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아마겟돈 (3)
초월 각성.
영혼 수집가의 권능에 내장된 특수 스킬이 발동했다.
1만개의 동급 영혼을 소모하여 일시적으로 자신의 격을 상승시키는 그 능력이 로칸에게 적용되었다.
[초월 각성의 효과로 일시적으로 하이 마스터의 능력을 각성하였습니다.]
[임의의 마스터 스킬 조합이 가능합니다.]
이미 알고 있던 효과다. 때문에 로칸은 망설이지 않고 즉석에서 하나의 스킬을 조합해 냈다.
[마스터 스킬 ‘전신무쌍’을 습득하셨습니다.]
전신무쌍!
광살과 같은 일격 필살의 스킬을 조합해 낼까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로칸은 생각을 바꿔 먹었다. 일격으로 끝장을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대신 지속형이되 아주 강력한 스킬을 만들어 냈다.
어찌 보면 창세의 왕이 사용하던 참절검과도 같은 힘이다. 일정 반경 이내의 적을 말살할 때까지 공격력이 크게 증폭되는 지속형의 스킬.
그것이 로칸의 몸에 일어남과 동시에 또 하나의 힘이 눈을 떴다.
사자왕의 무구!
세트 효과를 얻는 순간 하이 마스터 제한이 붙는 바람에 아직까지 제대로 써먹지 못하던 그것의 봉인을 해제한 것이다.
[사자왕의 무구가 봉인에서 깨어납니다.]
[사자왕의 무구가 본래의 힘을 되찾습니다.]
[세트 효과 ‘사자왕의 힘’이 발동됩니다.]
세트 효과뿐 아니라 봉인된 상태였던 각 파츠의 능력치가 달라졌다. 기존의 것과는 아예 격이 다른 힘을 로칸에게 부여했다.
“건방진!”
그 순간, 서리의 타이탄이 위협을 느낀 듯 짓쳐 들었다.
여유 있던 얼굴에 긴장과 분노가 서리며 로칸을 격살하기 위해 모든 힘을 끌어내었다.
후우우웅!
공간이 찢어졌다. 송곳 같은 워 피크의 꼭짓점에 집결된 미증유의 기운이 눈보라마저 멈추게 만들었다.
까가가강!
그러나 로칸은 가볍게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정면으로 승부하는 대신, 조금 더 깊숙이 도끼날을 찔러 넣으며 휘감듯이 워 피크를 타고 움직였다.
쿠웅!
워 피크에 찍힌 대지가 소멸했다. 폭발, 파괴 이딴 것이 아니라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그것만으로도 놈의 공격에 담긴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지 알 수 있었지만, 로칸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기다려, 새꺄!”
퍼억!
타이탄의 가슴을 발로 차며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 하나 남았다.”
자신이 가진 마지막 힘을 끌어내었다.
“무혼 각성.”
황궁 대도서관에서 찾아낸 하이 마스터 제한의 스킬.
그리고 가오칸을 사자왕으로 만들어 주었던 스킬.
그것이 로칸에게서 재현되었다.
사자왕의 무구에 깃든 영혼의 힘을 이끌어 내었다.
“크허허허허헝!”
사자의 포효가 타이탄을 위협했다.
질 수도 있다. 또다시 봉인되어 억겁의 세월 동안 고통받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을 넘어 죽을 수도 있다.
최강의 종족답게 공포 따위는 느끼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예외였다.
‘마나라니, 재미있군.’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타이탄과 달리 로칸의 표정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무혼 각성을 일회용이 아니었다.
쿨 타임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
필요한 것은 마나와 ‘무혼’을 지닌 아이템.
그렇기에 로칸은 다시 한 번 그것을 발동시킬 수 있었다.
“무혼 각성.”
이번에 깨운 것은 사자왕의 무구가 아니었다. 사자왕의 무구는 세트 아이템으로, 그 전체가 하나였으니까.
각성하여 깨어난 사자왕의 무구는 개별로 재각성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로칸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아이템이 있었다.
봉인된 광풍의 배틀 액스.
과거 타이탄을 죽인 광풍의 무구라면 무혼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 예상은 적중했다.
[봉인된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가 무혼 각성을 일으킵니다.]
[봉인된 아이템은 각성할 수 없습니다.]
[한정 해제. 주변에서 타이탄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특수 조건 만족으로 봉인된 광풍의 사슬 배틀 액스에 걸린 봉인이 일시적으로 해제됩니다.]
“……!”
그리고 도박이 성공했다.
아직 ‘봉인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상대가 타이탄이기에, 그 힘이 깨어난 것이다.
그와 함께 로칸에게 격이 다른 힘이 느껴졌다.
하이 마스터의 수준을 뛰어 넘은 힘.
일시적이나마 로칸은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손에 넣었다.
“흐흐흐, 다시 해보자!”
까앙!
배틀 액스와 워 피크가 부딪쳤다.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지만 힘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휘청.
그 순간, 타이탄의 무릎이 꺾였다.
놈이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로칸이 힘에서 앞서고 있는 것이다.
“까불지 마라!”
분노한 타이탄이 힘을 폭발시켰다. 내재하고 있던 서리의 기운이 주변을 잠식하며 모든 것을 얼려 버렸다.
[사자왕의 힘이 당신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힘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것은 로칸도 마찬가지였다.
서리의 기운 따위, 불의 속성을 내재하고 있는 사자왕의 힘 앞에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배틀 액스가 놈이 있던 자리를 쪼갰다.
사자왕의 기운과 광풍의 힘이 함께 실려 화염 폭풍과 같은 검풍을 일으켰다.
“크아아악!”
놈이 워 피크를 들어 막아 보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타고난 힘에 의존하는 놈과 달리 로칸에게는 인간의 기술이 있으니까.
놈의 무기가 땅에 처박히게 만들어 버린 뒤, 몸을 날렸다.
사자왕의 무구의 봉인을 풀면서 생겨난 새로운 스킬에 몸을 맡겼다.
“사자의 습격!”
겉보기엔 평범한 숄더 차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놈의 몸과 로칸의 어깨가 부딪치는 순간, 화염으로 이루어진 사자의 형상이 일어났다.
사자가 먹잇감을 물어뜯듯 거칠고 사나운 이빨 자국이 놈의 가슴에 새겨졌다.
“커헉!”
서리의 힘과 상극인 사자의 힘이 놈의 몸속 깊숙이 침투했다.
재생력이 말을 듣지 않았고, 서리의 힘마저 약해졌다.
“사자열파참!”
이어 쏟아지는 검기 난무!
극상성의 힘으로 증폭된 대미지가 놈의 몸에 아로새겨졌다.
“감히! 인간 따위가!”
그러나 놈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최강 종족의 자존심이 그를 일으켰다. 다시 한 번 지진처럼 발을 구르며 로칸에게로 쏘아졌다.
“반격!”
하지만 로칸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반응조차 하기 어려운 놈의 일격이 내리꽂히는 순간, 생성 스킬을 이용해 백스텝을 밟았다. 피했던 속도 이상으로 놈에게 달려가 강력한 일격을 선사했다.
“크윽!”
쿠웅! 쿵! 쿵!
가까스로 배틀 액스를 막아 낸 놈의 몸이 물수제비처럼 튕겨졌다. 힘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로써 분명해졌다.
쿠오오오오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놈의 입 주변으로 엄청난 마나와 서리의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 그것은 분명히 드래곤의 권능인 브레스였다.
쿠화아아아아아아.
빙결의 힘을 담은 아이스 브레스가 뿜어졌다. 떨어지는 눈송이마저 얼려 버리는 극한의 빙결!
저것에 맞았다간 자신도 어찌 될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로칸은 침착했다.
자신을 믿었다.
“광살!”
빙결의 힘을 지닌 브레스를 향해 전력으로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그것을 베어 냈다.
“캬아아아아악!”
온몸에 잔뜩 서리가 끼긴 했지만 멀쩡히 서 있는 로칸을 보고 타이탄이 발작했다.
인정할 수 없다.
최강의 종족은 자신이었다.
당연히 최강도 자신이다.
그 누구도, 어떤 종족도 그 절대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낱 인간 따위에게, 또다시 인간 따위에게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
파아아앗.
놈의 몸 주위로 녹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타이탄의 분노!
극도의 분노 상태여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타이탄으로서는 이루기 어려워 의지대로 사용할 수 없는 그랜드 마스터 스킬이 발동했다.
전신에 깃든 파멸의 기운이 그와 맞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렸다.
진정한 파멸(破滅)이자 재앙(災殃)이 되었다.
“죽어라!”
그것만이 아니다. 놈이 제대로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워 피크에 파멸의 힘이 깃들며 로칸을 위협했다.
파스스슷!
강대한 힘의 충돌이라고 볼 수 없는 진공에 가까운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지형이라 불리던 것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큭…….”
부르르르.
봉인이 해제된 광풍의 배틀 액스가 부르르 떨려 왔다. 파멸의 힘이 담긴 일격을 받아 내는 것은 그로서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러나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타이탄의 유일한 대적자로서 놈의 힘에 저항했다. 난무를 펼쳐 놈에게 반격을 가했다.
쩌적 쩌저저적.
놈이 워 피크를 휘돌려 방어에 나섰지만 로칸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사자왕의 힘이, 광풍의 힘이 피부처럼 둘러진 파멸의 갑옷을 쪼갰다.
그 틈을 타 놈이 다시 한 번 워 피크를 휘둘렀다.
망치면을 이용한 압도적인 파괴력이 로칸을 내리찍었다.
“점프!”
그 순간, 로칸이 뒤로 뛰었다. 놈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더니 배틀 액스를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거대한 망치를 꺼내 들었다.
“큿!”
토황추!
확정적으로 상대를 넘어뜨리는 토황추의 특수 효과가 발동되었다.
쿠웅! 꿀렁꿀렁.
확정 판정을 받는 그 효과에서는 타이탄도 벗어날 수 없었다.
미리 알고 대처했다면 피하거나 상쇄할 수도 있었겠지만 느닷없이 펼쳐진 일격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꽈당!
볼품없이 넘어진 놈을 향해 로칸이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치명적 일격, 참격, 뼈 부수기…….
자신이 가진 모든 스킬을 일격에 중첩시켰다.
“먹어라!”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최후의 일격을 꽂아 넣었다.
“이스케이프!”
츠즈즛!
그러나 놈에게도 탈출기는 존재했다.
타이탄의 몸이 허깨비처럼 사라지는가 싶더니 로칸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등 뒤를 점하려 든 것이다.
“병신!”
파앙 파바방!
하지만 로칸은 예상했다는 듯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충격탄.
대미지는 없지만 토황추와 마찬가지로 확정적인 넉백 효과를 주는 구슬 여러 개가 동시에 놈에게 날아들었다.
정확히는 놈의 발치를 향해 떨어졌다.
“어헉!”
하체의 균형을 잃는다면 육체적 스펙 따위는 상관없다. 다리가 꺾인 타이탄은 그대로 코를 박고 앞으로 넘어졌다.
그 틈에 로칸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는 타이탄을 향해 진정한 최후의 일격을 선사했다.
“초극.”
광풍의 배틀 액스가 각성하며 습득한 최후의 일격.
로칸이 두 번째 마스터 스킬로 필살기를 만드는 대신 지속형 스킬을 조합한 것도 바로 이것의 존재 때문이었다.
광풍의 배틀 액스를 무혼 각성으로 깨우는 순간 깨친 스킬.
그것이 로칸의 손에서 재현되었다.
“그, 그럴 순……!”
퍼억!
로칸의 배틀 액스가 타이탄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가 자랑하던 파멸의 기운도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로칸의 힘이 두려운 듯, 물러서는 듯한 움직임까지 보였다.
한계를 부수고, 불가능을 파괴하는 파괴의 힘이자 새로운 세상을 여는 힘이 놈의 전신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세상을 멸하려던 파멸의 존재를 지워 버렸다.
세상에 새로운 절대자의 탄생을 소리 높여 알렸다.