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고대 도시 (3)
고대 도시의 내부는 마치 SF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고대 마도 공학의 정수. 그 총아를 한눈에 보고 있는 것이니까.
동력원을 잃으면서 상당수의 기능이 정지한 상태였기에 화려함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다.
만약 이것이 다시 날아오른다면 모든 자리에 선원을 배치하고 움직인다면 아마 장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못 본 게 아쉽군.”
하지만 전생에도 고대 도시, 비공정의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역시 동력원을 다시 만드는 과정까지만 보았다.
시간이 지났다면 다시 날아오를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 이르게, 그리고 거창하게 알려지는 바람에 검은용군단의 방해를 무수히 받은 것이 컸다.
파괴된 부위를 수리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원과 노동력을 투자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그 꼴을 보기는 아마 어려울 터였다.
퀘스트까지 받았지만 로칸은 고대 도시를 재건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누구 좋으라고 ’
같은 황금사자 진영이긴 하지만 결국은 다른 종족이다.
검은용군단이라는 공동의 적만 아니라면 굳이 협력할 필요도 없고, 적대해도 이상하지 않은 남남인데 뭐 하러 노움의 최종 병기 부활에 앞장서겠는가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도 마지막 동력원인 사자왕의 봉인 된 무구를 회수하기 위함인데.
“어디 보자…….”
로칸은 일단 전체적인 지형부터 살폈다.
혹시나 싶어 마법 지도를 열어 보기도 했지만 ‘갑판’에 해당할 고대 도시의 외부에서도 작동하지 않던 것이 여기서 갱신될 리 없었다.
결국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다행히 로칸에게는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었다.
“저건가 ”
광장처럼 보이는 커다란 공터의 중앙에는 스크린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전원이 공급되지 않는지 깜박거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아직 사용이 중지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아래에 도달해 패널을 조작하자 원하던 그림이 나타났다.
“빙고!”
지도. 고대 도시 내부의 지도가 그곳에 펼쳐졌다.
“스크린샷 저장.”
로칸은 즉시 시야에 보이는 화면을 스크린샷으로 남겼다. 이렇게 하면 설사 도중에 전원 공급이 끊긴다 해도 얼마든지 다시 불러와 확인할 수 있다.
“일단은…… 제어부로 가야겠지 ”
고대 도시 내부의 길은 복잡했지만 시간은 많았다.
엇갈리면 되돌아가면 되고, 일단 방향은 특정할 수 있으니 결국은 도달할 수 있지 않겠나 당장 후발 주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마음 편히 먹기로 했다.
우웅! 우웅!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서 다른 사자왕의 무구들을 대표해 공명을 일으키는 사자왕의 증표를 믿고 움직이기만 해도 어떻게든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으으으…… 젠장!”
그러나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자왕의 무구끼리 일으키는 공명은 그를 제대로 인도했지만 구역을 지날 때마다,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조작해야 하는 기관 장치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나름대로 노움족 기계공학을 열심히 익혔다고 생각했지만 기관을 작동시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트랩 던전을 돌고 있는 것 같은 피로감을 호소하며 조작에 매진해 봤지만 아무리 빨라도 하나의 문을 여는 데 최소 20분은 소요하는 것 같았다.
“에이 씨, 안 해!”
결국, 로칸이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대로 고대 도시를, 사자왕의 무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의 방식대로 접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저기겠지 ”
고개를 들자 반구형의 마법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제어실이 보였다.
아무래도 고대 도시 전체를 들여다보고 신경 써야 하는 위치이다 보니 모두를 내려다볼 수 있게 배치한 모양인데 로칸은 그 점에 주목했다.
“폭격!”
그리고 대뜸 공격을 날렸다.
무려 제어부씩이나 되는 만큼 방어 또한 단단하겠지만 때리고 또 때리다 보면 언젠가 부서지지 않겠나
손도끼를 같은 곳으로 던져 대며 강도를 가늠해 본 로칸은 아예 봉인된 광풍이 사슬 배틀 액스까지 붕붕 돌려 집어 던졌다.
“스로잉!”
일반 스킬일 뿐이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어지간한 조합 스킬에 버금갔다.
게다가 폭격이면 몰라도 스로잉 정도라면 얼마든지 반복해서 던질 수 있었다.
“스로잉! 말살의 사슬! 스로잉! 폭격!”
튕기듯 힘을 주어 무기를 회수할 때마다, 쿨 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던져 대며 제어부를 두들겼다.
광풍 현신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보안 요원( )들을 고려해 아껴 두며 착실히, 때린 곳을 반복해서 때려가며 내구력을 하락시켰다.
쩌적 쩌저저적!
그러기를 수십 분, 마침내 결실이 드러났다.
실금처럼 시작된 균열이 반원의 전반에 걸쳐 굵게 나타나며 마법 강화유리가 파괴된 것이다.
“카이!”
뀻!
그것을 확인한 로칸은 즉시 카이를 소환했다.
점프로는 닿을 수 없는 위치이기에 녀석의 등에 올라 유유히 날아올랐다.
우우우우우웅!
제어부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공명이 더욱 격해졌다.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하듯 격한 울음을 터트렸다.
“아……!”
사실 제어부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로칸이었다.
정말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가 동력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제어부가 아닌 동력부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는 게 합당한 판단이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억지를 써 가며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끼리의 공명. 그것을 믿은 대가는 실로 달콤했다.
[사자왕의 봉인된 바지][세트]
사자왕 가오칸이 생전에 사용하던 하갑. 현재는 그 힘의 대부분이 봉인되어 있다.
-방어력 : 2,500
-내구도 : 10,000 / 10,000
-힘 + 100
-민첩 + 100
-체력 + 100
-[사자의 강인함] 효과로 모든 공격력 50% 증가
“헐.”
미쳤다. 이건 정말이지 미쳤다.
모든 공격력 50% 증가라니
가뜩이나 공격력이라면 하이 마스터조차 찍어 누르는 것이 로칸이지 않던가.
거기에 50%나 증폭된 대미지라면 크고 좋다는 것을 넘어 실로 거대한 것이었다.
[사자왕의 무구를 찾아서][퀘스트]
사자왕 가오칸의 봉인된 무구를 모아 사자왕의 힘을 계승하라.
성공 조건 :
-사자왕의 봉인된 투구 획득 (완료)
-사자왕의 봉인된 흉갑 (완료)
-사자왕의 봉인된 바지 (완료)
-사자왕의 봉인된 견갑 (완료)
-사자왕의 봉인된 부츠 0/1
보상 : 사자왕 세트의 봉인 해제
네 개 부위나 됨에도 세트 효과가 따로 발동되지 않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것만으로도 대체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옵션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로칸은 즉시 착용하고 있던 실버 라이온 세트를 벗어 버리고 사자왕의 봉인된 바지를 착용했다.
[동력원을 상실했습니다.]
[곧 모든 기능이 정지됩니다.]
[최소 기능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동력원을 추가하십시오.]
“동력원이라…….”
그러나 그것을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임시 동력원마저 사라지면서 최소 기능을 유지할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괜찮으려나.”
물론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걸로도 족했다. 이대로 디그독을 소환해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로칸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칸은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보기로 했다.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를 대신해 이곳으로 오면서 얻은 레어, 유니크 아이템들을 와르르 쏟아부었다.
한 번에 여러 개의 아이템을 쏟아 넣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가 맡고 있던 자리를 감당하려면 고작 유니크 아이템 한두 개 정도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새로운 동력원 확인.]
[멀티 타기팅.]
[에너지 추출을 시작합니다.]
[에너지 발생량을 확인합니다. 에너지 미달. 모든 유지 기능이 최소화 상태로 유지됩니다.]
“휘유.”
다행이었다. 로칸의 예상이 들어맞았는지 고대 도시의 최소 기능은 유지되었다.
이만한 아이템들을 쏟아붓고도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 하나가 감당하던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게 되었다.
다만 당장 광장의 스크린이 꺼지고, 모든 기능들이 최소화되어 로칸이 처음 고대 도시에 들어왔을 때보다도 열악한 환경으로 변했다.
“본전은 뽑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로칸이 이토록 무리를 해 가면서 고대 도시를 유지시킨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스스로가 편하기 위해서.
아직 이 고대 도시에 볼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무기고부터.”
고대 도시의 구역 구분은 단지 조종과 주거로만 이루어져있지 않았다.
그들도 생명체인 이상 식사도 해야 했고, 여차하면 비공정으로 침입한 침입자들과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하기도 했다.
그러니 내부 인원을 무장시킬 장비를 저장해 두는 것이 필수였다.
로칸이 찾는 것도 바로 이 무기고다.
이번에는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끼리의 공명 같은 것도 없으니 직접 발로 뛰어 찾아야겠지만 그것에 대한 대비도 나름대로 해 놓은 상태였다.
“뼈 부수기!”
콰앙!
막으면 부순다. 더 이상 고대 도시에 미련이 없는 로칸이기에 이 간단한 명제가 성립할 수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동력의 부족으로 최소한의 유지만 가능한 상황이 아니던가 수리나 침입자를 가두는 것 따위는 생각 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로칸은 마음껏 날뛰었다. 나중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스크린샷으로 찍어 둔 지도에 나온 위치를 향해 부수고 나아갈 뿐이었다.
“폭격! 참격! 난무!”
로칸이 배틀 액스를 휘두를 때마다 정교하기 짝이 없는 기계공학의 정수들이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작은 기관 하나도 소중한 연구 자료가 될 테지만 로칸은 개의치 않았다.
다만 우스운 것은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파괴 행위에도 기계공학 숙련도가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공학이 0.1% 상승했습니다.]
‘분해’를 통해서 기계공학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도 올릴 수 있을 줄이야 로칸은 더욱 신이 나서 날뛰었다.
말살의 사슬, 휠 윈드, 폭주 전차 등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을 동원해 파괴 행위를 자행했다.
마치 이 또한 기계공학 숙련도 노가다라는 듯, 철저하고 착실하게 마주치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면서 무기고에 도착했다.
“역시 있군.”
그리고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고대 노움족이 사용하던 병기들. 하나같이 ‘고대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강력한 무구들이 그곳에 즐비해 있었다.
사실 이쯤 되면 왜 이것들을 동력원으로 삼지 않았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본래 고대 도시, 즉 비공정을 움직이는 동력원은 장비 아이템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별도의 에너지 발산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아이템에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도록 했을 뿐이지 본래의 동력원은 따로 있었다.
“가만, 시기가 다르지 않나 ”
그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고대 도시가 이곳에 묻힌 시기가 사자왕의 활동 시기보다 이전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가 동력원이 될 수 있지
이상한 일이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군…….”
잠시 묘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던 로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건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아니면 사자왕의 봉인된 무구를 모두 모았을 때 알게 되겠지.
제어부에서 얻은 이 아이템이 사실은 짝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일단 생각을 접었다.
눈앞의 현실에 일단은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많지는 않군.”
무기고가 가득 차 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공정이 이곳에 묻힐 상황이라는 것을 가정하면 전투 상황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로칸은 아쉬운 대로 그것들이라도 수집했다.
노움들에게 판매한다면 엄청난 가격을 부를 수 있을 테고, 이 몇십 자루의 장비만으로도 노움의 공격력은 급증할 테니 전쟁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하나하나 인벤토리에 수거해 가며 안쪽으로 들어가던 로칸이 가장 깊숙한 곳에서 멈추어 섰다.
긴장된 근육, 떨리는 목소리로 황당한 듯 소리를 흘렸다.
“이게 여기 왜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