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타락의 정수 (4)
타락의 힘 덕분이든, 타락자들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든 결국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창세의 왕이라 불렸던 오딘이 약하다거나 컨트롤이 형편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때문에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로칸 역시 살짝 긴장했다. 그때 보았던 실력은 정말 압도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변했지.’
그러나 자신 역시 전생보다 강해졌다.
전생에도 몇 개 되지 않는 상위 타이틀만 가지고 SSS급으로, 폭력의 왕으로 불리던 자신이다.
전투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하이 마스터에 올랐던 그때보다도 오히려 지금이 더 강하다고 느끼고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오딘을 짓밟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와라.”
“풍신의 걸음.”
순간, 오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렇게 느낄 만큼 빠른 움직임으로 로칸의 주변을 회전했다.
로칸이 강(强)이라면 오딘은 쾌(快)였다.
바람의 힘을 일으키며 이동속도를 높이고, 로칸의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다.
“궁그닐!”
그 흐릿한 풍경을 뚫고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오딘의 조합 스킬 궁그닐.
상대에 어디에 있든, 어떻게 피하든 공간을 꿰뚫고 날아가 관통한다는 전설의 창을 재현한 것이다.
쩌엉!
그러나 로칸은 알고 있다는 듯 대응했다. 파멸의 일격을 이용해 창두를 후려쳤다.
적을 관통할 때까지 따라간다고는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도달한 것으로 보는 맹점을 이용한 것이다.
덕분에 놈의 창은 로칸의 목 대신 땅바닥과 키스했고, 어쩔 수 없이 다음 공격을 감행해야 했다.
“참절검!”
로칸을 이기기 위해서는 애초의 계속대로 시간을 끄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오딘의 장기가 속도라고는 하지만 로칸의 순간 돌진 능력을 생각하면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참절검.
자신보다 약자라면 일격에 베어 죽일 수 있는 오딘의 마스터 스킬.
전생에도 마지막에는 저 기술에 목이 베어졌다.
하지만 자신보다 강자라 해도 그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를 죽이기 전까지 공격력의 강화가 유지되는 특성과 오딘의 컨트롤이 만나 지속형 스킬로서 로칸을 위협했다.
쩌엉!
덕분에 놈의 검과 배틀 액스가 제대로 부딪쳤음에도 그 충격은 토르의 공격 때보다 컸다.
밀려나기는 했으나 오딘이 바람의 힘을 밟으며 재차 뛰어들었다.
“번개와 바람의 춤!”
그것은 일종의 난무 스킬이었다.
로칸이 난무를 바탕으로 광살을 만들었듯, 그 역시 바람과 번개의 힘을 이용한 조합 스킬을 만든 것이다.
차지지직!
한 방 한 방의 대미지를 중시하는 광살과 달리 번개와 바람의 춤은 쾌속난무를 지향했다.
불과 몇 호흡 만에 수십 번의 검격이 그어지며 로칸의 몸을 노렸다.
목과 심장뿐 아니라 팔과 다리를 잘라 기동력과 전투력을 감소시키려 들었다.
조합 스킬만으로는 턱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참절검의 힘이 더해진다면 가능할 지도 몰랐다.
어디까지나 놈의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잔재주를 부리는군.”
오딘은 기습을 가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달랐다. 시야를 가리는 폭풍의 힘을 꿰뚫고, 로칸은 놈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
그것이 있는 이상 로칸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튕기기!”
로칸이 사용한 것은 생성 스킬 튕기기. 가드에 반탄력을 강화시켜 상대와 상대의 공격을 밀쳐 내는 넉백형의 스킬이었다.
로칸은 배틀 액스로 주요 급소를 막으며 놈의 공격을 지켜보다가, 짧은 빈틈 사이로 그것을 찔러 넣었다.
투웅!
“컥!”
그러자 놈의 스킬이 파훼되었다.
연속적으로 검을 휘두를 수 없을 만큼 묵직한 일격에 몸이 붕 떠서 떨어져 나가며 스킬이 자동 캔슬된 것이다.
“쇠약의 저주!”
그때, 허공에서 무언가 나타났다.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모습을 감추고 있던 로키가 쌍수 단검을 휘두르며 로칸에게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쇠약의 저주가 무기에 깃듭니다.]
[무기의 내구도 하락 폭이 증가합니다.]
[봉인된 광풍의 사슬 도끼가 쇠약의 저주에 저항합니다.]
[아무런 효과도 받지 않습니다.]
“뭐야, 이건 ”
퍼억!
그러나 허튼 짓이다. 로칸 본인이 아닌 무기에 쇠약의 저주를 걸었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그건 로칸의 무기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재롱이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 로키는 로칸을 공격하는 대신 쓰러지면서도 집요하게 그의 배틀 액스를 노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구력을 깎기 위해 목숨을 바쳐 웨폰 브레이킹을 시도했다.
“망치의 신!”
그때, 토르마저 가세했다. 로칸에게 자신하던 힘으로 꺾인 뒤 눈치만 보던 녀석이 조합 스킬을 발동시키며 덤벼든 것이다.
드워프 종족 특유의 힘과 특정 무기 특성에 이점을 주는 스킬로 무장한 녀석이 다시 한 번 로칸과 부딪쳐 갔다.
쿠웅!
두 대형 병기의 격돌에 땅이 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토르도 바닥을 뒹굴지는 않았다.
조합 스킬을 사용해 근접 전투력을 크게 끌어 올린 덕분에 조금 밀리긴 했어도 버틸 만한 것이다.
“일점 타격!”
다음으로 발동한 스킬. 그것은 조합 스킬도, 일반적인 전투 스킬이 아니었다.
대장장이 스킬.
무기나 방어구를 제련할 때 한 점을 계속해서 타격할 수 있도록 하는 그 스킬이 토르의 망치에 깃들었다.
쩌엉 쩌엉 쩡 쩡.
그리고 연이어 몰아치는 공격.
토르 역시 로칸을 노리지 않았다. 노리는 것은 로칸의 무기인 봉인된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
‘무슨 짓거리지 ’
부딪힐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로칸이 아니라 토르 쪽이었지만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무기를 부순다 해서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까지 파괴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뭔가 있군.’
놈들이 그것을 모를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 이 배틀 액스에 담긴 어떤 비밀에 대해 놈들이 알고 있는 것일까
광풍의 흔적을 찾아서 퀘스트에 마지막으로 남은 물음표를 지워 낼 수 있지 않을까
“웨폰 브레이크.”
쩌저저적!
“……!”
로칸은 역으로 무기 파괴의 힘을 걸었다. 원한다면 장단에 맞춰 줄 수밖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딪히며 놈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미친!”
하지만 깨져 나가는 것은 오히려 토르의 망치 쪽이었다. 그 역시 최소 유니크 이상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겠지만 애초에 격이 달랐다.
“집중해!”
그때, 오딘이 끼어들었다. 부상을 입은 로키가 거들었다.
셋은 철저히 배틀 액스를 노리며 스킬을 마구 뿌려 댔고, 로칸은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다가 기회를 노렸다.
휘이익. 쿠웅!
어느 순간, 놈들을 뿌리치는가 싶더니 무기를 체인지했다.
투황추를 꺼내 바닥을 찍었다.
꿀렁거리며 요동치는 대지. 그 한 방에 놈들이 강제적으로 배를 뒤집어 까고 드러누웠다.
“더 놀아 줄 시간이 없구나!”
로키와 토르의 생명력이 한순간에 바닥을 쳤다.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버렸다.
그의 말처럼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참격!”
“풍신의 걸음!”
때문에 로칸은 일단 오딘의 다리 하나쯤은 부러뜨려 놓은 뒤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놈은 잽싸게 몸을 날렸다. 로칸과 거리를 벌리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제길, 거의 성공했었는데…….”
로칸의 생각과 다른 견해를 내놓으며 혀를 찬 녀석은 도주를 감행했다.
“어딜!”
퍼버버벙!
로칸의 손도끼가 꽂히는 장소마다 마법에 두들겨 맞은 듯 거센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놈은 바람을 조종하는 스킬로 그것들을 비껴 냈다. 모조리 피해 내며 계속해서 달렸다.
“……!”
한데 달리는 방향이 이상했다.
로칸에게서 달아나는 것은 맞는데, 그 앞에는 세계수가 버티고 난동을 피우는 중인 것이다.
“바람의 계단!”
타다닷.
심지어 스킬까지 발현해 하늘로 뛰어올랐다.
세계수를 향해서.
이게 대체 무슨 짓일까 그 의문이 해소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옥.
타락의 열매에 접근한 오딘이 무슨 짓은 한 건지 그것을 떼어 낸 것이다.
“무슨……!”
그 순간, 날뛰던 세계수가 침묵했다.
힘의 근원을 잃자 제자리에 멈춰 선 것은 물론 그간 빨아들인 생명력까지 모조리 토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농축된 생명의 힘에 노출되셨습니다.]
[생명력이 급속도로 회복됩니다.]
덕분에 생명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그러나 그만큼 세계수는 약해져만 갔다.
타락의 열매에 맺힌 기운들을 모두 잃으며 그랜드 마스터의 벽이 깨어진 것이다.
세계수에서 ‘유력한 가능성을 품은’ 세계수의 재목으로.
녀석의 힘과 격이 격하되었다.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며 잠들어 버렸다.
“아아……!”
그제야 엘프들도 안정을 찾았다. 눈물을 왈칵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계수가 세계수가 아니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엄청난 생명력을 품은 상태였다. 그들이 잘 가꾸고 지키기만 한다면 언제든 다시 세계수의 힘을 개화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 정도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결국 나의 승리다, 로칸.”
“…… ”
그사이, 오딘은 로칸을 향해 독기 어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로칸의 입장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헛소리처럼 들렸다.
놈들의 입장에서는 타락의 열매를 지키고, 더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이 놈들의 목적이 아니었던가
저건 또 무슨 개소린가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오딘은 악당처럼 으스대며 계획을 늘어놓았다.
“이것은 과정에 불과할 뿐. 이제 진짜 파멸이 도래할 것이다. 그 타락의 힘이 열쇠가 되어 ‘그’를 깨울 테니까.”
“또 뭔 개소리야 ”
모르는 척했지만 로칸도 가슴이 덜컹했다. 서둘러 폭격을 내던지며 놈을 제압하려 들었다.
만약 그의 말처럼 타락의 열매 또한 재료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통해 고대의 주문 아마겟돈을 완성시키고, ‘잊혀진 어떤 존재’를 세상에 풀어놓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세계수보다 훨씬 강력할 터였다. 오크 로드나 트롤 로드가 신기를 얻은 것보다도 강력하겠지.
어쩌면 사자왕처럼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는 강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타락의 열매를 빼앗을 필요가 있었다.
“날개 모드!”
“풍신의 걸음!”
로칸이 빠르게 놈에게 다가가 보지만 소용없었다. 날개는 없다 해도 속도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였다.
작정하고 도망을 치려 하자 로칸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더구나 타락의 열매에서 흘러나오는 타락의 힘이 그에게 스며들었고, 한계를 넘는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카이! 전설을 타는 자!”
“뀻!”
로칸은 어쩔 수 없이 카이마저 소환했다.
대붕으로 변한 카이가 놈의 앞을 막아섰다.
“끼우우우웃!
콰광 쾅 쾅.
바로 그때, 오딘을 막아서던 카이의 몸체가 거세게 흔들렸다.
타락 사제들의 공격!
오딘을 구출하기 위해 그들이 나선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분노한 로칸이 날뛰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품속으로 들어가 버린 오딘을 쫓는 것은 무리였다.
목숨을 내던져 가며 로칸의 발목을 잡아 대는 데다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젠장!”
결국, 로칸은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을 1분 남긴 시점에 카이의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1시간 뒤, 충격적인 전체 공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