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고대 도시 (2) (224/500)

 # 224

고대 도시 (2)

“와우.”

한마디 감탄사 이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모래 속 깊은 곳에 파묻힌 고대 도시는 셀 수 없이 오랜 세월을 버티고도 여전히 건재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히 모래에 매몰된 게 아니라 반원의 형태로 모래를 밀어 내고 있는 어떤 힘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멀쩡하군.”

로칸이 그 반원의 안으로 뛰어내렸지만 튕겨 나가거나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이 바리어가 막는 것이 생명체였다면 샌드 웜도 들어가지 못했거나 이미 샌드 웜에 의해 파괴되었을 테니까.

그렇게 고대 도시의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로칸은 아직도 새것처럼 말끔한 고대 도시의 건물들을 손으로 쓸었다.

그저 환상이나 겉만 멀쩡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무언가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마법에 의존했다면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효과가 지속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니 아마 노움 특유의 섬세한 손재주가 들어간 것이겠지.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건물들 같지만 하나하나가 고도의 기계공학 장치이자 건축물일 것이라 예상하며 손을 떼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뭔가를 건드리면 곤란하지.’

샌드 웜을 사냥하며 레벨 업을 해 버린 탓에 시간 역행을 사용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직 광풍 현신의 후유증 페널티가 남아 있었고, 그것이 끝나기 전까지 고대 도시를 구경하는 대신 안전하게 그 자리에 자리를 깔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흐응, 부끄럼쟁이들이군.”

그리고 후유증이 끝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로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아무도 없는 고대의 유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고대인의 영혼.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이 텅 빈 것처럼 보이는 도시에는 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타이틀 덕분인가 ”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도시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또 문을 두드려도 봤지만 고대인, 고대 노움의 영혼들은 몰래 숨어서 그를 지켜볼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공격받지 않는 건 좋은 일이긴 하다만…….’

이상한 일이었다.

전생에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고대인들의 영혼은 기본적으로 후손, 즉 노움이 아닌 이들을 배척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으니까.

황금사자 진영이니 하는 연합이 만들어진 것도 고대 도시가 몰락한 이후의 일이라 드워프든 인간이든 하프엘프든 모두 경계하고 적대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들은 것이다.

로칸은 이것이 타이틀 효과 때문이라고 보았다.

노움의 친구. 불가능은 없다.

평판과 친밀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두 타이틀 효과가 기본적으로 ‘노움 종족’인 고대인의 영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로칸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좀 더 그들의 호감도를 높이고 경계를 약화시킬 스킬을 사용했다.

“노움 5형제!”

노움 기술자의 인형극. 5기나 되는 마스터 레벨의 노움 기계인형을 소환하는 아이템을 사용한 것이다.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 아니, 그럴 리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고대인쯤 되면 레벨도 상당하니 경험치 벌이가 짭짤하겠지만 자신은 이곳에서 경험치보다 더 큰 것을 얻어야 하는 이방인이고, 이곳은 그들의 홈그라운드이니까. 그들을 자극하기보다는 회유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었다.

‘잘못하면 답도 없이 갇혀 버릴 수도 있고.’

더구나 고대 도시는 평범한 도시가 아니다. 수많은 기계 장치의 집합이자 그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기계공학 장치였다.

잘못하면 길을 잃거나 함정에 빠져 갇힐 수도 있고, 입구가 닫혀 영영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로칸이 택한 것은 ‘호객 행위’였다.

찾아가도 만나 주지 않는다면 고대인의 영혼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최신 기계공학 장치들을 내놓으며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앞으로 걸어 나오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움족 기계공학 장치, 노움식 로켓 헬멧이 완성되었습니다.]

[노움족 기계공학 장치, 깐죽거리는 인형이 완성되었습니다.]

노움 5형제를 호위처럼 옆에 세운 로칸은 즉시 좌판을 깔고 기계공학 장치들을 제작했다.

평범한 기계공학 스킬로는 반응하지 않겠지만 ‘노움족 기계공학’을 익힌 그라면 다르지 않을까

더구나 틈틈이 숙련도를 올려 둔 덕에 실력도 꽤 괜찮은 편이라 금방 신기한 물건들이 뚝딱 만들어졌다.

이때를 위해 제작 재료는 넉넉히 준비해 둔 상태였다.

“저기…… 아저씨, 저건 뭐예요 ”

그리고 마침내, 걸려들었다.

역시 가장 먼저 마음의 빗장을 푼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라고는 해도 존재해 온 세월로 따지자면 선조뻘이겠지만, 그때의 순수함을 간직한 어린 영혼이 로칸에게 다가와 이것저것을 질문했다. 로칸이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히 답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미소를 팔자 어른 형태의 영혼들도 슬금슬금 그에게 다가왔다.

“이거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확인하고 싶으시면 빨리 오셔야 할 겁니다.”

로칸은 그들을 살펴보다가 아직도 망설이는 이들을 위해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노움족에서도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노움 기술자의 인형극’으로 만들어진 노움 마스터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애가 닳는 것이 당연했다.

“크흠, 실례하겠네.”

그때까지 망설이고 거리를 두던 고대인의 영혼들이 후다다닥 몰려와 노움 5형제를 비롯해 로칸이 만들어 낸 최신의 노움족 기계공학 장치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오호, 여길 이렇게 ”

“이건 무슨 기술이지 ”

“허어, 이런 멍청한! 이걸 이딴 식으로 만들다니…….”

“여기만 개량하면 아주 멋진 놈이 나오겠는데 ”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현재의 기술력이 더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그렇듯 ‘고대’의 타이틀이 붙은 아이템의 능력치는 일반의 그것들에 비해 압도적이니까.

더 로드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신기술이 생소할 뿐, 고대인의 영혼들은 뜯어 보지 않고서도 즉시 어떤 기술이 사용되었는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단번에 알아맞혔다.

노움 5형제가 조금 난해하긴 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영혼체라는 것을 적극 이용했다.

쑤욱.

아예 노움 5형제의 몸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어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방치하며 알고 있는 레시피 상의 모든 노움족 기계공학 장치를 만들어 내자 고대인의 영혼들이 그에게 친밀감을 드러냈다.

당장 바깥의 상황을, 현재의 기술 발전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이 로칸을 통해서뿐이니 살갑게 구는 것이다.

당연히 로칸은 귀찮음을 감수하고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며 친밀도를 쌓았다.

[고대 도시의 주민 평판이 우호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우호적인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크흠, 혹시 제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보수라든지, 사냥이라든지요.”

그때서야 로칸이 본색을 드러냈다. 영혼체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퀘스트로 받아 낸 것이다.

[기름칠 하기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먼지 제거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거미줄 제거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대부분은 아주 잡다한 퀘스트였다.

전생이라면 모를까 현생에서는 굳이 진행할 이유가 없어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자잘한 퀘스트들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했다.

얼핏 보기에는 하인처럼 부려지는 노가다 퀘스트 같지만 적지 않은 소득이 있는 것이다.

‘또 이 문양이군.’

‘이제 대충 작동 원리를 알겠어.’

‘그런 역사가 있단 말이지 ’

퀘스트를 수행하며 보고, 만지고, 고대인의 영혼들에게 들은 조언을 바탕으로 고대 도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기계공학이 0.1% 상승했습니다.]

더불어 고도의 기계공학 장치들을 손질하고 수리하면서 기계공학 스킬의 숙련도도 제법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포신 청소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이물질 처리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그렇게 퀘스트를 쌓아 가자 좀 더 거창한 것들도 나타났다. 바로 포탑, 포신에 접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대한 도시처럼 보이지만, 고대 도시의 정체는 사실 도시도, 살기 좋은 장인들의 마을 따위도 아니었다.

‘전투병기, 비공정.’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함선이다. 그것도 바다가 아닌 하늘을 나는!

이른 바 전투형 비공정 중에서도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이곳, 고대 도시의 진정한 정체였다.

그렇기에 외부로 발사할 수 있는 거대한 포신이 수십 개나 박혀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모랫바닥에 묻힌 포신이 다시 수백 개 이상 될 테지만 로칸은 모르는 척 그것을 손질하고 포신 안에 둥지를 튼 몬스터들을 처리해 가며 고대인의 영혼들에게 신뢰를 쌓아 갔다.

“자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하겠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퀘스트를 얻을 수 있었다.

[고대 도시의 재건][퀘스트]

고대 도시의 심장부에 도달하여 재가동을 시켜라. 노움과 고대인의 영혼들이 은인에게 큰 선물을 할 것이다.

-성공 조건 : 고대 도시의 재가동

-성공 보상 : 타이틀 ‘노움의 은인’ 획득, 노움의 보물, 고대인의 선물

“해 보겠습니다.”

로칸은 고민하는 척하다가 바로 수락했다.

자잘한 심부름 퀘스트들을 수행하며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만져 봤지만 도무지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의심이 가는 곳은 하나 있었지만 그곳에는 아직 접근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 길이 열린 것이다.

“이쪽으로 오게.”

고대인의 영혼이 먼저 로칸을 인도했다. 평소에는 무언가에 막힌 듯 접근할 수 없었던 곳으로.

“이제 어떻게…… ”

“어떻게 하긴. 이미 답은 알려 주었네. 자네라면 열 수 있을 거야. ‘적격자’가 스스로 열지 않으면 우리가 돕지 못하도록 되어있으니 이해해 주게.”

그러나 안으로 들여보내 준 것은 아니었다. ‘문’의 앞까지 데려다주었을 뿐, 문을 여는 것은 온전히 로칸의 몫이었다.

적격자가 나타나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고대인들이 직접적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맹약 같은 것에 묶여 있는 듯싶었다.

“흐음…….”

알 수 없는 고대의 글자와 문양들 앞에 로칸이 침음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라…….’

눈앞에 놓인 것들을 토대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어떤 식으로 진행 되는지는 알고 있었으니 기억을 짜 맞추기만 하면 되었다.

“이건가 ”

로칸은 기억을 되짚었다. 그들을 도우며 보았던 고대어와 고대의 문양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을 하나로 엮어 조합했다.

눈앞의 퍼즐을 맞춰 하나의 문양을 완성하고, 글자들의 순서를 바꾸어 문장을 만들었다.

물론 뜻은 모른다. 그러나 알 것도 같았다.

‘영광의 빛이 어쩌고 하는 거 같은데…….’

드르르륵. 덜컹!

그리고 그때,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맞물린 톱니바퀴들이 저마다 역할을 하며 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작은 공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도 사방이 막혀 있어 뭘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엘리베이터처럼 하강하며 내부로 들어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행운을 비네.”

지이이잉.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문이 닫히고 아래로 하강하는 느낌이 들었다. 고대 도시의, 비공정의 내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가 이곳에 있다.’

우우우웅.

로칸의 가슴이 떨려 왔다. 정확히는 사자왕의 봉인된 흉갑에 박힌 증표가 또 다른 사자왕의 무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띠잉! 드르륵.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고대 도시의 내부로 첫 걸음을 옮겼다.

애달픈 그 울음소리를 따라서, 로칸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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