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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아마겟돈 (2) (248/500)

 # 248

아마겟돈 (2)

타락자들의 병력은 타락 신도와 사제, 전사만이 아니었다.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많은 수를 세뇌시키진 못했지만 타락한 몬스터들 역시 그들의 곁에 있었다.

덕분에 전투는 꽤 치열했다.

“카이!”

그사이 로칸은 카이를 소환했다. 아무리 눈보라가 몰아쳐 비행이 어렵다지만 이 정도 근거리는 가능했다.

최대한 몸집을 부풀린 뒤 이동하자 바람에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빛의 기둥을 향해 이동했다.

그들과 함께 전투를 치르고, 같이 움직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조금 전 나타난 시스템 알림이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파멸의 기둥이 흩어진 타락의 힘을 흡수합니다.]

[파멸의 기둥이 대량의 죽음을 흡수합니다.]

[고대의 주문, 아마겟돈이 강화됩니다.]

[잊혀진 종족의 부활이 가속화됩니다.]

[앞으로 30분 후, 잊혀진 종족이 부활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빛의 기둥.

그 아래에서는 예상대로의 인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라그나로크.’

라그나로크의 팀원들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로칸을 겨냥했다. 각자의 힘을 일으켜 로칸과 카이를 격추시키려 들었다.

“흥!”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다.

카이와 교감을 통해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해진 로칸을 원거리에서 격추시킨다 어딜 감히

로칸이 잽싸게 공격을 회피하고 몸을 날렸다.

붉은 유성으로 화해 떨어져 내렸다.

“막아!”

쿠웅!

로칸이 노린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라그나로크 따위 어찌되든 그의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다.

로칸은 빛의 기둥을 들이받았다.

아마겟돈의 시전을 막기 위해서.

“크윽.”

그러나 기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한 방만으로 주문을 캔슬시키기는 어려웠다.

“제기랄.”

흔들리지조차 않는 빛의 기둥을 보며 로칸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미 라그나로크 쪽에서는 로칸을 타깃으로 공격을 시작한 상태.

로칸은 어쩔 수 없이 모든 힘을 개방했다.

“광풍 현신! 노움 5형제, 분신 소환! 전설을 타는 자!”

광풍 현신에 그 힘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분신, 그리고 마스터급 인형 다섯 기와 대붕으로 진화한 카이까지!

이 정도면 라그나로크쯤은 쓸어버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로칸의 힘에 빛의 기둥이 반응했다는 것이다.

[잊혀진 존재가 자신을 봉인한 힘의 잔재에 반응합니다.]

[잊혀진 존재의 의식이 빠르게 깨어납니다.]

[앞으로 20분 후, 잊혀진 종족이 부활합니다.]

세상을 파멸시킬 존재가 파멸을 봉인한 쇠사슬에 반응해 억지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부활 예정 시간이 더욱 앞당겨졌다.

‘미치겠군.’

아무래도 자신이 판단을 잘못한 것 같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나중에 시간이 급격히 줄어 버리는 것보다는 미리 알고 몰아치는 것이 나을 수도.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잊혀진 존재가 자신의 천적에 반응합니다.]

[잊혀진 존재가 격한 분노와 공포를 함께 느낍니다.]

[잊혀진 존재의 의식이 완전히 깨어납니다.]

[앞으로 5분 후, 잊혀진 종족이 부활합니다.]

“미친!”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

천적 대체 누가 무엇이

“크하하하! 네 무기가 대업을 방해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도움을 주는구나!”

그때 오딘이 광소를 터트렸다. 그제야 로칸도 뭔가 알 것 같았다.

타락의 빛을 받아 녹아내리고 있는 얼음 덩어리. 그 안에서 광기 서린 눈을 빛내고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타이탄!”

잊혀진 거신족, 타이탄.

파멸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천적이란 게 그런 것이었나.”

자신의 무기, 봉인된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를 힐끗 쳐다본 로칸이 입술을 깨물었다.

타이탄을 처치했다는 광풍의 존재. 그가 바로 타이탄의 천적인 모양이었다.

“그랬던 거로군.”

이제 모든 의문이 풀렸다. 전생에 오딘이 갑자기 자신을 축출하려 했던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전생에도 가지고 있던 봉인된 광풍의 배틀 액스.

그때는 이름이 다르게 표기되긴 했지만 자신은 이것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때도 오딘이 타락자들의 편에 붙었고, 자신이 이것을 가졌다는 사실을 안 거라면

모두 이해가 되었다.

봉인된 광풍의 배틀 액스를 게임에서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서 그 모든 일들을 꾸몄을 확률이 높았다.

뭔가,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라그나로크에게, 오딘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하긴 했지만 이유를 몰라 내심 마음 한편이 답답하던 차였으니까.

그리고 이제 전력을 다해 그들을 뭉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로칸은 전략을 바꾸었다. 타이탄의 부활을 막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렸다.

오딘. 라그나로크.

일단 놈들부터 철저히 조지기 시작했다.

“아니, 미친!”

“같이 죽자는 거냐!”

이쯤 되자 오히려 라그나로크가 당황했다. 이미 한 차례의 격돌에서 전투력의 차이를 실감했으니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로칸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사이 공략해 보는 것뿐인데 로칸이 아예 생각을 바꿔 먹었으니 그들로서는 버티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들 중 대부분은 마스터 스킬의 쿨 타임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강력한 마스터 스킬일수록 쿨 타임이 긴 것이 보통이기도 했고, 그 평균은 대부분 하루였으니까.

“버텨라! 막든 도망치든 어떻게든 버텨! 타이탄이 깨어나면 우리가 이긴다!”

때문에 방어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지만 로칸의 공격력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놈들을 침몰시키는 것은 로칸에게 일도 아니었다.

[아마겟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상의 파멸을 바라는 잊혀진 종족이 봉인에서 풀려납니다.]

[잊혀진 종족 : 타이탄]

[세상에 파멸의 기운이 드리웠습니다. 살아남으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구해 내십시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타이탄이 봉인에서 깨어났다.

“젠장, 지가 캡틴 아메리카도 아니고.”

“크허허허허헝!”

얼음에서 깨어나자마자 광기어린 포효로 인사하는 타이탄.

전율스러운 힘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로칸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퍼억!

그리고 거기에는 라그나로크와 타락자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튀, 튀어!”

타이탄은 기본적으로 세상의 파멸을 바라는 자이다. 그것에는 자신의 종족을 제외하고 그 어떤 예외도 없었다.

오랜 세월 얼음 속에 봉인되어 있던 분노가 폭발한 것인지 놈은 주변에 얼쩡거리는 놈들부터 단번에 박살을 내놓았고, 타락자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혹은 제 눈으로 세상의 파멸을 지켜보기 위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잡종 놈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남은 것은 로칸과 다종족 연합뿐.

로칸도 굳이 도망치는 라그나로크를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죽여 봤자 다시 살아나는 놈들이고, 놈들에게 투자하기에는 광풍 현신의 지속 시간이 아까웠다.

대신 눈을 들어 놈을, 타이탄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4~5미터는 족히 되는 거구.

놈의 모습은 지금의 로칸과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애초에 타이탄을 모델로 만든 스킬이니까.

정확히는 타이탄을 모델로 만든 광풍의 기술을 흉내 낸 것이었지만 어쨌든 결과는 비슷했다.

그 우람한 근육이며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힘까지.

최강의 종족이라는 말답게 강력한 포스를 풍겨 댔다.

[서리의 타이탄][Lv 417]

“제길, 이게 아닌가 ”

놈과 맞상대할 준비를 하며 로칸이 힐끗 자신의 무기를 쳐다보았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봉인.

아무래도 놈을 마주하는 것이 봉인 해제의 조건이 아닌 것 같았다.

광풍의 배틀 액스에 걸린 봉인이 풀리면 그나마 해볼 만할 것이라 생각 했는데.

그러나 투정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진 로칸이 배틀 액스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한발 먼저 땅을 박차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폭주 전차!”

저돌적으로 뛰어드는 로칸의 몸이 포탄처럼 놈에게 쏘아졌다.

그와 함께 서리의 타이탄이 자신의 무기인 워 피크를 높이 쳐들었다.

한쪽은 망치, 한쪽은 뾰족한 곡괭이 또는 송곳처럼 생긴 무기. 때문에 상대를 타격을 할 수도, 찍어 버릴 수도 있는 그것으로 로칸을 정확히 노렸다.

“급가속, 광기의 시간!”

그러나 일점을 타격하는 공격은 타이밍이 맞을 때 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돌진 스킬을 이용해 그 타이밍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워 피크의 송곳 부위가 로칸이 있던 지점을 때리기 전, 로칸의 어깨가 먼저 놈의 가슴에 닿았다.

쿠웅!

그러나 다른 이들처럼 가슴이 함몰되거나 뼈가 부러지는 일은 없었다.

충격은 받았지만 그뿐. 동급의 존재와의 싸움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이쪽이 한참 아래지.’

아니다. 여유 있게 그랜드 마스터급의 힘을 쏟아 내는 타이탄과 비교하면 로칸 쪽이 크게 손색이 있다.

로칸은 자만하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육체적 스펙을 활용하는 대신, 갈고닦은 컨트롤을 최대한 이용했다.

“튕기기!”

타이탄의 공격은 빠르고 묵직했다. 그러나 로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순히 튕겨 내기만 했다면 부담이 있겠지만 살짝 비껴 치자 어렵지 않게 타이탄의 공격을 흘릴 수 있었다.

“파멸의 일격!”

퍼억!

그 한 방에 타이탄의 몸이 다시 밀려났다.

파멸이라 불리는 놈에게 파멸의 일격을 꽂아 넣는다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상황은 전혀 우습지 않았다.

[당신에게 서리의 기운이 깃듭니다.]

[봉인된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의 힘이 서리의 기운을 흩어 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타이탄이 아니라 속성을 가진 놈이다. 따로 기운을 일으키지 않아도 타격 부위마다 서리의 기운이 깃들었다.

상대의 행동을 둔화시키고 저항력이 낮을 경우 동상, 빙결 효과까지 일으키는 놈의 공격은 제아무리 로칸이라 해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무기끼리의 격돌은 상극인 장비들로 어떻게든 흩어 내고 있지만 정타를 허용할 경우 로칸이라도 상태 이상에 걸릴 수 있었으니까.

더구나 육체적 스펙만 따지고 본다면 결코 로칸의 아래가 아니다.

“절대 포박!”

그때, 어느 정도 상태를 회복한 다종족 연합이 참전했다. 자신의 조합 스킬과 마스터 스킬을 퍼부으며 서리의 타이탄을 몰아붙였다.

아니, 그럴 생각이었다.

“안 돼!”

귀찮은 잔챙이들을 먼저 상대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놈은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로칸에 대한 분노는 잠시 접어 두고 상대하기 쉬운 놈들부터 도살하기 시작했다.

“쓸모없는 것들. 모조리 씹어 삼켜 주마.”

으적으적.

가장 먼저 당한 것은 다름 아닌 트롤 사냥꾼이었다.

무려 하이 마스터나 되는 존재였지만 아주 간단히 붙잡혀 팔다리가 부러졌다.

그리고 타이탄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상어 같이 날카롭고 단단한 그 이빨에 트롤 하이 마스터의 몸이 잘게 분쇄되었다.

“크아아아아악!”

트롤 특유의 재생 능력도 소용없었다.

비명을 지르는 그를 구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다시 한 번 공격을 퍼부었지만 타이탄을 어찌하는 것은 무리였다.

오히려 놈은 트롤의 시체를 씹으면서 다른 이들에게로 접근했다.

머리를 부수고, 배와 허벅지를 송곳처럼 찍어 버리며 구멍을 내놓았다. 넝마로 만들었다.

수십에 달하는 하이 마스터들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무참히 짓밟았다.

“미친. 전력이 아니었어 ”

그제야 로칸도 깨달았다. 자신을 상대한 힘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인지 가지고 놀기 위함인지 적당한 수준의 힘으로만 자신과 맞붙었던 것이다.

게다가, 놈의 타깃에 로칸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다른 하이 마스터들만을 사냥하고, 로칸이 달려가면 얼른 몸을 빼내었다.

광풍의 힘이 담긴 배틀 액스가 부담스러워서일 수도 있지만, 로칸은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모욕감을 느꼈다.

“시간 역행.”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연합군의 숫자를 가늠하며 로칸이 시간을 되돌렸다.

광풍 현신을 사용하기 이전으로 몸을 되돌리고 다시 카이를 불러 놈에게 접근했다.

“크흐흐, 인간 놈, 포기한 건가 ”

그사이 모든 적들을 도륙한 서리의 타이탄이 으스대듯 웃었다. 그리고 로칸 역시 놈과 마주 웃어 보였다.

굳이 광풍 현신의 상태를 되돌린 이유는 하나다.

이미 사용한 지속 시간을 다시 최대치로 채우기 위해서.

그리하여 놈과 제대로 끝장을 보기 위해서.

“광풍 현신.”

로칸이 다시 한 번 거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몇이나 되는 그랜드 마스터들을 상대하면서도 사용하지 않고 아끼고 아껴 두었던 마지막 힘을 개방하였다.

“초월 각성. 사자왕의 무구…… 봉인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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