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0화.세계수 vs 데스 로드 (2) (230/500)

 # 230

세계수 vs 데스 로드 (2)

“놀랍군.”

로칸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데스 로드가 세계수의 안에서 날뛰는 것이 놀라운 게 아니었다.

그 감탄은 세계수를 향한 것이었다.

자이언트 샌드웜의 경우처럼 보통의 거대 몬스터는 몸 안에 무언가 들어왔을 때 대처할 방법이 없지만, 세계수는 몸속 내부로 융털 같은 가지를 뻗으며 데스 로드를 괴롭히고 동시에 자신이 품고 있는 생명의 기운을 강하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언데드와 상극인 그 빛은 데스 로드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그를 감싸고 있던 죽음의 오라가 저절로 해제되고 뼈가 물렁거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힘을 집중시켜 막아 내고 있지만 죽음의 기운은 서서히 무장해제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데스 로드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었다. 데스 로드의 몸에서 풀어져 나온 죽음의 기운은 세계수의 몸속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치명적인 독이 되어 내부를 갉아먹었다.

더불어 그가 떨쳐 내는 죽음의 검기가 세계수의 생명을 베어 내었다.

내외부에서 공격하는 데스 로드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내부에 침투해 온 데스 로드를 제압하는 데 온 힘을 쏟는 세계수의, 정적이지만 무엇보다 치열한 공방이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끝인가 ”

그러기를 한참, 드디어 승부에 결착이 나고 있었다.

세계수의 겉 표면에 달라붙은 언데드들은 엘프들의 활약으로 대부분 떨어져 나갔지만 결국 승부의 행방은 세계수와 데스 로드, 둘의 승부로 결판이 났다.

무승부.

정확히 따지자면 세계수의 승리였다.

데스 로드는 결국 세계수가 품은 막대한 생명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렸고, 죽음의 기운을 잔뜩 응축시킨 구슬의 형태로 자신을 보호했다.

완전한 소멸을 막는 대신, 봉인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저건 ”

그러나 죽음의 구슬은 그 자체로 세상에 유해했다.

형태를 봉했을 뿐, 여전히 세상을 오염시킬 만한 막대한 죽음의 기운을 풍기며 세계수의 내부를 떠돌았다.

이대로 버틴다면 얼마 동안은 그 힘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지만, 세계수가 완전히 침식되어 무너진다면, 그리하여 죽음의 구슬이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데스 로드가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세계수는 결단을 내렸다.

-나의 아이들이여, 후대를 부탁한다.

파라라랑.

세계수의 몸이 파르르르 떨렸다. 그와 함께 세계수의 거체로부터 민들레 홀씨 같은 어떤 기운 같은 것들이 퍼져 나왔다.

세계수의 가능성들이 허공에 날려 세상 곳곳으로 날아갔다.

“그렇군.”

이제야 로칸은 하프엘프들이 ‘세계수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저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식물 정도가 아니라, 진짜 세계수가 세상에 남긴 유산과도 같은 것들이었다.

“크흠.”

그걸 알고 나니 놈들의 묘목이며 새싹들을 잔뜩 망쳐 놓은 것이 살짝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사는 게 다 그런 것이지.

디그독을 불러 천천히 지상으로 접근함과 동시에 세계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세계수의 안배가 거기서 끝이 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건…… ”

세상에 ‘가능성’을 퍼트린 세계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냈다.

힘을 다해 말라 가는 자신의 몸의 일부를 떼어 내 데스 로드가 남긴 죽음의 구슬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 하나이던 것처럼, 구슬을 감싸고 길게 늘어져 지팡이의 형태를 이루었다.

죽음의 구슬이 가진 힘이, 봉인이 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더불어 ‘아이템’으로서 사용될 때조차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완성된 형태는 로칸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죽음의 홀!”

그랬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홀이었다. 시공의 틈을 넘기 전, 로칸이 언데드들에게 가져다주었던 바로 그것이다.

그저 데스 로드를 부활시키는 열쇠 정도로 여겼던 것이 알고 보니 데스 로드 그 자체였다니.

만약 제대로 된 사용법만 안다면, 또 죽음의 구슬이 깨어나도록 촉진시킬 수만 있다면 데스 로드를 부활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가…….”

쩌적, 쩌저저저저적. 쿠구구구구궁!

로칸이 채 지상에 닿기 전에 세계수가 무너져 내렸다.

엘프들은 세계수의 의지를 받들어 빠르게 후퇴를 시작했고, 한 차례 소진된 언데드들은 죽음의 홀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기운에 매료되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필드 죽음의 신전과 죽음의 홀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푸확!

타이밍 좋게 지상으로 올라온 로칸은 즉시 달려 나갔다.

그곳에 멈춰선 언데드들과 죽음의 홀의 링크가 깊어지기 전에, 죽음의 홀을 손에 넣었다.

원정대의 언데드 NPC들이 어디까지 알고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죽음의 홀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은 로칸이 유일했다.

그러니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선수를 친다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홀을 빼돌릴 수 있었다.

[죽음의 홀][레전드]

데스 로드가 잠든 지팡이 형태의 봉인. 세계수의 생명력과 데스 로드의 죽음이 기이하게 공존하고 있어 두 가지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파괴 시 데스 로드가 부활할 수 있다.

-공격력 : 2,900

-마법 공격력 : 5,200

-내구도 : 1,000,000 / 1,000,000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감소)

-모든 능력치 + 200

-[세계수의 축복] 사용 가능

-보유 시 [데스 드레인] 효과 획득

-모든 스킬 효과 100% 증가

‘어쩌면 죽음의 홀의 사용법을 알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 지도 모르겠군.’

아이템 정보를 확인한 로칸은 원정대의 목적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된 아이템의 경우, 발견 시점에 따라 아이템 정보가 바뀌거나 지워질 수 있었으니까.

당장 로칸이 현 시간대에서 구해 온 죽음의 홀에는 이렇다 할 정보가 없지 않았나 그러니 언데드들 역시 죽음의 홀을 데스 로드의 유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데스 로드는 검사에 가까운 폼을 취했지만 동시에 정점에 달한 네크로맨서이기도 했으니 지팡이를 쓰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근데, 내가 이걸 먹튀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

그런 의미에서 로칸은 결코 이것을 언데드들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3레벨 업의 유혹이 크기는 하지만 미쳤다고 3레벨에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을 팔아먹을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인벤토리로 죽음의 홀을 숨긴 로칸은, 그들이 도착하기 전 죽음의 신전이 될 뻔한 세계수의 잔해를 벗어났다.

“카이! 전설을 타는 자!”

로칸은 한참을 달린 뒤, 아예 대붕으로 변한 카이까지 타고 놈들과 거리를 벌렸다.

폴리모프도 해제해 버렸지만 자신들과 함께 과거로 돌아온 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원정대는 로칸의 존재를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더구나 아직도 하늘에는 본 드레이크가 배회하고 있고 괴조 형태의 비행형 몬스터들 역시 간간이 보이는 판이었기에, 대붕의 존재도 마냥 특이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엄청난 거리를 주파한 로칸은 생각을 마저 이었다.

죽음의 홀을 이대로 자신이 가져 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가 변하겠지.’

사실 답은 나와 있는 것이었다.

과거가 변하면 현재도 변한다.

놈들이 ‘정보 획득’ 이외에 과거의 변화를 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로칸이 이것을 가지고 현대로 돌아가는 순간 죽음의 신전과 죽음의 홀 필드는 사라질 테고, 죽음의 홀을 쫓던 강력한 몬스터들도 먼지가 되어 사라질 확률이 높았다.

죽음의 홀에 얽매여야 할 놈들이 세상에 풀어지면 결국 어떻게든 토벌되고 말 테니까.

그 과정에서 지형이 변하거나 각 종족의 영역이 변화하는 등의 변화 또한 발생할 가능성은 있지만 로칸이 알 바는 아니었다.

‘시스템이 알아서 하겠지.’

만약 세계수나 데스 로드가 살아남는 수준의 변화였다면 대격변이 일어나겠지만, 이 정도야 시스템이 어떻게든 보정하지 않겠나.

당하는 입장인 유저들이야 좀 황당하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돌아가느냐인데…….”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목표를 잃어버린 원정대가 한동안 이 시간대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그들이 돌아가고 시공의 틈이 닫혀 버리면 로칸은 자칫 시간의 미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먼저 시공의 틈을 이용해 돌아가 버린다면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당장 언데드의 수괴들이 그들을 기다리며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을 테니까.

“먼저 넘어가도 문제지.”

죽어서라도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는 있겠지만 그 순간부터 로칸은 거의 현상수배범이 된다.

언데드의 모든 전력이 로칸을 잡기 위해 투입될 것이고, 그러면 로칸이라 해도 꽤나 골치 아파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로칸이 이곳에 왔다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이미 로칸은 알고 있었다.

폴리모프를 해제한 것도, 은밀히 돌아가는 것이 아닌 줄행랑을 친 것도 모두 그런 이유에서였으니까.

“결국 제쳐야 하나.”

이곳으로 넘어올 때 이용한 시공의 틈은 과감히 포기한다.

시공의 틈이 닫히면 시간의 미아가 될 수 있겠지만 전생의 소문에 따르면 로칸 같은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죽음의 홀을 손에 넣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원정대가 유저들을 돌보지 않고 곧장 시공의 틈을 넘었고, 낙오된 인원은 죽을 고생을 해서 어떤 퀘스트를 수행한 뒤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원정대는 죽음의 홀을 완전히 회수하지는 않았었다. 과거의 변화로 인한 현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이 당시의 죽음의 홀에는 세계수의 기운이 잔뜩 남아 있어 봉인을 깨뜨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당장 현대의 죽음의 홀에도 충분한 죽음의 기운이 남아 있고, 그것을 증폭시킬 촉매들을 종족 퀘스트로 잔뜩 준비해 놓은 상태이니까.

“여기에 남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기도 하고.”

물론 시공의 미아가 되면 고생이야 하겠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분명히 있었다.

이 시대의 장비.

어쩌면 모든 종족이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이 시간대의 아이템을 잔뜩 모아 갈 수 있지 않겠나.

“간만에 광렙도 좀 하고.”

거기에 강력한 사냥감들도 많으니 레벨 업은 덤이다.

당장 조금 전 보았던 데스 로드의 언데드 군단들만 독식할 수 있었어도 하이 마스터에 오르거나 그에 근접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이 시대에 또 뭐가 있을지 궁금하군.”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시대에 다른 종족들은 어떤 모습일지, 어떤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혹시 ‘광풍’이 활동하던 시대는 아닐까 아니면 ‘사자왕’이 활동하던 건 만약 여기서 마지막 남은 사자왕의 무구 하나를 더 얻게 된다면 세트 아이템이 완성되고 봉인이 풀리게 될까

시간의 미아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떨쳐 내자 이제는 묘한 흥분이 일었다.

“가자, 카이!”

카이의 고도를 높여 저 먼 지평선 끝까지 단숨에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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