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9화.세계수 vs 데스 로드 (1) (229/500)

 # 229

세계수 vs 데스 로드 (1)

“미친…….”

“이거 실화냐 ”

언덕을 지나 나타난 풍경에 ‘원정대’ 전원이 말을 잃었다.

‘대군’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엄청난 언데드 병력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최소 수십만.

게다가 개체마다의 경지도 낮지 않았다. 소위 ‘마스터급’으로 분류되는 레벨이 대부분일 정도였다.

현대라면 한 종족은커녕 한 진영, 아니 모든 진영의 강자들을 통틀어도 비비기 어려운 실로 엄청난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상대는 ”

그때 문득 생각이 난 듯,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반대 방향을 향했다.

이만한 전력을 준비했다면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수준일 게 분명하지 않던가

그런 그들의 시야 아득한 곳에 일단의 무리가 걸렸다.

“저건…….”

“세계수 ”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나무였다.

다만 언데드의 입장에서 절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푸르름과 생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 어떤 회복 주문과 강화 주문으로도 느끼지 못할 신성한 어떤 힘이 천천히 뿌리를 움직여 다가오는 나무에게서 느껴졌다.

이것을 토대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바로 엘프들의 종교이자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세계수였다.

그 밑으로 당당히 걸어오는 엘프들의 모습이 그들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 주고 있었다.

“진짜 엘프잖아 ”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하프엘프’가 아닌 진짜 ‘엘프’라는 것이다.

세계수를 잃고 종족 보전을 위해 인간과 살을 맞댔다는 고문헌의 기록처럼 그들은 아직 세계수를 잃지 않았고, 하프엘프가 아닌 엘프들이 득세하는 시기인 것이다.

“엘프 대 언데드의 전투인 건가 ”

흔히 언데드의 대적자로 인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의외로 하프엘프들이 언데드와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제야 모두가 상황을 파악했다. 엘프 대 언데드의 전투. 이 승부의 끝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양패구상.

그리하여 엘프들은 세계수를 잃고, 언데드들은 데스 로드를 잃는다.

‘어쩌라는 거지 ’

그렇다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데스 로드를 도와 세계수를, 엘프를 물리친다 데스 로드를 살리고

어림없는 소리다.

마스터, 하이 마스터가 저만큼이나 있음에도 어쩌지 못한 존재를 무슨 수로 처치한단 말인가

당장 그들이 저기 있는 존재들보다 강하다는 보장도 할 수 없었고, 최소 그랜드 마스터급인 두 존재의 싸움에 끼어들 자신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하고 말 테니까.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겁니까 ”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누군가 인솔자인 데스 나이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싸움에서 자신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건…….”

그리고 데스 나이트도 더는 숨길 생각이 없는지 계획을 털어놓았다.

“제길, 그럼 일단 살아남기부터 해야겠군요.”

계획을 경청한 언데드 마스터들은 난색을 표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이곳에서 자신들이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때문에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일단 그들부터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언데드의 병력의 수와 질이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다지만, 적들인 엘프들의 수준도 실로 놀라운 것이다.

하이 마스터급이 즐비한 것은 물론이고 마스터급의 숫자도 몇만은 되어 보였다. 전원이 마스터 레벨쯤은 달성한 것 같았다.

‘문제는 세계수 버프지.’

그러나 진짜 무서운 것은 그들이 세계수의 곁에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였다.

세계수 버프.

정확한 효능은 알 수 없지만 거의 한 단계 능력이 진화될 정도의 효과를 받고 있다는 것은 기세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맞는 말이다. 고로 우리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세계수와 데스 로드께서 맞붙는 그 순간까지도.”

그 말을 끝으로 로칸이 포함된 언데드 원정대는 전투의 여파가 미치지 않을 곳을 향해 몸을 피했다.

그러나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시 피어오른 죽음들이여, 돌격하라.

데스 로드의 진언이 들려온 순간, 함께하던 NPC 몇의 눈빛이 달라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모두 미련이 남은 듯, 전장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보던 자들이었다.

“모두 귀를 막고 정신을 보호하라!”

뒤늦은 외침이 들려왔지만 소용없었다.

진언의 힘에 노출된 이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데스 로드의 언령에 이끌려 그를 따르는 병사의 입장으로 적을 향해, 엘프와 세계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억! 내 몸이 왜 이래!”

그것은 유저라고 다르지 않았다. 진언에 노출된 순간, 몸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 이상에 빠진 듯 몸의 통제권을 잃고 말았다.

“몸을 숨겨라! 데스 로드에게 정신을 빼앗기면 안 된다!”

그들을 구하려는 움직임 따위는 없었다.

데스 로드의 강력한 정신 지배를 풀어내는 것도 무리였고, 그 과정에서 놈의 시선을 끄는 것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놈이 있군.

그러나 그 또한 이미 늦었다.

각자 빠르게 엄폐물을 찾고 기척을 감춰 봤지만 이미 데스 로드는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거대한 적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고사리 손이라도 필요하다면 모를까, 지금은 흥미를 보이는 정도로만 그쳤다. 선두에서 벌써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장을 이탈한다.”

“해골마 소환!”

그 천운과 같은 상황에 안도하며 원정대는 빠르게 전장에서 멀어지기를 시도했다.

‘엄청나군.’

이미 들켰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망설이거나 감출 필요도 없다.

전원 탈것을 소환하도록 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로칸은 그 순간 고민했다. 이들을 따라 이동할 것인가, 아니면 몸을 숨기고 어떤 기회를 노릴 것인가.

-놈들의 과분한 생명을 빼앗아라!

그 순간, 또다시 데스 로드의 목소리가 전장 가득 울려 퍼졌다.

해골마를 몰고 달아나던 이들 중 정신 계열 저항이 약한 자들이 급히 말 머리를 돌려 돌진하기 시작했다.

‘은신.’

자칫 데스 로드의 부활을 위한 원정이 실패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로칸은 그것을 기회로 보았다.

지금같이 정신없는 상황에서는 한둘쯤 사라져도 모를 것이 분명하기에, 도주하는 대신 은신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물론 극도로 위험한 선택이지만 그 배경에는 조금 전 들린 시스템 알림이 있었다.

[죽음 지배자의 진언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의 효과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에픽 등급이기에 살짝 불안했지만 그 타이틀 효과가 데스 로드의 지배 능력까지 무력화시킨 것이다.

어쩌면 죽은 자들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언령이기에 통하지 않았거나 약화되어 적용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막아 내고 로칸에게 자유를 부여했다.

“디그독.”

그러나 로칸은 자만하지 않았다. 이만한 대규모 전투라면 언령이 아니더라도 자신까지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때문에 디그독을 소환해 땅을 파고 들어갔다.

강력한 힘들의 충돌에 지하까지 충격이 오기야 하겠지만 넉넉히 파고들어 간다면 충분히 포션만으로도 버틸 정도의 생명력 하락밖에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투두두두두두두.

그렇게 한참을 땅속으로 파고들어 간 로칸은 지그시 한쪽 눈을 감았다.

오직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에 의지해 지상을 바라보았다.

‘보인다.’

이것이 바로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이 가진 숨겨진 기능이었다.

본래는 돌과 흙밖에 보이지 않아야 할 땅굴 속이지만 어렴풋이 지상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만하면 확실히……. 너 죽고 나 죽자였다고 보는 게 맞겠군.”

언데드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엘프들은 세계수를, 그리고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질 수 있다.

그런 필사의 각오가 부딪쳤으니 양패구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에 당금에 이르러서는 양 종족의 수준이 형편없이 낮아진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뒤가 없을 만큼 격렬하게 부딪혔으니까.

“미친놈들.”

데스 로드의 데스 피어는 생명체들뿐 아니라 무생물들까지 죽음으로 오염시켰고, 세계수는 축복을 내려 엘프들이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언데드가 압도적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엘프들의 능력은 실로 전율스러웠다.

정령들을 소환하여 전력을 배 이상으로 늘리는 것은 기본이고, 세계수의 축복을 받자 마스터급들이 거의 하이 마스터에 준하는 전투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 대 질의 대결 구도가 성립되었다.

하늘이 찢어지고 땅이 뒤집어지는 신화적인 전투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서로 상극이긴 하군.”

보통의 상황이라면 소모전에서 유리한 건 단연 언데드다. 적의 시체로 아군을 늘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엘프의 시체는 언데드화되지 않는 특권을 누렸고, 처절한 소모전은 모두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전투가 극에 달했을 때, 마침내 양측의 보스가 움직였다.

“시작하는군.”

세계수와 데스 로드.

거인 이상의 거대함을 자랑하는 세계수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데스 로드였지만 경지에 오른 이들 앞에서 크기란 무의미했다

강력한 검사이자 죽음을 일으키는 네크로맨서인 데스 로드는 장검을 뽑아 죽음의 기운을 흩뿌렸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세계수의 잎과 가지가 크게 흔들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하지만 그냥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쐐애애액. 퍼억!

세계수의 크고 작은 가지들은 그 자체로 세계수의 손이었고, 수만 갈래 그 이상으로 뻗은 뿌리들은 세계수의 발이었다.

하이 마스터급이 아니면 생채기조차 내기 어려운 세계수의 가지와 뿌리가 동시에 데스 로드에게로 몰아쳤다.

데스 로드의 입장에서는 천수관음과 상대하는 기분일 터였다.

덕분에 처음에는 맹공을 퍼붓던 데스 로드는 금세 수세에 몰렸고 로칸은 그 모습들을 똑똑히 눈에 담아 두었다.

세계수가 어떤 식의 공격을 펼치는지, 그리고 데스 로드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언제고 이것을 써먹을 때가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쿠구구궁.

“돌았네.”

수십 분 이상이나 지속되는 두 존재의 격돌을 지하에서 바라보는 로칸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필살기급으로나 낼 수 있을 파괴력을 평범하게 쏟아 내고 있었고 그때마다 지형이 바뀌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초월자들 간의 전투.

거기에 승부수를 던진 것은 바로 데스 로드였다.

데스 로드의 기운이 세계수를 침범하고 있기는 하지만 놈에게는 끝을 모르는 생명력과 재생력이 있었으니까.

데스 로드 역시 주위에서 죽음이 일어날 때마다 힘을 회복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힘에 부치는 것은 자신일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결단을 내렸다.

-놈을, 짓밟아라!

다시 한 번 터진 데스 로드의 진언이 언데드들의 심령을 제압했다.

그 순간 모든 언데드들이 눈앞에서 상대하던 적을 도외시하고 세계수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놈의 뿌리에, 가지에 달라붙어 자신을 희생하며 죽음의 기운을 독처럼 퍼트렸다.

“죽음이여, 내게로 오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죽음으로 화하여 모든 힘을 장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세상에 죽음을 퍼트리며 세계수의 껍질을 부수고, 세계수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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