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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화.타락의 정수 (2) (2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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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의 정수 (2)

[데스 드레인의 효과로 불안정한 죽음의 힘을 흡수합니다.]

[사용자의 몸에 불안정한 흑마력이 쌓입니다.]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이 타락의 기운을 억누릅니다.]

[타이틀 타락 사냥꾼의 효과로 타락한 힘에 대한 충격이 감소됩니다.]

[타이틀 죽음 제압자의 효과로 흑마력에…….]

“…… ”

몸에 흑마력이 쌓인다는 것은 우려하던 부분이기는 했다. 세계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데스 드레인의 효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로칸에게도 일종의 도박이 아닐 수 없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데스 드레인만으로는 어려웠기에, 로칸은 도박을 감행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사뭇 놀라웠다.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에 이어 그동안 쌓아 온 타이틀 효과가 줄줄이 발동하면서 몸 안이 터질 듯 쏟아져 들어오는 흑마력을 감당해 내고 있는 것이다.

[암흑 저항력이 0.1% 상승했습니다.]

[암흑 저항력이 0.1% 상승했습니다.]

[암흑 저항력이 0.1% 상승…….]

거기서 그치지 않고 로칸의 암흑 저항력까지 끌어 올렸다.

막대한 흑마력과 그것에 저항하는 여러 기운들의 전쟁터가 된 로칸의 몸이 체질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덕분에 성(聖) 속성, 독(毒) 속성과 함께 가장 올리기 어렵다는 암흑 저항력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크윽, 장난 아니군.’

버서크나 광풍 현신을 사용하면 더 쉽게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로칸은 그 힘을, 고통을 오롯이 제 몸으로 감내했다.

둘 중 하나를 사용할 경우, 그릇이 커지면서 지금 같은 저항력 상승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얼마나 더 오랫동안 데스 드레인을 유지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제한이 걸린 스킬을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것이다.

“귀찮게도 구는군.”

그런 가운데, 세계수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가지를 찔러 오고 잎사귀를 표창처럼 날려 대는 통에 정신이 없었지만, 한 방 한 방의 공격력이 강하지 않아 버틸 만은 했다.

특히 대형 배틀 액스가 몸의 대부분을 가려 준 것과,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을 움직여 급소를 가린 것이 컸다.

대미지는 차근히 누적되고 있지만, 데스 드레인으로 흡수되는 기운들이 단순히 마나뿐 아니라 생명력도 채워 주었기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크앗!”

“피해라! 넓게 퍼져서 움직여!”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꼭 로칸의 편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버티던 엘프들이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지쳐 가기 시작했다.

사망까지는 아니지만 부상을 당하는 이들이 속출했고, 만약 그들이 죽어 양분으로 흡수되거나 모두 후퇴하여 오롯이 자신만 남게 된다면, 그때도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방법이……. 가만 ’

그렇게 불안한 버티기를 유지하던 로칸의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자신은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쓰고 있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제압!”

만약을 대비해 데스 드레인은 유지한 채로, 로칸이 쇠사슬을 움직였다.

무기와 결합되기 전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로만 사용하던 스킬을 흉내 내 타락의 열매를 감싸 버렸다.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이 타락의 힘을 봉인합니다.]

“빙고!”

그것이 답이었다. 자꾸만 함께 등장하는 ‘타락’과 ‘파멸’의 키워드를 보고 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유추한 결과였다.

‘파멸’이라는 것은 타락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테고,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은 결국 타락으로 만들어진 무엇인가를 봉인한 전적이 있는 아이템이니 봉인의 힘이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적중했다.

[타락의 힘을 감지합니다.]

[타락의 힘을 완전 봉인하기까지 약 3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타락의 힘을 봉인하는 동안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을 이용한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이 타락의 열매를 봉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세계수도 변화를 일으켰다.

[세계수를 지배하던 타락의 기운이 일시적으로 잠들었습니다.]

[세계수에 공급되던 어떤 힘이 사라졌습니다.]

[세계수가 일시적으로 수면 상태에 빠집니다.]

[주의하십시오. 공격 시 다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세계수의 침묵.

그것은 3분을 버텨야 하는 로칸에게 굉장히 달콤한 이야기였다. 이대로 3분만 버티면 게임 오버라는 뜻 아닌가

세계수의 변화가 누구보다 민감한 엘프들은 놈의 수면을 즉시 알아차렸고, 실수로라도 공격 모션조차 취하지 않았다.

‘이다음이 문제로군.’

승리를,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로칸은 고민에 빠졌다. 타락의 기운을 잠재운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수가 엘프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할까

엘프들이야 평화주의자에 가깝다지만 하프엘프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이 세계수를 이용해 무언가를 벌이려 한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다른 종족들은 막기 힘들 터였다.

검은용군단뿐 아니라 황금사자 진영의 종족들 역시.

때문에 세계수를 해치울 방법마저 골똘히 생각하는 로칸이었지만 역시 쉽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1분여가 흘렀다. 봉인이 3분의 1가량 진행된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애로우 레인!”

“……!”

“막아랏!”

누군가 잠든 세계수를 향해 화살 무더기를 날린 것이다.

수십 발의 화살이 일시에 허공을 수놓았고, 초조하게 지켜보던 엘프들이 화들짝 놀라 그것에 대응했다.

화살로 날아오는 화살 맞히기.

강력한 힘이 실려 바람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궤적임에도 불구하고,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로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일을 해냈다.

그러나 문제는 공격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뇌전의 창!”

“거신의 망치!”

“사냥신의 화살!”

속성도, 공격 방식도 제각각인 수십 종의 공격이 세계수의 위로 떨어졌다.

엘프와 하이엘프들은 어떻게든 스킬을 쥐어짜 내 봤지만 이미 세계수를 상대하며 마스터 스킬을 몽땅 써 버린 그들이다. 마스터 레벨 이상으로만 뭉친 수십의 일제 사격을 막을 만한 힘이 부족했다.

퍼버버벙!

꽤나 강력한 공격이었는지 세계수의 껍질이 일부 터져 나갔다. 투명한 진액이 피처럼 흘러나오며 세계수를 분노케 했다.

크워어어어!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세계수가 깨어난 것은 괜찮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들이 로칸까지 함께 공격했다는 것이다.

사자왕의 무구가 가진 방어력과 옵션들로 충분히 버틸 수는 있었지만 워낙 집중 포격이었던 탓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파츠츠츠츠츳!

조금, 아주 조금 힘이 풀어졌을 뿐이지만 세계수가 깨어나며 격한 반발이 일어났다. 봉인이 풀어졌다.

[세계수가 깨어납니다.]

[타락한 힘이 봉인에서 풀려납니다.]

“각자 위치로!”

그뿐이 아니다. 세계수의 봉인이 풀리는 것에 맞춰 놈들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일부는 세계수에게, 또 엘프들에게 덤벼드는 것이다.

“크흐흐흐흐흐!”

어느 한 종족이 아닌 다종족 연합. 팀, 크루, 또는 길드라고 불리는 이들.

그들의 정체는 누구보다 로칸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그들의 면면을 확인한 로칸은 화를 내는 대신 정말 속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반가웠으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반가웠으니까.

“라그나로크.”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라그나로크였다.

전생에는 ‘창세의 왕’, 지금은 ‘섬전의’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오딘이 이끄는 팀이자 로칸의 원수인 이들.

그들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로칸을 노려온 것이다.

세계수의 봉인을 막기 위해, 세상을 파멸시키기 위해.

“내가 말이야, 참 고민이 많았어.”

고삐 풀린 세계수가 날뛰었다. 자신을 해하려한 로칸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한편, 한패인 엘프들을 집어삼키려 뿌리를 이빨처럼 들이밀었다.

그들을 공격하는 라그나로크에게도 마찬가지.

이미 피아의 구분이 없어진 세계수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분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전생의 복수라고는 하지만 ‘이쪽의 시간’으로 봤을 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그리고 너희가 왜 날 배제시키려 했는지도 알지 못했으니까.”

터더더덩!

그러나 로칸은 오딘에게, 라그나로크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여유 있게 그것들을 받아쳤다.

오른손으로는 배틀 액스를 가볍게 휘두르고, 왼 손으로는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을 휘감아 잽을 날리듯 뿌리치니 오히려 세계수가 주춤거리며 공격이 뜸해질 지경이었다.

“죽어라!”

“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하지만 라그나로크 역시 집요하게 로칸을 공격했다.

일반 스킬, 생성 조합 스킬, 조합 스킬, 마스터 스킬.

각자가 지닌 역량을 총동원해 로칸을 집중 포격했다.

콰과과과과광!

대폭발과 함께 세계수마저 화들짝 놀라 가지를 물렸다.

세계수의 일부를 포함한 공간 전체가 터져 나가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사멸시켰다.

단 하나, 로칸만을 제외하고.

“그런데 이렇게 나와 준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지.”

광풍 현신. 그것을 막기 위해 쏟아부은 공격들이지만 로칸이 한발 빨랐다.

거신의 모습을 한 로칸이 오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캬아아아아악!

그 모습에 어쩐지 세계수가 더욱 발광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로칸의 머릿속에서 세계수는 사라져 있었다.

라그나로크. 그리고 오딘.

아주 오래된 벗을 만나듯 기꺼운 눈빛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다시금, 그 옛날의 폭력의 왕으로 되돌아갔다.

“크허허허허헝!”

저릿한 공포가 놈들을 휩쓸었다. 듣기만 해도 오싹하고, 땅이 흔들리는 건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인지 모를 현상에 순간 힘이 풀렸다.

어렵게 마련한 공포 면역 옵션 아이템도 의미 없었다. 로칸의 타이틀이 공포 면역 효과를 지워 버리니까.

그러는 사이, 로칸이 세계수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놈을 봉인하는 대신, 라그나로크를 박살 내기로 마음먹었다.

“날개 모드.”

치잉!

펄럭거리던 망토가 날개가 되어 고정되며 무음 광속을 발현하며 로칸을 움직였다.

“붉은 유성.”

본래 붉은 유성은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수직에 가까울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스킬이다.

그러나 광풍의 날개가 가진 속도가 그 제약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약 15도 각도로 하강하면서도 더없이 빠르고 강력한 유성이 되었다.

콰과과광!

오만하게도 신들의 이름을 따 아이디를 만든 라그나로크 팀에게 천벌과 같은 파괴의 힘을 선사했다.

“미친!”

“도망쳐!”

“시간을 끌어야 한다!”

단숨에 셋이나 되는 적을 뭉개 버린 로칸이지만 놈들은 냉정했다.

동료가 무참히 짓밟히는 중에도 화를 내며 달려들기보다 거리를 벌리며 그를 ‘공략’하려 들었다.

버서크 계열 스킬의 최대 약점인 지속 시간과 후유증을 이용하기 위해 힘을 빼고 시간을 끌려는 것이다.

“맞는 방법이군.”

방법도 다양했다.

이미 그러한 시도가 여러 번이나 실패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방어와 회피, 견제를 모두 철저하게 준비했다.

‘어떤 게 통할지 몰라 모두 준비했어.’라는 개념이 아니라, 차륜전의 개념으로 상호 보완하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야무지게 처맞는 방법.”

그러나 놈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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