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1화.사자왕 (1) (231/500)

 # 231

사자왕 (1)

로칸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당연히 인간 종족의 영역이었다.

폴리모프를 중간에 풀어 버린 까닭에 아직 재사용 대기 시간이 하루 조금 넘게 남아 있기도 했고, 이미 양패구상을 한 엘프와 언데드에는 볼일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종족들에 비해 정보를 얻기도 쉽고.

“헤헤헤, 나으리, 뭐가 궁급하십니까 ”

“전쟁의 배경, 그리고 전쟁의 진행 상황.”

어지간한 정보는 돈만 좀 찔러 주면 술술 다 불어 버리니 의심을 살 것도, 발품을 팔 것도 없다.

“아항……. 저의 통찰력 넘치는 견해를 듣고 싶으신 게로군요. 좋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대로 말씀드립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왜 굳이 돈까지 주면서 물어보는 것일까.

상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알았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모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대조하면서도 상대에게 자신이 진짜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 이들이 제법 있는 까닭이다.

사실 이런 저런 잡학들을 섞어 내놓는 자신의 그럴싸한 분석을 들으러 이곳까지 오는 사람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아주 가끔 있었다.

때문에 의문을 갖는 대신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작이야 사실 말이 많습니다만……. 결국 중요한 건 한 가지 아니겠습니까 각 종족들이 가진 힘이 너무 커졌다는 것이죠. 각자 한 시대에 한 명이나 등장할까 말까 하다는 그랜드 마스터를 하나씩 보유하고 있으니 얼마나 좀이 쑤셨겠습니까 상대가 쪼오오오금 두렵기는 해도 한 명만 꺾으면 종족 전체를 꿀꺽할 수 있는데. 자잘한 일들이 터지고, 그걸로 각 종족들이 시비가 붙긴 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각 종족들이 품고 있던 힘이 폭발한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언데드와 엘프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 상대 종족에게 해를 입히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집단들도 있지만 말이죠. 그나마 노움이 좀 허약하긴 한데, 어쩌겠습니까. 나머지 종족들이 칼을 빼들었으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참전해야지. 햐, 그거 참 아쉽게 됐죠. 오래전 노움족이 가졌다는 고대 병기만 있었어도 그들 역시 뭔가를 한번 노려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병기가 원체 신통하니 정면 승부만 피하면…….”

정보원의 말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살짝 겁을 줘서라도 요점만 말하도록 만들겠지만 이번만큼은 2시간이 넘는 이야기를 로칸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어쨌든 이 시간대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

‘이거 참 재미있군. 그랜드 마스터급이 무려 일곱이나 되다니 아니지, 이제는 다섯이군.’

물론 전쟁터 근처에도 가 보지 않은 호사가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기에 걸러 들어야겠지만, 그는 꽤 그럴싸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현재의 상황뿐 아니라 노움족의 ‘고대 병기’에 대한 질문에도 꽤 정답에 가까운 답변을 내놓은 것에서 제법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았다. 고대 병기, 비공정을 이용해 노움들이 막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군요. ‘그것’을 막으려다가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춰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더군요. 아, 그거 하나는 분명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파괴하려 했다는 거죠. 특정 종족도 아니고 세계를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는 녀석도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현 시대에 비해서는 제법 ‘고대’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아 기대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광풍……요 흐음, 들어 본 적 있군요. 아마도…….”

광풍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딱 로칸이 알고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아니, 그보다 조금 못할 정도였다.

“그럼, 사자왕은 어떻습니까 ”

“아아, 가오칸 님 말씀이십니까 두말할 것 없이 최고죠! 사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가오칸 님과 사자병단이 있으니 든든합니다. 그분이라면 다른 종족 그랜드 마스터 전부가 덤벼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은 것은 바로 ‘사자왕’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이 시간대는 현대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에 대략적인 정보는 로칸에게도 있었다.

특히 ‘황금사자’ 진영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인 사자왕 가오칸은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접하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강했다고 ’

그러나 그 정도로 강했다는 것은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그랜드 마스터의 위 등급쯤 된다면 모를까, 단신으로 각 종족의 최강자이자 그랜드 마스터인 이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다니

일종의 ‘국뽕’, 아니 ‘종족뽕’을 고려하더라도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둘 정도까지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준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 옳겠지.’

때문에 로칸은 자체적으로 그의 경지를 수정하여 머릿속에 입력해 두고 계속 정보를 캐냈다.

‘사자병단이라…….’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역시 사자왕 가오칸의 직속 부대인 사자병단의 존재였다.

하나같이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그들은 사자왕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해 동급 대비 우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만약 타 종족의 수장들이 나서는 게 아니라면 사자왕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모두 정리하고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평은 그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대륙 전반에 걸친 전반적인 생각이라는 말도 함께였다.

때문에 지금 전쟁은 로칸이 예상했던 것과 같은 4 대 4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엘프 대 언데드, 그리고 트롤, 오크, 고블린 대 인간 + 떨거지들(노움, 드워프)의 구도라는 것이다.

“슬슬 소식이 들려올 때가 됐군요.”

그러나 그도 아직 엘프와 언데드의 양패구상 소식은 모르고 있었다.

엘프들이 이리저리 말을 흘리고 다니는 종족도 아닌 데다 사태를 파악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 참, 기사님도 혹시 공을 세우고 싶으신 거라면 에르히성으로 가 보십시오. 그쪽으로 사자병단이 몰려갔다는 소문이 있으니 아마 곧 큰 전투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지.”

마지막 정보를 귀에 담은 로칸은 즉시 이동을 시작했다.

“재미있겠군.”

상황은 대충 알겠다.

자신이라도 그랜드 마스터급의 능력을 가졌다면 다른 종족과 전쟁을 벌여 볼 만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더구나 각 종족의 그랜드 마스터들은 호사가들에 의해 우위가 가려졌을 뿐, 정말 작정하고 붙어 본 적이 없었다.

오직 드워프만이 사자왕과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먼저 숙이고 들어왔다고는 하는데, 그만한 경지에 오른 이들이라면 자신감도 엄청날 테니 세간의 평가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한 번 붙어 보려 할 공산이 높은 것이다.

그렇기에 로칸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에르히성으로 옮겨 갔다.

전쟁도 즐겁지만 사자병단의 실력을, 또 사자왕 가오칸의 무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자왕과 사자병단이라…….’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기에 타 종족들을 몽땅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일까

로칸이 들은 바로는 현대와 달리 이 시간대에는 모든 종족이 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황금사자 대 검은용군단이 아니라 각 종족들의 투쟁 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엘프들은 원체 고고하게 구는 데다 언데드와 양패구상을 하면서 물러났고, 비공정을 잃은 상태인 노움과 사자왕에 의해 마음이 꺾인 드워프는 인간의 뒤를 따르는 실정이지만 혹여나 사자왕이 죽기라도 하는 날에는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혹은 절체절명의 순간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겠지.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겠지.’

그럼에도 그들을 거두고 등 뒤를 내어 준다는 것은 반대로 사자왕과 사자병단이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훗날 ‘검은용군단’이 될 네 종족이 서로 싸우기보다 임시 동맹을 맺어 인간을 적대시한다는 것 역시 그들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였다.

그렇기에 로칸은 더욱 호승심이 일었다.

전생에도 창세의 왕에게 꺾이기 전까지는 누구와 싸워도 자신이 있던 그가 아닌가

더구나 지금은 전생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는 중이었다.

같은 시기를 놓고 본다면 비교조차 되지 않고,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그때와도 어떻게든 비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마저 들고 있으니 사자왕은 몰라도 사자병단쯤은 이겨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밖에 몇 가지 음흉한 생각을 품고 에르히성으로 진입했다.

[사자부대 합류][퀘스트]

사자부대에 합류하여 전쟁에 참여하라.

-전쟁 참여 중 경험치 1.5배

-공적에 비례하여 경험치 및 명성 추가 획득

동시에 퀘스트 하나가 일어났다. 사자부대에 합류하여 전쟁을 치르라는 것이다.

공작인 로칸도 퀘스트로 증폭시킬 수 있는 경험치량은 여러 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하에 1.3배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것은 실로 엄청난 기회였다.

“사자부대 ”

그러나 혹하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자부대라면 사자병단과 다른 것일까

사자병단은 사자왕에게 직접 사사받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니 가려 받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래서야 자칫하면 그들과 다른 위치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로칸은 찜찜한 마음을 안고 일단 광장 한편에 테이블과 의자를 깔고 앉아 있는 행정관 NPC에게로 다가갔다.

“사자부대에 합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자네 레벨과 직업이 어떻게 되나 ”

로칸의 질문에 행정관은 슥 올려다보더니 기계적으로 대꾸했다.

아무래도 레벨과 직업에 따라 편성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324레벨 마스터 버서커입니다.”

그러나 로칸의 레벨과 직업명을 듣고도 태연하기는 어려웠다.

마스터 레벨이 차고 넘치는 시대라지만 버서커 계열은 레벨보다 훨씬 강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그만큼 위험하게 싸우기에 수는 적지만 그때까지 살아남을 정도라면 큰 작위와 영지를 준다 해도 아까운 일이 아니다.

“마스터 버서커……요 ”

곧 귀족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까. 행정관의 몸가짐이 가지런해졌다.

언제든 상관이 될 수 있으니 깍듯할 수밖에.

‘쫄았군.’

아니 그것보다는 그의 직업에 겁을 먹은 것이 컸다.

마스터 버서커는 마스터 레벨에 이를 때까지 오직 버서커라는 미친 직업을 선택해야만 나타나는 클래스다.

그런 미친 선택을 하는 작자가 제정신일 리 있나

잘못하면 정치적인 문제뿐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놈을 빠릿하게 만들었다.

“그래.”

놈의 태도를 확인한 로칸이 씨익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자연스레 하대했다.

공작의 위를 가져 보았을 뿐 아니라 폭력의 왕으로서 유저와 NPC들 사이에 군림하던 자세가 몸에 배어 그 모습마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마스터 버서커시라면 원하시는 어느 부대든지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중단 지원 부대 중 가장 최전방에 위치하는 사자이빨부대에 들어가시거나 정복 작업을 하며 잔당들을 처치하는 사자발톱부대를 추천드립니다! 원하신다면 마법 병단을 호위하는 사자갈기부대도…….”

“잠깐,”

“예, 옛 ”

잔뜩 겁을 먹고 소리를 내뱉는 행정관의 말을 가만히 듣던 로칸이 인상을 찡그렸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중단 지원 부대라고 마스터 레벨인데 ”

“그,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마스터 레벨씩이나 되는 자원을 2선인 중단으로 보낸다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일반적인 전투에서라면 화살 받이를 선두에 세우기도 하겠지만 이미 그런 것은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당장 로칸만 해도 마스터 레벨이 포함된 클래스 익스퍼트 1만 이상은 단신으로 쓸어버릴 수 있지 않나

고작 마스터 또는 하이 마스터 몇 명의 마스터 스킬을 빼먹자고 그만한 병력을 소진시키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행정관은 당연한 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 선두는 선두에는 누가 서지 ”

“그야 당연히……. 사자병단과 사자왕께서 서시지요.”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사자왕과 사자병단.

그들만으로 모든 전투가 끝나 버리는 것이다. 다른 병력의 지원 따위가 있을 필요도 없이.

“젠장, 사자병단에 들어갈 방법은 없나 ”

“그, 그건…….”

인간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지만 로칸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고작 뒤치다꺼리나 하려고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사자왕과 사자병단의 전투력을 눈으로 확인하거나, 몸으로 체감해 보고 싶었다.

그 난폭한 음성에 겁을 먹은 행정관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을 내놓았다.

“사자병단 분들 중 하나를 꺾거나 사자왕께 인정을 받으면 가능하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좋아, 그거야!”

쩌억! 쿠웅.

그 순간 로칸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눈빛을 번뜩였다.

그의 선택은 당연히, 사자왕과 붙어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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