼다. 유저들에게 내리는 퀘스트를 조작해 소규모 게릴라전을 펼치도록 만든 것이다.
그것으로 타격을 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 당연했다. 타락 웨이브 때보다도 대단한 전력이 그들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맨땅에 헤딩을 하듯 들이받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
양치기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놈들의 주 전력을 이끌기 위해서.
‘왔군.’
그리고 마침내, 로칸이 미리 준비해 둔 필드로 그들이 들어왔다.
일확천금의 로또 같은 기회를 택한 유저들과 타락한 몬스터들. 그들의 조합이 자신만만하게 전면전을 치를 준비를 시작했다.
‘야왕이랑 수라, 다크나이트까지 하…… 이 새끼들 봐라 ’
이쪽이 1선에 유저들을 배치했듯 반란군 역시 1선에는 유저들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그 면면을 살피는 로칸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야왕 길드, 수라 길드, 다크나이트 길드까지.
그 밖에 여러 길드가 뒤섞이긴 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전생에 로칸의 등에 앞장서서 칼을 꽂았던 이들이니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던가. 전생의 악연이 이렇게 이어질 것이라고는 로칸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 일단 좀 맞자.’
그래서 일단 때리고 보기로 했다.
전생의 일이니 지금은 상관없지 않느냐고 그래서 그동안 놔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제는 적으로 만났으니 불편한 감정을 감출 이유가 없었다.
“가자! 우리도 백작, 후작, 공작 한번 달아 보자!”
“우와아아아아!”
거리가 가까워지자 놈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게릴라전을 펼치기 위해 숨어들었던 소규모 전력을 몇 번이나 잡아먹은 기억이 그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동시에 전방으로 병력을 집결시키느라 이쪽이 내세운 병력이 약할 것이라는 오해가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반란군 유저와 타락한 몬스터들이 함께 달려들었다.
크륵
“엇 이게 뭐야!”
“적이다! 매복이야!”
그러나 그들은 수비군의 1선과 부딪히기도 전에 제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 황망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저도, 타락한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어라!”
“사, 살려 줘!”
“젠장. 몽땅 쓸어버려!”
아예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되듯 조합 스킬을 아끼지 않고 퍼부어 댔고, 후방에서는 그 사실을 아직 인식하지 못했는지 놈들을 밀치고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그리고 앞서 달려온 자들과 똑같은 반응을 일으켰다.
“걸렸군!”
이것이 바로 로칸이 대량의 NPC 용병 마법사를 고용해 만든 트랩이었다.
적에게 환상을 심어 주고 혼란 상태에 빠뜨리는 정신 계열의 마법진이 그들의 발밑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피의 제물’ 효과가 발동하며 그들이 흘리는 피가 마법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로칸 : 1선 공격 개시.
“공격 개시!”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원거리 공격만 날려!”
미리 언질을 받은 수비군은 놈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원거리 공격을 퍼부으며 신나게 킬을 올리기 시작했다.
“폭격!”
그것은 로칸도 마찬가지. 사령관이라고 해서 근엄한 척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부정적인 정신 계열 효과가 무시됩니다.]
“휠 윈드!”
폭격으로 병력을 갉아먹는 것은 물론, 아예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힘을 쓰기 시작했다.
강력한 정신 마법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효과를 보였지만 로칸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휠 윈드와 말살의 사슬, 폭격이 번갈아 펼쳐지며 적들을 쓰러뜨리자 그들의 시체를 밟고 또 다른 적들이 밀려왔다.
아직 적의 지휘관이 이쪽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아니, 대충은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아군이 아군을 공격한다면 배신이나 정신 계열 공격에 당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한복판에 로칸이 있는 탓에 지역 전체에 해당 마법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개별적으로 혼란에 빠진 것이라 생각하고 더 많은 병력을, 더 빠르게 투입 시켰다. 캐스팅 시간을 주지 않고 머릿수로 밀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 판단이 그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광풍 현신! 휠 윈드!”
로칸이 제대로 킬 수를 쌓을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로칸의 학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